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2월 5일 (토)
(자) 대림 제1주간 토요일 예수님께서는 군중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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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 별별 이야기: 함께 비를 맞아주는 목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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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0-07-14 ㅣ No.1000

[박현민 신부의 별별 이야기] (5) 함께 비를 맞아주는 목자

 

 

종교의 자유는 헌법에 보장된 국민의 기본권 중 하나이다. 종교가 다르다는 이유로 차별이나 불이익을 받아서는 안 된다. 하지만 우리 주변에는 아직도 종교적 이유로 고통을 받거나 불이익을 감수해야 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일단 종교인이 설립한 단체나 기관에서는 같은 종교인을 직원 채용의 우선 조건 혹은 전제 조건으로 내세울 수 있다. 하지만 공공기관이나 공적인 단체에서 신앙이 다르다는 이유로 차별받거나 혹은 특정 종교 예식을 강요받는 것은 부당한 것이 사실이다.

 

안나씨는 정부의 세금과 지방 도의회에서 보조금을 지원받아 운영되는 사회복지기관에서 국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이 기관은 특정 종교인이 설립했지만, 지방에 몇 안 되는 복지기관이라 정부사업을 수행하고 지방 복지행정에 적극 참여하면서 준공공기관으로 성장했다. 안나씨는 이 기관이 매년 정부평가에서 전국 최고점수(만점)를 받을 만큼 일을 꼼꼼하고 철저하게 하기로 소문난 행정가였으며 사회복지 전문가였다. 이 기관의 소장은 특정 종교 성직자의 사모였는데 작년에 정년을 맞아 후임 소장을 선발해야 할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결국, 이 소장은 그동안 기관의 성장과 발전에 기여했을 뿐 아니라 행정 능력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안나씨를 자신의 후임자로 적극 추천하게 되었다.

 

하지만 후임 소장으로 안나씨가 선임되기 위해서는 한 가지 조건을 만족시켜야만 했다. 그것은 안나씨가 이 기관 설립자의 종교로 개종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안나씨는 강직하고 불의와 타협을 하지 못하는 성품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하느님을 믿는 신앙인으로서 순교를 못 할망정 하느님을 배신한다는 것은 절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소장은 안나씨의 능력을 높이 인정하여 어떤 일이 있어도 후임 소장직을 맡기고 싶어 했다. 하지만 안나씨의 개종을 설득하지 못한 소장은 마침내 새로운 대안을 제시했다. 그것은 안나씨가 겉으로만 설립자의 종교 예식에 참여하고 실제로는 자신의 신앙을 그대로 지켜나가도 되지 않겠느냐는 것이었다. 즉 형식적으로 거짓 개종을 하라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제안이 신심 깊은 안나씨에게 통할 리가 만무하였다. 결국 안나씨는 유일한 소장 후보이면서도 종교가 다르다는 이유로 소장직을 설립자와 같은 종교를 믿는 다른 사람에게 양보해야만 했다.

 

새롭게 부임한 소장은 사회복지 실무 경험도 부족하고 타지역에서 다른 업무를 수행하였던 사람이라 현재의 기관 업무를 충실히 수행하기가 어려웠다. 또한, 낙하산을 타고 소장직을 맡았으며 다른 직원들과 유대감도 없는 상황에서 새로운 소장은 직무에 대한 스트레스를 안나씨에게 풀어내기 시작하였다. 소장의 괴롭힘과 히스테리가 점점 극에 달하자 안나씨는 결국 이직을 결심하고 사표를 내게 되었다.

 

안나씨는 실력으로나 모든 조건에서 자신이 소장직을 맡을 수 있는 최적격자임에도 불구하고 개종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소장직에서 탈락한 사실에 분노를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게다가 소장 진급이 되지 않은 결과가 그동안 헌신했던 직장을 떠나야만 하는 상황으로 이어진 사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워하였다. 안나씨는 신앙을 지키며 살아온 자신의 삶이 결국 이러한 패배자로 마감되는 것은 아닌지 극도의 불안과 분노로 상담실을 찾아오게 되었다.

 

신앙의 박해에 맞서 순교를 선택했던 우리 선조들의 믿음은 오늘날에도 계속되고 있는 것 같다. 안나씨와 같이 일상에서 순교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신앙인을 만나게 되면 그 굳은 믿음과 용기에 절로 머리가 숙여진다. 사제로서 나는 그리스도의 증거자로 살아가는 분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그 마음을 공감하고 그 고통을 함께 나누는 것 외에 달리 더 큰 위로가 있을 수 없음을 느끼곤 한다. 인생의 비를 맞으며 실의에 빠진 분들에게 나는 우산을 받쳐주는 사제이기보다 함께 비를 맞아주는 목자이고 싶다.

 

[가톨릭평화신문, 2020년 1월 1일, 박현민 신부(영성심리학자, 성필립보생태마을 부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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