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8월 4일 (화)
(백) 성 요한 마리아 비안네 사제 기념일 하늘의 내 아버지께서 심지 않으신 초목은 모두 뽑힐 것이다.

레지오ㅣ성모신심

레지오와 마음읽기: 자신을 돌아보는 그런 신중함(메타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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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0-05-03 ㅣ No.689

[레지오와 마음읽기] 자신을 돌아보는 그런 신중함(메타인지)

 

 

한 때 청소년들 사이에서 “현자(賢者)타임”이라는 단어가 유행했다. 이는 어떤 것에 대한 욕구를 충족한 직후에 찾아오는 무념무상이나 허무함 등의 감정이 드는 순간을 일컫는 말로, 어떤 일을 열심히 하다가 갑자기 회의가 드는 시간을 말한다. 청소년들의 경우는 할 일을 젖혀두고 게임을 몇 시간씩 하다가 ‘엇 지금 내가 뭐하는 거지?’라며 갑자기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되는 시간에 주로 쓴다고 한다. 그러니 이 단어는 자신에게서 벗어나 자신을 생각하게 되는 이 순간이, 마치 모든 욕망으로 부터 벗어난 현자들과 비슷하다는 뜻에서 생긴 듯하다.

 

모 방송국에서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학습 성과와 기억력의 관계를 알아보는 실험을 진행했다. 실험은 두 집단을 대상으로 했는데 한 집단은 수능 0.1%내의 학생들, 소위 말하는 공부 잘하는 학생들이었고 또 하나는 일반 학생들 집단이었다. 실험은 두 가지 형식으로 진행되었다.

 

첫 번째 실험은 서로 연관성이 없는 단어 25개를 각 단어당 3초씩 듣고 3분 동안 기억나는 단어를 모두 쓰게 하는 것으로, 기억력이 좋은 아이들에게 유리한 문제였다. 당연히 공부를 잘하는 아이들이 많은 단어를 썼을 거라고 추정되었지만 결과는 의외였다. 두 집단의 아이들이 기억한 단어의 수는 평균 8개 내외로 서로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 학습 성과는 기억력과는 별반 상관이 없다는 추정을 가능하게 했다.

 

두 번째 실험은 첫 번째 실험처럼 단어를 제시하여 암기를 하게 한 뒤, 그것을 쓰기 전에 자신이 몇 개의 단어를 쓸 수 있는지에 관하여 예상하게 했다. 이는 기억력보다는 자신의 능력에 대한 자기 평가라고 할 수 있는데, 이 결과 또한 주목할 만하다. 일반 학생들 중에는 자신이 몇 개를 기억할지 제대로 맞춘 학생이 한 명도 없었지만, 0.1퍼센트의 학생들은 한 명을 제외하고 모두 자신이 몇 개의 단어를 쓸 수 있는지 정확하게 답했다. 결국 두 집단의 차이는 기억력이 아니라 자기가 얼마큼 할 수 있는지를 볼 수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라고 할 수 있었다.

 

 

인지하고 있는 자신을 인지하는 능력이 ‘메타인지’

 

이렇게 자신이 무엇을 알고 모르는 지부터 자신이 하는 행동이 어떠한 결과를 낼 것인지, 그리고 그런 행동을 하는 자신의 마음 속 생각이나 감정, 욕구 등이 어떤지 등 자신에 대한 전반적인 인지를 뜻하는 용어가 있다. 바로 ‘메타인지’이다. 이는 1970년대 심리학자 존 플라벨(J. H. Flavell)에 의해 만들어진 것으로, ‘넘어서’ 혹은 ‘~에 대하여’라는 뜻의 메타에 ‘어떤 사실을 안다’는 뜻의 인지를 합한 것으로 ‘인지하고 있는 자신을 인지하는 능력’을 뜻한다. 성적이 좋은 학생들은 일반 학생들보다 이런 메타인지가 뛰어나서 자신이 모르는 부분을 중점적으로 공부할 수 있었고, 그 결과가 높은 학습 성과로 나타났던 것이다.

 

꾸리아 단장인 S자매는 자신의 모습을 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배우게 된 계기가 있다고 한다. 그녀가 Pr. 단장 6년을 하고, 후임으로 능력 있어 보이는 입단 1년 차의 단원을 새 단장으로 추천했는데 그 이후로 이상하게 그녀와 부딪히는 일이 잦았고 자연히 주회 분위기 또한 단원들의 말수도 줄어드는 등 경직되는 느낌을 보였다. 그러던 어느 날 둘을 지켜보던 선배단원이 S자매가 새 단장을 미워하는 것 같다고 우정 어린 충고를 했다. S자매는 말한다.

 

“저는 그 순간 깜짝 놀랐어요. 아무도 하지 않으려는 단장직을 순명한 그녀를 제가 미워할 리가 없었거든요. 다만 새 단장이 Pr. 운영을 잘못하여 분위기가 그렇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제가 새 단장의 입장이 되어 그동안 제가 한 말과 행동들을 곰곰이 돌아보니, 제가 그녀를 질투하고 있었더라고요. 예쁘고 활달하고 능력까지 있어서 단원들이 저보다 더 신뢰하고 따를까봐 불안하였던 거지요. 그런 제 감정을 저만 모르고 다른 단원들은 다 알았다는 것을 생각하니 얼마나 부끄럽던지⋯. 그 이후로 저 자신을 더 잘 알기 위해 저는 수시로 저에 대한 피드백을 받으려고 주변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해요. 오히려 저의 나쁜 점에 대해 이야기를 해줄 때 고맙게 받아들입니다. 몸에 좋은 약은 쓰기 마련이니까요.”

 

나는 나의 약점과 강점을 잘 알고 있는가? 나는 내가 느끼는 감정들을 단어로 표현할 수 있는가? 나에게 문제가 생겼을 때 내가 아닌 제 삼자의 시선으로 문제를 보는가? 나의 실수를 편하게 받아들이는가? 나에 대한 남들의 쓴 소리를 고마워하는가? 이 질문들에 고개를 끄덕인다면 나는 메타인지가 상당히 높은 편에 속한다. 내가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의 구별이 가능하고 어떤 일을 할 때 왜 해야 하는 지에 대한 이해가 깊은 사람이다.

 

하지만 만약 이 질문들에 그리 자신이 없다면 나는 지금 소위 말하는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의 모습으로 보이거나, 늘 남의 탓만을 하는 불평 많은 사람이나 자기중심적인 사람으로 보일 확률이 크다. 자신의 모습을 타인의 시선에서 보지 못하는 사람은 결국 자신의 모습을 객관화 하는 메타인지가 낮다는 뜻이고, 이 정도가 심할수록 주변의 사람들은 충고를 꺼리게 되고 나와는 적당한 심리적 거리를 유지하려 한다. 그리되면 참된 관계를 맺을 수 없다.

 

 

용기를 내어 나의 모습을 솔직하게 볼 필요 있어

 

단원인 내가 그런 모습이라면 “레지오 활동의 본질은 친밀한 관계를 이루는 것이다”(교본 434쪽)라는 말에 비추어 볼 때, 활동의 결과는 기대할 수 없다. 다행히 메타인지는 훈련에 의해 높아질 수 있다. 나의 생각이나 감정 등에 대한 질문을 나에게 해보거나 주변 사람, 특히 나를 잘 아는 사람들의 피드백을 자주 듣는 것이 도움이 된다. 뿐만 아니라 일기쓰기나 명상 등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을 규칙적으로 갖는 것도 좋은 방법들이다.

 

사실 우리의 약점이나 한계를 알게 되면 마음이 힘들 수 있다. 자신감이 꺾이고 자존감마저도 낮아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성서가 명확히 정의를 내리고 있는 신중함-끊임없이 자신을 돌아보는 그런 신중함-을 지녀야 한다.”(교황 비오 11세/ 교본 386쪽)고 하니 용기를 내어 나의 모습을 솔직하게 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리지외의 성녀 소화 데레사의 “우리 주님께서는 여러분이 자신의 약점을 깨닫도록 만들어 주심으로써 훨씬 더 많은 영혼들을 구원하는 계기를 마련해 주십니다.”(교본 427쪽)라는 말을 생각할 때 약점 많은 모습을 제대로 보는 것이 오히려 영성적 성장을 가져다 줄 수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하느님 앞에서 어떤 존재들일까? 아씨시의 성 프란치스코가 하느님 앞에서 자신을 ‘벌레’로 규정하였던 것처럼 우리 모두는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피조물에 불과한 보잘 것 없는 존재가 아닐까? 그러니 누가 잘나고 못났으며 누가 능력이 있고 없다는 것이 하느님 앞에서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오히려 “마리아께 의지하는 습관은 필연적으로 자기 자신의 보잘것없는 힘을 믿지 않게 한다.”(교본 54쪽)는 말을 기억하여 단원 생활로 성모님 품 안에서 살아 숨쉬기를 계속하는 것이 참 지혜일 것이다.

 

“레지오 단원이 성모님의 태도를 두루 살펴본다면 자신이 하느님 앞에 어떤 존재인가를 인정하고 솔직히 받아들이는 것만이 참된 겸손의 본질임을 알게 될 것이다.”(교본 51쪽)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20년 5월호, 신경숙 데레사(독서치료전문가, 행복디자인심리상담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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