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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대 신부님의 고통의 성모 마리아 기념일 강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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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6-11-08 ㅣ No.309

2006년 9월 15일 금요일 고통의 성모 마리아 기념일


 

 예수의 십자가 밑에는 그 어머니와

이모와 글레오파의 아내 마리아와

막달라 여자 마리아가 서 있었다. (요한 19,25)

 

 Standing by the cross of Jesus were his mother
and his mother’s sister, Mary the wife of Clopas,
and Mary Magdalene.

 

 

 주님의 십자가를 기념하는 어제에 이어 오늘은 성모님의 고통을 기억하는 날입니다. 성모 마리아께서도 아드님께서 십자가의 고통을 겪으실 때 함께 아파하셨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아들이 아플 때 그 아픔은 어머니에게 더 크게 다가오는 법이기 때문입니다. 일찍이 시메온의 예언은 이를 예견한 것으로 이해되기도 합니다. “보십시오, 이 아기는 이스라엘에서 많은 사람을 쓰러지게도 하고 일어나게도 하며, 또 반대를 받는 표징이 되도록 정해졌습니다. 그리하여 당신의 영혼이 칼에 꿰찔리는 가운데 많은 사람의 마음속 생각이 드러날 것입니다”(루카 2,34-35).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돌아가시면서 고통 중에 계시는 어머니 마리아를 사랑하는 제자에게 맡기십니다. “이분이 네 어머니이시다”

 

☆☆☆

 

 고통을 겪는 아들을 바라보는 어머니의 심정이 어떻겠습니까? 아들이 아프면 어머니는 더 아픈 법입니다. 게다가 죄인으로 죽어 가는 아들 앞에 나선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아들을 믿었기 때문에 성모님께서는 아랑곳하지 않으셨습니다. 오직 사랑하는 아들의 아픔만 염려하셨을 뿐입니다. 그 어머니께서 이제 믿는 자들의 어머니가 되시어 우리를 염려하십니다. 그분께서 곳곳에서 발현하심은 우리를 염려하시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우리가 하늘의 어머님께 효도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어머님처럼 하느님 말씀에 기꺼이 응답하는 일이 아닐까요?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루카 1,38).

 

 

               † 성모칠고 - 하느님 은총과 자비의 물리적 순간


어제는 교회가 ‘성 십자가 현양 축일’을 지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어 죽으심으로써 십자가는 하늘과 땅을 이어주는 유일한 길이며, 나아가 부활과 생명, 구원과 해방의 상징이다. 그러나 그 영광스러운 십자가 안에는 말 못할 고통이 묻혀있다. 바로 십자가 아래에서 가슴이 찢어지는 고통으로 아들의 마지막을 지켜보는 한 여인의 고통이다.

그래서 교회는 오늘 성모 마리아께서 일생을 통하여 아들 예수로 말미암아 받으신 고통을 기억하면서 그 고통을 나누고자 한다. 아울러 구원의 역사 안에서 차지하는 성모님의 고통을 묵상하며, 그 고통이 그분만의 고통이 아니라 아직도 완성을 향하여 나아가고 있는 세상 구원을 위한 우리 모두의 고통임을 각오하려 한다. 그러므로 오늘 기념일이 어제의 ‘성 십자가 현양 축일’에 직접 연결되어 있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성모께서 겪으신 고통에 대한 구원사적 반성(反省)은 이미 중세기 이전부터 있어왔다. 중세기에 이르러 ‘성모님의 일곱 가지 고통’, 즉 성모칠고(聖母七苦)를 일부 지방교회에서 기념하기 시작하였고, 1600년대에는 수도회로 확산되었고, 1814년 비오 7세 교황이 전체교회에 보급시켰다.

성모님께서는 평생을 두고 아들로 말미암아 마음 쓰시고 속을 태우셨겠지만 그 가운데 일곱 가지 고통을 알아보자.

① 예언자 시므온의 예언: “이 아기는 수많은 이스라엘 백성을 넘어뜨리기도 하고 일으키기도 할 분이십니다. 이 아기는 많은 사람들의 반대를 받는 표적이 되어 당신의 마음은 예리한 칼에 찔리듯 아플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반대자들의 숨은 생각을 드러나게 할 것입니다.”(루가 2,34-35)

② 성가정의 이집트 피난: “주의 천사가 요셉의 꿈에 나타나 ‘헤로데가 아기를 찾아 죽이려 하니 어서 일어나 아가와 아기 어머니를 데리고 이집트로 피신하여 대가 알려 줄 때까지 거기에 있어라’ 하고 일러주었다. 요셉은 일어나 그 밤으로 아기와 아기 어머니를 데리고 이집트로 가서 헤로데가 죽을 때까지 거기에서 살았다.”(마태 2,13-15)

③ 성전에 남아있던 예수를 사흘 동안 찾아 헤맴: “사흘 만에 성전에서 예수를 찾아내고, ‘얘야, 왜 이렇게 우리를 애태우느냐? 너를 찾느라고 아버지와 내가 얼마나 고생했는지 모른다.’ 하고 말하였다.”(루가 2,41-52)

④ 골고타로 향한 예수님의 십자가 길에서 모자(母子) 서로 상봉하심: “예수께서는 마침내 그들의 손에 넘어가 몸소 십자가를 지시고 성밖을 나가 히브리말로 골고타라는 곳으로 향하셨다. 골고타라는 말은 해골산이라는 뜻이다.”(요한 19,16-17)

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음: “그들은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고 나서 주사위를 던져 예수의 옷을 나누어 가졌다.”(마태 27,35)

⑥ 예수님의 시신을 내려 품에 앉으심: “빌라도의 허락을 받아 (아리마태아 사람) 요셉은 예수의 시체를 내렸다.”(요한 19,38)

⑦ 예수님의 시신을 무덤에 모심: “그 시체를 내려다가 고운 베로 싸서 바위를 파 만든 무덤에 모셨다.”(루가 23,53)

성모칠고 중 ④~⑦에 관한 성서상의 정확한 기록은 없다. 공관복음서는 예수님의 마지막 십자가의 길을 동행하고,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는 장면을 멀리서나마 지켜보았던 여인들을 일일이 언급하고 있으나(마태 27,55-56; 마르 15,40-41; 루가 23,49), 성모님에 대한 언급은 없다. 성모님에 대한 유일한 성서상의 언급은 요한복음사가의 오늘 복음에 해당하는 대목이다.

오늘 복음에서와 같이 요한은 예수님의 십자가 밑에 있었던 어머니 마리아와 애제자(愛弟子) 요한을 특별히 부각시키고 있다. 복음서를 종합하여 보면 성모 마리아는 과월절을 시작하던 새벽시간에 예수께서 붙잡혔다는 소식을 도망쳐 나온 제자들로부터(마태 26,56) 전해 듣고 달려와, 줄곧 아들 예수 근처에 머물러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마리아는 아들의 십자가 길을 동행하였고 가능한 십자가 곁에 있었던 것이다.

말하기는 쉽지만, 마리아는 어떻게 이 모든 시간들을 이겨내었을까? “아들 수난 보는 성모, 맘을 에는 비통 중에 하염없이 우시네.”(부속가 4) 인간의 어떤 말도 표현도 성모님의 고통을 헤아릴 수 없을 것이다. 성모님께서 겪으신 고통이 어디 칠고(七苦)뿐이겠는가? 아들 예수님으로 말미암은 수많은 고통이 늘 그분과 함께 했을 것이다.

예수께서 말씀하신다. “어머니,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26절) 오늘 십자가상의 예수님은 당신이 어머니 마리아와 하나임을 확인하신다. 그리고 애제자에게도 말씀하신다. “이분이 네 어머니이시다.”(27절) 이렇게 성모님은 마음을 에는 고통 중에 십자가의 신비로 탄생되는 교회의 어머니요 우리 모두의 어머니로 우뚝 서신다. 그분은 일생을 고통으로, 그러나 포기나 좌절함이 없이 아들과 하느님의 뜻을 좇아 끝까지 인내와 겸손으로 구원사업에 협력하셨다. 그러기에 성모께서 받으신 고통과 아픔은 하느님 크신 은총과 자비의 물리적(物理的) 순간들이었을 것이다......◆

-박상대 신부 -

 

**우리들의 묵상 게시판에 노병규 형제님께서 올려주신 박상대 신부님의 강론 말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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