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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100년의 시간 속을 걷는다: 월간 빛, 교구 30년을 그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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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3-05-17 ㅣ No.586

[100년의 시간 속을 걷는다] 월간 『빛』, 교구 30년을 그리다

 

 

30년 간 700여 명의 필진과 대화

 

1983년 5월 대구대교구에는 신자들 소통의 광장이 창설되었다. 월간 『빛』이 창간된 것이다. 그리고 지난 달 통권 360호가 발간되었다. 그중 2012년까지의 잡지만으로 통계를 내면 필자가 750명이 넘는다. 그중 약 5분의 1이 성직자와 수도자이다. 물론 성직자가 훨씬 많다. 더욱이 성직자는 거의 다 연재필자들이기 때문에 그들의 역할은 필진 숫자보다 훨씬 방대하다. 가장 필자로 많이 잡히는 사람은 현재 『빛』잡지 편집부에 종사하고 있는 김명숙 편집실장, 김선자, 박지현 기자들이다. 그들은 교구 곳곳을 다양하게 누비며 약 150~200개에 가까운 기사들을 내고 있다. 물론 초창기에 활동했던 이경덕, 안재홍, 윤진실, 이은영 등도 같은 경우이다.

 

『빛』의 필진으로는 최창무 주교, 이효상을 비롯하여 장윤 스님, 이홍식 목사와 비신자 인사들도 다수 등장했다. 『빛』잡지의 가장 주요 필자는 이문희 대주교였다. 약 40회에 걸쳐 글을 게재했는데 그 글이 모두 잡지 자체를 위해 쓰인 글이었다. 초창기 대주교는 특집에 맞추는 권두언을 썼다. 또한 잡지가 어려워질 때 또 잡지 기념호일 때 글을 썼다. 역대교구장으로 최영수 대주교도 10회가 넘는 글을 남겼고, 현재 조환길 대주교의 글도 20회를 넘고 있다. 현재까지 『빛』에서 가장 글을 많이 쓴 필자는 이 달의 주제, 성경의 주변이야기, 큰 빛 작은 빛 등으로 사랑받은 이용호 신부이다. 그는 『빛』의 주간을 세 번이나 역임하면서 5년 가량 사랑방을 운영했다. 이외 ‘물따라 세월따라’ 등으로 많은 생각을 나눈 김영환 몬시뇰, 구약성경을 소개한 송재준 신부, 교리해설의 하성호 신부, 교리상식의 하창호 신부, 신학강의의 전광진 신부, 청소년을 위한 교리의 전재현 신부, 볼리비아 선교의 마진우 신부 등도 3년 가까이 글로 신자들 생활의 앞길을 열어 주었다.

 

또 이재수(신약성경) · 최창덕(전례) · 김명현(사회교리와 다문화) · 이창영(생명) · 조현권(성령) · 김율석(대화방) 신부 등과 서정관 수사(영화이야기)도 교구인들에게 추억의 코너를 엮어준 주역들로 기억된다. 전헌호 신부와 정홍규 신부, 석창훈 등은 생활 속의 환경이야기로 관심을 나누었다. 그리고 김도애는 행복의 보금자리로 오랫동안 대화를 이끌었다. 김정길이 신앙에세이로 그 날카로운 붓을 들었고, 안유일과 정영목의 건강법과 이경수(세상보기) · 김정우(자유와 법) · 김용민(가정) 신부뿐만 아니라 이동철 · 심탁 · 함영진 · 최경환 신부나 김계선 수녀도 신자들 귀에 익숙한 이름이다.

 

교회사로는 윤광선 소장이 발굴기사로 오랫동안 자극을 주었다. 마백락, 백경옥 등등도 연재했으며 초창기에는 교구사 편찬위원들, 후에는 시복시성위원회 역사분과 위원들이 글을 실었다. 특히 『빛』은 초기에 대구교구사 편찬팀들이 모였기 때문에 교구사 서술을 위한 강연을 진행했다. 최석우 신부와 김진소 신부, 조광, 유홍렬 등 전국의 역사학자들이 교구민의 궁금증에 대해 강의했다. 그리고 이를 지면에 게재하여 많은 공감을 얻었다. 이렇게 잡지가 일정한 행사를 주도하고 인원을 동원할 수 있다면 그 내용은 단단해질 수 있다.

 

김혜영(순교동화), 최홍준(종소리) 등은 순교자 이해에 일익을 맡았다. 김영부도 노사제와의 인터뷰로 역사를 파헤쳤다. 교회사 잡지가 없는 교구로서는 큰 행운이었다. 물론 현재 필진인 송창현 · 조용준 · 김종헌 · 김동진 신부 등등, 또 필자인 김정숙도 오래 사랑방에 머무르고 있다. 한편 <함께 풀어봅시다>는 1988년부터 시작된 오래된 고정코너였고, 교구 내 어려운 이웃을 찾아가 기사를 써서 독자들의 후원금으로 도움을 주고 있는 <함께 사는 세상>도 특히 오래도록 사랑받는 꼭지이다. 그러나 이 모든 필진은 사실 그것을 열심히 읽어주고, 또 잡지를 구독해준 사람들 덕분에 존재하는 것이다. 그들은 그렇게 서로 대화해왔다. 우리 각자는 각자의 위치에서 기도로, 기부금으로, 독자로, 집필자로, 조언자로, 또는 잡지를 선물하고 선물 받으면서 월간 『빛』을 물주며 가꾸어 온 것이다.

 

 

교구사 편찬위원실과 저널리스트 대구클럽 『빛』을 내려고 모이다

 

월간 『빛』은 본래 『이 땅에 빛을』이란 이름으로 창간되었다. 이는 당시 ‘한국천주교회 200주년’을 앞두고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방한과 순교 복자 103위의 시성을 준비하며 한국천주교회가 채택했던 슬로건이었다. 또한 바티칸이 그 해를 매스미디어 해로 선포했던 때였다. 제8대 교구장 이문희 대주교는 이 역사적 해를 철저히 준비하기 위해 교구 소식지의 발간을 기획했다. 대주교 스스로 드망즈 주교께 드리는 편지를 써서 필진 중 첫 번째로 원고를 제출하며 발간을 격려했다. 모든 사람들이 5월에 맞추기 위해 밤을 새며 작업했다. 그래도 그것이 짧은 시간 안에 창간이 가능했던 까닭은 당시 교구사 편찬실과 저널리스트 대구클럽이 가동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 구성원들이 앞으로 간행될 『빛』의 내용을 결정했다. 창간호는 성모당을 특집으로 4×6배판 36면으로 나왔다. 무가지(無價紙)로 5천부 발행했다. 

 

당시 편집인들은 대구교회에서 월간지를 낸다는 기쁨에 들떴다. 1982년 당시 문공부에 등록된 정기간행물이 1073종이었는데 이중 천주교 6종, 개신교 66종, 불교 14종이었던 상황이었다. 그런데 지난날 주교회의는 『경향잡지』를 한국천주교회의 공식잡지로 결정하여 이를 전국지로 지정한 바 있었다. 이를 제외한다면 오늘날까지도 교구 자체 내에서 잡지사를 운영하고 있는 곳은 드물다. 최근 전주교구가 『쌍백합』을 발간하기 시작했고, 수원교구가 준비를 하고 있는 중이다. 그러므로 30년 전에 이루어진 『빛』의 출발은 그야말로 긍지 그 자체였다. 교구에서는 <매일신문>과 <가톨릭신문>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매일신문>은 지역민을 상대로 한 일간지여서 사실 지면의 균형에 세심한 신경을 쓰는 신문이다. 또한 <가톨릭신문>은 전국지여서 그 또한 교구 간 균형 때문에 대구 지역 외의 일을 다루려 애쓰고 있다. 그뿐 아니라 발행일이 촉박하면 깊이 있는 기사를 다루기가 어렵다. 그러므로 교구 월간지의 창간은 교구 언론의 또 다른 방향을 여는 창구가 된다.

 

월간 『빛』은 창간 이후 10여일 만에 재판을 찍는 등 큰 호응을 받았다. 그리고 창간호 바로 다음 호가 40면으로 증면되는 등 계속적으로 성장해 나갔다. 창간 바로 다음 달부터는 유가지로 결정되어 권당 500원으로 회원모집에 들어갔다. 그리고 그해 12월 이문희 대주교는 100여 명의 전문가를 초청하여 『빛』의 진로를 토론했고 이듬해 1월 제9호의 제호를 『새 하늘 새 땅을 여는 빛』으로 변경했다. 당시 이문희 대주교는 사람이 만나 빛을 내고 그 빛이 모여 이 땅을 밝히기를 바랐다. ‘새 하늘 새 땅을 여는 빛’이란 하느님 말씀의 완성이었다. 한편 1990년에는 『빛』의 새 이름을 공모한 적이 있으나 현재까지 『빛』은 그 이름으로 자기변형을 실현해 오고 있다.

 

이후 『빛』은 그 편집 방향을 점차 대구·경북 지역을 주된 대상으로 삼는 종합월간지로 성격을 변화해갔다. 잡지는 1985년부터 100면을 넘게 되었고 많을 때는 160면까지 증면되었다. 잡지의 가격도 1,000원에서 1,200원, 1,500원으로 인상했다. 이때는 가톨릭 정신에 바탕을 두고 종교 기사를 종교 외적인 시각으로 평가하고 일반 기사는 가톨릭의 정신으로 재조명하던 때였다. 그리하여 전국 시사현장과 과제를 다룸은 물론 한국역사, 문화, 무형문화재, 주요인물 등을 다양하게 다루었다. 물론 필진도 다양했다. 그리하여 『빛』은 일반서점에서 판매하는 잡지로 사회 속에 가톨릭정신을 전파하는 붓이 되었다. 그리고 광고도 한 호에 10여 페이지 이상 실렸다. 『빛』은 관덕정 공사 중 교구 사료로, 또 영구보관품의 하나로 채택되었다.

 

초기 잡지는 최홍길 신부, 윤광선 영남교회사연구소장 등 대구교구사 편찬실이 주축을 이루었고, 기사는 대구가톨릭 저널리스트클럽에서 도왔다. 그리고 이때 교구사 편찬을 앞두고 있었기 때문에 그 연구도 진지했고, 잡지의 내용도 튼튼했다. 그러나 『대구본당 100년사』, 『교구사연표』와 『교구사화보』 등이 차례로 발간되면서 편찬실의 업무가 끝났다. 이어 교구 홍보국에서 발행하던 『빛』은 1987년 그 발행주체가 가톨릭신문사로 이전하게 되었다. 그리고 1988년 1월부터 국판으로 발행하였다. 그러나 1993년 이문희 대주교는 결단을 내렸다. 『빛』이 대중 속으로 파고드는 데도 한계가 있고, 또 교회 홍보지로써의 역할도 제대로 할 수 없다는 한계를 확인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잡지의 내용을 대폭 변경하여 교구의 신자 가정을 위한 천주교 종합월간지로 바꾸었다. 그리고 다시 교구 사목국에서 발행을 관할하게 되었다. 그후 1999년 제11대 주간 김율석 신부는 다시 『빛』을 대중잡지로 변화시켜보고자 시도했으나 큰 성과를 거두지는 못했다. 현재 『빛』은 교구소식, 신자들의 신앙생활, 교회의 역사와 제반 사건의 이해, 또 신자 서로 간의 통교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처럼 『빛』은 초기부터 특집을 발굴하여 잘 운영해 왔다. 특히 1984년 1월에는 교황 방한 준비로 한 권 전체를 교황에 대하여 실었다. 또 그해 5월호는 통째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대구 방문을 취재하여 1만부 이상을 배포했다. 이후 2009년 4월 김수환 추기경 선종, 같은 해 10월호에서는 제9대 교구장 최영수 대주교의 선종, 2010년 12월 조환길 대주교의 제10대 교구장 임명, 이듬해 2월 조환길 대주교의 착좌식을 특집으로 다루었다. 이러한 특집을 내기 위해서는 새로운 인력의 동원이 요구되고, 이러한 특집이야말로 월간지가 가질 수 있는 장점으로써 한 사건, 한 사람을 깊이 파고 들 수 있는 기회가 되고 있다.

 

30년 세월에 『빛』잡지는 그만큼 생일을 맞았다. 그러나 그 생일은 언제나 조촐했다. 1주년 기념에는 당시까지의 총 목차를 정리했고, 1988년 창간 5주년에는 이문희 대주교가 ‘가시나무 새’의 교훈을 제시하며 기념사를 썼다. 6주년에는 박태봉이 ‘이름 그대로의 빛이 되고 싶습니다.’라는 기념사로 관심을 호소했다. 그리고 독자들의 희망을 조사했다. 2007년 4월 드디어 통권 300호를 발행했고, 5월에는 창간 25주년 특집호를 발간했다. 오늘은 그 창간 30주년을 기념하는 새로운 잔치이다. 그동안 『빛』은 최홍길 신부를 시작으로 전달출 · 이창배 · 최현철 · 박영봉 · 이형문 · 최시동 · 이용호 · 최현철 · 김경식 · 김율석 · 이용호 · 함영진 · 이용호 · 하성호 신부 등이 주간직을 이어받으며 그 정체성을 다져 왔다. 현재 정태우 신부는 제16대 주간으로 그 다짐을 이어받고 있다.

 

월간 『빛』은 한국교회 200년의 기쁨을 준비하기 위해 탄생했다. 이제는 다시 대구대교구 200년을 비추기 시작하고 있다. 『빛』은 우리 각자가 작은 빛이 되고자 하여 자신의 위치에서 쓰거나 읽고 있는 잡지이다. 이를 가톨릭 정신으로 빠르게 움직이는 사회를 밝히며 우리가 나갈 나침판으로 만드는 일은 지금 우리 모두의 몫이다. (도움 : 대구가톨릭대학 유스티노 교정 도서실, 영남교회사연구소)

 

[월간빛, 2013년 5월호, 김정숙 소화데레사(영남대학교 문과대학 국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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