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6월 26일 (수)
(녹) 연중 제12주간 수요일 너희는 그들이 맺은 열매를 보고 그들을 알아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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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 이스라엘 성지: 라자로를 다시 살리신 동네 베타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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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9-03-05 ㅣ No.1802

[예수님 생애를 따라가는 이스라엘 성지] 라자로를 다시 살리신 동네 베타니아

 

 

- 라자로의 무덤.

 

 

복음서들에는 ‘베타니아’라는 지명이 모두 12번 나옵니다. 그런데 한 번은 다른 장소를 가리킵니다. 요한 세례자가 사람들에게 회개하고 죄의 용서를 위한 세례를 받으라고 선포하며 활동하던 베타니아로, ‘요르단강 건너편 베타니아’라고 부릅니다(요한 1,28). 나머지 11번은 모두 같은 장소를 언급하는데 예루살렘에서 멀지 않은 곳입니다. 요르단강 건너편 베타니아는 이미 살펴봤기에(2018년 5월 호 참조), 이번 호에서는 이 두 번째 베타니아에 대해 알아봅니다.

 

예수님 시대에 베타니아는 예리코를 통해 예루살렘으로 들어올 때 머물게 되는 마지막 동네였습니다. 예루살렘 도성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올리브산 남동쪽 비탈에 자리 잡은 베타니아는 “예루살렘에서 열다섯 스타디온쯤 되는 가까운 곳”(요한 11,18)이었습니다. 오늘날의 도량형으로 바꾸면 약 2.8km 떨어진 곳입니다. 걸어서 한 시간 거리도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에 들어가셨다가 저녁이 되면 베타니아로 나와 묵으셨다고 복음서들은 전합니다(마르 11,11; 마태 21,17).

 

- 라자로의 무덤.

 

 

이제 베타니아에서 있었던 예수님의 일화들을 살펴봅니다. 요한복음서는 예수님께서 죽은 라자로를 다시 살리신 일을 길게 전하고 있습니다(요한 11,1-57). 마리아와 그의 언니 마르타의 오빠인 라자로가 병을 앓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자매가 사람을 보내어 “주님, 주님께서 사랑하시는 이가 병을 앓고 있습니다” 하고 말씀드리게 하지요. 이 표현으로 보아 예수님과 라자로는 친분이 깊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예수님께서는 라자로에게 바로 가시지 않고 이틀이 더 지난 후에 가십니다. 그 사이에 라자로는 죽어 동굴 무덤에 묻혔습니다.

 

예수님께서 동굴 무덤에 가셨을 때 라자로는 이미 죽은 지 나흘이나 되어 냄새가 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무덤을 막은 돌을 치우게 하시고는 기도를 드리신 후에 “라자로야, 이리 나와라” 하고 부르십니다. 그러자 죽었던 라자로가 살아서 걸어 나오지요. 그런데 이 소식이 알려지면서 예루살렘에서는 수석 사제들과 바리사이들이 최고 의회를 소집해 예수님을 죽이기로 결의합니다.

 

 

라자로의 무덤과 무덤 위에 건립된 기념 성당 순례할 수 있어

 

요한복음서와 함께 마태오와 마르코 두 공관 복음서는 예수님께서 베타니아에서 시몬이라는 나병환자 집에 계실 때에 있었던 일도 전합니다(마태 26,6-13; 마르 14,3-9; 요한 12,1-8). 어떤 여인이 식탁에 앉아 계신 예수님의 머리 위에 값진 향유를 부어드렸습니다. 이를 본 몇 사람이 ‘저 비싼 향유를 팔아서 그 돈으로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 줬으면’ 하고 못마땅하게 여겼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가난한 이들이야 언제나 너희 곁에 있겠지만 나는 그렇지 못하다. 이 여자는 나의 장례를 위해 미리 내 몸에 향유를 바른 것이다”라고 말씀하시지요.

 

- 라자로 기념성당 정면.

 

 

그런데 같은 내용을 전하면서도 요한복음서는 마태오, 마르코 두 복음서와 약간 차이가 납니다. 요한복음서에는 ‘나병환자 시몬의 집’이라는 언급이 없는 대신에 라자로와 라자로의 두 동생 마르타와 마리아가 등장하지요. 마르타는 시중을 들고 있고, 마리아는 향유를 예수님의 발에 붓고 머리카락으로 그 발을 닦아 드립니다. (반면에 마태오, 마르코 두 복음서에서는 여인의 이름이 없고 머리에 기름을 부어드렸다고 나옵니다.)

 

한편 루카복음서에는 나병 환자 시몬의 얘기가 없습니다. 대신 예수님께서 마르타와 마리아의 집에 들어가셨다는 이야기를 전하는데 다른 복음서들에는 없는 내용입니다(루카 10,38-42). 마르타는 손님들의 시중을 드느라 바쁜데, 마리아는 예수님 발치에 앉아 말씀을 듣기만 합니다. 참다못한 마르타가 예수님께 자기를 좀 도와주도록 동생에게 이야기해 달라고 부탁드립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오히려 마리아가 좋은 몫을 택했다고 말씀하시지요.

 

이 세 이야기는 모두 복음서들에서 나름대로 독특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어서 이야기의 무대가 되는 베타니아는 예수님의 자취를 좇아 이스라엘을 순례하는 이들이라면 한 번은 가보고 싶어 하는 곳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오늘날, 특히 단체 순례객이 베타니아를 순례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성지 순례 여행사들이 순례 여정에서 제외하기 때문입니다. 가장 큰 이유는 불편함입니다. 베타니아는 팔레스타인 주민들이 사는 아랍인 마을입니다. 올리브산 정상에서 자동차로 10분 거리에 있지만, 이스라엘 당국이 세운 거대한 분리장벽이 가로막고 있어서 돌아서 가야 하는데 몇 배의 시간이 걸립니다. 게다가 툭하면 이스라엘 군인들의 불심검문이 있어서 여행사들이 가기를 꺼리지요.

 

예수님 시대의 베타니아는 오늘날 아랍어로 ‘엘 아자리예’라고 부릅니다. 라자로의 이름을 연상케 하는 이름입니다. 실제로 엘 아자리예는 라자로가 묻혔다는 무덤을 중심으로 형성되어 온 마을이라고 합니다. 마을에 들어가면 라자로의 무덤과 그 무덤 위에 건립된 기념 성당을 순례할 수 있습니다.

 

라자로의 무덤 위에는 아주 이른 시기부터 예수님께서 라자로를 다시 살리신 일을 기념하는 성당이 세워졌다고 하지요. 4세기에는 지진으로 무너졌다가 그 위에 다시 더 큰 성당이 건립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12세기 이후에 이슬람에 의해 성당이 파괴됐고 14세기에는 그 자리에 이슬람 성전 모스크가 세워졌습니다. 그러다가 16세기에 프란치스코회 수사들이 바위를 잘라내고 현재의 출입구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죽음의 벽을 뚫고 다시 생명으로 돌아오는 길을 묵상하기 좋은 곳

 

베타니아에 들어가면 순례자들은 ‘라자로의 무덤’이라고 쓰인 팻말을 보고 무덤 입구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무덤까지 가려면 모두 27개의 계단을 내려가야 합니다. 24계단을 내려가면 약간 평평한 곳이 나오는데, 예수님께서 자라로에게 무덤에서 나오라고 부르신 곳이라고 합니다. 거기에서 다시 3계단을 더 내려가면 라자로 무덤으로 사용됐다는 방이 있습니다. 길이가 2m 남짓합니다. 어두컴컴한 동굴 같은 곳이지만, 이곳에 서 있으면 “라자로야, 이리 나와라” 하시는 예수님의 음성이 들리는 듯합니다. 그 음성은 2000년 라자로를 부르는 소리가 아니라 지금 나의 내면을 일깨우는 주님의 부르심일지 모릅니다.

 

나병환자 시몬의 집에서 있었던 일을 그린 모자이크화(좌), 라자로 기념 성당 제대 뒷벽(우).

 

 

라자로의 무덤 위쪽으로는 그리스 정교회에서 관리하는 기념 성당이 있고, 아래쪽으로는 이슬람 사원과 프란치스코회 수도자들이 관리하는 가톨릭 기념 성당이 나란히 있습니다. 1954년에 완공된 이 성당 역시 이스라엘의 주요 성지 성당들을 건축한 이탈리아 건축가 안토니오 발루치(1884~1960)의 작품입니다. 성당 벽에는 창문이 하나도 없습니다. 유일한 창문은 천장에 있는 원형 창문입니다. 벽이 없는 무덤의 어두컴컴함과 위로부터 쏟아지는 부활의 빛이 묘하게 대비되는 천재 건축가의 기량과 신심이 돋보이는 작품입니다.

 

이스라엘이 세운 분리장벽에 갇혀 있는 베타니아. 생명으로부터 단절된 죽음의 벽을 뚫고 다시 생명으로 돌아오는 길을 묵상하기에 좋은 곳입니다. 마리아가 향유를 예수님 발에 붓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이들에게 “가난한 이들은 늘 너희와 함께 있지만, 나는 늘 너희 곁에 있지 않을 것이다”(요한 12,8) 하시고, 또 “마르타야, 마르타야! 너는 많은 일을 염려하고 걱정하는구나. 그러나 필요한 것은 한 가지뿐이다”(루카 10,41-42) 하신 예수님 말씀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지금 나에게 무슨 의미를 지니는지도 새겨보면 좋겠습니다.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19년 3월호, 이창훈 알퐁소(가톨릭평화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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