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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교] 일본 베드로 기베 신부와 187위 순교자 시복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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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8-03-17 ㅣ No.499

일본 베드로 기베 신부와 187위 순교자 시복식


한국교회 순교자처럼 다양한 연령 · 계층 포함

 

 

사진은 일본 오이타현 베드로 기베 공원에 세워진 ‘베드로 기베(岐部) 신부 동상(사진제공 나가사키대교구 홍보처).

 

 

일본 ‘베드로 기베(岐部) 신부와 187위 순교자 시복식’이 11월 24일 나가사키에서 열린다. 시복대상자들은 17세기 박해시대 신앙을 증거하기 위해 순교한 인물들로서 일본에서 시복식이 거행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일본 순교자들은 한국 순교자들과 많은 점에서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으며 그만큼 이번 시복식은 한국교회 내에서도 각별한 의미로 다가온다. 시복대상자들의 역사적 배경과 의미, 순교자들의 특징, 한국과 일본 순교자들의 관계 등을 알아본다.

 

 

일본 시복대상자들의 순교배경과 의미

 

일본에 가톨릭이 전해진 것은 1549년 성 프란치스코 하비에르에 의해서이다. 그 후 순조롭게 전교됐으나 1597년 나가사키 26성인의 순교 무렵부터 금교 박해가 시작된다.

 

금교령이 내려진 1614년부터 1865년 오오우라 천주당에서의 신자 발견 때까지 약 250년간 표면상으로는 불교도를 가장하면서 실제로는 그리스도를 믿는 잠복시대를 거친다.

 

이러한 일본의 역사적 박해 가운데, 이번 시복대상자인 ‘베드로 기베 신부와 187위 순교자들’은 도쿠가와 막부의 엄격한 선교금지 정책 아래 신앙의 자유를 끝까지 지키고자 1603~1639년 전국각지에서 순교한 인물들이다.

 

베드로 기베 신부와 187위 순교자들의 시복에 대해 일본교회의 관심은 실로 크다. 일본 주교회의는 2007년 6월 보도자료를 통해 “베드로 기베 신부를 포함한 188위 순교자들은 단순히 그리스도교뿐 아니라 현대 일본에도 큰 의미를 가져다주는 인물”이라고 밝힌 바 있다.

 

주교회의는 자신의 물질적 이익과 즐거움이 아닌 숭고한 이상과 인간의 행복을 위해 용기를 갖고 앞으로 나아갔던 순교자들의 모습은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도 큰 희망이 된다고 말했다.

 

 

188위 시복대상자들의 처형방법과 특징

 

이 시대 일본에서의 가톨릭 신자 처형은 대부분 참수 또는 화형으로 진행됐다. 온몸을 밧줄로 감고 머리에 피가 쏠리지 않도록 구멍을 뚫어놓는 고문과 불로 달군 철봉을 배에 지지는 등의 고문도 자행됐다.

 

이러한 고문과 처형을 견디고 시복대상자로 선정된 순교자들의 특징은 크게 세가지다. ▲ 첫째, 대부분 사제, 수도자가 아닌 일반신자라는 점 ▲ 둘째, 농업과 상공업 종사자들, 아이들, 주부, 신체장애우 등 차별받던 계층이라는 점 ▲ 셋째, 여성이 많다는 점이다.

 

실제로 시복대상자 가운데 사제와 수도자는 베드로 기베 신부를 포함해 총 5명으로 나머지 183명은 모두 일반신자다. 다이묘(일본 막부정권의 영주)의 중신이었던 무사를 비롯, 농·상·공업 종사자, 가정주부, 어린이 등은 물론 ‘하남하녀’로 불리며 이름도 나이도 미상인 더부살이들, 약시와 지체부자유로 인해 사회 저변에서 고통받았던 사람 등 소외계층들이 대부분이다.

 

특히 일본교회는 시복대상자 중 여성이 많다는 점을 들어 “현재도 남녀평등시대라고 하지만 여성의 참된 아름다움과 강함을 이들 순교자에게서 찾아볼 수 있다”며 “여성 없이는 현대의 일본교회는 물론 가정, 사회가 성립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전했다.

 

이러한 일본 시복대상자들의 특징들은 한국 순교자들의 특징과 매우 흡사하다. 노인에서 어린이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연령대와 사회계층이 포함돼있는 것은 물론 집요한 박해정책 또한 그러하다.

 

서학을 통해 들어온 가톨릭 신앙이 유교적 정치기반을 흔들고 정권의 도전으로 받아들여진 한국의 경우처럼 일본 또한 당시 지방영주들의 정치적 이해관계와 맞물려 가톨릭 신앙을 철저히 배격했던 것이다.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부의장 강우일 주교는 책 ‘베드로 기베와 187위 순교자’를 추천하는 글에서 “물질주의와 실천적 무신론에 짓밟혀 신음하는 오늘의 일본교회가 400년 전 순교자들의 신앙에서 배우고자 한다”며 “이러한 일본교회의 각오는 한국교회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밝혔다.

 

현재 일본교회에는 현재 26위 성인, 16위 성인과 205위 복자가 있다.

 

 

시복식에 대해

 

이번 시복식은 11월 24일 정오 나가사키현 야구장에서 열린다. 교황청 시성성 장관인 호세 사라비아 마르틴 추기경 주례로 열리며 나가사키현 야구장 3만여명 좌석 중 한국교회 신자 좌석도 1000여석이 준비돼있다.

 

2007년 11월 삿포로에서 개최된 한일교회 주교교류모임에서 일본 주교단은 한국신자들이 시복식에 참가해달라는 뜻을 밝혔다. 현재 한국교회는 요청을 받아들여 각 교구별로 교구장의 주선 아래 신자들의 참가를 독려하고 있다.

 

 

끝까지 신앙 굽히지 않고 장렬한 죽음 맞아... 일본 베드로 기베 신부와 순교자들은?

 

이번 시복대상자들은 한국 순교자들과 마찬가지로 끝까지 신앙을 굽히지 않고 처참한 죽음을 맞이했다. 대표적인 인물은 베드로 기베 신부.

 

베드로 기베 신부는 ‘세계를 걸은 신부’로 잘 알려져 있다. 1614년 마카오로 떠나 인도, 파키스탄, 이란, 이라크, 요르단 등을 횡단해 그가 로마에 도착한 것은 1620년.

 

그는 로마 예수회에 입회, 사제서품을 받고 1630년 일본에 돌아왔다. 당시 일본은 박해 중이어서 그는 산 속에 숨어 살며 전교활동을 펼쳤다. 그의 투철한 신앙정신을 보여주는 에피소드 하나. 박해를 받던 중 한 신부가 배교를 했다는 소문이 퍼지자 그는 한밤중에 산을 내려와 ‘신부님, 함께 봉행조(상사의 명을 받들어 사무를 집행하는 관청)에 갑시다. 배교를 취소하고 나와 함께 죽읍시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 후 기베 신부는 전교활동을 펼치다 숨어 지내는 것이 한계에 다다르자 다른 신자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도록 센다이에서 체포된다. 조사담당자는 온몸을 밧줄로 감고 머리에 피가 쏠리지 않도록 구멍을 뚫는 고문을 했지만 그가 신앙을 버리지 않자 새빨갛게 달궈진 철봉을 배에 지져 절명시킨다. 그의 처형에 관한 당시 조사담당자 이노우에의 직필 소견이 아직 남아있는데 그곳에는 ‘베드로 기베는 그리스도교를 버리지 않았다’고 적혀 있다.

 

1606년 후쿠오카 야쯔시로에서도 참혹한 박해가 이어졌다. 아버지 와타나베와 열세살의 토마스 미쯔이시, 다섯 살인 베드로 핫토리도 그때 숨을 거뒀다. 와타나베는 옥중에서 병사했으며 장애를 갖고 있던 토마스는 아버지의 시체를 떠나지 않고 하늘을 우러러 목을 내밀었다. 다섯 살인 베드로도 이미 시체가 된 아버지 곁에 달려와 웃통을 벗어젖히고 두 손을 하늘로 올려 목이 베어지기를 기다렸다.

 

그 가련함에 형 집행인도 직무를 거부했다. 그러자 이 광경을 차마 볼 수 없던 군중의 한 사람이 뛰어나와 직접 칼을 내리쳤다고 한다.

 

이밖에도 히로시마, 요네자와 등 여러 지역에서 어린이, 주부, 장애우 등 다양한 계층의 신자들이 하느님의 이름을 부르며 순교했다. [가톨릭신문, 2008년 3월 16일, 오혜민 기자]

 

 

일본 초기 교회사 다룬 ‘베드로 키베와 187 순교자(일본)’


일본 순교자의 삶 배운다  

 

 

1600년대 일본에서 순교한 예수회 선교사 키베 가수이 신부를 포함한 188명 순교자들의 삶과 신앙을 소개한 책 ‘일본 베드로 키베(岐部) 신부와 187위 순교자’(가톨릭신문사 / 51쪽 / 3500원)가 번역, 출간됐다.

 

일본가톨릭주교협의회 시복시성특별위원회(위원장 미조베 오사무 주교)가 편찬하고, 대구대교구 이문희 대주교가 옮긴 이 소책자는 일본교회사, 특히 초기교회사와 일본의 순교자들을 이해하는 데는 가장 적합한 책이다.

 

키베 신부를 비롯해 187위 순교자들은 1603~1639년 도쿠가와 막부의 엄격한 선교금지 정책 아래서도 신앙의 자유를 끝까지 지키고자 전국각지에서 순교한 인물들이다.

 

일본 시복대상자들은 한국 순교자들과 매우 비슷한 특징을 갖는데, 노인에서 어린이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연령대와 계층이 포함돼있는 것은 물론 당시 국가 차원의 처절한 박해정책 또한 그러하다.

 

소책자는 일본 교회사에 대한 사전 지식이 많지 않은 일반 신자들을 위해 어려운 교회용어와 표현을 자제하고 쉽게 설명한 점이 특징이다. 아울러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각 순교 지역과 관련한 10여 장의 자료사진을 싣고, 이에 대한 설명을 곁들였다.

 

특별히 이번 소책자는 지난 1995년 간행된 ‘사랑의 증거’와 차별을 두기 위해 순교자들의 생애를 소개하는데 그치지 않고, 이들 복자들이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지를 밝히고자 했다.

 

강우일 주교(한국천주교주교회의 부의장 제주교구장)는 추천의 글에서“오늘날 물질주의와 실천적 무신론에 짓밟혀 신음하는 현대 일본교회가 400년 전 순교자들의 신앙에서 배우고자 한다”며 “이러한 일본교회의 각오는 한국교회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적었다.

 

한편 키베 신부와 187위 순교자들의 시복식은 11월 24일 정오 나가사키현 야구장에서 교황청 시성성장관 호세 사라비아 마르틴 추기경 주례로 거행된다. 현재 일본교회는 26위 성인과 205위 복자를 모시고 있지만, 일본 현지에서 시복식이 거행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구입 문의 080-900-8090(무료) 가톨릭신문사 [가톨릭신문, 2008년 3월 23일, 곽승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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