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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사목] 분단 70년, 이 땅의 변화: 북한사회 어떻게 변화하고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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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5-06-17 ㅣ No.836

[경향 돋보기 - 분단 70년, 이 땅의 변화] 북한사회 어떻게 변화하고 있나



‘북한은 변했는가?’라는 물음은 늘 반복되면서도 동시에 논란의 출발점이다. 그러나 인류가 사회생활을 시작한 이래 어떤 사회체제도 변하지 않은 경우는 없다. 북한도 예외는 아니다. 그런데도 남한에서 북한의 변화 여부에만 관심이 있다는 것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 같은 생각은 북한 체제는 공산독재 체제이며 따라서 붕괴할 수밖에 없으리라는 선입견 때문이다. 다시 말해 ‘북한은 변했는가?’라는 물음은 곧 ‘북한 공산독재는 망하기 시작했는가?’의 다른 표현이라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북한 체제의 붕괴 여부도 중요한 학문적 관심사가 될 수 있고, 사회주의의 체제 전환도 논의의 대상이 될 수 있다. 그러나 그 바탕은 북한 체제에 대한 객관적 분석과 올바른 이해에 있어야 한다. 그러려면 이념적 당위론이나 목적론적 접근을 배제하고, 동시에 정치체제를 곧 북한의 모든 것으로 보는 태도도 극복해야 한다. 이 같은 문제의식 속에 북한 사회체제의 최근 변화를 짚어보고 이를 토대로 앞으로의 변화를 전망한다.


북한 사회체제가 변화해 온 모습

현재의 북한 체제는 기본적으로 지난 70년 동안 사회변화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여전히 사회주의 산업화가 중요하다. 문제는 전후 복구과정과 근대 공업국가 형성에 효과적이었던 사회주의 산업화가 점차 그 효율성을 잃게 되었다는 점이다.

무엇보다도 사회주의 산업화가 짧은 기간의 추격발전에는 효과적이지만 고도의 권력집중과 강력한 권위주의 체제는 고도 산업화의 걸림돌이 된다는 것이 문제였다. 특히 북한은 김일성 중심의 유일 지배체제가 오랫동안 유지되면서 체제의 경색화가 더 심해졌다고 볼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정책결정은 탄력성을 잃게 되었고, 변하는 대내외적 환경에 적응하지 못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아무래도 현재의 북한 체제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은 1980년대 후반 이후 동유럽과 소련의 국가사회주의의 몰락이라고 할 수 있다. 북한이 자립적인 경제체제를 이루었다고 하지만 부족한 재화와 용역은 사회주의 국제시장에서 조달했다.

그러나 국가사회주의의 몰락으로 사회주의 국제시장이 없어져 북한은 생존에 필요한 상품을 ‘국제시세’에 따라 살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체제 효율성이 낮아지고 대외환경의 급격한 변화가 더해졌으며 ‘큰물(홍수)’과 같은 뜻밖의 자연재해가 북한의 체제 위기를 급속하게 심화시켰다고 볼 수 있다.

북한 사회체제의 성격에 영향을 준 것은 일차적으로 1980년대 후반부터 시작하여 1990년대 중반 이후 심화하고 있는 체제 위기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사회 변화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1990년대 이후 북한 체제 위기의 현상적 핵심은 식량난으로 대변되는 경제 위기이다. 식량은 사회체제 유지의 핵심적인 요소로, 식량 부족은 사회해체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 특히 극심한 식량부족은 가족을 해체시켜 기본적인 사회관계를 붕괴시킬 수 있다. 붕괴하는 사회관계에는 가족관계뿐만 아니라 북한 체제를 유지했던 수령과 당과 인민의 정치적 사회관계까지 포함될 수 있다.

둘째, 북한에서 식량은 단순히 주민들의 생존에 필요한 요소일 뿐만 아니라 배급제도의 축이라는 점에서 사회통제 기제의 핵심이었다. 식량이 부족하다는 것은 배급제도가 원활하게 작동하지 않는 것을 뜻하며, 곧 중요한 사회통제 기제가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하고 있음을 뜻한다. 이것은 북한 체제 유지의 또 다른 축인 ‘조직 활동’에도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는 것을 말한다. 배급제도와 조직체제의 문제는 곧 사회통합의 근본을 위협하는 요소가 된다.

셋째, 배급제도의 붕괴와 기업 활동의 마비로 사회이동이 증가되고 있다. 북한 사회통제의 핵심 가운데 하나는 주민들의 자유로운 이동을 금지하는 것이다. 그러나 식량을 조달하려는 이동이 불가피해진 현실에서 과거와 같은 이동통제는 불가능하다. 사회적 유동성의 증가는 표면적으로 북한 사회의 통제체제에 문제를 일으킬 수 있지만, 더 중요한 것은 인적 이동을 통하여 정보가 확산되는 수준도 높아진다는 것이다.

넷째, 제한적인 개방이라도 외부 문화의 유입은 완전히 막을 수 없다. 정책적으로 교류를 제한하거나 인터넷을 포함한 미디어를 통제하더라도 사람들을 통한 문화 전달은 막기 어렵다. 개방이 될수록 외부인사와의 접촉이 불가피하게 늘어난다는 점에서 인적 교류를 통한 문화 전파는 불가피해진다.

외부 문화의 유입은 크든 작든 기존 문화와 갈등을 일으킬 수 있다. 특히 외부 문화의 유입은 오랫동안 폐쇄적이고 배타적인 정책을 이어온 북한의 경우에 그 충격이 더욱 클 가능성이 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대중문화 요소건 일상문화 요소건 가치관이나 문화의 본질과 관련되어 있다는 점이다. 이를테면 새로운 노래의 유입은 단순히 북한 군중가요와 갈등하는 것이라 비록 시간은 걸리겠지만, 결과적으로 북한의 가치관과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북한 사회체제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사회변동의 특별한 유형이라고 할 수 있는 ‘체제 전환’은 역사적으로 존재하였던 국가사회주의가 변화하는 과정을 일컫는데, 1980년대 후반 동유럽의 몰락과 소련의 해체, 그리고 중국과 베트남의 시장을 포함한 자본주의 수용 등이 여기에 포함된다.

체제 전환을 경험한 사회주의국가들의 구체적인 변동과정은 개별 사례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사회주의국가들의 체제 전환과정이 다양한 만큼 그 원인도 여러 가지일 수 있다. 어떤 국가는 당 지도부의 주도적인 선택으로 체제 전환이 시작되었고, 어떤 경우는 지배층의 갈등에서 변화가 비롯되기도 하였다. 또 어떤 국가는 반체제 세력의 세력 확대에서 변혁이 촉발되었고, 어떤 나라는 억압받던 민중의 분노 폭발이 원인이 되었다. 때에 따라서는 국제관계의 변화나 이웃 국가의 변화 그리고 외부세력의 지원이 변화를 이끌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체제 전환 국가들이 갖고 있던 공통적인 요인은 경제적 위기가 심화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경제 위기는 사회주의 계획경제의 한계와 관련된다고 할 수 있다. 근대화 과정에서 뒤떨어진 국가가 급격하게 산업화를 달성하는데 사회주의가 일정한 이바지를 할 수 있지만, 어느 정도의 산업화가 이루어진 뒤에는 발전전략으로서 효율성을 상실하면서 경제위기를 초래한다는 것이다.

이와 더불어 중공업을 기반으로 하는 경제구조는 생필품 등 소비재의 만성적인 부족을 초래하여 인민들의 불만은 고조되며, 이것은 다시 계획경제를 주도하였던 당 · 국가 체제라는 정치이념에 대한 회의로 이어졌다고 할 수 있다. 또한 냉전시기에도 꾸준히 지속되었던 서방과의 다양한 교류와 자유민주주의 이념을 포함한 자본주의 문화의 유입도 체제 전환과정에서 일정한 몫을 하였다는 것이다.

체제 전환과 관련된 요인들과 더불어 체제전환의 성격이나 방향을 결정하는 조건변수들도 존재한다. 여기에는 시민사회의 존재 여부와 같은 역사 문화적 경험, 정치적 지도력의 성격, 체제에 저항하는 사회집단의 존재 여부, 변혁운동을 지원할 수 있는 국제적 연대의 가능성, 그리고 경제 사회적 발전 정도 등이 포함된다. 외부 문화의 유입은, 그것만으로는 체제 전환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 전환을 촉발하거나 가속화시키면서 체제 전환의 성격을 유도하는 중요한 매개변수가 될 수 있다.

최근의 북한사회 변화의 큰 특징 가운데 하나는 사회주의 문화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이념 우선과 집단주의적 가치의 약화이다. 자본주의의 물질적 보상과 달리 윤리적, 이념적 보상은 북한을 포함한 대부분의 사회주의국가 발전의 중요한 추동력이었다고 할 수 있다. 특히 북한의 경우는 주체사상이 지배이념으로 자리 잡고 ‘사회정치적 생명’을 강조하는 데서도 알 수 있듯이, 사회통합을 위해서 이념과 문화를 대단히 중요시했다. 이러한 경향은 1980년대 후반 다른 사회주의국가들의 체제 전환을 목격하면서 더욱 두드러졌다. 그런데도 극심한 식량난으로 대표되는 1990년대 후반 ‘고난의 행군’ 시기를 지나면서 생활고에 시달리던 주민들은 이념보다는 물질을, 집단보다는 개인을 중시하는 성향을 띠게 되었다.

탈이념화 경향도 새로운 사회문화적 특성 가운데 하나라고 할 수 있다. 교사 출신 탈북자의 증언에 따르면, 주체사상을 포함한 이념 관련 교육에는 학생들이 그다지 큰 관심이 없다고 한다. 이러한 성향은 심지어 젊은 세대의 교사들에게도 마찬가지라고 한다. 그 반면 이러한 실용주의를 중시하고 전통적인 이념에 대한 무관심한 현상에 대해 장년층 이상의 기성세대 교사들과는 갈등이 있다고 전한다. 특히 생계유지를 점차 시장에 의존하면서 이러한 경향은 심화되고 있는데, 사상교육의 일선에 있는 교사들이 교사직을 그만두고 시장에서 장사하는 현상도 이러한 분위기를 대변한다고 할 수 있다.


북한 사회체제 변화를 어떻게 보아야 할까

북한의 사회변화는 분명한 사실이다. 이전에는 일부 특수층만이 외부 정보를 접할 수 있었지만, 최근에는 보통 사람들도 남한의 드라마를 즐긴다. 좋아하는 배우도 있고, 인기를 끄는 드라마도 생겨나고 있다. 남한에서 방영되었던 작품이 북한에 전달되는 시차도 점차 줄어들고 있다.

대중문화뿐만 아니라 상품의 유통도 광범위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식량이나 의약품과 같은 필수품에서 비누나 치약 등 생활용품에 이르기까지 북한 사람들이 접하는 남한 물품의 종류도 다양하다. 단순히 남한 것을 찾는 수준이 아니라 특정 회사의 특정 물품을 골라서 구매할 정도이다.

2010년 김정일의 청년광산 시찰 사진에 남한 상표가 뚜렷한 텔레비전이 나와 화제가 되었다. 평양이나 신의주에는 기아나 현대 상표를 단 자동차가 길을 누빈다.

남한의 문물은 당연히 북한 주민들의 생각을 바꾼다. 남한이 잘 살고 있다는 것도 알고, 상대적으로 북한 체제가 문제가 많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북한의 사회적 변화가 두드러지는 것이 확실하지만, 문제는 이것이 어떻게 파생되었고, 어떤 결과를 초래할 것인지 하는 점이다. 북한 사회변화의 근본 원인은 북한 체제의 구조적 모순이라고 할 수 있다. 유일 지배체제라는 체제의 경직성과 사회주의 계획경제의 한계가 문제의 본질이며, 이를 극복하고자 불가피하게 선택한 부분적 개방이 변화를 촉진하였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배급제의 붕괴로 강요된 시장이 변화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시장에서 남한문물이 넘쳐나는 것은 그동안 남북한이 화해하고 협력한 소산이라는 점도 명확하게 할 필요가 있다. 10년 전만 하더라도 남한에서 지원한 물건은 상표를 다 지웠다. 인도적 지원사업의 하나로 북에 보낸 자동차도 상표를 다 뗐고, 남한 대중문화를 접하는 행위는 중죄에 해당하였다. 그러나 서로 신뢰가 쌓이고 남한의 문물이 북으로 들어가는 경로가 다양해지면서 분위기는 바뀌었다.

북한사회와 주민의 변화 원인을 꼼꼼히 따져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현재의 변화가 어떤 의미가 있고 어떻게 될 것인지 하는 점이다. 북한은 여전히 강력한 정치적 지도력을 유지하고 있고, 물리적 국가기구들(군대나 경찰 등)이 기존 지배구조를 지지하는 한 정치체제의 급격한 변화는 기대하기 어렵다. 그러나 체제 전환을 지향하는 사회체제의 변화는 이미 시작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는 뒤로 돌리기 어렵다는 성격을 가지고 있다.

일상생활이나 일상문화 그리고 주민들의 의식변화가 바로 체제 전환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체제 전환을 요구하는 구조적 압력의 정도를 조금씩 높이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압력이 더욱 높아지면 체제 전환을 요구하는 구조적 요인은 단순히 변화의 조건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사회집단과 결부되어 구체적인 사회갈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 세대 간, 가치 간 충돌이 하나의 본보기가 될 수 있다. 사회갈등이 적절히 처리되면 점진적인 변화로 귀결될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 정치적 갈등으로 확대되어 급격한 체제 전환으로 연결될 수 있다.

지금까지 북한 사회체제의 변화 과정에 영향을 미친 요인이 다양했던 것처럼, 앞으로의 북한 사회체제 변화의 성격을 규정지을 수 있는 요인도 대단히 많을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사회체제는 늘 변한다는 것이고, 북한도 예외일 수가 없다는 것, 그리고 현재 북한 사회체제의 변화는 체제 전환의 방향이라는 점이다.

그러나 반세기 동안에 지금의 북한 사회주의 체제가 구축된 것처럼 체제의 전환도 적지 않은 시간이 소요될 것이라는 점이다. 왜냐하면 체제 전환은 단순히 정치제도의 변화, 경제제도의 변화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회 구성원의 의식 그리고 문화까지 포함하는 체제 전환을 생각한다면 사건적인 차원의 제도적 통일과 상관없이 필요한 시간이 적지 않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 이우영 -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와 미시연구소 소장으로 연세대학교에서 사회학 박사학위를 취득했으며,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을 지냈다. 「북한의 자본주의 인식변화」, 「한반도 통일론의 재구상」(공저), 「(김정은 시대의) 경제와 사회 : 국가와 시장의 새로운 관계」 등의 저서가 있다.

[경향잡지, 2015년 6월호, 이우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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