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6월 3일 (수)
(홍) 성 가롤로 르왕가와 동료 순교자들 기념일 하느님께서는 죽은 이들의 하느님이 아니라 산 이들의 하느님이시다.

성미술ㅣ교회건축

본당순례: 순교로 꽃피운 거제 지역의 뿌리 옥포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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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0-01-04 ㅣ No.695

[본당순례] 순교로 꽃피운 거제 지역의 뿌리 옥포성당

 

 

옥포성당의 긴 역사를 요약하면

 

거제의 옥포성당은 복합적인 역사를 가지고 있다. 옥포성당의 전신은 국산성당이다. 오랜 공소생활 끝에 1926년 5월 30일 진목정공소는 ‘국산성당’이란 이름을 가지고 거제 최초의 본당으로 승격되었다. 그 후 40년 동안 본당의 큰 역할을 해냈지만 소읍에 있던 국산성당은 점차 신자수가 줄어들고, 1966년에 장승포성당 관할 국산공소로 바뀌게 된다. 그러다 옥포에 대우조선이 들어서고 인구유입이 많아져 상황이 확연히 달라졌다. 1983년 7월 1일 옥포성당으로 다시 설립하고 초대주임에 배진구 신부가 부임했다.

 

이렇다보니, 옥포성당의 역사는 복합적이고 헷갈리는 면이 있다. 첫 국산성당으로 치면 설립 93년을 지나 100년을 바라보고 있다. 재건된 옥포성당으로 헤아리면 설립 36년이다. 본당의 구성원들도 사뭇 다르다. 국산의 줄기는 시골의 오순도순 순박한 고령의 신자들이 대부분이고, 옥포의 줄기는 대우조선을 따라 전국에서 찾아온 활기 띤 젊은 세대 층이 많은 편이다.

 

 

천주당 국산성전

 

김정도 프란치스코(74세) 형제와 정철봉 알로이시오(73세) 형제를 통해 오래된 역사를 듣는다. 옥포성당의 역사라기보다 국산성당과 국산공소의 역사라고 하는 것이 더 적절하겠다. 이곳에서 태어나 자랐고, 다른 곳으로 떠나가 살아 본 적이 없는 이들이다. 이들은 ‘천주당’에 대해 말할 때는 힘을 더 실었다. 천주당은 국산성당, 국산공소를 거치며 그들이 태어나고 성장한 청춘시절을 담당했던 성역이었다. 옥포성당 시대로 바뀌었지만, 늘 되돌아보게 된다. 다행히 2015년 현정근 안드레아 · 정순옥 율리아나 부부의 봉헌으로 그 자리에 성전이 건립되었고 안명옥 주교 주례로 헌당식을 올렸다. 매주 토요일 오전 10시에는 어김없이 이 성전에서 미사가 있어, 그들은 이 미사에 꼭 참례한다. 다른 많은 신자들도 천주당 미사에 참례한다. 천주당에서는 베트남 · 동티모르 이주노동자를 위한 주일미사도 거행되고 있으니 그 또한 역할을 톡톡히 하는 셈이다. 정철봉 형제는 어느 해 수해로 천주당 담장이 넘어가 사목회장과 다른 신자들이 땀범벅이 되도록 복구했던 때를 기억해 낸다. 지금 천주당은, 옛 건물의 들어가는 아치만 조금 남아있을 뿐 현대식 건물로 되었지만 그들의 마음에 들어앉은 건물은 어떤 것인지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천주당에는 거제천주교백주년기념비가 있다. 1880년 진목정에서 복자 윤봉문 요셉의 장인 진진보 요한이 윤봉문의 부친 윤사우 스타니슬라우로부터 교리를 배우고 세례를 받은 것에서부터 출발한다. 1980년 100주년 맞았지만, 옥포본당 설립 후 1985년에 기념비를 세우고 거제도 천주교회의 발상지이며 순교자의 유적지 국산성당의 역사를 기렸다.

 

 

집집마다 쌀을 모아 옥포성당 터를

 

정철봉 형제는 김영제 신부 때, 매주일 아침이 되면 신자들 가정마다 성미를 모으러 뛰어다녔던 기억을 벅차게 꺼냈다. 김정도 형제도 맞장구를 쳤다. 국산성당으로는 마지막 제7대 김영제 요한 신부가 언젠가는 큰 성당을 짓게 될 것이라며 쌀을 모으게 했다. 이렇게 애써 모은 돈이 마중물이 되어 지금 옥포성당이 있는 터를 사게 되었다. 당시에 대우조선은 생각지도 못한 때였는데 그 신부님이 대단했다고 존경심을 크게 드러냈다. 병환으로 돌아가시지만 않았다면 하며 그리움에 눈시울을 붉혔다.

 

이 두 사람은 공소에서도 청년회활동 활발하게 했다. 공을 차고 놀았으며, 봉사할 일에는 몸을 아끼지 않았다. 성탄에는 연극공연을 하여 신자들의 즐거움이 되었다. 그때는 할머니들이 직접 제병을 만들었는데, 복사하고 나면 제병 찍고 남은 쪼가리를 먹고 좋아했다. 명절을 맞춰 고향에 오는 청년들과 함께 회의하면서 회비를 걷고 담뱃값도 아껴 모은 돈으로 비새는 공소를 고치고 제대도 손질했던 일이 생생하고 그립다. 그때 그 시절을 생각하면 도시화되어 사라진 것들이 아쉽기만 하다. 어릴 때부터 몸담았던 땅의 기운이 아직도 그들을 지탱하고 있는 듯하다.

 

 

순교와 복음정신으로 살아있는 옥포성당

 

옥포성당 관할로 품고 있던 윤봉문 요셉 순교자 묘소는 2013년 4월에 지세포로 이장해 새롭게 성지가 조성되었지만, 순교정신이 깃든 땅과 거제 지역 복음의 발상지에 대한 옥포 신자들의 자부심은 여전히 탄탄하다.

 

이 정신으로 국산시절부터 이어진 터줏대감 신자들과 옥포 대우조선으로 이주한 신자들이 서로 조화를 이루려고 노력하고 있다. 연령이나 출신이나 생활방식으로 보아 신자들의 층이 다양하지만, 각자에게 주어진 소임을 묵묵히 수행하고 봉사하는 주님의 공동체를 일군다.

 

옥포성당은 지역 특성상 들고나는 인구가 많다. 뿐만 아니라 외국인과 여행객들도 많이 드나드는 성당이다. 국산성전에서의 미사에 참여하는 이주민만이 아니라 본당에도 다른 외국인들이 매주 여남은 명은 찾을 정도로 글로벌한 분위기이다. 신자들은 내부 공동체의 조화 뿐 아니라 언제나 열린 자세다. 특히 레지오 단원들은 솔선수범하여 쁘레시디움 2개씩 돌아가며 매주 선교를 나간다. 처음에는 성당 앞에서 차 한 잔 대접하자며 시작했던 것이 조금 더 조금 더 나가서 차 대접과 홍보활동을 실행하고 있다. 여기에 더 보태어 분기에 한 번씩은 자연보호활동도 하고 있다. 그래서 희망자가 있으면 새 교리반을 열다보니 예비자교리반이 8개가 있고 수시로 세례식을 치른다. 거제에 처음으로 복음의 씨가 뿌려졌던 터전에서 옥포성당 신자들은 신구조화를 이루며 이웃과 일치를 이루며 신앙을 다지고 있다.

 

[2020년 1월 5일 주님 공현 대축일 가톨릭마산 2-3면, 황광지 가타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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