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6월 17일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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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리신학ㅣ사회윤리

[사회] 복음으로 세상 보기: 눈에 보이지 않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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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9-03-05 ㅣ No.1631

[복음으로 세상 보기] 눈에 보이지 않는 사람들…

 

 

지난해 11월 종로 국일고시원에서 발생한 화재 참사로 7명이 숨지는 안타까운 사건이 있었습니다. 이번 참사로 고시원이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고시원들은 대부분 작은 방들이 다닥다닥 붙은 데다 성인이 두 팔을 뻗기도 어려울 만큼 통로도 좁고 미로처럼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창문도 없는 방들도 많이 있습니다. 이런 구조이기 때문에 화재에 매우 취약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번 사고의 사상자 18명은 대부분 일용직 노동자들이었습니다. 고시원이나 쪽방 등은 도시에 기반을 두고 생계를 유지해야 하는 저소득 빈민들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는 열악한 주거 공간입니다. 이번 화재 참사가 일어난 고시원도 저소득 장기 투숙자들의 인명 피해가 유난히 컸던 이유이기도 합니다.

 

이른바 ‘지옥고(지하방, 옥탑방, 고시원)’에 사는 청년, 일용직 노동자, 노인 등 주거 취약 계층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각 계층별 맞춤형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더불어 장기적인 차원에서 집값 안정화와 함께 집을 투기가 아닌 생활의 공간으로 보는 주거권 개념 확대도 필요하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습니다.

 

요즘은 집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방을 구한다고 합니다. 이제 집을 구할 능력이 없는 사람들은 집이 아니라 좁은 공간인 방을 구한다는 것입니다. 그 결과 집이 아닌 작은 공간인 일명 ‘지옥고’(지하, 옥탑, 고시원) 라고 불리는 곳에 사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는 현실입니다.

 

주택보급률이 100%가 넘어선지 몇 년이 지났지만 집이 부족하다고 합니다. 아파트값은 천정부지로 오르고 도시빈민들은 갈 곳이 없습니다. 왜 그럴까요?

 

 

국민의 50% 이상은 평생 자기 집하나 갖지 못해

 

국민의 50% 이상은 평생 자기 집하나 갖지 못하고 또 많은 사람들은 도저히 사람들이 살 수 없는 주거환경에서 비싼 월세를 내며 살아갑니다. 그런데 2018년도 국토부 통계를 보면 한사람이 임대주택 604채를 가진 사람도 있고 상위 10명이 4599채를 갖고 있습니다. 심지어 2살 아이도 임대사업자로 등록되어 있습니다. 심각한 불균형과 불평등이 있습니다.

 

2015년 6월22일 제정되어 같은 해 12월23일부터 시행된 ‘주거기본법’은 국민의 주거권을 ‘물리적·사회적 위험에서 벗어나 쾌적하고 안정적인 주거환경에서 인간다운 주거생활을 할 권리’로 규정했습니다. 이를 보장하기 위해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주거비 부담을 가능한 수준으로 유지하고, 임대주택 우선 공급 등을 통해 주거취약계층의 주거수준이 향상되도록 해야 한다고 법은 규정하고 있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최소한의 주거권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교회는 이런 주거문제에 대해서 어떤 입장일까요?

 

프란치스코 교황은 “모든 가정에는 집이 필요합니다.” “사람들이 머무는 곳에 빈자리가 없었기 때문에 갓 태어난 아기 예수가 짐승들의 먹이통에 뉘여 진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그의 가족들은 헤로데의 추격을 피해 집을 버리고 이집트로 피신해야만 했습니다. 오늘날에도 많은 가족들이 집이 없습니다. 집을 가져본 적이 없거나, 여러 가지 이유로 집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가족과 집은 같은 의미입니다! … 오늘날 우리는 거대한 현대적 도시에 살면서 우쭐거리고 심지어 헛된 삶을 살기도 합니다. 도시는 소수의 기쁨을 위해 편의시설과 복지시설을 제공하지만, 수많은 우리의 가난한 이웃들, 형제들, 아이들에게는 살 집조차 허락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눈에 보이지 않는 사람들’이라고 규정합니다.”

 

 

집은 상품처럼 사고 파는 투자의 대상이 아니라 사람이 사는 곳이어야

 

프란치스코 교황은 ‘복음의 기쁨’ 54항에서 무관심의 세계화를 개탄하시며 “알게 모르게 우리는 다른 이들의 고통스러운 절규 앞에서 함께 아파할 줄 모르고 다른 이들의 고통 앞에서도 눈물을 흘리지 않으며 그들을 도울 필요마저 느끼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이 모든 것이 마치 다른 누군가의 책임이지 우리 자신의 책임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잘 먹고 잘 살자는 문화가 우리를 마비시키고, 시장에 새 상품이 나오면 사고 싶어서 안달을 합니다. 반면에 기회의 박탈로 좌절된 모든 이의 삶은 우리 마음에 전혀 와 닿지 못하고 단순한 구경거리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교황은 세계적 위기는 “돈이라는 새로운 우상을 만들어서 인간이 최우선임을 부정하는 것이 세계적 위기”라고 강조합니다. 권력욕과 소유욕에 빠져서 “이익 중대를 목적으로 모든 것을 집어 삼키려 하는 이 체제 안에서, 절대 규칙이 되어 버린, 신격화된 시장의 이익 앞에서 자연환경처럼 취약한 모든 것은 무방비 상태에 놓여 있습니다.”(복음의 기쁨56항)라고 말합니다.

 

교황은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가난의 구조적 원인을 해결해야 할 필요성이 절실하다고 강조하십니다. “시장과 금융투기의 절대적 자율성을 거부하고 불평등의 구조적 원인들에 맞서 싸움으로써 가난한 이들의 문제가 근본적으로 해결되지 않는 한, 이 세상의 문제들, 또는 이와 관련된 문제들에 대한 어떠한 해결책도 얻지 못할 것입니다. 불평등은 사회 병폐의 뿌리입니다.”(202항)

 

교회의 가르침은 예수님께서 “안식일이 주인이 아니라 사람이 안식일의 주인이다”처럼 “돈이 주인이 아니라 사람이 돈의 주인이다”를 선포합니다. 따라서 돈이 우선이 아니라 사람이 우선이고 특히 가장 밑바닥의 사람들, 가난한 사람들이 최우선임을 확인합니다. 가난한 사람들을 중심에 두고 그들의 울부짖음에 귀 기울이고 문제를 해결할 때 우리 모두가 같이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 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집은 상품처럼 사고 파는 투자의 대상이 아니라 사람이 사는 곳이어야 합니다. 돈이 중심이 아니라 사람이 사는 곳, 가난한 사람들이 중심이 되는 주거 정책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하느님의 자녀들인 가난한 사람들도 안전하고 편안하게 살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합니다.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19년 3월호, 이영우 토마스 신부(서울대교구 봉천3동(선교)성당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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