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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목자] 사제의 해를 마감하며: 사랑하는 신부님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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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0-07-06 ㅣ No.538

[경향 돋보기 - 사제의 해를 마감하며] 사랑하는 신부님들에게

 

 

사제의 해를 마감하며, 이렇게 지면을 통해 신부님들께 인사드리게 되어 고맙기도 하고 쑥스럽기도 합니다. 편지 형식의 이 글에서는 주로 제가 만난 신부님들과 지금 함께 일하고 있는 교구 신부님들에게 드리는 제한적인 내용을 담을 수밖에 없음을 미리 말씀드리고 양해를 구합니다. 그리고 제가 신부님들에게 드리는 이 글은 주교로서 신부님들에게 말씀드리고 싶은 내용을 주로 담고 있겠지만, 저도 사제들 가운데 한 사람으로서 제가 그렇게 되고 싶은 갈망도 함께 담고 있다는 사실을 미리 밝혀두고 싶습니다.

 

 

고맙습니다!

 

신부님들이 함께해 주시지 않으셨다면 주교로서 지금의 나는 없었을 것입니다. 언제부턴가 신부님들이 제가 할 일을 대신 해주시고 계신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신부님들에게 저절로 ‘고맙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고맙다’는 저의 말이 빈말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신부님들이 각자 맡은 소임에 따라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볼 때 진심으로 고맙고 감사하는 마음이 저절로 우러나옵니다. 신부님들이 대내외적인 크고 작은 일들을 척척 해내실 때 마치 제가 한 것처럼 기분이 좋습니다. 신자들이 신부님들을 칭찬하고 자랑할 때 왠지 저의 마음도 뿌듯합니다.

 

왜 저의 마음 깊은 곳에서 마치 대리 만족과도 같은 이러한 마음들이 일어날까 한 번 생각해 보았습니다. 사제로서 갖는 동료의식에서 비롯된 것일까? 아니면 주교와 신부의 협력관계에서 비롯된 것일까? 후자일 것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이러한 마음들은 주교와 자기 협력자들인 신부님들과의 끈끈한 협력관계에서 연유한 것일 거라고 말입니다. 적어도 제가 주교가 되기 전까지는 이러한 생각을 거의 못해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저의 사제생활을 되돌아본다면, 제가 본당 사목을 할 때 본당신부로서 본당 신자들에 대해서 가졌던 고맙고 감사한 마음들이 지금 저와 신부님들과의 관계에서 보는 마음들과 비슷하지 않았을까 생각해 봅니다. 그렇습니다. 신자들 없는 본당신부를 생각할 수 없듯이, 신부님들 없이 주교가 무슨 일을 할 수 있겠습니까? 저를 도와주고 함께한 신부님들의 고마운 존재를 다시금 생각해 봅니다.

 

진정한 협력관계가 되려면 서로가 서로에게 고마워하는 그러한 관계를 서로가 함께 만들어가야 하는데, 특별히 사제의 해를 보내면서 저는 저의 부족한 모습을 재확인하고 반성하는 시간을 갖고 있습니다. 우선 신부님들이 저에게 자연스럽게 고마워해야 할 여건들을 충분히 잘 만들어드리지 못했다는 점에 대해서 깊이 반성합니다.

 

물론 물리적이고 외적인 여건 조성도 필요하겠지만 때때로 더 필요한 것은 신부님들께 대한 각별한 위로와 격려와 관심인데 그렇게 최선을 다하지 못한 점을 반성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부족한 저를 믿고 많이 도와주시고 함께해 주신 모든 신부님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저는 주교로서 신부님들을 대하면서 새로운 사랑을 배웠습니다. 그 사랑은 다름 아닌 어버이의 사랑, 곧 신부님들에 대한 아버지의 사랑이었습니다.  하느님께서 주교라는 새로운 소임을 저에게 맡기면서 주신 은총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자식을 챙겨주고 보살펴주고 걱정하는 마음이 부모의 마음에서 떠날 날이 없듯이 신부들에 대한 주교의 마음도 그와 비슷한 것 같습니다.

 

인간적인 일에서부터 영적인 일에 이르기까지 신부들에 대해서 주교가 챙겨주지 않으면 누가 그렇게 해줄 수 있겠는가 하는 그런 걱정을 자주 하게 됩니다. 때로는 잘못을 알면서도 덮어주고 싶은 심정을 느낄 때도 많습니다. 다시 새롭게 시작할 수 있겠지 하는 그런 기대감으로 시간을 두고 기다릴 때도 많습니다. 그러다 보면 정말로 새롭게 다시 시작하는 신부님들도 있는데 그때에는 저도 주교로서 정말 보람을 느낍니다.

 

그리고 동료 신부들 간에 불목하고 서로를 진정으로 위해주지 못하는 모습을 볼 때는 마음이 아프기도 합니다. 피치 못할 사정으로 사제직을 떠날 경우가 생길 때는 책임을 다하지 못한 죄책감까지 들기도 합니다. 저는 이러한 마음들이 자식에 대한 아버지의 사랑과 흡사하지 않을까 상상해 봅니다.

 

저는 가끔 신자들로부터 신부님들에 대한 소식을 듣습니다. 좋은 소식을 들을 때는 기분이 좋고 그렇지 않을 때는 긴장을 하기도 합니다. 주로 좋은 소식들이 많아서 기분이 좋습니다. 그런데 한번은 어떤 교우가 신부님들한테 상처 받았다고 저더러 대신 사과하라고 다그쳤습니다. 그러나 저는 끝까지 신부님들 편에서 방어하려는 태도를 취하면서 그분의 신앙을 의심까지 했습니다. 저의 그런 태도가 그분에게는 더 큰 상처가 되었나 봅니다. 그래서 그분의 요구대로 제가 대신 사과했습니다. 그리고 그분을 위해서 기도하겠다고 했습니다.

 

이런 일이 있고 나서 저에게는 기도 과제가 하나 더 불어났습니다. 알게 모르게 신부님들로부터 상처 받는 사람들이 있으면 그런 사람들을 위해 특별한 지향을 두고 기도하기로 했습니다. 상처 받은 사람들이 사과를 요구하면 대신 사과도 할 생각입니다. 신부님들도 인간입니다. 자기도 모르게 신자들에게 상처 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신자들이 신부님들로부터 받는 상처는 아무리 작은 상처라도 다른 상처보다 더 큰가 봅니다. 신부님들에 대한 사랑과 믿음이 그만큼 더 컸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저는 신부님들을 많이 사랑하려고 노력합니다. 때때로 인간적인 판단 때문에 저의 사랑하는 마음을 흐리게 하고 흔들리게 할 때도 있지만,  어떠한 처지에서든지 신부님들을 사랑하도록 노력하고 신부님들을 위해 기도할 것입니다. 이것이 매일 미사 때마다 저를 기억하며 기도하는 신부님들에 대한 보답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나는 행복합니다!”

 

“나는 행복합니다!”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께서 마지막으로 우리에게 남기고 가신 감동적인 말씀입니다. 주님의 사제로서 후회 없이 살았다는 말씀이 아니겠습니까? “나는 행복합니다.” 하고 지금 그렇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그만큼 자기 삶에 충실한 사람일 것입니다. 오늘을 충실히 사는 사람만이 그 말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제가 사제로서 행복하게 사는 비결이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사제가 사제답게 사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주님의 사제로서 자기 정체성을 분명히 하고 오늘을 충실히 살고 있다면, 그런 사제는 진정으로 행복할 것입니다. 사제에게는 재능보다는 열정이 더 중요한 것 같습니다. 사제의 해를 선포하시면서 교황님께서 성 요한 마리아 비안네 사제를 모든 사제들의 모범으로 삼아 지정하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행복한 사제생활의 지침서로 삼아도 하나도 손색이 없을 하나의 책을 우연히 발견하였습니다. 엔조 비앙키가 쓴 “주님의 사제들에게”(Ai presbiteri)라는 책입니다. 그 안에 담긴 내용이 너무 좋아서 제가 교구 신부님들에게 소개하다가 모든 신부님들과 함께 나누어 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번역한 내용을 바오로딸 수녀님들의 도움으로 출판하였습니다. 그 출판 시기가 사제의 해 시작 시기와 맞은 것은 우연이었습니다.

 

많은 주교님이 그 책을 신부님들에게 소개해 주시고 선물해 주셔서 이미 많은 신부님들이 이 책을 알고 계시리라 짐작됩니다. 제가 낸 책이라서 자랑하기가 좀 쑥스럽습니다만, 제가 보기에는 이 책에 소개된 여덟 가지 주제가 마치 행복한 사제생활의 길을 제시하는 진복팔단처럼 여겨집니다. 그래서 감히 저는 신부님들에게 이 작은 책을 행복한 사제생활의 지침서로 소개해 드리고 싶습니다.

 

이 책에 나오는 여덟 가지 주제를 제가 행복한 사제생활 진복팔단 형태로 한번 만들어보겠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책자를 직접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행복하여라, 자기 직무와 영성을 하나로 사는 사제들!

그들은 주님의 사제라 불릴 것이다.

 

행복하여라, 시간을 성화시키며 사는 사제들!

그들은 하루를 선물로 여기며 살 것이다.

 

행복하여라, 말씀에 자신을 맡기며 사는 사제들!

그들은 풍요로운 열매를 맺게 될 것이다.

 

행복하여라, 항상 깨어 기도하는 사제들!

그들은 하느님을 만나게 될 것이다.

 

행복하여라, 전례를 자기 생활의 중심에 두는 사제들!

그들은 거룩하게 될 것이다.

 

행복하여라, 독신 · 청빈 · 순종을 충실히 사는 사제들!

그들은 하느님 나라를 차지할 것이다.

 

행복하여라, 친교의 봉사자로 사는 사제들!

그들은 하느님 백성의 인도자가 될 것이다.

 

행복하여라, 자신을 소중히 여기며 사는 사제들!

그들은 참기쁨을 나누며 살 것이다.

 

 

넓고 강한 마음을 주소서!

 

작년 6월 19일 신부님들과 교구 사제 피정을 마치고 사제의 해 개막미사를 봉헌하면서 강론 때 제가 신부님들께 말씀드린 내용을 다시 한 번 함께 상기하고 싶습니다. 그 내용은 어떤 교우가 저에게 편지 한 통을 보내면서 피정 때 우리 신부님들께 전해달라고 하는 짧은 메시지를 담고 있었습니다. 그 메시지의 내용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우리 신부님들, 신자 이기려고 하지 말고 져줘라. 더 많이 배워 신부님들보다 잘난 사람 많다 인정해라. 그 대신 세상의 어느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예수님처럼 살아 잘났다고 하는 사람들을 품성으로 이겨라.”

 

그리고 다음과 같은 말을 덧붙였습니다.

 

“‘정말 예수님처럼 살아 세상에서 수고한 모든 것을 하느님께서 보상해 주실 것이니 그것으로 위안을 얻으면 안 될까요?’ 하고 신부님들께 말하고 싶습니다.”

 

이 교우가 신부님들에게 전하고 싶어 하는 메시지의 핵심은 ‘예수님을 닮은 사제가 되어 달라.’는 것인 것 같습니다. 이러한 메시지를 신부님들에게 전하는 이 교우는 지금도 이러한 지향으로 매일 신부님들을 위한 기도를 드리고 있다고 했습니다. 편지와 함께 사제를 위한 기도문 하나를 동봉하면서, 자기 자신이 때때로 신부님들에게 쓴소리도 하고 원망도 하지만 이 기도문을 우리 신부님들을 위해 매일 습관적으로 바친다고 하였습니다. 얼마나 고마운 일입니까?

 

그 기도문의 내용은 바오로 6세 교황께서 1970년 5월 17일에 자신의 사제수품 50주년을 기념하여, 278명의 사제품을 집전하시면서 바친 기도문 가운데 일부였습니다. 기도문의 내용이 너무 좋아 이후부터 저도 가끔 저 자신과 신부님들을 위해 이 기도를 바치곤 합니다. 바로 우리 사제들을 많이 사랑하는 한 교우가 우리를 위해 날마다 이 기도를 바치듯이, 저도 우리 사제들에게 ‘넓고 강한 마음’을 주시기를 하느님께 간절히 바라고 청하면서 이 기도를 바칩니다.

 

오소서, 성령이시여, 하느님의 백성을 돌보는 사제들에게 넓은 마음을 주소서. 침묵 가운데 힘차게 타이르시는 주님의 말씀을 귀담아들으며, 온갖 불미한 야심과 덧없는 인간 경쟁을 전혀 모르는 마음, 거룩한 교회만을 걱정하며, 주 그리스도의 마음을 닮아보려는 넓은 마음을 주소서.

 

온 교회와 전 세계를 포용하며 모든 사람을 사랑하고 모든 사람에게 봉사하고 모든 사람을 위하여 희생할 줄 아는 넓고 강한 마음을 주소서. 온갖 유혹과 시련, 온갖 싫증과 피로, 온갖 환멸과 모욕을 견디어 내는 넓고 강한 마음을 주소서.

 

어떠한 희생이 요구되더라도 끝까지 항구하며, 그리스도의 심장과 고동을 같이하고, 겸손과 충실과 용기로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며, 거기서 유일한 행복을 찾는 넓고 강한 마음을 주소서.

 

[경향잡지, 2010년 6월호, 권혁주 요한 크리소스토모 주교(안동교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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