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8월 22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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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법

생활 속의 교회법42: 만약 보속을 하지 않으면 죄를 용서받지 못하나요? 보속을 마친 다음에야 비로소 우리 죄가 용서받는 것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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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8-07-07 ㅣ No.399

생활 속의 교회법 (42) 만약 보속을 하지 않으면 죄를 용서받지 못하나요? 보속을 마친 다음에야 비로소 우리 죄가 용서받는 것인가요?

 

 

고해성사를 주다 보면 가끔 “지난 고해성사에서 받은 보속을 하지 못했는데, 지은 죄를 다시 고백해야 하나요?” 하고 물으시거나, 때로 “보속을 하지 못했는데 죄를 용서받지 못한 것인가요?” 하고 물어오는 경우가 있습니다.

 

우선 보속(補贖, satisfactio)의 개념에 대해 정확히 이해해야 할 것 같습니다. 보속은 라틴어로는 ‘충족하게 하는 것’, ‘만족하게 하는 것’이란 의미를 지니고 있고, 한자로는 무엇인가 찢어진 것을 깁거나 무너진 것을 보수한다는 의미의 보(補)와 속바치다, 재물을 바치고 죄책을 갚는다는 의미의 속(贖)자를 써서 넓은 의미로 잘못된 것을 바로잡고 죄를 지은 책임을 속량한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교회법적으로 보속(sacramental penance)은 고해 사제에 의하여 죄에 대한 책임으로 부과된 기도나 선행을 행하는 것으로 악행으로 손상된 정의를 회복하는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곧 보속이란 누군가의 마음을 아프게 하였거나 손해를 입혔을 경우 아프게 한 마음을 위로하고 피해를 입은 것을 보상해서 훼손된 정의를 바로 세우는 일입니다. 이처럼 죄(악행)로 인해 손상된 정의를 바로 세우는 책임(벌)은 따로 떼어 놓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손상된 정의를 바로 세우는 일은 해를 입은 사람이나 해를 입힌 사람이 자의적인 판단으로 결정하여 행하기보다 법적 절차에 따라야 합니다. 그래서 고해성사는 교회법적으로 내적법정의 성격을 지니고 있습니다. 교회법 제981조는 고해 사제는 참회자의 여건을 유의하여 죄의 질과 양에 따라 유익하고 적당한 보속을 부과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고 또한 보속은 참회자 본인이 몸소 이행하여야 할 의무가 있다고 규정하여 죄의 고백을 통하여 하느님과 교회와 다시 일치를 이룬 참회자가 손상된 정의를 회복시키는 보속을 할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관계의 단절을 회복하는 죄의 용서는 사죄경을 통해서 이미 이루어졌습니다. 그런데 만약 어떤 사람이 보속을 행하지 않게 되면 보속을 행하지 않은 죄로 인하여 다시 하느님과의 관계 단절 상태(죄)에 빠지게 됩니다. 곧 항아리를 깨트린 후에 죄를 뉘우치고 고백하여 죄의 용서를 받았지만, ‘새로 항아리를 마련해 놓으라.’는 아버지의 뜻을 지키지 않음으로써 다시 아버지와의 관계 단절 상태(죄의 상태)에 놓이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보속을 하지 않게 되면 보속을 하지 않은 것에 대해 고해성사를 보아야만 합니다. 이때 이전의 죄를 다시 고백할 필요는 없고 보속을 행하지 않은 것만 고백하면 됩니다.

 

[2018년 7월 8일 연중 제14주일 가톨릭제주 4면, 황태종 요셉 신부(제주교구 사법 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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