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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교구 로사리오카리타스 우리누리공부방: 산동네 아이들의 꿈과 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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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9-08-17 ㅣ No.137

[세상에 열린 공동체] 부산교구 로사리오카리타스 ‘우리누리공부방’


산동네 아이들의 꿈과 희망

 

 

부산시 사하구 감천2동은 한국전쟁 당시 오갈 데 없는 피란민들이 산비탈에 판잣집을 짓고 살면서 형성된 부산의 대표적인 달동네다. 가파르고 좁은 골목을 따라 끝없이 이어지는 계단을 힘겹게 올라가면 다닥다닥 붙은 집들이 있는 가난한 동네. 이곳에 30여 년 동안 아이들이 마음 편히 쉬며 꿈과 희망을 키워 가는 우리누리공부방(이하 공부방)이 있다.

 

우리누리공부방이 감천동에 문을 연 것은 1988년 11월이다. 1980년대 후반 천주교사회운동협의회 활동가들은 빈민 지역 주민들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힘을 기를 수 있도록 그들의 삶 속으로 활동 영역을 넓혔다. 그 결과로 공부방과 주민 도서실 등이 꾸준히 설립되었고 주거 환경, 교육, 의료, 문화 등에서 열악한 감천2동에도 공부방이 문을 연 것이다.

 

5-8평짜리 단칸방에 살며, 공장이나 공사장에서 막노동을 하거나 파출부나 부업 등을 하면서 하루하루 생계를 이어가는 경제적으로 소외된 사람들 2만여 세대가 사는 전형적인 달동네. 부모들은 돈을 벌려고 아침 일찍 나가 저녁 늦게 들어오고, 아이들은 학교에서 돌아오면 딱히 갈 곳도 반겨 줄 사람도 없는 한 부모 가정이나 조손 가정이 많았다. 이런 열악한 상황에서 아이들에게 공부는 사치였고 가난은 대물림되었다.

 

산비탈 7평짜리 가정집에 꾸린 공부방은 처음에는 어려움이 많았다. 최수연 도미니카 원장과 실무자들은 낮에 파출부 일과 부업 등을 해 운영비를 벌고, 저녁에는 아이들을 보살폈다. 동네 사람들의 삶에 조금이라도 가까이 다가가고자 가정 방문을 통해 주민들이 필요로 하는 것을 했고, 주민 대상 프로그램도 꾸준히 진행했다. ‘이모’와 ‘삼촌’이라고 부르는 대학생 자원 교사와 후원자가 생기면서 공부방은 조금씩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다. 

 

 

산동네 사람들의 희망 공간

 

공부방이 생기면서 아이들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학교가 끝나도 갈 곳이 생겼다. 꿈이 싹트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게 되었다. 공부방은 즐겁고 행복한 놀이터였다. 따뜻한 밥이 있고 헌신적인 이모와 삼촌, 그리고 그들의 사랑과 관심이 있는 사랑의 보금자리였다.

 

홍보 전단을 붙이지 않아도 아이들이 날마다 공부방을 가득 채웠다. 30명 정원에 50명이 몰려올 때는 골목길에 돗자리와 신문지를 깔고 아이들을 가르쳤고, 외환 위기 때는 70명의 아이들을 돌보기도 했다. 13평으로 이사했지만 좁은 건 여전했다.

 

공부방에서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아이들이 건강한 정서를 갖고 자랄 수 있도록 노력했다. 아침을 거르는 아이들에게는 밤에 집으로 돌아갈 때 아침 도시락을 싸 보내기도 했다.

 

공부방은 가난하고 소외받은 주민들의 쉼터요 주민 센터 구실도 했다. 한글을 모르는 엄마들을 위한 글쓰기 교실, 아버지들을 위한 영어 교실, 노인들을 위해 수시로 무료 진료도 했다. 겨울이면 마을 잔치를 열어 지역 주민이 한데 어우러질 수 있는 기회도 만들었다.

 

“종교의 역할은 먼 데 있는 것이 아닌 바로 내 이웃 안에 있는 것이라고 확신해요. 가톨릭의 정체성은 가난한 이웃을 위해 작은 것이라도 실천하는 것입니다.”

 

최수연 씨의 말처럼 우리누리공부방은 지역 사회 안에서 ‘가난한 이들에 대한 우선적 선택’이라는 교회의 사명을 구체적으로 실천할 수 있는 적절한 도구로서 그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사소하고 조용한 기적들

 

공부방 덕에 동네 사람들은 아이를 맡기고 마음 놓고 일을 나갈 수 있었다고 고마워한다.

 

“우리 아이들에게 관심과 사랑을 아낌없이 베풀어 준 따뜻한 공간입니다.” “갑갑한 동네에서 잠시 동안이라도 해맑게 웃으며 마음 편히 쉴 수 있는 공간이 되어 주었어요.” “선생님들과의 만남을 통해 성장하고 사는 법을 배워 가는 공간이었습니다.”

 

공부방에서 봉사한 한 이모는 공부방의 경험은 삶의 소중한 자산이 되었다고 말한다. “우리누리공부방에서 사랑을 배우고 사람을 배웠습니다.”

 

“아이들에게 무언가를 줄 수 있다는 생각에 자원 봉사를 시작했지만 아이들에게 얻은 게 더 많아요.”라고 고백하는 삼촌도 있다.

 

30대에 들어와 지금까지 자리를 지키며 ‘이모’, ‘큰 이모’를 거쳐 이젠 ‘할매’라고 불리는 최수연 씨는 공부방을 통해 성장한 아이들이 사회 곳곳에서 의미있는 일을 하며 살고 있다고 전했다.

 

그 가운데 가정 폭력을 피해 굴뚝에서 쪽잠을 자던 한 아이의 이야기는 공부방의 존재 이유를 실감하게 한다. 그는 공부방의 칭찬과 도움으로 공부를 해 박사 학위를 받았고, 취직해 받은 첫 월급봉투를 들고 찾아와 모두를 감동시켰다. 이모의 사랑과 공부방의 고마움을 잊지 않은 것이다. 그리고 지금도 다달이 후원금을 보내는 든든한 후원자다. 후원은 물론 올곧게 자라 사랑을 나누려고 찾아와 삼촌과 이모가 되어 아이들과 함께하는 졸업생도 많다.

 

최수연 씨는 그것을 ‘사소하고 조용한 기적들’이라며, 「산동네 공부방, 그 사소하고 조용한 기적」이란 책에 모두 털어놓았다. 10년 전 나온 이 책에는 아이들과 부대끼며 울고 웃었던 공부방 20년의 삶이 오롯이 담겼다.

 

 

넉넉한 마음, 더불어 사는

 

우리누리공부방이 감천동 산동네에 자리 잡은 지 30년이 지났다. 이제는 동네에 굳건하게 뿌리 내린 아름드리나무로 자라 아이들과 주민들에게 아낌없이 주는 나무요 넉넉한 가슴으로 안아 주는 부모 같은 존재가 되었다.

 

그사이 아동복지법 개정으로 공부방은 ‘지역 아동 센터’가 되었다. ‘시스템’도 갖춰졌고 운영비도 일부 지원받는다. 공간도 반듯하고 넓어졌다. 정원은 29명, 다문화, 한 부모, 조손 가정 등의 초등학생 15명과 중학생 13명이 공부방을 이용한다. 오후 3시부터 밤 9시 30분까지 공부방은 돌봄이 필요한 아이들의 보호자가 된다.

 

여름에는 자연 속에서 캠프를 열고, 11월이면 공부방 아이들이 무대를 꾸며 준비하는 ‘파란 아이들 누리의 노래’ 공연을 한다. 공부방 가족 간 소식을 나누는 소식지도 발행한다. 정서적 어려움을 겪는 아동과 청소년들의 밝은 앞날을 위해 힘을 모았던 뜻있는 사람들은 여전히 도움의 손길을 보태고 있다.

 

요즘 감천동은 부산의 대표적인 관광지 가운데 하나다. 2009년부터 낡고 허름한 마을에 색을 칠하고 다양한 조형물을 세워 감천동 문화마을이 되었다. 겉모습은 알록달록한 지중해의 집을 연상하게 하지만, 지역 사람들의 형편은 그다지 나아지지 않았다. 공부방이 필요한 이유요 이모, 삼촌, 할매의 존재 이유인 돌봄이 필요한 아이가 많다.

 

그래서 우리누리공부방은 오늘도 그 자리에서 문을 열고 아이들을 기다린다. 아이들의 가슴 속에 따스한 작은 등불이 되어 아이들의 얼굴에 환한 웃음을 번지게 하고자….

 

“언제까진지는 모르지만, 있을 수 있을 때까지 이 자리에 있겠습니다.”

 

문의 : ☎051-291-9020 부산 우리누리공부방(www.urinuri.kr)

 

[경향잡지, 2019년 8월호, 글 · 사진 김민수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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