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16일 (화)
(백) 부활 제3주간 화요일 하늘에서 너희에게 참된 빵을 내려 주시는 분은 모세가 아니라 내 아버지시다.

세계교회ㅣ기타

성화와 한의학: 티치아노의 성화와 죽겠네 증후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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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8-04-23 ㅣ No.504

[성화와 한의학] 티치아노의 성화와 ‘죽겠네 증후군’

 

 

부활 성화 가운데 승리의 깃발을 든 예수님을 그린 그림이 여럿 있다. 그 가운데 15세기 이탈리아 화가인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의 작품이 널리 알려져 있다.

 

 

승리의 깃발과 ‘놀리 메 탄게레’

 

여명의 하늘을 배경으로 오상의 핏자국이 선명한 예수님께서 관 위로 왼발을 딛고 모습을 드러내시는 그림이다. 한 손에는 승리의 깃발을 들고 계신다. 왼쪽 배경에는 앙상한 나무가, 오른쪽 배경에는 잎이 무성한 나무가 그려져 있다. 겨울과 봄, 죽음과 생명의 대비다. 부활 뒤 미래의 희망찬 약속을 표현한 것이다.

 

예수님께서 하늘로 오르시는 모습을 그린 것도 있다. 조반니 벨리니의 작품이 유명하다. 아마포를 휘날리며 하늘로 오르시는 예수님과 이를 보고 놀라는 두 병사,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줄 모르고 무덤을 찾아오는 세 여인을 삼각 구도로 그린 작품이다. 놀랍도록 감동적이다.

 

부활 성화 가운데 백미는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마리아 막달레나에게 나타나신 것을 그린 ‘놀리 메 탄게레’(Noli Me Tangere)란 작품일 것이다. 이것을 주제로 한 작품도 여럿 있는데 그 가운데 알브레히트 뒤러의 목판화를 살펴본다.

 

예수님께서 삽을 메시고, 다른 한 손은 마리아의 이마를 향해 뻗고 계신다. 예수님께서 삽을 메고 계신 것을 표현한 이유는 마리아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처음 뵈었을 때 정원지기로 생각하였기(요한 20,15 참조) 때문이다. 또 예수님의 손이 마리아의 이마에 닿아 있는데, 마리아의 유골 가운데 예수님께서 손대신 부분만 썩지 않았다는 전승도 있다.

 

안토니오 다 코레조의 그림에서 예수님께서는 무릎을 꿇은 마리아를 바라보신다. 오른손으로는 그녀가 가까이 오지 못하도록 손으로 막으시는 듯하고, 왼손을 들고 검지를 펴시어 하늘을 가리키신다. “내가 아직 아버지께 올라가지 않았으니 나를 더 이상 붙들지 마라.”(요한 20,17)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그린 것이다.

 

‘나를 붙들지 마라.’가 ‘놀리 메 탄게레’이다. 그런 까닭에 예수님의 몸이 마리아를 떠나려는 듯 뒤틀려 있다. ‘나를 붙들지 마라.’라는 뜻을 강조한 표현이다.

 

 

성스러움과 속됨

 

이제부터 베첼리오 티치아노의 그림을 보기로 하자.

 

티치아노의 그림은 여느 ‘놀리 메 탄게레’ 작품과 달리 예수님의 몸이 마리아를 향해 있다. 아마포를 망토처럼 목에 두르시고 아랫도리는 기저귀식의 요의(loin-cloth)만 걸치셨다. 정원지기처럼 괭이를 드신 모습에는 젊음이 넘쳐흐르신다.

 

마리아에게도 흘러넘치는 뭔가가 있다. 그녀는 주름진 풍성한 흰옷에 진붉은 치마를 받쳐 입고 있다. 화가 티치아노가 활약하던 시절 베네치아의 고급 창녀 옷차림이라고 한다. 금발을 늘어뜨리고 손을 뻗어 예수님의 옷자락을 잡을 듯, 기듯이 다가가는 그녀. 화가는 이 마리아 막달레나를 ‘행실이 좋지 못한 여자’로 표현한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성경에서 “일곱 마귀가 떨어져 나간 막달레나”라고 하는 마리아(루카 8,2), 그녀는 정말 행실이 나쁜 여자였을까? 예수님께서 복음을 전하러 다니실 때 함께한 여자다. 예수님의 임종과 장례도 지켜보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가장 먼저 뵙고 하느님을 증언하였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뒤에는 프로방스로 건너가 그곳 동굴에서 30년 동안 참회의 고행을 행했다는 전승도 있다. 이렇게 성스러운 여자였건만 속된 여자로 잘못 알려졌다.

 

앞에서 보았던 조반니 벨리니의 작품을 다시 보자. 이 그림에는 예수님을 향해 오르막길을 달리는 토끼와 마른 나뭇가지에 앉은 사다새가 그려져 있다. 토끼는 ‘구원에 대한 열망’을, 사다새는 ‘십자가의 피로써 인간을 구원하는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사다새는 자신의 옆구리를 스스로 쪼아 그 상처에서 나온 피로 죽은 새끼 새를 살린다는 전설이 있다.

 

다시 티치아노의 그림으로 돌아가 보자. 예수님 뒤로 떡갈나무가 있다. 왼쪽 언덕 위의 집에서 개와 사람이 내려오고, 오른쪽에 양떼가 보인다. 떡갈나무는 ‘강한 신앙심’의 상징이며, 좌우 원경은 각각 속된 세속과 성스러운 세계를 표현한 것이다.

 

 

죽겠네 증후군

 

사람들은 ‘죽겠네.’라는 말을 쉽게 한다. ‘좋아 죽겠네, 화나 죽겠네, 배고파 죽겠네, 슬퍼 죽겠네, 무서워 죽겠네, 놀라 죽겠네….’ 이렇게 죽을 듯이 감정이 북받치어 극도에 이르면 실제로 죽을 수도 있는데 말이다.

 

물고기가 물속에 사는 것처럼 사람은 ‘기’ 속에 산다. 물고기가 물을 떠나 살지 못하듯 사람도 ‘기’가 빠지면 살기 어렵다. 설령 죽지 않더라도 여러 가지 병이 생긴다. 통증도 온다. 때로 목구멍을 뭔가가 막는 것 같은데 뱉으려고 해도 나오지 않고, 삼키려고 해도 넘어가지 않는다. 또 속이 그득하면서 음식을 먹지 못하거나 숨이 몹시 차게 되며, 명치 밑과 배에 덩어리가 생겨서 숨이 끊어질 듯 아프기도 하다.

 

한편, 제 성질에 제가 이기지 못하거나 제가 뀐 방귀에 스스로 놀라 까무러치는 경우도 있다. ‘이를 악문다.’ ‘말도 안 나온다.’ ‘맥이 안 잡힐 만큼 가라앉고, 몸도 싸늘해진다.’와 같은 경우를 ‘기에 적중’된 것이라 하여 ‘중기’라고 한다. 이런 모든 증상을 개인적으로 ‘죽겠네 증후군’이라 이름 붙이고 싶다.

 

큰 지진이 일어나면서 하늘에서 내려온 주님의 천사가 예수님께서 묻히신 무덤으로 다가가 무덤을 막고 있는 돌을 옆으로 굴리고서는 그 위에 앉는데, “무덤을 경비하던 자들은 천사를 보고 두려워 떨다가 까무러쳤다.”(마태 28,4)라고 한 것도 ‘죽겠네 증후군’에 속한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본 뒤 놀라고 두려워하여 까무러치는 성화 속 병사들도 마찬가지다.

 

* 신재용 프란치스코 - 한의사. 해성한의원 원장으로, 의료 봉사 단체 ‘동의난달’ 이사장도 맡고 있다. 문화방송 라디오 ‘라디오 동의보감’을 5년 동안 진행하였고, 「TV 동의보감」, 「알기 쉬운 한의학」, 「성경과 의학의 만남」 등 한의학을 알기 쉽게 풀이한 책을 여러 권 냈다.

 

[경향잡지, 2018년 4월호, 신재용 프란치스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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