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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 별별 이야기: 신비체험 믿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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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0-09-22 ㅣ No.1017

[박현민 신부의 별별 이야기] (41) 신비체험 믿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상)

 

 

세례받은 지 몇 년 되지 않은 가타리나 자매가 성령 체험과 관련해서 궁금한 점이 있다고 메일을 보내왔다. 자매는 세례받은 지 얼마 안 되었지만, 워낙 작은 성당이다 보니 교우들과 금방 친해질 수 있어서 처음엔 정말 행복했다고 했다. 하지만 그 행복도 잠시뿐, 어느새 사람들과의 경계가 명확하지 않아 서로의 사생활이 너무 잘 드러나는 안 좋은 면도 경험하게 되었다.

 

결국, 가타리나 자매는 자신을 시기하고 질투하는 여인들로 인해 큰 상처를 받게 되었고 세례받은 지 1년도 채 안 되어 성당에 나가지 않게 되었다. 하지만 하느님을 만나 새 삶을 살게 되었다고 굳게 믿고 있던 터라 개인적으로는 신앙생활을 놓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집에서 혼자 기도하고 성경을 읽으며 참신앙인으로 살려고 노력했다.

 

그러던 어느 날 가타리나 자매는 성령이 자신에게 내려오시는 영광스러운 체험을 했다고 고백했다. 기도할 때 켜놓은 촛불 속에서 성령을 만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자매는 이 체험이 무엇인지를 알고 싶어 했고, 모든 천주교 신자들이 비슷한 성령 체험을 하는지도 궁금해했다. 자신은 하느님을 사랑하고 하느님도 자신을 사랑하신다는 것을 잘 아는데 성령 체험 이후 하느님의 마음을 도무지 모르겠다고 의문을 제기했다.

 

사실 가타리나 자매는 이 경험이 너무 특별해서 본당 신부님을 찾아가 자신의 체험에 관해 말씀드렸다. 그러자 본당 신부님은 누구에게도 이 체험에 관해 말하지 말라고 당부하셨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 물었으나 신부님은 무조건 순명하라고 하시며 함구령만 내리실 뿐이었다. 신부님께서는 왜 자신의 경험을 타인에게 발설하지 말라는 말씀을 해주셨는지, 그리고 정말 이 신비한 체험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자매는 궁금한 점이 너무 많았다. 하지만 그 내용이 무엇이었는지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은 채 추상적인 질문으로만 끝을 맺었다.

 

따라서 본당 신부님이 비밀에 부치라는 신비한 성령 체험이 도대체 무엇인지에 관해서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이 글을 읽다 보니 그동안 상담을 통해 만났던 수많은 형제자매 중 특별히 자신의 영적 체험을 나누어주셨던 분들이 머릿속에 스쳐 지나갔다. 이분들은 하나같이 보통 사람들이 들으면 도통 이해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거나 조현병 증상이 있는 것이 아닌가 하고 의심할 수 있는 경험들을 나누어 주셨던 분들이다.

 

그중 몇 분의 사례를 들어보면 다음과 같다. 안나 자매는 위에서 소개한 가타리나 자매처럼 촛불을 켜고 기도를 할 때 성모님께서 촛농이 녹아 흐르는 모양 안에 나타나시면서 자신에게 영적 메시지를 전해주신다고 했다. 그런데 안나 자매는 이 영적 메시지를 주변 사람들에게 전해주어 성모님의 뜻을 사람들에게 알리라는 성모님의 계시를 받게 되었다. 지인들에게 자신의 체험을 널리 알리는 일을 하느님의 소명으로 받아들이게 된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마침내 자신이 속한 레지오 마리애 단원들에게 먼저 자신의 영적 체험을 공개한 안나 자매는 성모님의 메시지를 전하는 사도의 삶을 시작하였다. 그러자 몇몇 단원들은 발현한 성모님의 모습을 직접 눈으로 보고 싶어 했고, 안나 자매는 촛농이 흘러내려 변한 성모님의 모습을 사진을 찍어 보여주었다.

 

그런데 사람들의 반응은 극명하게 둘로 나뉘었다. 한편에서는 흘러내린 촛농의 모습 안에서 성모님을 볼 수 없다고 하였고, 또 한편에서는 정말 성모님이 나타나셨다고 흥분을 감추지 않았던 것이다. 이에 안나 자매는 믿음이 없으면 성모님이 보이지 않는 법이라면서 의심을 하고 접근하는 자매들에게 영적인 가르침을 주었다. 결국, 안나 자매가 속한 레지오 팀은 서로 의가 갈라져 해체되고 말았다. [가톨릭평화신문, 2020년 9월 20일, 박현민 신부(영성심리학자, 성필립보생태마을 부관장)]

 

 

[박현민 신부의 별별 이야기] (42) 신비체험 믿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중)

 

 

바오로 형제는 어느 날 갑자기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굉음을 듣고 잠에서 깨어났는데 심장이 터질듯하게 고동을 치며 자신의 머리가 열리는 체험을 하게 되었다. 하늘에서 무엇인가가 자신의 머리 위쪽으로 쏟아져 내려오는데 뜨거운 물인지 불인지 도무지 모를 그 무엇이 몸 안으로 스며오기 시작했다. 온몸은 불덩이처럼 뜨거워졌고 심장은 터질 듯이 요동을 쳤지만, 전혀 고통스럽지 않았다. 그러다 갑자기 눈물이 흘러내리면서 대성통곡을 했다. 슬프거나 괴롭지도 않았지만, 폭포수 같은 눈물과 함께 터져 나온 통곡은 무엇인가 자신의 몸 안에서 그동안 쌓여왔던 쓰레기들을 모두 쓸어내는 듯한 느낌이었다.

 

바오로 형제는 형편이 넉넉하지 않지만 자기 일을 하면서도 틈을 내어 봉사의 삶을 살고 있다. 자신은 그날 밤의 일을 성령께서 임하신 체험으로 확신하는데, 그 이유는 그날 이후 자신에게 사람의 과거와 미래가 보이는 능력과 마음을 읽어내는 능력이 생겼기 때문이었다.

 

예를 들면, 어느 날 공원을 걷는데 맞은 편에서 걸어오는 낯선 남자의 과거와 미래가 보이기 시작했고, 현재의 생각과 감정이 어떤 것인지를 직감하게 되었다. 바오로 형제는 자신을 지나쳐 가는 그 남자에게 과거에 상처를 준 사람을 용서하고 지금 잘 견디어 내면 미래에 어떤 좋은 일이 생길 것이라는 말을 해주었다. 낯선 남자는 깜짝 놀라며 자신을 어떻게 아느냐고 물었지만, 바오로 형제는 자신도 모르게 튀어나온 이 말에 대해서 어떻게 설명할 방법이 없었다. 그 남자는 실제로 과거의 상처로 인해 자살을 생각하고 있었는데 바오로 형제와의 대화를 통해 다시 살아야 할 희망을 가지게 되었다.

 

이처럼 이성적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신비한 체험을 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을까? 실제로 사목자들은 이해할 수 없는 영적 세계를 체험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어렵지 않게 접하게 된다. 그러나 그 모든 경험이 모두 하느님 체험 혹은 성령 체험으로 인정받을 수는 없다. 신비 체험은 하느님을 거치지 않고서도 인간의 초월적 본성을 통해서 얼마든지 가능한 체험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세상에는 신과 종교를 믿지 않으면서도 영적이며 초월적인 체험을 하는 사람들이 수없이 존재한다. 심지어 신을 믿지 않았던 사람들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임사 체험을 통해서도 어떤 이는 인격적 하느님을 만났다고 하고, 어떤 이는 초월적인 신적 실재를 만났다고 표현한다. 이쯤 되고 보면 말하는 사람도 자신의 체험을 어떻게 전해야 할지 막막할 것이고, 그 말을 듣는 사람도 도대체 어떤 체험을 말하려 하는 것인지 도통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따라서 종교적ㆍ영적 체험들은 오직 개인적인 방식으로 일어나며 개인에게 의미를 제공하기 때문에 타인에게 전해주기도 어렵고 타인에게 전해줄 필요도 없음을 인정해야 한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우리는 개인이 체험한 종교적ㆍ영적 혹은 신비한 체험은 철저하게 개인적 차원에서 의미 있는 사건으로 인정해 주면 아무 문제가 없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문제는 그 개인적 체험을 공론화하거나 심지어 그 메시지를 타인이나 공동체에게 전파하려고 할 때 발생하게 된다. 이때는 개인적 체험에 대한 정신의학적인 문제는 없는지, 그리고 그 체험이 진정 하느님께로부터 온 것인지 아닌지에 대한 영적 식별의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가톨릭평화신문, 2020년 9월 27일, 박현민 신부(영성심리학자, 성필립보생태마을부관장)]

 

 

[박현민 신부의 별별 이야기] (43) 신비체험 믿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하)

 

 

인간은 누구나 신비스럽고 초자연적이며 영적인 체험을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인간은 근원적으로 영혼을 가진 영적 존재이기 때문이다. 과학자이며 신학자였던 떼이야르 드 샤르댕 신부는 “우리는 영성적 경험을 하는 인간 존재가 아니라, 인간적 경험을 하는 영적 존재”라고 했다. 이때 인간의 영성적 경험은 종교를 가진 사람들에게는 종교적 형상을 통해 표현되지만(예, 하느님 체험, 성령 체험), 종교가 없는 사람들에게는 성스러운 체험 혹은 신비 체험 등으로 표현될 수 있다. 따라서 인간이 경험하고 있는 모든 영성적 혹은 초월적 체험들은 우리가 믿고 있는 하느님의 계시나 현시로만 해석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 말은 메일을 보낸 카타리나 자매의 궁금증, 즉 본당 사제가 왜 자신의 체험을 타인에게 누설하지 말라는 함구령을 내리셨는지에 대한 답변이 될 수 있다. 신비 체험은 자기 자신에게 의미를 주는 체험으로 그쳐야 한다. 만일 이 체험을 공유하고 싶다면 그 내용을 순수히 자신의 개인적 체험으로만 한정하고 그 사실을 객관화하거나 일반화하여 타인에게 영향을 미치려고 시도해서는 안 된다.

 

가톨릭의 가르침에 의하면, 하느님의 모든 계시 내용은 이미 공적으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되었다. 따라서 가장 신뢰할 수 있는 하느님의 뜻은 예수 그리스도 자신과 그분의 성경 말씀 안에서만 찾을 수 있다. 사적인 영적 체험은 자신 안에서 성경 말씀이 인격적으로 다가올 수 있도록 도와주는 지극히 개인적인 의미만을 지닌다. 개인의 신비 체험 의미가 자신에게만 한정되어야지 타인에게로 확장되어서는 안 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렇다고 이 말이 개인을 통해 신적인 메시지가 공적으로 전해질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는 것은 아니다. 교회에서는 신앙인들의 영적인 유익을 위해 때로는 사적 계시를 믿을 수 있는 메시지로 특별히 인정해 주기도 한다. 파티마나 루르드의 성모님 메시지가 바로 그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메시지를 공적인 메시지로 인정하는 것은 아니다. 즉, 이 메시지를 믿지 않는다고 해서 교회는 그 사람을 교회의 가르침을 벗어난 사람으로 이해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교회가 공인한 사적 계시는 “믿어도 좋고, 믿을 수도 있다”는 의미이지 “반드시 믿어야 하는 가르침(믿을 교리)”은 아니다. 따라서 교회의 엄격한 인준 과정을 거치지 않은 주변의 수많은 사적 계시들은 그 내용의 진위와 상관없이 순수히 개인적 의미로만 한정되어야 한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다음과 같은 통찰을 얻게 된다. 첫째, 바오로 형제가 경험한 신비 체험들은 신을 믿는 사람은 물론이요 인간이면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초월적 체험이며 순전히 개인적인 차원에서만 의미가 있다. 따라서 믿어야 할지 혹은 믿지 말아야 할지에 대한 신앙적 질문은 의미가 없다. 둘째, 안나 자매와 같이 개인적인 신비체험이 개인적 의미를 넘어 공동체에 영향을 미치려는 시도는 용납될 수 없으며, 대부분 정신적 문제(환상이나 망상, 혹은 변상증-pareidolia)의 결과이거나 혹은 심리적 문제(타인을 조정하거나 통제하거나 타인으로부터 인정을 받고 싶은 욕구)에 의한 경우를 의심해야 한다. 셋째,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인적 신비체험에 대한 분별의 은사를 얻고 싶다면, 성령의 도우심을 청하면서 그 체험이 개인과 공동체에 미치는 영향력, 즉 그 열매를 보고 판단을 할 수 있다. 즉, 개인의 현실생활에 문제가 발생하거나 공동체의 분열과 갈등을 일으키는 신비체험은 하느님 혹은 성령체험으로 인정할 수 없을 것이다. [가톨릭평화신문, 2020년 10월 11일, 박현민 신부(영성심리학자, 성필립보생태마을부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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