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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지오ㅣ성모신심

훈화15: 레지오의 조직과 규율, 성가정, 레지오의 기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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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4-11-18 ㅣ No.119

레지오 마리애 훈화 (15)


20. 레지오의 조직과 규율은 바꿀 수 없다(교본 제20장 : 195-196면)
 
일반적으로 단체에는 회칙이 있다. 회칙에는 단체의 명칭, 소재, 목적, 성격 등의 총칙이 있고 조직과 구성이 있다. 그 외에도 임원의 임무와 임기, 회의, 재정, 부칙 등의 규정과 규율이 있다. 일단 회칙이 통과되면 모든 회원은 자발적으로 그것을 준수해야 한다. 회칙은 마음대로 바꿀 수 없고 총회에서 개정할 수 있다.
 
레지오 마리애 역시 회칙으로서 단헌(團憲)이 있다. 단헌은 단원들이 지켜야 할 규율과 규칙이다. 이것들은 레지오 마리애 교본에 수록되어 있다.
 
레지오의 조직은 그 기초를 이루는 쁘레시디움과 여러 평의회로 구성되어 있다. 이러한 레지오의 조직과 규율, 규정 등의 단헌은 레지오의 제도이므로 마음대로 바꿀 수 없다. 아무리 사소한 사항이라도 한번 바꾸기 시작하면 다른 데도 쉽게 손대게 된다. 그렇게 되면 레지오 마리애는 얼마 못 가서 유명무실해지고 변질된 단체가 되고 만다. 그러한 우려 때문에 레지오 교본 서언에서 다음과 같이 강조하고 있다. “레지오는 그 조직과 규율의 어느 한 부분이라도 삭제하거나 변경하면 균형이 깨져 무너질 수 있는 체계이다. 다음 시구(詩句)는 바로 이에 대한 비유라 할 수 있다. ‘한 오라기 실 뽑으니 온 필베에 흠이 가고, 헝클어진 화음 하나 온 선율을 거스르네.’ 그러므로 이 책(교본)에 기록된 대로 정확하게 운영할 태세가 갖추어지지 않았다면 아예 레지오를 시작하지 말아야 한다”(교본 19면).
 
그러면 레지오의 조직과 규율은 절대로 바꿀 수 없는 것인가? 아니다. 율법은 사람을 위하여 존재하고 시대의 변화에 맞추어 새롭게 법 정신을 살려야 하므로 바꿀 수 있다. 레지오 창설 이후에 단헌이 수록된 레지오 교본도 여러 번 바뀌었다. 그러면 누가 언제 어디서 어떻게 단헌을 바꿀 수 있는가? 아일랜드 더블린에 있는 중앙 평의회로서 최고 통솔권이 주어진 꼰칠리움 레지오니스 마리애(Concilium Legionis Mariae)만이 월례 회의에서 단헌을 바꿀 수 있다. 중앙 평의회 이외의 어떤 평의회도 단헌을 변경할 권한이 없다. 단헌 개정은 신중해야 하므로 중앙 평의회의 개정안도 대다수 레지오 기관의 동의 없이는 효력을 발생하지 못한다.
 
그러면 교본에 구체적으로 명시되지 않은 규칙과 규율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명확하지 않은 규율이나 세칙은 중앙 평의회의 서한이나 국가 평의회인 세나뚜스의 결정을 따르면 된다. 규율과 규칙은 반드시 통일이 되어야지 각 지역마다 달라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레지오의 조직과 규율을 임의로 바꾸려는 시도가 많았다. 그러한 시도를 한 사람들은 소위 ‘현대화된 단원들’이었고 지역 단위로도 나타났다. 그들은 자기 지역이 다른 지역과 다르므로 실정에 맞고 융통성 있는 규율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러한 요구는 필요성보다는 대개 그릇된 독립심에서 나온 것이다. 이러한 그릇된 개혁 정신 때문에 야기된 문제들이 적지 않았다. 어떤 이탈리아 사제는 레지오와 똑같은 이름의 단체를 만들었으나 얼마 못 가서 그 단체는 없어졌다. 아프리카 케냐에서도 ‘마리아의 레지오’라는 단체를 만들어 혼란과 문제를 일으켰다.
 
레지오가 여러 계층의 평의회를 두는 주된 목적도 레지오의 제반 제도를 본래의 모습대로 보존하려는 데 있다. 따라서 각급 평의회는 맡겨진 관리 업무를 충실히 수행해야 한다.
 
모든 단원은 선서를 할 때 “저는 레지오 규율에 온전히 복종하겠나이다.” 라고 약속한다. 누구든지 교본에 명시된 규율을 어기면 선서 때의 약속을 이행하지 않고 불법 행위를 하는 것이고 영신적인 질서를 깨뜨리는 것이다. 그러므로 레지오의 조직과 규율을 임의로 바꾸어서는 안 된다.


21. 나자렛의 성가정(교본 제21장 : 197-201면)
 
가정은 사회의 기초 공동체이다. 가정이 튼튼하고 건전하면 사회도 튼튼하고 건전해 진다. 가정은 한 인간의 시작과 끝이 이루어지는 보금자리이고 인간 성숙과 삶을 배우는 수련소이며 학교이다. 가정이라는 학교에서 인생 덕목의 기본을 배운다. 가정이 불행하면 인생도 불행하다.
 
주님 중심으로 살아가는 가정은 행복하다. 그런 가정은 나자렛의 성가정을 옮겨 놓은 것과 같다. 1917년 10월 파티마에서 성모님이 마지막으로 발현하셨을 때 성가정의 가족 모두가 함께 나타나신 것도 가정 성화의 중요성을 드러낸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가정을 참으로 소중하고 중요하게 여기셨다. 예수님께서는 한 가정이 새로이 이루어지는 혼인 잔치에서 첫 번째 기적을 행하셨다. 그분은 갈릴래아 지방 나자렛에서 성모 마리아와 성 요셉과 함께 오랜 세월을 지내면서 성가정을 이루셨다.
 
쁘레시디움도 레지오 조직에 있어서 가정과 같은 기초 공동체이며 성덕의 수련소이다. 기초 공동체인 쁘레시디움은 가정의 모델인 성가정을 본받아야 한다. 예수님께서 “단 두세 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함께 있다.”(마태 18,20)라고 말씀하셨으니 여럿이 함께 모인 쁘레시디움 회합은 예수님이 현존하시는 자리이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 곁에 성모님과 성 요셉도 함께 계신다. 따라서 쁘레시디움 회합은 나자렛의 성가정과 같다.
 
레지오 단원들은 회합실뿐만 아니라 레지오 제대, 책상, 의자, 교본, 회의록 등의 회합 때 사용되는 기물들을 나자렛 성가정의 집과 가재 도구를 대하듯이 다루어야 한다. 단원들은 성모님이 옛적에 나자렛에서 하셨던 살림살이를 이제 쁘레시디움이라는 가정 안에서 재현하시도록 해야 한다.
 
IMF(국제통화기금) 구제 사태가 터지기 전에 우리나라 살림살이가 위기에 봉착하자 대통령이 국민에게 ‘우리 갱제 이깁니다.’(우리 경제 위깁니다)라고 발표하여 박수를 받은 웃지 못할 일이 있었다고 한다. 가정이나 국가에 살림살이는 매우 중요하다. ‘살림살이’라는 단어는 ‘살리다’와 ‘삶에 뿌리를 두고 있다’ 곧 ‘살리는 삶’을 뜻한다. 쁘레시디움의 기물은 겉보기에 보잘것 없지만 분명 하나의 살림살이이다.
 
성모님은 살림살이의 표본이셨다. 비록 가난하고 가재 도구도 변변치 못했겠지만 성모님은 살림살이를 잘하셨다. 성가정의 모든 물건은 예수님을 돌보기 위해 쓰여졌다. 이와 마찬가지로 쁘레시디움의 모든 것도 단원들을 잘 돌보는 데에 쓰여져야 한다.
 
살림살이는 물질이나 재정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사람에게도 해당된다. 살림살이는 생활을 살리는 일인 동시에 사람을 살리는 일이기도 하다. 나자렛의 성가정은 구원 사업의 요람이었으며 주님을 위한 터전이었다. 쁘레시디움은 살림살이의 표본인 성가정을 반영해야 한다. 이것이 나자렛 정신이다. 만일 쁘레시디움에서 듣고 보는 모든 것이 나자렛의 성가정과 조화를 이루지 못한다면 그 쁘레시디움에는 나자렛 정신이 모자라는 것이다. 나자렛 정신이 부족하면 그 쁘레시디움은 시든 꽃과 같다.
 
쁘레시디움에 나자렛 정신을 심어 주기 위해서는 단장을 비롯한 간부들이 잘해야 한다. 쁘레시디움의 결점은 주로 간부들에게 원인이 있다. 단원들은 간부들로부터 훈련을 제대로 받지 못해 빗나간다. 단원 양성소인 쁘레시디움 회합과 나자렛 성가정을 비교해보자. 성모님이 살림살이를 등한시하거나 예수님께 그릇된 교육을 시키지는 않았을 것이다. 쁘레시디움 간부들이 자신의 역할에 충실하면서 살림살이를 잘한다면 예수님께서 쁘레시디움에 기꺼이 현존하시어 간부들과 단원들에게 힘을 실어 주실 것이다.


22. 레지오의 기도문(교본 제22장:202-207면)
 
일반적으로 수도회에서는 ‘기도와 노동’(ora et labora)을 중요시 한다. 레지오 마리애 역시 수도회의 영향을 받아 활동(노동, 일)과 마찬가지로 기도를 중요시 한다. 기도의 중요성 때문에 레지오에는 기도 부대인 협조 단원 제도가 있고 기도를 더 많이 하는 단원, 곧 쁘레또리움 단원과 아듀또리움 단원 제도를 두고 있다.
 
레지오의 기도문은 시작 기도, 까떼나, 마침 기도로 구성되어 있다. 시작 기도는 성호경을 시작으로 성령께 드리는 호도에 이어 묵주기도와 ‘여왕이시며’(Salve Regina) 그리고 예수 성심과 성모 성심 호칭 기도, 레지오의 수호 성인 호칭 기도로 이루어져 있다. 까떼나는 후렴과 마리아의 노래 그리고 원죄없이 잉태되신 성모님(일명 기적의 메달 성모님)께 대한 화살 기도와 본기도로 엮어져 있다. 마침 기도는 성모님의 보호를 청하는 기도와 레지오의 수호자들에 대한 호칭 기도, 굳센 믿음을 간구하는 청원 기도, 사제의 강복과 성호경으로 구성되어 있다.
 
기도는 개인 성화와 사도적 활동을 위해서 필수적이다. 단원들은 기도로써 필요한 은총을 받게 된다. 은총은 성령께서 주신다. 성령은 은총의 근원이다. 그래서 레지오는 우선적으로 ‘성령께 드리는 호소’로써 회합을 시작한다. 까떼나(Catena)는 사슬, 고리라는 뜻이다. 까떼나는 레지오와 단원, 단원과 단원, 단원과 성모님과의 연결 고리가 되는 일상 기도이다. 까떼나의 중심 부분은 ‘성모의 노래’(Magnificat)이다. ‘성모의 노래’(루가 1,46-55)는 성무일도의 저녁 찬가로서 전능하시고 자비로우신 하느님께 대한 찬미와 감사의 노래이다.
 
마침 기도에서 중심을 이루고 있는 부분은 믿음을 청하는 기도이다. 믿음은 종교의 핵심이며 기초이다. 믿음이란 절대자 하느님께 자기 자신을 온전히 내맡기는 것이다. 예수님은 산을 옮길 만한 완전하고 확고부동한 믿음을 강조하셨다.
 
평생을 믿음으로 살아온 레지오 창설자 프랭크 더프는 25세 때에 믿음에 대한 기이한 체험을 하였다. 어느 토요일 오후에 가르멜 성당에서 고해성사를 보고 보속을 바치려고 제단 앞에 무릎을 꿇고 기도를 하던 중 갑자기 그의 신앙이 사라져 버렸다. 그 순간 하느님께서 존재하시지 않았다. 하느님께서 존재하지 않으시니 인생도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그는 자신이 산산히 부서지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지옥과 같은 암담한 상태가 그에게는 영원히 지속되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잠시 후 원래대로의 믿음이 되돌아 왔다. 비록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지만 그는 신앙의 어두운 밤을 체험했던 것이다. 그는 그러한 체험을 통해 신앙이란 하느님의 은총과 선물이므로 그 누구도 이성만으로는 신앙을 얻을 수 없다는 것과 오로지 하느님께 자신을 의탁하면서 살아야 한다는 것을 깊이 깨닫게 되었다. 그런 까닭에 그는 레지오의 마침 기도문에 특별히 믿음을 청하는 기도문을 삽입했을 것이다.
 
믿음은 성모님의 특출한 덕성 중의 하나이다. 성모님은 친척 엘리사벳으로부터 “믿으셨으니 정녕 복되십니다.”(루가1,45)라고 칭송 받으셨다. 아브라함이 믿음의 아버지라면 성모 마리아는 믿음의 어머니로서 그리스도교의 첫 번째 신자이며 예수님의 첫 번째 제자이다.
 
따라서 모든 레지오 단원은 흔들리지 않는 굳건한 믿음을 가지고 매일 레지오의 기도를 바침으로써 은총 생활을 영위해야 한다.


23. 레지오의 기도문은 변경하지 못한다(교본 제23장 : 208면)
 
레지오 회합은 기도로 시작하여 기도로 끝맺는다. 레지오는 자체적으로 만들어서 공인 받은 기도문을 사용한다. 이 기도문은 낱장의 인쇄물인 뗏세라에 수록되어 있으며 단원들은 이를 늘 지니고 다니면서 매일 바친다. 이 기도문은 창설자 프랭크 더프가 만든 것인데, 그가 세상을 떠난 1980년도에 이미 80여 개국 언어로 바쳐지고 있었다.
 
레지오의 시작 기도문은 빈첸시오회의 시작 기도문을 본뜬 것이다. 다만 묵주기도와 ‘여왕이시며’(Salve Regina)를 새로이 삽입하고 수호 성인들을 다시 대치하였다. 까떼나의 후렴인 “먼동이 트이듯 나타나고 달과 같이 아름답고 해와 같이 빛나며”는 구약성서의 아가서 6장 10절을 인용한 것이고, “진을 친 군대처럼 두려운 저 여인은 누구실까?”는 몽포르의 성 루도비코가 지은 ?거룩한 동정녀께 대한 참된 신심? 50항과 210항에서 발췌한 것이다. 마침 기도문은 믿음에 대한 청원 기도로서 역시 몽포르의 성인이 지은 같은 저서 214항의 내용을 토대로 하여 만든 것이다.
 
전세계 레지오 회합이 통일되기 위해서는 기도문도 통일되어야 한다. 그리고 중앙 평의회의 결의가 없는 한 그 누구도 레지오의 기도문을 변경할 수 없다.
 
시작 기도에 있어서 묵주기도도 사도신경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한동안 우리나라에서는 묵주기도의 첫 부분인 사도신경, 주님의 기도, 성모송 세 번, 영광송을 바치지 않은 적이 있었으나 시정되었다. 그리고 ‘구원을 비는 기도’도 세계적인 통일을 위해 레지오 회합이나 행사에서는 바치지 않도록 되어 있다.
 
기도문 중에서 수호 성인에 대한 호칭 기도 역시 국가나 지방의 성인 또는 어느 특정 성인을 추가하거나 변경하지 못한다. 만약 추가나 변경이 허용된다면 우리나라에서는 “성 김대건 안드레아와 성 정하상 바오로, 저희를 위하여 빌어 주소서.”라고 하게 될지도 모른다. 레지오의 모든 규칙을 만든 나라가 아일랜드이고 그 나라를 가톨릭 국가로 만든 공로자요 수호자로서 아일랜드 국민이 특별히 사랑하고 존경하는 파트리치오(Patricio, Patrick) 성인조차 레지오 기도문에 들어가지 못했다. 레지오와 관련된 수호 성인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일랜드와는 상관이 없는 프랑스 몽포르 출신 성 루도비코 마리아는 레지오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분이므로 레지오 기도문에 삽입되어 있다. 특정 성인에 대한 호칭 기도 추가를 용인한다면 레지오 조직 체계가 흐트러진 수 있으므로 ‘레지오 기도문은 변경할 수 없다.’라는 규칙은 엄격히 지켜져야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1994년 1월부터 레지오의 기도문 중에서 ‘여왕이시며’(Salve Regina)와 ‘성모의 노래’(Magnificat) 문구가 바뀌었다. 이 두 가지를 성무일도와 가톨릭 기도서의 문구와 통일시키기 위해 번역을 다시 한 것이다. 영어 원문은 그대로이므로 기도문이 바뀐 것은 아니다.
 
교본 본문이 강조하듯이 레지오의 정신은 레지오의 기도문에 나타나 있다. 어느 나라말로 바치든 가장 정확하고 통일된 공통 기도문을 바치는 것은 레지오의 깃발 아래 모여 봉사하는 모든 단원들의 정신과 규율이 완전히 일치되어 있음을 드러내는 것이므로 결코 레지오의 기도문을 변경해서는 안 된다.
 
[
사목, 2002년 4월호, 최경용(부산교구 신선본당 주임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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