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9일 (일)
(홍) 성령 강림 대축일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보낸다. 성령을 받아라.

강론자료

2월 6일(금)-연중 4 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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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gold] 쪽지 캡슐

2004-02-03 ㅣ No.586

연중 4 주간 금요일 - 짝수 해

 

        집회서 47,2-3        마르코 6,14-29

    2004. 2. 6.

주제 : 내 삶에 평화를.......

 

우리는 세상에서 평화롭게 살고 싶어 합니다.  특히 평화가 어떤 것인지, 그리고 그 평화가 깨진 상태가 어떤 것이었는지 아는 사람이라면 그 마음은 더 할 것입니다.  예로부터 통하는 말에 ‘평화를 원하거든 전쟁을 대비하라’는 말도 있습니다만, 이 말은 평화를 경쟁관계로 해석하는 듯하여 별로 듣기 좋은 말은 아닙니다.

 

진정한 평화는 전쟁을 대비하는 가운데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내가 세상 사물을 어떻게 바라보고 어떻게 대하는지에 따라 달라지는 것입니다.  사람들 각자의 생활이 모여서 가정을 이루고 국가를 이루며 세상의 모습을 만드는 것이기에 우리가 갖는 삶의 자세는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여러분은 평화를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자기 평화를 스스로 깬 사람의 본보기로 헤로데를 볼 수 있고, 하느님의 선택을 받은 사람으로서 하느님의 뜻을 이루며 살려고 애썼던 다윗에 관한 집회서 저자의 회상을 들었습니다.  사람이 만들어내는 삶의 결과는 평소에 가졌던 자세가 어떤 것이었느냐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세례자 요한을 죽인 죄책감에 사로잡혀 살았던 헤로데는 예수님이 나타나서 하시는 일을 보고서 지레 겁을 먹습니다.  죄짓고는 발을 뻗고 잠을 편하게 못 잔다는 말이 아마도 이런 것일지도 모릅니다.  헤로데가 예수님의 이야기를 듣고 긴장했던 것은 그래도 자기 삶에 대해서 조금은 돌이키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헤로데는 삶의 심지가 약해서 잘못된 길로 빠졌고 거기서 헤어나지 못한 사람이었습니다.

 

반면 다윗에 관한 집회서 저자의 회상은 아름다운 말뿐입니다.  지난 주간과 이번 주간의 독서를 통하여 들은 다윗의 삶을 안다면 똑같은 평가를 내리지는 않겠습니다만, 다윗은 그래도 하느님의 뜻에 성실하게 맞추어 살려고 노력했던 사람인 것은 분명한 듯합니다.

 

각자의 삶에 평화를 불러오는 일은 우리들 각자가 하는 일입니다.  남이 대신해주는 것은 아닙니다.  아니 평화를 가져오는 방법이야 알려줄 수 있어도 그 방법대로 실천하여 내 삶을 평화롭게 만드는 것은 각자가 하는 행동에 따라 결실을 맺는 것입니다.

 

우리가 평화를 바라는 사람이라면, 그 평화를 얻기 위하여 어떤 삶의 자세를 가져야 하는지 생각하고 실천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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