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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미술ㅣ교회건축

가톨릭 문화산책: 건축 (2) 제대, 성당의 가장 거룩한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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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3-03-23 ㅣ No.163

[가톨릭 문화산책] <9> 건축 (2) 제대, 성당의 가장 거룩한 자리

제대, 그리스도 희생 제사와 인간 구원 이뤄지는 '지성소'


- 8세기 로마의 산타 마리아 인 코스메딘 성당.


제단이란 전례를 위해 사제에게 마련된 일정한 자리를 말하며, 신자석과 구별되게 몇 개의 단으로 높여 놓은 영역을 말한다. '제대'는 미사를 봉헌하기 위한 탁자이며, 제단 안에 제대가 놓인다. 성당을 이루는 모든 요소는 이 제대를 위해 있다.

제대는 예수 그리스도의 마지막 만찬이 이뤄지는 식탁이자 주님 희생 제사가 이뤄지는 가장 거룩한 자리다. 주례 사제는 미사를 통해 그리스도 모습으로 그리스도가 하시는 일을 거행한다. 제대는 하늘의 식탁이며, 하늘과 땅이 만나는 곳이고, 대사제가 되시는 예수께서 당신 자신을 제물로 내어 놓으시는 곳이다.

본래 제대(altare, altar)는 라틴어 '드높인'(altus)이라는 말에서 유래했다. 제대는 하느님과 인간이 결합하기 위해 쓰이는 드높인 자리라는 말이다. 하느님께서 제대 위로 내려오시고 인간은 제대를 향한다. 이런 이유에서 성당 안에 제대가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제대를 둘러싸고 품기 위한 건물로 성당은 존재한다고 해야 한다. 그러므로 성당을 짓는 건축가는 성당이라는 건물이 있기 이전에 거룩한 제단이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나무로 만든 제대는 '주님의 식탁', 곧 잔치인 미사라는 의미가 강하며, 교회 초기 300여 년 동안은 주택 교회에서 사용됐다. 그러나 박해가 끝난 후에는 새로 세워진 성당에 맞게 돌로 고정한 제대로 바꿨다. 이는 돌로 만든 제대가 희생 제사를 연상하게 하거나 무덤을 닮아 있기 때문이다. 또 돌로 만든 제대는 모퉁이의 돌이신 그리스도, 생명의 물이 솟아 나오는 바위이신 그리스도를 나타냈다.

8세기 로마에 지어진 산타 마리아 인 코스메딘 성당(Santa Maria in Cosmedin)을 보면 낮은 벽 위에 기둥을 둬 제단 앞을 가로막고 있고, 그 기둥 사이로 제대가 보이게 만들었다. 제대는 네 개의 기둥 위에 얹은 닫집 아래 놓여 있으며, 제대 뒤는 둥근 벽면이 이 닫집을 다시 에워싸고 있다. 이렇듯 제단과 신자석은 뚜렷하게 나뉘어 있었다.

20세기 독일의 코르푸스 크리스티 성당.


오늘날 제단과 신자석은 각각 구약의 성전을 이루는 지성소와 성소의 위치에 있었다. 구약의 성전은 '거룩한 장막'을 본 따 건축했다. 성전 끝 작은 방에는 폭과 너비와 높이가 모두 9m 남짓한 지성소가 있었고, 그 안에 십계명판이 든 계약궤를 모시고 있었다. 이 계약궤에는 올리브나무로 만든 커다란 커룹 둘이 이것을 보호하는 모습을 하고 있었는데, 그 높이와 길이가 4.7m나 되었으므로 두 커룹이 방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오로지 대사제만이 일 년에 한 번 속죄를 위해 들어갈 수 있는 거룩한 곳, 그곳을 이스라엘 사람들은 히브리어로 '코데슈 학코다쉼', 곧 '거룩함 중의 거룩함'(the Holy of Holies)이라고 했다. '거룩함 중의 거룩함'이 오늘날 성당의 제대다.

그러나 두께가 2.8m 되는 벽과 거기에 달린 나무문과 계단이 지성소와 성소를 엄격하게 나누고 있었다. 모세의 성막에서는 양털과 아마실로 만든 거대한 휘장이 지성소와 성소를 분리하고 있었는데(탈출 26,33), 그 넓이는 무려 200㎡나 됐다. 이 휘장과 벽은 곧 하늘인 지성소와 땅인 성소를 나누는 모든 것을 재현하는 것이었다. 그러면서도 문과 휘장은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시간과 영원을 이어주는 것이었으므로 이 문과 휘장을 지나는 것은 곧 하느님과 하느님의 백성을 잇는 것이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으로 지성소의 벽과 휘장은 사라졌다. 산타 마리아 인 코스메딘 성당과 같이 제단 앞을 가로막고 있는 낮은 벽과 기둥이 생긴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동방정교회에서는 오늘날에도 제단과 신자석 사이에 이콘을 걸어 칸막이를 한 장벽(iconostasis)을 두고 있어서 신자들은 제단 안에서 이뤄지는 제사를 거의 볼 수가 없는데, 이것은 제단의 휘장이 장벽으로 변한 것이다. 이와 비교해 보면 가톨릭교회의 성당이 얼마나 신중하게 제단과 신자석 사이를 분리하면서 동시에 연결하고 있는가를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산타 마리아 인 코스메딘 성당과 비교하면 오늘날의 성당은 무엇이 가장 크게 달라졌을까. 그 차이는 제대와 그 주변이다. 20세기 초 루돌프 쉬바르츠(Rudolf Schwarz)가 설계한 코르푸스 크리스티 성당(Corpus Christi)의 제대는 단이 약간 높여져 있으나 신자석 쪽으로 나와 있고 제단을 두른 의자는 제단의 영역을 뚜렷하게 해주고 있다. 제단 위에는 닫집도, 뒷벽의 배경도 없고, 그 대신에 감실을 더 높은 곳에 뒀다. 성당 전체는 하얗다. 극도로 억제된 6개 창문이 제단의 영역을 암시할 뿐, 공간에는 아무것도 없이 흰 벽에 빛만이 가득하다. 오늘날의 성당과 비교하면 제단은 높은 편은 아니지만, 여러 단의 검은 계단이 뒤를 받치고 있어서 제대의 거룩함은 바닥이 표현해주고 있다.

산타 마리아 인 코스메딘 성당의 바닥은 칸막이로 구분돼 있다. 그러나 코르푸스 크리스티 성당은 신자석과 제단의 바닥을 똑같이 검은 돌로 깔고 있어서 신자석과 제단이 하나의 바닥으로 연속해 있다. 한 공간 안에 있으면서 위계와 경계가 뚜렷한 성전의 모습을 여전히 간직하고 있는 것, 이것이 코르푸스 크리스티 성당의 혁신적 모습이었다. 그러나 이 두 성당만 비교해 봐도 제대가 이렇게 확연히 달라지는 데에는 무려 1200년이나 걸렸다.

제의를 입은 사제가 입당해 신자들 사이를 지나 제단에 오르는 것은 오늘날 '신자석'(nave)이라고 하는 성소를 지나 지성소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사제는 이렇게 함으로써 어두움에서 빛으로, 지상에서 천상으로 가는 여정을 드러낸다. 이 여정의 목표는 말할 나위도 없이 제대다.

전임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이렇게 말한다. "제대는 우리를 로고스의 희생과 함께하며 참여하도록 돕는 한편 함께 모인 공동체 안으로 천국을 끌어들인다.… 하늘을 연 제대는 교회의 공간을 닫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전례로 열어준다"(「전례의 정신」).

- 동방 정교회의 소피아 성당.


제2차 바티칸공의회 이후 신자들의 능동적 참여를 위해 제단이 많이 낮아졌지만, 그 이전에는 제단의 거룩함을 강조하기 위해 여러 가지 건축적 고심을 했다. 그것을 아주 간단히 말하면 제대를 높이고, 덮으며, 뒤를 받쳐주고, 앞을 가로막는 것이었다.

먼저 많은 계단을 둬 제단을 높게 만들었다. 초기 시리아 교회에서는 이미 제대가 신자석 한가운데 있었고, 성체성사가 신자 사이에서 이뤄졌을 때에도 계단을 둬 제단을 높이 올렸다. 그리고 제대를 보호하고 거룩함을 더하기 위해 지붕 모양의 덮개를 덮었다. 제대의 위치를 뚜렷하게 하려고 흔히 제대 위에 두 가지 형식의 덮개를 뒀다. 하나는 돌이나 금속 또는 나무 기둥 네 개 위에 지붕을 얹고 작은 건물 모양으로 독립해서 서 있는 닫집(ciborio, ciborium)이 제대 위를 덮는 것이다. 이를 발다키노(baldacchino)라고도 하는데, 여기에 비단을 걸기도 한다. 화려하기로는 역시 베르니니가 만든 성 베드로 대성당 발다키노가 으뜸이다. 다른 하나는 기둥이 없이 가볍고 작은 구조물이 매달리며 제대를 덮는 닫집이다. 이것을 영어로 'tester'라고 한다. 이렇게 제대에 덮개를 씌운 것은 모세의 성막이 천막으로 돼 있었음을 상기시켜 주기 위함이었다.

중세나 바로크 시대에는 제단 뒷면에 그림을 그리거나 조각을 한 배경(reredos)을 둬 시각적으로 모든 회중이 자연스럽게 제대를 향해 집중하게 했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 후 넓은 제대를 사용한 것도 제대의 탁월성을 명확하게 하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제단 앞에는 난간이나 사슬을 둘러 제단의 영역을 강조했다.

오늘날 성당에는 지성소와 성소를 구분하던 엄격한 벽이 사라졌으며, 전례의 공동체성을 더욱 잘 드러내기 위해 제단도 많이 낮아졌다. 더욱이 제대를 덮는 닫집이나 제단 앞을 두른 난간도 사라지고 제대와 계단만이 남게 됐다. 그러나 이 계단은 우리가 흔히 건물에서 밟고 다니는 그런 계단과 결코 같지 않다. 그 몇 단 안 되는 제단의 계단은 바로 성소와 지성소를 가르는 경계이며, 생명을 회복하는 천상 여정의 경계인 것이다. 오늘날 제단 위에서 봉사하는 이들이 장백의를 입는 것도 그들이 아마실로 만든 휘장 안인 지성소에 들어와 있음을 의미하기 위함이다.

그렇다면 성당 건축은 이처럼 제단과 제대의 거룩함을 드러내고, 한 사람 이외에는 들어갈 수 없는 문, 눈에 보이지 않은 휘장이 계단이 있는 곳에 처져 있었음을 늘 기억할 수 있도록 제단에서 신자석을 향해, 그리고 신자석에서 제단을 향해 세심하게 설계돼야 한다. 하느님의 거룩한 집인 성당의 제대, 제단 그리고 그것에 이르는 계단을 유심히 바라보며 거룩하신 하느님께서 얼마나 우리와 가까이 계시려 하는지 깊이 생각해보자.

[평화신문, 2013년 3월 24일, 김광현(안드레아, 건축가, 서울대 건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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