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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인성사] 혼종혼인의 개념화 문제: 한국 신학의 관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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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5-01-07 ㅣ No.91

‘혼종혼인’의 개념화 문제 - 한국 신학의 관점에서

 

 

1. ‘혼종혼인’의 개념과 재검토

 

1983년에 공포된 새 『교회법전』에 따르면, ‘혼종혼인’은 다음과 같이 규정된다. “세례 받은 두 사람 중 한편은 가톨릭 교회에서 세례 받았거나 혹은 영세 후에 이 교회에 수용되고 정식 행위로 교회를 떠나지 아니한 자이고, 상대편은 가톨릭 교회와 온전한 친교가 없는 교회나 교회 공동체에 등록된 자 사이의 혼인”(교회법 1124조). 

 

교회법 제4권, “교회의 성화 임무” 가운데 제6절의 제목(“혼종혼인”)에서 나타나듯이, ‘혼종혼인’ 개념은 가톨릭 신자들의 혼인과 관련하여 이미 우리 교회 안에서 정착되어 쓰이고 있다. 일례로 현대 가톨릭 교회의 혼인에 관한 비전을 담은 중요한 문헌인 『가정 공동체』의 본문에서도 이 역어가 사용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 문헌은 1981년에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발표한 교황 권고인데, 우리 교회의 200주년 기념 사목회의 때 마련한 “가정사목” 의안의 기초가 되기도 하였다. 이것을 우리말로 옮긴 역자는 78항에서 “가톨릭 신자와 다른 교단의 세례 신자 사이에 맺어진” 혼인을 “혼종혼”으로 개념화하고 있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의 번역본에서도 마찬가지이다(1633항). 우리나라 역자들이 이렇게 옮긴 원래의 개념은 ‘matrimonium mixtum: mixed marriages’이다.1) 

 

이 연구의 목적은 이 용어의 번역어로서 ‘혼종혼인’이 적절한지의 여부를 집중적으로 검토함으로써, 교회일치 운동에 필요한 신학적 기초를 공고히 하는 데 있다. 여기서는 먼저 홍기선 신부의 연구를 중심으로 교회법과 우리나라의 사목 지침서 등을 토대로 우리 교회가 ‘혼종혼인’을 바라보는 시각을 세계교회와 비교 검토하면서 ‘혼종혼인’의 적용이 안고 있는 문제점을 간략히 살핀 다음에 ‘혼종혼인’ 개념의 대안을 모색하기로 한다.

 

 

2. 허가혼으로서 ‘혼종혼인’에 대한 바른 이해와 적용

 

홍기선 신부는 2004년 5월에 열린 제4차 그리스도교 일치운동 포럼과 「사목」 에 게재한 논고를 통하여 ‘혼종혼인’에 관한 연구를 발표하였다. 그는 이를 통하여 관면혼과 허가혼, 성사혼과 비성사혼의 기준을 명시하고 개신교 세례의 유효성을 신학적으로 지켜줄 건강한 대화 자세를 촉구하고 있다. 그의 연구는, 적어도 간접적으로, 관면혼 관계에 들어서는 다른 종파인이나 무종교인과의 혼인에 대해서도 한국 가톨릭 교회가 좀 더 명확하게 이해하는 데 이바지할 것으로 본다. 

 

홍 신부는 그리스도교 일치운동 포럼에서 허가와 관면의 차이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허가는 관면과 다른 법적 개념이다. 교회법 안에서 혼인 장애가 있을 때 유효하고 합법적인 혼인이 이루어지려면 관면을 받아야 한다. 이 관면 없이는 혼인이 무효가 된다. 그러나 허가 사항일 경우에는, 허가를 받지 못한 상황에서 혼인하면 비록 불법이나 유효한 혼인이 된다.”2) 

 

이를테면, 다른 종교인과의 혼인은 교회법 1125조의 요건을 채워서 관면을 받게 되고, 그렇지 않을 경우 이 혼인은 무효이다.3) 그러나 세례를 받은 다른 교파 신자와의 혼인은 관할권자의 명시적 허가 없이 이루어질 때 그 자체로는 불법이나 유효한 혼인, 곧 성사혼이 된다. 이런 경우를 현행 교회법은 ‘혼종혼인’으로 개념화하고 있는 것이다(1124조). 

 

그렇다고 해서, 현재의 교회법 규범에 따를 때, 이른바 ‘혼종혼인’이 무효가 되지 않는 것만은 아니다. 세례 받은 프로테스탄트 신자와의 혼인이 관할권자의 명시적 허가 없이 이루어졌을 때, 교회법 1124조를 거스르는 것은 앞서 언급한 대로이다. 그런데 이렇게 허가 없이 이루어진 혼인은 교회법 1108조에 규정된 가톨릭 신자의 혼인 거행에 필요한 주례와 증인, 교회법으로 명시된 규정 등, 가톨릭인들의 혼인 형식을 충족시키지 못하는 것이 통례이다. 이렇게 될 때 이 혼인은 가톨릭 교회의 혼인에 필요한 형식의 결여 때문에 무효로 귀착될 수 있는 것이다.4)

 

하지만 그렇더라도, 다른 종파인과의 혼인처럼 관면을 받지 않아서 무효인 경우는, 다른 교파인과의 혼인처럼 허가를 받지 못한 채 혼인 형식상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하여 무효에 귀착된 경우와 의미가 같지 않다. 후자는 형식상 요건을 갖추지 못하여 불법적인 것이 되지만, 유효성을 가지므로 성사혼을 구성한다. 그러나 전자는 현재의 교회법 규정에 따를 때 설령 관면 조건을 충족시켜서 합법적인 혼인이 된다고 하더라도 성사혼이 되지 않는 것이다.5)

 

이런 관점에서 홍기선 신부는 현재와 같이 다른 교파 신자와의 혼인을 관면혼에 포함시키는 관행을 극복할 것을 요청한다. 이 혼인이 비록 불법적인 혼인으로서 금지 장애의 대상이기는 해도, 그 자체로 무효 장애를 발생시켜서 혼인의 성사성을 상실하게 하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관면혼과 허가혼을 구별하지 않고 허가혼까지 관면혼에 포함시키는 관행은 현재 교회법에 명시적으로 규정되어 있는 ‘혼종혼인’ 개념을 잘못 이해하거나 잘못 적용한 결과일 뿐만 아니라 이 규정을 계속해서 잘못 이해하게 만들 수 있다.6) 또한 교회일치 운동의 차원에서 볼 때 개신교의 정상적인 세례의 유효성을 지나치게 경직된 형태로 바라보게 만드는 문제를 유발시킬 수도 있다는 것이다.7) 

 

실제로 ‘혼종혼인’ 개념이 현재의 교회법 규정과는 다른 의미로 쓰이는 다양한 사례들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이 현실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이 개념을 한편으로는 타 교파인과의 혼인에서도 경직되게 적용하여 성공회를 제외하고는 모두 허가가 아니라 관면 대상으로 간주하고 있고,8) 다른 한편으로는 이 개념을 확대해석하여 이른바 ‘미신자’ 장애에 해당되는 경우까지 포괄하는 개념으로 사용하기도 한다.9) 

 

예컨대 교회법 제1124조와 제1125조를 『한국 천주교 사목 지침서』 제111조의 1-3항과 비교해 보면, 사목 지침서의 ‘혼종혼인’ 규정이 교회법 조항들을 좀 더 가톨릭 교회 중심으로, 그리고 프로테스탄트 교파들의 세례의 유효성에 회의를 표하는 형태로 제시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사목 지침서에 따르면, 가톨릭 신자와 비가톨릭 영세자 사이에 맺는 혼인은 금지하며(1항), 정당한 이유가 있으면 허가할 수 있고(2항), 세례가 의심되는 경우 사제는 “허가와 함께 미신자 장애의 관면까지 겸하여야 한다”(3항). 

 

그러니까 이 규정에 따르면 혼종혼인을 관면혼의 대상으로 보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 당연한 일이라고까지 할 수 있는 면이 있다. 홍기선 신부가 밝힌 것처럼, 감리교나 장로교의 세례예식에서 유효성을 의심할 소지가 없는데도, 현재 가톨릭 교회에서는 성공회에서 받은 세례 이외에는 일반적으로 세례의 유효성을 의문시하면서 이들과의 혼인 때 사목 지침서 제111조 3항의 요건을 채울 것을 요청하고 있는 것이다.10)

 

주교회의가 혼인성사와 관련하여 해마다 발표하는 통계자료에서도 ‘혼종혼인’을 관면혼에 포함시키고 있다. 현재의 자료 체계에서는 다른 종파인과의 혼인과 다른 그리스도교인과의 혼인을 각각 ‘이교혼’과 ‘혼종혼’이라는 개념을 사용하여 구분하면서도, 이를 통계상에 반영하는 것은 유보하고 있는 상태이다. 그리하여 이 두 경우 모두를 관면혼으로 분류하고 있는 것인데, 이 구분에 따르면 전자만이 아니라 후자 역시 관면을 필요로 하는 경우로 알아듣게 된다. 이를테면 한국 가톨릭 교회의 이 같은 통계 관행은, 적어도 혼종혼인에 관한 한, 프로테스탄트 교회의 세례를 경직된 형태로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또한 우리나라에서는 통상적으로 ‘혼종혼인’ 개념을 동일한 신앙을 고백하는 주체들이 혼인하는 것만으로 해석하지 않고 의미를 확장시켜서 적용하고 있기도 하다. 이것은 ‘혼종혼인’이라는 개념이 사목 현장에서 일정하게 잘못 적용되고 있는 현실을 반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실제로 상당수의 혼인 관련 교회법 해설서들이 ‘혼종혼인’을 좁게는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을 다른 방식으로 고백하는 주체들이 혼인 관계에 들어서는 경우(이교파 신도와의 혼인)와 넓게는 가톨릭 신앙인이 다른 종교 체계에 있거나 무신론자인 배우자와 혼인 관계에 들어서는 것(이종파혼)을 동시에 나타내는 개념으로 쓰고 있는 것이다.11)

 

이런 관행에 근거하여 홍기선 신부는 결론적으로 현행 용어의 적용이 잘못 되었기에 관면혼인에 대한 통계치는 의미없는 것이 되어버렸다고 말한다.12) 다시 말해서 관면혼이라는 명백한 사례로 조사되어야 할 통계 수치에, 포함되지 않아야 할 이교파 혼인 사례까지 포함되었기 때문에 잘못된 통계를 발생시킬 수밖에 없게 되었고, 이 때문에 통계로서의 가치를 상실하고 말았다는 것이다.13) 

 

이러한 현실에 직면하여 현재의 제1124조 이하의 혼인법 규범의 정신을 바르게 구현하려면, 첫째, 홍기선 신부가 명확하게 진술한 것처럼, 타 교파인과의 혼인에서 세례 받은 신자의 경우 허가 대상으로서 성사혼의 범주에 든다는 점을 교회법적으로는 물론 사목적으로도 명시적으로 확인하고, 둘째, 이를 프로테스탄트 여러 교파와 협의하여 정상화하며,14) 셋째, 이를 사목자와 신도들이 명확하게 자각할 수 있도록 교육해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이제 더는 ‘혼종혼인’이라는 개념을, 그리스도교 식으로 세례를 받지 않은 사람들과 혼인한 경우까지 포괄하는 개념으로 사용하지 않는 한편, 다른 그리스도교인들이 받은 세례를 존중하는 풍토를 확립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이를 통하여 우리 교회는 적어도 현재 세계 교회법이 열어줄 수 있는 일치와 대화의 전망을 우리나라의 신앙살이 현장에서도 더 역동적으로 구현할 수 있어야 할 것으로 믿는다.

 

 

3. ‘혼종혼인’의 개념화에 대한 정당성 검토

 

1) 혼인 주체들의 신앙 전통의 관점에서 본 ‘혼종혼인’ 개념화의 문제성

 

지금까지 우리나라 가톨릭 교회에서 나타나는 ‘혼종혼인’의 문제를 간략히 검토하였다. 그런데 이 문제는 ‘혼종혼인’이라는 개념화와 일정하게 맞물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예컨대 위에서 본 것처럼 종파가 다른 신도와의 혼인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교 안에서 가톨릭 신앙과 다른 교파 신도와의 혼인을 ‘혼종혼인’이라고 개념화해 왔다. 이 개념의 원어는 앞에서 본 것처럼 ‘matrimonium mixtum: mixed marriages’인데, 교회법을 우리말로 옮기면서 이것을 ‘혼종혼인’으로 개념화하였다. 위에서는 편의상 기존의 개념을 그대로 사용하면서 논의를 개진하였지만, 아래에서는 이 개념을 우리말로 어떻게 표현할 것인지를 집중적으로 검토하고자 한다.

 

위의 개념이 ‘혼종혼인’으로 번역된 것은 과거 프로테스탄트 교회를 열교(裂敎)로 일컬으면서 서로 대립했던 갈등 관계가 영향을 미친 면이 없지 않아 보인다. 가톨릭 교회는 그리스도교의 정통 신앙 체계라는 자기 정체성 인식 아래, 프로테스탄트 교회를 진정한 그리스도 신앙과 대비되는 종교 집단(religio)으로 보아왔다. 이런 대립상을 반영하기라도 하듯이, 1917년의 교회법전에만 하더라도 프로테스탄트 교회들에 속한 이들과의 혼인을 장애로 인식하면서, 이를 ‘implimentum mixtae religionis’로 표현하였다.15) 이것은 서구 가톨릭 교회에 아직도 영향을 미쳐서, 우리가 ‘혼종혼인’이라고 옮기는 것과 동일한 표현(mixed religion marriage)으로 가톨릭 신자와 프로테스탄트 여러 교파 신자의 혼인을 나타내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프로테스탄트 신자들에 대한 인식과 이들과의 관계가 달라졌다. 그리하여 교회법 안에서도 프로테스탄트 교회에서 세례 받은 교인들을 한 그리스도 신앙 안에서 형제자매로 보는 가운데, 이들과의 혼인을 그리스도 신앙을 공유하는 이들이 서로 합하여 이루는 혼인(matrimonium mixtum)으로 인식하고 있다. 이것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통하여 획기적으로 개선되기 시작한 개신교회와의 유대를 반영하며, 또 여기에 근거하여 과거에는 ‘금지’에 역점이 두어졌던 단계에서 오늘에는 가톨릭 그리스도인들의 성화에 초점을 맞추면서도 허가에 비중을 두는 단계로 옮겨가고 있는 중이다. 이런 현상은 특히 서구 가톨릭 교회에서 두드러져서, 홍기선 신부가 소개하고 있는 것처럼, 이들 가운데서는 교회일치 정신에 부합하는 형태로 교회법의 적용을 모색하는 사례들이 점차 가시화되고 있다.16)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앞서 확인하였듯이, 이 같은 세계교회의 변화에 비해서 이 규정을 경직된 형태로 적용하는 면이 있다. 여기에는 우리나라에서 프로테스탄트 보수 교단들이 일반적으로 드러내는 가톨릭에 대한 배타성 또는 비우호성과도 무관하지만은 않다고 할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 교회가 프로테스탄트 교회들과 진정으로 일치하고자 한다면, 세례의 단일성을 신학적으로는 물론 사목적으로도 지켜가는 가운데 새로운 대화와 일치의 전망을 열 수 있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17)

 

그러나 이런 점을 감안한다고 하더라도, ‘혼종혼인’이라는 개념화는 여전히 문제를 안고 있다. 오늘날 서구에서 ‘mixed religion marriage’를 가톨릭 그리스도인과 프로테스탄트 그리스도인 사이의 혼인을 가리키는 말로 해석한다고 하더라도, 이것은 서구에서의 일이다. 이 똑같은 말이 우리나라에 와서는 서구 그리스도인들이 알고 있는 것과 같은 식으로 동일하게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하고 하나의 세례로 신앙 안에 연대를 이루는 그리스도 종교인 사이의 혼인을 의미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지기가 매우 어렵다. 

 

이 개념은 그야말로 전 세계에서도 가장 다종교 현실을 드러내고 있는 이 땅에서는 여전히 서로 다른 예배로, 곧 다른 방식으로 신을 섬기며 신의 규범을 지키는 사람들 사이의 혼인으로 알아듣기가 훨씬 쉬운 것이다. 언어가 참으로 존재의 집이기 때문에라도, 삶의 자리를 고려하고 혼인의 주체들의 문화와 사회 관습의 총체를 고려할 줄 아는 개념화가 무엇보다도 절실하게 요청된다고 할 것이다. 

 

2) 혼인 주체들의 삶의 자리의 견지에서 본 ‘혼종혼인’ 개념화의 문제성

 

앞에서는 ‘혼종혼인’의 개념화 문제를 혼인에 들어설 사람들의 종교적 신원의 관점에서 검토하였다. 이 과정에서 위의 마지막 단락에 이르러서는 혼인 주체의 삶의 자리의 성격을 집약적으로 드러내는 언어의 관점에서 이 개념을 검토할 과제에 닿게 되었다. 실제로 프로테스탄트 교회에 속한 사람과의 혼인을 ‘혼종혼인’이라고 할 때, 동아시아인들 가운데서도 자기 나름대로 한문을 읽는 법을 갖추고 있는 우리 민족에게서 이 개념은 근본적으로 문제를 발생시킬 수밖에 없는 측면이 있다. 단적으로, 이 개념에 쓰인 ‘종’자는 마루 종(宗)자이어서, ‘종교’라는 개념에 쓰인 것과 동일한 ‘종’자를 쓰는 한, 이 개념은 혼란을 초래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혼’은 이 개념에서 ‘신앙 고백 방식이 다른 두 인격이 맺어짐’을 나타낸다. 그러므로 ‘혼종’이란 일차적으로 그리고 상식적으로 종교가 다른 사람들의 결합을 말하는 것으로 알아들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위에서 말한 대로 교회법 제1124조 이하에 쓰인 ‘matrimonium mixtum’ 개념은 종교 또는 종파가 다른 사람과의 혼인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전통에 속하면서 교파가 다른 사람과의 혼인을 가리킨다. 교회법에서 이처럼 종교가 다른, 또는 특정 종교 전통에 속하지 않은 사람과의 혼인은 교회법 제1059조와 제1086조 등에서 따로 규정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지금까지는 제1124조 이하에서 규정된 교회법 제4권 교회의 성화 임무 가운데 제6절, “De Matrimoniis mixtis”에서 ‘matrimonium mixtum’을 ‘혼종혼인’이라고 개념화하여 사용하였으나, 이것은 우리말 용례에 비추어볼 때 적절한 것이라고 하기 어렵다. 

 

유럽의 교회에서는 이종파 혼인 사례가 적고 대부분이 그리스도인으로서 가톨릭 교회에 속하지 않은 사람과 혼인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므로, 이들의 입장에서는 ‘matrimonium mixtum’이라는 말만으로도 이런 사례를 설명할 수 있는 개념으로 성립될 가능성이 있었을 것으로 추론된다. 현재도 서구어권에서는 이 말을 직역한 형태를 가지고 그들 나름으로 관용화하여 ‘다른 교파 신자들과의 혼인’을 표현하는 데 결정적인 장애가 있는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사정이 다르다. 이 땅에서는 다른 그리스도교파 사람과의 혼인보다 종교가 없거나 다른 종교 전통에 속한 사람과 혼인하는 경우가 더 많이 나타난다. 그러므로 ‘matrimonium mixtum’을 설명하기 위한 개념화에서 ‘다른 그리스도교파’라는 말을 첨가할 필요성이 생겼던 것이다. 이 필요성에 근거하여 언어를 선택하는 과정에서 ‘다른 그리스도교파’를 지칭하는 말과는 차이가 있는 ‘종’자를 선택하여 개념화함으로써,18) 다른 그리스도교파 신도와의 혼인을 명시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언어화를 성취하지 못하는 한계를 노정시키고 있는 것이다. 

 

 

4. 대안 개념으로서 ‘혼교파 혼인’

 

지금까지의 논의를 토대로 결론을 말하자면, 앞으로 ‘혼종혼인’ 개념의 한 대안으로 ‘다른 교파인과의 혼인’이라는 의미를 좀 더 충실하게 지키고자 예컨대 ‘혼교파 혼인’이라는 개념을 사용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 개념의 언어상의 전제가 있는데, 그것은 ‘종파’가 종교와 종교의 구분을 전제한다면, ‘교파’는 한 종교 안에서 서로 구분되는 신앙 집단 또는 공동체를 전제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교회법 학자들 가운데 제1124조와 제1125조 등의 혼인 규정을 설명하면서, 이것이 가톨릭 신자와 다른 그리스도교파 신자 사이의 혼인에 관한 규정이라고 설명하는 가운데 ‘타 교파 혼인’이라는 개념을 사용한 예도 있다.19) 이를테면 대안 개념으로서 ‘혼교파 혼인’은 무엇보다도 법의 내용에 부합하고 또한 이미 이 분야 관계자들 사이에서 어느 정도 공감대를 형성한 용어들을 토대로 언어화하면서, 알고 있는 내용과 개념의 일관성을 확보하려는 관심에서 얻어진 한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이미 다 인지하고 있는 내용을 번잡하게 전개하면서 요란을 일으킨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앞에서 ‘혼종혼인’의 개념을 검토하는 과정에서 확인할 수 있었듯이, 일단 개념화되고 나면, 이 개념에 우리의 사고가 순응하려는 경향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혼종혼인’이라는 개념을 심지어 다른 종파인들과의 혼인까지 포함하는 개념으로 확장시켜서 사용하는 예까지 나타나고 있기도 한 것이다. 그러므로 이런 제약들을 극복하는 의미에서도 이 개념의 재검토를 특히 이 땅에서의 교회일치의 미래를 내다보며 시도하게 되었다. 

 

부디 일차적으로는 현재의 교회법 제1124조 이하 다른 그리스도교파 신자와의 혼인에 관한 규정들의 바탕을 이루는 법의 정신을 바르게 지켜가고, 궁극적으로는 ‘혼교파 혼인’에 따른 장애문제를 21세기의 건강한 시대정신에 부합한 형태로 해소해 가는 데 필요한 교회법적, 사목적, 신학적 기본 토대를 구축하는 데 일조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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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00주년 기념 사목회의의 “가정사목” 의안은 이 개념을 정확하게 전달하지 못하고 있다. 예컨대 이 의안의 저자들은 『가정 공동체』 78항에 진술된 ‘혼종혼’에 관한 내용에 기초하여 ‘크리스천 가정화 운동’의 관점에서 종교를 갖고 있지 않은 사람과의 혼인을 포함한 타 종파 신도와의 혼인(44.51항)과 타 교파 신도와의 혼인에 관하여 언급한다(44.48-51항). 그런데 이 저자들은 “가정사목” 의안 44항에서 개신교 신자와의 혼인을 ‘이종파 혼인’, 그리스도 신앙을 갖지 않은 사람과의 혼인을 ‘이종교 혼인’이라고 개념화하고 있다. 

 

2) 제4차 그리스도교 일치운동 포럼에서 발표한 “가정-타 종교간 결혼문제에 대해서(혼종혼인)”에서 인용. 같은 저자의 “혼종혼인을 대하는 사목자의 정신과 자세”, 『사목』 307호(2004년 8월), 43면도 참조. 위의 포럼에서 가톨릭과 동방정교, 프로테스탄트 교파들이 ‘혼종혼인’을 주제로 다룰 때, 가톨릭 교회에서는 홍기선 신부, 프로테스탄트 측에서는 김선희, 김경재 목사가 주제 발표를 하고 토론의 장을 마련하였다. 

 

3) 교회법 제1125조를 옮기면 다음과 같다. “교구 직권자는 정당하고 합리적인 이유가 있으면, 이러한 허가를 줄 수 있다. 그러나 아래의 조건들이 채워지지 아니하는 한 허가를 주지 말아야 한다.

1. 가톨릭 신자 편 당사자는 자기가 신앙을 배반할 위험을 제거하는 준비가 되어있음을 선언하여야 하며, 또한 모든 자녀들을 가톨릭 교회에서 세례 받고 교육되도록 힘껏 모든 것을 다하겠다는 성실한 약속을 하여야 한다.

2. 가톨릭 신자 편 당사자가 하여야 하는 이 약속들을 적당한 때에 상대편 당사자에 알려서 그가 가톨릭 신자 편 당사자의 약속과 의무를 참으로 의식하고 있음이 확인되어야 한다.

3. 혼인의 목적과 본질적 특성에 대하여 양편 당사자들이 교육받아야 하고 어느 편 당사자도 이를 배제하지 말아야 한다.”

 

4) 『한국 천주교 사목 지침서』, 제120조 참조. 이런 금지 장애의 신학적 의미를 검토하는 것은 앞으로 우리 교회가 교회법 전문가들과 함께 수행해야 할 매우 현실적이고도 한국적인 과제 중의 하나가 될 것이다. 이 차원에 관한 연구는 차후에 나눌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한다.

 

5) 『한국 천주교 사목 지침서』, 제110조 3항 참조.

 

6) 홍기선, “혼종혼인을 대하는 사목자의 정신과 자세”, 『사목』 307호(2004년 8월), 44면 참조.

 

7) 위의 글, 46-49면.

 

8) 정진석, 『한국 천주교 사목 지침서 해설』,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1995년, 258- 260면.

 

9) 정진석, 위의 책, 260면; 홍기선, 앞의 글, 44.46-47면 참조.

 

10) 정진석, 위의 책 , 260-265면 참조; 홍기선, 위의 글, 46-47면. 이처럼 경직된 해석은 200주년 기념 사목회의의 “가정사목” 의안에서도 나타난다. 요한 바오로 2세는 『가정 공동체』에서 다른 그리스도교파 신자와의 혼인에 관하여 다루면서 가톨릭 신앙인 쪽에서 겪을 수 있는 신앙의 위기와 대화를 통한 성숙의 기회를 모두 주목한 바 있다. 그러나 “가정사목” 의안의 저자들은 이런 식별 차원과 열린 친교 차원의 균형을 구체화하지 못한 채, 세계교회의 혼인법 비전의 절정을 담았다고 할 수 있는 이 교황 권고에 나타난 종교 간 대화나 교회일치 차원을 약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11) 『미국 가톨릭 대사전』(www.newadvent.org)의 “mixed marriage” 참조.

 

12) 홍기선, 앞의 글, 43-44면.

 

13) 필자 역시 최근의 한 연구에서 관면혼이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는 1960년대에 비하여 그 비율이 거의 두 배 이상 증가하여 60퍼센트 대에 이르고 있다는 분석을 그대로 인용하면서, 이것은 1960년대의 성사혼 대 관면혼 비율이 역전되었다는 것을 말한다고 진술한 바 있다. 한국그리스도사상연구소가 “200주년 기념 사목회의 의안 재조명”이라는 주제로 2004년 6월에 개최한 제21차 정기 학술회의에서 발표한 주제문인 “현대 한국 가톨릭 교회의 가정사목 비전” 참조. 하지만 현재의 관면혼 비율은 다른 그리스도교인과의 혼교파 혼인 사례를 거의 포함한 경우로서, 엄밀한 의미에서 관면혼이라고 할 수 없는 경우가 적지 않다. 필자 역시도 관면혼에 관하여 진술하면서 이 점을 일관되게 고려하지 못한 채, 허가혼 사례를 관면혼 사례에 포함시킴으로써 통계의 가치를 잃어버린 자료를 그대로 사용했던 것이다. 

 

14) 홍기선, 앞의 글, 55면 참조. 홍기선 신부는 이탈리아에서 1997년에 서로 다른 신앙 전통을 갖고 있는 신자들의 혼인과 관련하여 발표된 다른 교파 신자와의 혼인에 관한 지침서를 소개하면서 다음과 같은 네 원칙을 제시한 바 있다. 첫째, 자녀들의 교육에 대한 권리와 의무는 두 배우자 모두가 동등하게 갖고 있다. 둘째, 거짓 평화와 무관심은 피해야 하며 종교 교육의 문제를 아이들이 성장할 때까지 미루는 일은 없어야 한다. 셋째, 가톨릭 교회나 그 외의 종파(sic)에서 그들에게 어떤 형태의 압력을 가해서는 안 된다. 넷째, 부부의 합의에 따라 결정된 것은 온전히 존중되어야 한다. 

 

15) 구교회법 제1026조; 윤형중, 『상해 천주교 요리 하』, 가톨릭 출판사, 1995년(1959년 초판), 390면 참조.

 

16) 홍기선, 앞의 글, 46.48.55면 참조. 

 

17) 홍기선, 위의 글 가운데 특히 46-49면 참조.

 

18) 여기에는 앞서 언급한 1917년 교회법의 ‘mixtae religionis’가 일정하게 작용하였을 것으로 추론된다.

 

19) 정진석, 앞의 책, 258면; 김정남, “혼인”, 정의채 신부 화갑기념 논문집 『철학과 신학의 만남』, 1985년, 291면 참조. 하지만 이 개념으로는 가톨릭 신앙인과 다른 그리스도교파 신자의 결합으로서 혼인의 성격을 드러내는 데 일정한 한계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사목, 2004년 11월호, 황종렬(평신도 신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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