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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미술ㅣ교회건축

세계 교회 건축의 영성: 회중석은 왜 배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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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6-05-19 ㅣ No.257

[세계 교회 건축의 영성] 회중석은 왜 ‘배’인가

 

 

스폴레토에서 발굴된 관에 있던 조각 단편, 300년 무렵, 바티칸 박물관.

 

 

예수님께서는 갈릴래아(티베리아스) 호숫가에서 다시 제자들에게 당신 자신을 드러내셨다. 제자들은 먹고 살려고 다시 어부가 되어 갈릴래아로 돌아갔다. 그들은 배를 탔지만 밤새도록 아무것도 잡지 못했다.

 

다음날 아침에 예수님께서 물가에 서 계셨다. 주님인 줄 알아본 제자들 가운데 옷을 벗고 있던 베드로는 겉옷을 두른 뒤 호수로 뛰어들었고, 다른 제자들은 그 작은 배로 고기가 든 그물을 끌고 왔다. 뭍에 내려 보니 숯불 위에 물고기와 빵이 있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다가가셔서 빵과 고기를 주셨다. 그러고는 베드로에게 “나를 따르라.” 하고 말씀하셨다(요한 21장 참조).

 

성당이라는 건축공간의 본디 의미가 이 장면에 모두 담겨있다. 출렁이는 갈릴래아 호수와 그 안에서 움직이는 작은 배, 그리고 그 배에 몸을 실은 제자들. 이것이 성당의 회중석이다. 주님께서 서 계신 물가는 제단이고, 물고기와 빵이 놓인 숯불 위는 제대다.

 

배에 있던 제자들은 그분을 조금이라도 빨리 만나뵙고자 물속으로 뛰어들거나 작은 배로 주님께 다가온다. 성당 문을 열고 들어와 제대를 향한 똑바른 통로를 걷는 것은 제자들이 주님을 만나려고 뛰어오는 걸음과도 같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이다. 이렇게 보아야 성당이라는 건축공간이 우리에게 어떤 곳인지를 잘 알 수 있다.

 

제단, 횡랑, 회중석, 나르텍스.

 

 

성당의 머리 부분은 제단(sanctuary), 가운데 부분은 회중석(nave), 입구 부분을 나르텍스(narthex)라고 부른다. 나르텍스는 오늘날 그 이름이 사라졌지만, 이곳을 지나면 성당의 본체인 회중석이 나타난다. 평면으로 보면 문간인 나르텍스와 제단 사이, 또는 나르텍스와 제단 앞으로 가로막는 횡랑(橫廊, transept) 사이가 회중석이다.

 

유다인의 성전과 비교하자면 지성소(Holy of Holies)와 성소(Holy Place), 문간이 성당에서는 각각 제단과 회중석, 나르텍스에 해당한다. 성당에서는 사제들만 들어가던 성소가 변하여 우리가 앉고 서는 회중석이 되었다.

 

성당은 유다교의 회당인 시나고가(synagoga)의 전통을 많이 이어받았다. 초기에는 유다인이면서 그리스도인이었던 이들은 시나고가에 모였다. 시나고가라는 말은 ‘모인다’, ‘회중’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성경에는 이를 ‘회당’이라고 번역한다. 건물 끝에는 제단이 있고 토라(율법)를 담은 계약의 궤가 있으며, 영원한 빛인 네르타미드(ner tamid)도 있고, 토라를 읽는 베마(bema)도 있다. 그리고 벽을 따라 긴 의자가 마련되어 있다.

 

그러나 이러한 시나고가의 평면과 달리 성당에서는 회중석의 면적이 크고, 제단, 회중석, 나르텍스가 차례대로 긴축에 이어져 있다. 이 점이 아주 중요하다.

 

 

노아의 방주요 구원의 징표인 성당

 

회중석의 본디 이름은 영어로 네이브(nave)다. ‘배’라는 뜻이다. 이 말은 배를 뜻하는 그리스어인 나우스(naus)에서 나왔다. 따라서 초기 그리스도교에서는 이 부분을 라틴어로 나비스(navis)라고 불렀다. 나비스는 중세 라틴어 나벰(navem)의 주격인데, 해군을 뜻하는 네이비(navy)도 같은 어원에서 나왔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신전의 박공지붕을 안에서 올려다보면 뒤집힌 배와 비슷하게 생겼다고 하여 신전을 ‘나비스’라고 불렀다.

 

산토 스테파노 성당, 베네치아(Wikimedia Commons).

 

 

‘네이브’는 교회인 ‘배’를 표상한다. 교회가 회중석을 ‘배’라고 부른 것은, 베네치아의 산토 스테파노 성당에서 보듯이 회중석이 배처럼 길게 생겼기 때문이다. 지붕을 덮은 박공지붕이나 아치로 된 형상은 하늘나라를 향하는 선체나 배의 바닥의 중앙을 버티는 길고 큰 목재인 용골의 모양을 연상시켜 주었다. 이 때문에 그리스도 교회에는 노아의 방주처럼 신자들을 보호한다는 이미지에 고대의 감성이 겹쳐져서 회중석의 이름을 ‘나비스’라 부르고, 이것이 영어로 ‘네이브’가 되었다.

 

성당이 제단과 회중석과 나르텍스로 이루어진다면, 제단과 제대는 하늘의 문이고, 네이브인 회중석은 이 땅에 있는 배다. 이것은 유다교 시나고가에는 없는 그리스도교의 본질을 아주 잘 나타내는 말이다. 그럼에도 우리나라에서는 회중석을 ‘네이브’라 부르지 않아 이 공간을 ‘배’라는 의미와 함께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그러면 왜 회중석을 ‘배’라고 부르는가? 왜 우리는 ‘배 안’에 앉아있다고 여기는가? 바티칸 박물관에는 마르코와 루카, 요한 등 복음사가들이 예수님의 지시를 받으며 노를 젓고 있는 조각이 있다. 5세기 석관에 장식된, 작고 사소한 작품이다. 그러나 이 조각은 초기 그리스도교 공동체가 교회는 격랑을 헤쳐가는 작은 배로 표상하고 있었음을 잘 보여준다. 이 조각에서는 든든하게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함께’ 노를 젓고 계신다.

 

격랑의 바다와 배, 이로써 교회는 움직인다. 그러나 하느님의 모든 백성은 배 안에 모여 흔들리는 세상의 풍랑과 유혹 속에서 굳건히 계속 움직이고 있음을 뜻한다.

 

교회는 안전하고 평화로운 장소다. 회중석이 ‘배’라는 것은 성당이 또 다른 노아의 방주요 구원의 징표임을 뜻한다. 그리고 노아의 방주는 새로운 생명과 희망을 홍수로 가라앉은 세상에 복음을 전하는 것이다.

 

계속 노를 젓는다는 것은 멈출 수 없는 복음의 전파, 곧 우리에게 맡겨진 메시지를 권위 있게 선포하는 일을 뜻한다.

 

그래서 가톨릭교회 교리서는 이렇게 말한다. “교회는 ‘화해를 이룬 세상’이며, ‘주님의 십자가의 돛을 활짝 펴고 성령의 바람을 받아 이 세상을 잘 항해하는’ 배이다. 교부들이 즐겨 쓰는 또 다른 표현을 빌리자면, 교회는 홍수에서 유일하게 구해주는 노아의 방주에 비유된다”(845항).

 

 

하느님께 나아가는 순례 여정의 배

 

회중석인 네이브에서 가운데 통로를 따라 똑바로 제대를 향하게 된다. 이는 구원으로 이끄는, 그래서 우리가 따라야 할 곧고 좁은 길, 세례를 받고 나서 우리가 걷는 영적인 길과 여정을 표상한다. 네이브를 다 지나면 단으로 높이 올린 제단에 이른다. 높은 제단은 예루살렘이라는 지상의 도시와 천상의 새 예루살렘을 잇는 하늘의 문이다.

 

그래서 영성체를 위해 제대를 향해 똑바른 길을 나설 때마다 거룩한 예루살렘 도성에서 베푸는 천상의 전례를 미리 맛보는 것이다. 네이브라는 장소는 항해하는 배를 타고 하늘나라를 향해 인생의 순례를 하고 있음을 나타낸다.

 

전통적인 가톨릭교회 건축은 아주 멀리서도 종탑과 돔이 높게 보인다. 그리고 문을 열고 거룩한 성체성사가 거행되는 하느님의 제단으로 다가간다. 그것은 하느님과 하늘나라를 찾아나서는 영적 여정의 길이다. 따라서 성당이라는 건물은 아버지의 집을 향한 우리의 영원한 순례를 상기시켜 주는 곳이며, 새로운 예루살렘을 미리 보여주는 곳이다.

 

초기 그리스도교 교회 건축가들은 바실리카라는 로마의 재판소 홀을 채택하여 성당을 만들었다. 이런 형식의 건물에서는 지붕이 높게 올려있으나 보는 목재로 만들어야 했으므로 길이에 한계가 있었다. 그래서 조금 더 넓게 지으려면 이보다는 높이를 조금 낮추어 좌우에 또 다른 열을 덧대야 했다.

 

그 결과 가운데는 높은 통로, 좌우에는 낮은 통로가 생겼다. 그래서 생긴 가운데 통로는 중랑(中廊, central aisle), 좌우의 조금 낮은 통로를 측랑(側廊, side aisle)이라고 한다. 성당이 아주 커서 측랑을 좌우에 두 개씩 모두 네 개를 두면 5랑식(廊式) 성당이 된다.

 

그런데 여기에서 주의할 것이 있다. 이 가운데 통로를 네이브라고 하고 그 좌우의 통로를 아일(aisle)이라고 따로 부르는 것은 잘못이다. 건축사 책에도 이렇게 잘못 쓰인 것이 많으며, 건축을 가르치는 교수들 가운데 이렇게 잘못 부르는 이도 많다.

 

이렇게 부르면 가운데 통로와 좌우의 통로가 없이 회중이 제대를 둘러싸는 원형 평면에서는 이 표현이 적용되지 못한다. 원형 평면인 성당에서도 회중이 앉는 부분은 ‘네이브’다. 다만 이 경우에는 측랑이라고 부를 곳이 없을 뿐이다. 바실리카식 장축형 교회에서는 3개의 아일이라는 통로 모두를 합친 것이 네이브다.

 

벤젠바흐에 있는 성 베드로 성당(2003). 사진 : 김광현.

 

 

독일 벤젠바흐의 성 베드로 성당(2003년)은 ‘배’라는 회중석의 의미를 현대적으로 표현하였다. 이 성당은 새로 지어진 것이 아니라 7세기에 지어진 성당 북쪽에 배의 앞부분 모양으로 증축했다.

 

제단에서는 두 곡선이 만나며, 천장의 목구조는 배의 모양을 표현하였다. 창의 푸른빛은 아래로 내려갈수록 짙어지며, 벽면은 더 짙은 푸른색으로 도장된 철판으로 마감되어서, 회중석은 깊은 바닷물 속에 있다는 느낌을 자아낸다.

 

제대 위에는 제대라는 존재를 더욱 돋보이도록 가볍게 달아놓는 테스터(tester)를 돛처럼 만들었다. ‘주님의 십자가의 돛을 활짝 펴고 성령의 바람을 받아 이 세상을 잘 항해하는 배’를 형상화한 것이다. 성당은 회중석에 앉은 믿음의 공동체가 평화를 얻고, 노를 저어 복음을 이 세상에 전하며, 하느님께 나아가는 순례의 여정에 있는 한 척의 배이기 때문이다.

 

* 김광현 안드레아 - 건축가. 서울대학교 건축학과 교수로 전주교구 천호성지 내 천호부활성당과 성바오로딸수도회 사도의 모후 집 등을 설계하였다.

 

[경향잡지, 2016년 5월호, 김광현 안드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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