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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 심리학이 만난 영화: 복종의 심리학, 밀그램 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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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8-09-22 ㅣ No.867

[심리학이 만난 영화] 복종의 심리학, 밀그램 프로젝트

 

 

마이클 알메레이다 감독의 2015년 작 ‘밀그램 프로젝트’는 미국의 심리학자 스탠리 밀그램(Stanley Milgram)의 연구와 삶을 사실적으로 그린 작품이다. 물론 영화의 중심에는 심리학 역사상 가장 많은 논쟁을 불러일으켰던 복종 실험이 있다.

 

 

복종 실험의 시작

 

미국 예일대학교에서 처벌이 학습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연구에 참여할 사람을 모집한다는 광고를 보고, 지역 주민이 실험실에 찾아간다. 그곳에는 또 다른 사람이 실험에 참여하려고 와 있다. 실험은 두 명이 함께하는데, 한 사람은 연구자의 지시에 따라 연기할 가짜 참가자 곧 공모자였다. 제비뽑기로 교사와 학생 역을 맡을 사람을 정했는데, 진짜 참가자는 교사로, 공모자는 학생으로 뽑히도록 미리 조작해 두었다.

 

이 실험에서 교사는 학생에게 학습 과제를 주고, 학생은 이를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는지를 확인하는 역할이었다. 실험의 주된 목적은 처벌을 받으면 학습이 더 잘되는지 알아보는 것이므로 학생이 기억과제에서 오류를 범하면 교사는 학생에게 처벌을 내려야 한다고 알려 주었다.

 

이 실험에서 처벌은 전기 충격이었다. 전기 충격은 서른 개의 스위치가 달린 기계 장치로 전달되었다. 1번 스위치를 누르면 15볼트의 전기 충격을, 30번 스위치를 누르면 무려 450볼트의 전기 충격을 전달하는 기계 장치였다. 스위치 위에는 전압이 일으키는 충격의 강도가 쓰여 있었다. 이를테면 15볼트에는 ‘약한 충격’, 330볼트에는 ‘극도로 강한 충격’, 그리고 450볼트에는 그저 ‘XXX’라고 표시되어 있었다.

 

연구자는, 교사 역의 진짜 참가자가 보는 앞에서 학생 역의 공모자 손목에 전극을 부착한 뒤 학생을 의자에 묶었다. 학생은 사실 자기가 심장이 안 좋은 편이라며 괜찮겠는지 묻는다. 물론 연구자는 괜찮다고 답한다. 교사는 실험 전에 자신의 손목에 전극을 연결해 전기 충격을 실제로 체험해 본다. 깜짝 놀라는 교사에게 연구자가 몇 볼트인지 맞춰 보라고 한다.

 

“150볼트 정도는 될 것 같은데요.” 

 

“아니요, 지금 충격은 45볼트에 불과합니다.”

 

도대체 45볼트가 이 정도라면, 450볼트는 얼마나 충격적인 것일까? 교사는 체험을 통해 진짜 전기 충격을 가한다고 믿었지만, 실제로는 학생이 전기 충격을 받지는 않았다. 교사와 학생은 각기 분리된 방으로 들어갔고, 교사가 스위치를 누를 때마다 학생은 전기 충격의 강도에 맞게 신음과 비명 소리가 녹음된 테이프를 틀어 주었다.

 

 

피해자의 저항

 

연구자는 교사에게 학생이 문제를 틀릴 때마다 전기 충격을 한 단계씩 높이라고 지시했다. 학생은 연구자와 모의한 대로 점점 더 많은 문제를 틀렸고, 그때마다 교사가 줘야 하는 전기 충격의 강도도 높아졌다.

 

교사가 식은땀을 흘리며 스위치 누르기를 망설이면, 연구자는 “당신이 계속하셔야 실험이 됩니다.”라고 하거나 “당신에게 다른 선택권은 없습니다.”와 같은 명령으로 압박했다.

 

전기 충격이 세질수록 학생의 신음 소리도 커졌다. 150볼트에는 “내가 심장이 안 좋다고 했었죠. 심장의 느낌이 좋지 않아요. 그만둘래요. 내보내 주세요.” 하고 외쳤다. 이후 학생은 지속적으로 실험 거부 의사를 밝히고 전기 충격을 가할 때마다 고통스러운 비명을 질렀다.

 

 

밀그램의 연구가 불편한 이유

 

만일 우리가 이런 실험에 참여해서 교사역을 맡았다면 학생 역을 맡은 사람에게 최대 몇 볼트까지 전기 충격을 주었을까? ‘나라면 450볼트까지 주었을 거야.’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실제로 밀그램은 실험에 참여하지 않은 학생과 일반인을 대상으로 이러한 실험에 450볼트까지 충격을 줄 사람이 얼마나 될지 예상해 보라고 하였다. 조사 대상자들의 대답을 알아본 결과 그럴 사람은 3% 정도 밖에 되지 않았다.

 

이러한 일반적인 예상과는 달리, 밀그램의 실험에 참여했던 사람들 가운데 62.5퍼센트가 ‘처음 보았고, 인상이 좋게 생겼으며, 심장이 좋지 않고, 전기 충격을 멈추라고 애원했던 중년의 남성’에게 450볼트의 전기 충격을 준 것으로 나타났다.

 

심지어 학생이 전기 충격 판에서 손을 떼지 못하도록 참가자에게 절연 장갑을 끼고 강제로 학생의 손을 붙잡아 전기판에 누르게 한 연구에서도 30% 가량의 참가자들이 끝까지 연구자의 명령에 복종하였다. 밀그램의 연구는 여느 선량한 사람도 그가 놓인 상황에 따라서 대량 학살의 하수인처럼 행동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복종 실험의 결과가 발표되자 많은 사람이 연구 결과에 충격을 받은 동시에 불편해했다. 연구 결과는 많은 사람이 가지고 있던 인간에 대한 믿음과 정면으로 배치되었고, 자유 의지를 지닌 인간이 권위자의 명령에 꼭두각시처럼 움직이는 존재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더구나 “당신도 악마가 될 수 있다.”라고 말하는 듯한 밀그램의 연구는 자신이 선한 존재라고 믿었던 사람들에게 충분히 위협적이었다.

 

 

나의 폭력을 합리화하는 방법, 책임 전가

 

밀그램의 실험에 참여한 사람들이 아무런 양심의 가책도 느끼지 않고, 무고한 상대에게 전기 충격을 가한 것은 아니었다. 이들은 고통을 호소하는 상대방의 외침을 들으면서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고 갈등했다. 이러한 스트레스와 갈등을 해결해 준 것은 바로 자신이 모든 책임을 지겠다고 한 연구자의 말이었다.

 

예일대학교 소속의 과학자가 “내가 모든 책임을 질 테니 계속하세요.” 하고 말했을 때, 참가자들은 책임감의 측면에서 면죄부를 받은 느낌이었다. 명령을 내린 권위자에게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돌릴 수 있다고 생각할 때, 사람들은 자신이 피해자에게 가하는 비합리적이고 비이성적인 폭력을 합리화할 수 있는 것이다.

 

밀그램의 실험에서 150볼트의 전기 충격은 이 참가자가 전기 충격을 450볼트까지 줄지를 예측할 수 있는 결정적인 순간이다. 150볼트의 충격을 가하면 공모자는 강력히 실험을 거부한다. 이 시점이 바로 참가자가 가장 크게 갈등하는 순간이다. 이 순간에 멈추지 않은 사람들 중에는 80% 가량이 450볼트까지 충격을 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50년 뒤, 21세기의 복종

 

밀그램의 실험이 이루어진 지도 어느덧 50년이 넘었다. 그동안 개인의 자유와 인권에 대한 인식은 훨씬 높아졌다. 만일 밀그램의 복종 실험을 지금 다시 한다면 이전처럼 많은 사람이 권위자의 비합리적인 명령에 순순히 따를까? 시대가 변했으니 권위를 대하는 사람들의 방식도 변했을까?

 

미국 산타클라라대학교의 제리 버거(Jerry Burge) 박사는 21세기에 밀그램의 실험을 다시 재현할 수 있는지 알아보았다. 밀그램의 실험 이후 심리학 연구에서 실험 참가자에 대한 보호 조치는 실험 수행의 가장 중요한 선결 요건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제리 버거는 대학교의 생명윤리위원회로부터 전기 충격의 최대치를 150볼트까지로 제한하기로 하고 실험을 승인받았다.

 

실험 결과에 따르면, 150볼트 스위치를 누르자 학생 역할의 공모자가 고통을 호소하며 실험을 멈춰달라고 했으나 참가자의 70% 가량이 실험을 계속하겠다는 의사를 표명했다. 앞서 언급했듯이, 150볼트는 참가자가 전기 충격을 450볼트까지 줄지를 예측할 수 있는 결정적인 순간이다.

 

따라서 제리 버거의 연구 결과는, 밀그램 실험 이후 50년이 더 지난 지금도, 선량한 시민들이 권위자의 명령에 따라 아무 잘못도 저지르지 않은 또 다른 선량한 시민에게 치명상을 입히는 고통을 가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

 

 

저항의 결정적 시기

 

인류의 역사에서 벌어진 많은 폭력과 학살의 출발은 권위자의 작지만 부당한 명령에서부터 시작된 경우가 많다. 권위자의 부당한 명령은 작은 것에서부터 시작해서 점점 강한 폭력과 학살의 수준에까지 도달한다. 따라서 부당함을 느끼고 그것 때문에 스스로 심리적으로 갈등을 경험하는 순간(밀그램의 실험에서는 150볼트 충격을 준 직후)이 바로 저항의 결정적 시기가 된다.

 

이 순간에 저항하지 못하면 우리는 끝내 저항하지 못하게 된다. 작은 부당함에 바로 저항하지 않으면, 우리는 머지않아 더 큰 부당함에 매우 쉽게 복종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른다.

 

* 전우영 - 충남대학교 심리학과 교수. 무료 온라인 공개 강좌 서비스인 케이무크(K-MOOC)에서 일반인들을 위해 쉽게 디자인한 ‘심리학 START’를 강의하고 있다. 「나를 움직이는 무의식 프라이밍」, 「내 마음도 몰라주는 당신, 이유는 내 행동에 있다」 등을 펴냈다.

 

[경향잡지, 2018년 9월호, 전우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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