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9월 20일 (금)
(녹) 연중 제24주간 금요일 예수님과 함께 있던 여자들은 자기들의 재산으로 예수님의 일행에게 시중을 들었다.

수도 ㅣ 봉헌생활

수녀원 창가에서: 하느님께서 다 마련해 주실 거예요

스크랩 인쇄

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8-04-23 ㅣ No.602

[수녀원 창가에서] 하느님께서 다 마련해 주실 거예요

 

 

봉쇄 수도원은 온통 산이 에워싸고 있다. 옆으로는 ‘울고 넘는’ 박달재 고개가 있고, 앞산에는 한국의 두 번째 사제인 최양업 신부님이 평안히 잠들어 계신다. 신부님은 지금도 여전히 ‘저 양들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하고 염려하시며 침묵 속에서 우리를 위해 전구해 주고 계심을 느낀다.

 

수도원이 이 아름다운 배론 성지에 자리 잡은 지 올해로 스물여덟 해가 된다. 또한 올해는 수도원 축복 25주년을 기념하는 해이기도 하다.

 

이 뜻깊은 해를 맞이하여 수도원이 한국에 진출하던 역사적인 날들을 벗님들과 함께 나누고 싶다.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고 미지의 세계로 순례의 길을 떠났던 아브라함처럼, 오직 하느님의 섭리에 의탁하며 믿음의 땅 스페인에서 약속의 땅 한국 배론에 이르기까지 기나긴 믿음의 여정을 말이다.

 

 

한국 땅에 뿌리내리기까지

 

이야기는 1980년대 초로 거슬러 올라간다. 수녀회의 한국 진출을 위해 한국에 오신 독일인 레지날드 신부님의 도움으로 첫 성소자들이 타이완에 있는 성 도미니코 천주의 모친 수도원에 입회한다. 이들은 얼마 뒤 스페인 모원으로 옮겨 양성을 이어 간다. 수녀회는 한국인 성소자들이 계속 들어오는 것을 한국 땅으로 부르시는 주님의 뜻으로 여겼다.

 

이처럼 한국 진출을 꿈꾸던 중에 당시 원주교구장이신 지학순 주교님은 원주교구로 우리 수녀회를 초대하시고 배론성지 내에 1만 평의 땅을 기증해 주셨다. 그렇지만 교구나 수도원이나 가난하여 건축 자금을 마련하기란 묘연한 일이었다.

 

1990년 11월 29일, 여섯 명의 수녀가(스페인 수녀 2명과 대만 수녀 1명, 한국인 수녀 3명) 하느님 섭리의 손길에 온전히 의탁하며 한국 땅을 밟았다. 도착하던 그날은 김지석 주교님이 원주교구 부교구장으로 임명되신 날이기도 하다. 김 주교님은 주교로 서품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최기식 신부님과 함께 임시 수도원을 찾아 오셨다. 그날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주교님의 방문은 큰 힘이 되었고, 이때부터 주교님은 우리들과 함께 긴긴 순례의 여정을 함께하고 계신다.

 

이렇게 여섯 수녀의 한국 생활이 시작되었다. 30평의 작은 임시 수도원이었지만 당시 배론성지의 소장이셨던 배은하 신부님의 배려와 보살핌 덕분에 정상적인 수도 생활을 할 수 있었다. 하루에 일곱 번씩, 하느님께 올리는 찬미 기도가 배론 하늘에 울려 퍼졌고, 밤 기도도 빠지지 않았다. 배론 산골짜기의 아름다움과 고요함은 관상 생활에 최적의 환경을 제공하였다.

 

 

작고 소박한 정성이 모여

 

미사 참례는 성지 경당으로 갔다. 스페인 수녀님들은 신발을 벗고 온돌방에 쪼그리고 앉아 드리는 미사가 낯설고 신기했을 것이다. 주일 미사는 공소 신자들과 살레시오의 집 장애인 식구들과 함께 드렸다. 그야말로 형제들이 오손도손 함께 모여 사는 사랑의 잔치다.

 

살레시오의 집 원장 프란치스코 형제님은 만날 때마다 “Sister, How are you? 필요한 것 없어요?” 하고 반갑게 인사를 건네시며 수녀들을 챙기신다.

 

당시 배론성지에 계시던 성모영보회 수녀님들과도 각별한 우정을 나누었다. 수녀님들이 나누어 주시는 음식 덕분에 우리는 장을 볼 일이 거의 없었다. 수녀님들이 부르시면 다 같이 내려가는 발걸음이 즐겁고 가벼웠다. 마음씨 고운 수녀님들은 이것저것 다 내어주셨다. 이렇듯 많은 분의 사랑과 보살핌 속에 우리는 큰 어려움 없이 한국 땅에 뿌리를 내릴 수 있었다.

 

이제 수도원 건립이라는 커다란 과제가 우리에게 남아 있었다.

 

건축비를 절감하려고 큰 건설 업체 대신 배 신부님이 소개해 주신 원주의 작은 건설 회사에 공사를 맡기기로 하였다. “공사비는 어떻게 갚을 것인가요?” 하는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던 기억이 난다. “하느님께서 다 마련해 주실 거예요!” 이 천진난만한 대답에 배 신부님은 답답하셨는지 그저 한숨만 푹 내쉬셨다.

 

그런데 정말 하느님께서 다 해 주셨다. 서울의 본당을 찾아다니며 모금을 시작하자, 신자들의 정성 어린 사랑의 봉헌금이 모였고, 그 돈으로 수도원 건물이 건립되기 시작했다. 한 수녀님의 출신 본당 모금함 바구니에서는 금반지까지 나와서 우리의 마음을 울렸다. 그날을 떠올리면 아직까지도 마음이 찡하다. 그때의 인연으로 지금까지 우리의 은인이자 친구로 우정을 다지는 분도 많다. 먼저 하늘나라로 가신 분들도 기억하며 늘 기도한다. 이렇게 작고 소박한 이들의 수많은 정성이 모여 한국 땅에 우리 수녀원이 지어졌다.

 

우리에게 잊을 수 없는 목자와 은인들이 계시다. 병석에 계시면서도 기꺼이 교구로 초대해 주신 지 다니엘 주교님과 원주교구 사제들, 모금할 수 있게 문을 열어 준 서울대교구, 수녀회를 아껴 주시는 많은 벗과 은인. 수도원 성전에서 기도와 찬미를 드릴 수 있도록 봉헌해 주신 그분들의 사랑과 희생에 깊은 감사를 드린다.

 

삶의 경이로움을 노래한 에티 힐레즘은 나치의 포로 수용소에서 생의 마지막을 맞으면서도 아름다운 사랑을 고백한다.

 

“주님, 이 삶을 주셨음에 감사드리나이다. 한밤중 제가 침대에 누워 당신 안에 쉴 때 감사의 눈물이 제 얼굴 위로 흘러내립니다. 이것이 저의 기도입니다”( 「회고록」).

 

“저 높은 곳도, 저 깊은 곳도, 그 밖의 어떠한 피조물도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님에게서 드러난 하느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떼어 놓을 수 없습니다”(로마 8,39).

 

승리자이신 예수님! 부활을 축하합니다. 알렐루야!

 

[경향잡지, 2018년 4월호, 최선화 로사 마리아(도미니코회 천주의 모친 봉쇄수도원 수녀)]



1,826 0

추천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