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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미술ㅣ교회건축

교회건축을 말한다1: 성당이라는 공동체 건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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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2-01-08 ㅣ No.101

[교회건축을 말한다 1] 제1화 - 성당 : 공동체와 빛의 건축 (1) 성당이라는 공동체 건축

성당, 교회라는 신앙 공동체 담는 건축물


김광현(안드레아, 서울대 건축학과 교수, 건축가)
 

매주 또는 매일 우리가 하느님을 경배하고 찬미하며 미사를 올릴 수 있게 하는 거룩한 건축물. 마음이 괴롭고 하소연할 곳이 없을 때 주님을 찾아가 기도드릴 수 있게 하는 본향과 같은 거룩한 건축물. 신앙을 같이하는 사람을 형제ㆍ자매라 부르며 봉사하고 하느님 말씀을 공부할 수 있게 지어진 건축물. 이런 건물을 '성당'이라고 한다.
 
그러나 사실 성당이라는 건축물은 우리가 모이기 위해, 기도하기 위해 지어 바친 건물이기 이전에, 하느님께서 먼저 우리를 위해 마련해주신 선물이다. 이곳에서 당신 자녀들이 마음과 영혼의 쉼을 얻으라고 내려주신 '하느님의 집'이다. 그렇다면 이런 귀중하고 거룩한 하느님의 선물인 성당에 대해서 우리는 얼마나 알고 있는 것일까?

성당은 신자들이 미사나 전례에 참례하기 위해 모이는 장소, 성체 안에 현존하시는 하느님이 거처하는 장소다. 넓은 의미에서는 하느님 경배를 위해 지정된 모든 건물을 말한다. 그리고 성당, 경당, 묘, 미사와 간접적으로 결부되는 수도원, 신자의 회관, 종교적 여러 단체의 회관, 사제관 등을 합해 '교회건축'이라 부른다. 그러니까 교회건축은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따르는 인간의 공동체를 위한 공간이다.

길을 가는 사제를 보고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청소부.
 

그러나 성당은 교회라는 말과 다르다. 교회는 본래 건물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신앙을 가진 신자들의 공동체를 뜻하는 말이다. 교회는 신앙을 가진 사람들 모임, 곧 하느님 백성을 가리키는 말이며, 이를 에클레시아(Ecclesia)라고 한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시기 전날 밤 제자들과 함께하신 최후의 만찬을 기념하는 성찬식을 라틴어로 'ritus Communionis'라고 하는데, 영어로 공동체를 뜻하는 '커뮤니티(community)'는 이 말에서 나왔다고 한다. 그러니까 누군가 "성당이란 무엇인가"하고 물으면 "성당은 교회라는 신앙 공동체를 담는 건축물이다"라고 답하면 된다.

사실 박해시대나 초대교회 때는 성당을 지을 수 없었다. 그래서 신자들은 이 집 저 집 옮겨 다니며 찬미와 감사 예배를 드렸고 사랑의 친교를 나눴다. 따라서 교회로 사용된 가장 오래된 건물 형식은 주택이었다. 남의 눈을 피해 주택이나 지하 분묘 등 적절한 공간을 찾아 전례를 행했던 것이다. 그러나 주님께서 교회를 세우신 지 300년이 넘도록 제대로 된 성당을 하나도 가질 수 없었다. 이는 박해를 피해 이리저리 옮겨다니며 신앙을 간직하려 했던 우리 선조 모습을 생각하면 금방 이해될 것이다. 이렇게 보면 손쉽게 찾아갈 수 있는 성당이 내 주변에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선물인가?

그러다 가톨릭교회가 공인된 후, 많은 사람이 미사를 봉헌하기 위해 일단 빌려 쓴 건물형식이 바실리카(basilica)라는 건물이다. 이 건물은 로마시대 때 법정이나 상업거래소, 집회장으로 사용됐는데, 직사각형 넓은 공간이라 많은 사람들이 모일 수 있었다. 그 이후 교회건축은 크게 발전했다. 그러나 중세를 거치며 제대는 멀리 있고 신자는 이를 아래서 바라보는 극장식 성당이 도시마다 앞다퉈 세워졌다. 성당이 없어도 함께 빵을 나누고 하느님을 찬미하던 소박한 공동체의 모습이 사라지며 복음 정신과 멀어지게 된 것이다.

그리스도교가 여느 종교와 다른 점은 성당이라는 건축물이 있기 이전에, 주님을 에워싸는 신앙의 사람들이 먼저 모였다는 점이다. 다른 종교는 신을 모시기 위한 건물을 먼저 만든다. 그러나 그리스도교는 하느님께 부름을 받은 사람들이 모이기 위해 건물을 만든다. 따라서 성당이라는 건물이 없어도 교회는 있다. 그러나 신자들이 모이지 않는 성당은 있을 수가 없다. 그렇지만 성당을 어떻게 짓는가에 따라 우리 신앙 공동체를 복음 정신에 가깝게도, 멀게도 할 수 있다. 여기에는 역사적 증거도 있다.
 
루이스 바라간이 설계한 카푸치나스 수녀원 성당.
 

성당이라는 건축물은 어떻게 시작하는 것일까를 생각할 때, 제일 먼저 생각나는 두 장면이 있다. 하나(왼쪽 사진)는 거리를 청소하던 한 사람이 병자 영성체를 위해 길을 걸어가는 사제를 향해 길거리에 무릎을 꿇고 온갖 정성을 다해 기도하고 있는 장면이다.

다음 장면(오른쪽 사진)에서는 청소하던 사람이 수녀님으로 바뀐다. 그리고 이 사진에서는 걸어가던 사제는 사라지고 그 대신 제대가 나타난다. 길바닥은 성당 바닥으로 변하고, 나와 저 사람들 사이에 격자의 창이 가로 놓인다. 그러면 루이스 바라간이 설계한 '카푸치나스 수녀원 성당'이 돼 나타난다. 교회건축은 이렇게 이뤄지는 것이다. 두 장면은 건축적 장치가 있고 없고의 차이만 있을 뿐 본질은 같다. 이 두 장면은 성당이라는 건축물의 시작이 어디인가를 말해준다.

성당이라는 공간 안에서 행해지는 가장 소중한 집회는 미사다. 미사의 본질은 주님의 식탁을 둘러싸는 것에 있다. 주님 식탁을 둘러쌈으로써 우리는 하나가 되고 하느님 백성이 되고 공동체를 이루게 된다. 이와 같은 가톨릭 고유의 전례는 말, 일어서고 앉는 동작, 나가고 들어오는 신자 행렬과 함께한다. 제의와 촛불, 특별하게 울려 퍼지는 노래와 음악, 십자고상과 감실, 유리화(스테인드글라스)를 통해 들어오는 빛…. 이 모든 것이 성당이라는 건축물 속에서 하나가 된다.
 
건축이 만드는 공간은 사람의 행동과 의식을 규정한다. 그리고 건축 공간은 인간 정신에도 작용한다. 그중에서도 교회건축은 가장 중요한 건축 유형이다. 그것은 교회건축의 기능이나 구조가 특별히 어려워서가 아니다. 공간과 인간에 작용하는 힘을 가장 순수하게 보여주기 때문이다. 교회건축 공간은 단순한 실용을 넘어, 그것을 만든 사람들이 지닌 공동의 정신을 가장 뚜렷하게 표현한다. 성당은 그곳에 모이라고 부르시는 위대한 힘을 눈에 보이도록 하는 것이다. 그러니 성당을 건축하는 것은 인간의 정신, 마음 그리고 최고의 예술을 담는 일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평화신문, 2012년 1월 8일, 김광현(안드레아, 서울대 건축학과 교수, 건축가)]


[교회건축을 말하다] 연재를 시작하며


건축은 돌과 콘크리트로 지어지는 단순한 물체가 아니다. 우리는 가족이 행복하게 살기 위해 주택을 짓고, 자녀를 잘 가르치기 위해 학교를 짓는다. 이렇듯 건축은 모든 이의 기쁨과 행복과 미래를 위해 지어지는 것이다. 건축은 가까운 곳에서 우리 삶을 풍부하게 해주고, 우리는 건축을 통해 소중한 공동체를 만들어간다.

특히 성당은 신앙 공동체 모두의 노력으로 하느님께 바치는 건축물이며, 우리 모두의 기쁨과 고뇌, 행복과 미래, 나아가 삶 전체를 담기 위해 지어지는 최고 건축물이다. 그렇기에 성당은 단순히 돌과 콘크리트로 지어진 물체일 수가 없다. 그런데 우리는 교회건축을 잘 모를 뿐더러 왜 성당을 짓고 어떻게 짓는지, 또 미래를 위해 왜 훌륭한 교회를 사회에 남겨야 하는지에 대해 무심하다.
 
우리는 광복 이후 많은 교회 건축물을 지어왔다. 그러나 교회건축이 어떤 것인지, 어떻게 짓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별로 말하지 않았다. 사실 교회건축이 만들어지는 과정은 아주 복잡하다. 여느 건축물과는 달리 생각해야 할 것이 많고, 사제, 신자, 수많은 전문가가 마음을 다해야 제대로 완성되는 아주 특별한 건축물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짓고 난 이후의 결과도 모두에게 돌아가게 돼 있다.
 
이 기획은 서울대교구 사제평생교육원(원장 원종철 신부)에서 2011년부터 사제들에게 교회건축을 이전보다 더 깊이 있게 교육하기 시작한 것에서 비롯됐다. 교육원은 교회건축 과정을 3개로 구성하고 각 과정마다 5개 강의씩 총 15개 강의로 사제들을 교육했다. 강의 내용을 보충한 이 기획으로 많은 신자들이 교회건축을 쉽고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아마도 교회건축을 이렇게 넓게 다루는 것은 처음일 것이다.
 
특집은 격주로 26회에 걸쳐 연재되며, 우리의 귀중한 신앙을 담는 그릇인 교회건축에 대한 필자 7명의 생각을 나누는 장이 될 것이다.

특집은 크게 다섯 묶음으로 나눠 △ 교회건축이 빛과 공간을 통해 어떻게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려 했는지 △ 한국교회가 이제까지 어떤 교회건축을 지어왔는지 △ 교회건축은 어떤 이들의 노력이 합쳐져 지어지는 것인지 △ 교회 전례와 신자들 입장에서 교회건축은 어떻게 장소를 갖추고 함께 지어져야 하는지 △ 교회건축을 어떻게 지역과 함께 호흡하는 귀중한 유산으로 남겨야 하는지를 담게 될 것이다.
 

글 싣는 순서

성당 : 공동체와 빛의 건축
 1. 성당이라는 공동체 건축
 2. 교회건축 공간 : 장소와 빛
 3. 빛의 성당 Ⅰ: 로마네스크 교회건축
 4. 빛의 성당 Ⅱ : 고딕 교회건축
 5. 빛의 성당 Ⅲ : 현대 교회건축
 
한국 교회건축 역사
 6. 한국 교회건축Ⅰ: 1960년대 이전
 7. 한국 교회건축Ⅱ: 1960년대 이후
 
교회건축 실무
 8. 교회건축을 위한 사제와 건축가 역할
 9. 본당 건축위원회 역할
 10. 교회건축 예산
 11. 교회건축 프로그램
 12. 교회건축 설계과정
 
한국 교회건축의 오늘
 13. 제2차 바티칸 공의회와 교회건축
 14. 교회건축과 전례
 15. 교회 공동체의 시설
 16. 교회건축의 외부공간
 17. 청소년을 위한 교회시설
 18. 교회의 친교 공간
 19. 한국의 수도회 건축
 20. 성미술과 교회건축
 
한국 교회건축의 반성과 대안
 21. 교회건축과 문화유산
 22. 교회건축 보존
 23. 지역성을 살린 교회건축 Ⅰ
 24. 지역성을 살린 교회건축 Ⅱ
 25. 한국 교회건축 토착화
 26. 한국 교회건축 재고

[평화신문, 2012년 1월 8일, 기획 책임 김광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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