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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 하느님 앞에서 모든 피조물은 평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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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7-04-05 ㅣ No.1381

[새로봄] 하느님 앞에서 모든 피조물은 평등하다

 

 

국내 전체 사육 가금류 1억 6천 525마리 중 3천33만 마리(18.3%) 살처분(2017년 1월초 기준)!

 

지난해 11월 발생해 최단 기간에 최악의 피해를 초래한 AI 대란은 이제 ‘축산 재앙’으로까지 여겨진다. 발생 50일 만에 전국 10개 시·도로 급속히 번지고 인간도 감염될 수 있는 고병원성 AI로 확진되자 매일 60만 마리꼴로 가금류가 살처분된 것이다.

 

이뿐만 아니다. 올 2월 초, AI의 진정세가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구제역(소·돼지 등 발굽이 두 갈래로 갈라진 동물에게만 발생하는 바이러스성 급성전염병)까지 발생해 국내 축산업은 엎친 데 덮친 격 초비상이 걸렸다. AI와 구제역 등 거의 매년 반복되는 축산 재앙에, 경제적·사회적 피해는 매년 증가하고 있으며, 안전한 먹거리에 대한 국민의 불신과 불안도 커져만 가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AI나 구제역은 더 이상 축산업계만의 문제가 아닌 우리 모두의 문제다.

 

이에, 축산재앙의 원인 중 하나로 꼽히는 공장식 가축농장 시스템(공장식 축산)과 정부가 축산 재앙의 해법으로 고집하는 대규모 살처분을 살펴보고, 동물권에 관해 생각해 보자. 창세기는 인간과 마찬가지로 동물 역시 하느님이 창조하신 피조물로 존귀한 가치를 지닌다고 말한다. 저비용 고생산을 위해 동물을 상품으로 인식하는 현실에서, 하느님의 자녀로서 우리는 이 사태를 어떻게 바라보고 또 어떤 노력을 할 수 있을지 조언정 목사(전 농촌목회자 연대회의 회장)의 이야기를 들어 보았다.

 

 

지난해 발생한 AI가 해를 넘기고도 진정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정부는 방역활동으로 대규모의 살처분을 감행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을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매년 AI가 발생할 때마다 살처분되는 가금류의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습니다. 그로 인한 경제적 손실과 대규모 살상이 우리 사회에 미치는 영향은 상당하다고 생각합니다. 경제적 손실은 차치하더라도 생매장에 가까운 대규모 살상 과정은 가축을 직접 키운 농민을 비롯한 방역 인력, 수의사, 공무원에 이르기까지 살처분 과정에 참여한 모든 사람에게 크나큰 정신적 고통을 줍니다. 산채로 매장당하는 가축들이 지르던 비명이 귓전에서 떠나지 않아 환청에 시달리는 이들도 많다고 들었습니다.

 

또한, AI가 발생하면 반경 3km 내의 가축들은 모두 살처분됩니다. AI에 전염되지 않았더라도 그 범위 안에 있다면 무조건 살처분 대상인 거죠. 일본의 경우, 우리와 비슷한 상황이라도 살처분하는 가축의 수가 많아야 130-150만 마리 정도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번에 우리나라에선 3천여만 마리가 살처분되었다고 하지요. 알 낳는 기계인 양 많은 닭을 좁디좁은 공간에 몰아넣고 항생제를 투여해 가며 달걀을 얻는 공장식 축산방식은, 생산적인 측면에서는 이익일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런 환경에서 자란 닭들은 항생제 외에는 자신을 지킬 면역력이 남아 있지 않습니다. 그러니 전염병이 돌기 시작하면 속수무책으로 감염될 수밖에 없고, 게다가 좁은 공간에 밀집돼 있으니 무서운 속도로 전파될 수밖에 없습니다.

 

AI에 대한 근본적인 해법을 찾기보다 살처분만이 해법이라 여기는 정부의 태도가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축산업 관계자가 아니라도 우리 역시 이러한 상황을 심각하게 바라봐야 합니다. 우리의 이웃인 농민, 방역 인력, 수의사, 공무원의 일이기도 하고, 무엇보다도 우리의 생명을 유지해 주는 먹거리와 관련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과도한 육식 수요를 맞추기 위한 육류의 대량 생산 및 공급 과정(공장식 축산)에서 가축은 ‘생명’이 아닌 ‘상품’으로 인식되고, 동물의 생명은 경시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성경에서 동물권과 생태질서에 관해 어떤 메시지를 읽어 낼 수 있을까요?

 

창세기에서,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창조하시고 그 모든 것이 하느님 보시기 좋았다고 하셨습니다(창세 1장). 즉 모든 생명은 - 그것이 어떤 모습을 지녔든 - 하느님이 보시기 좋은 창조물로 생명의 권리가 있습니다.

 

또한, 하느님께서는 인간에게 하느님이 창조한 그 모든 것들을 잘 다스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창세 1,28). 그런데 여기서 ‘잘 다스리라’고 하신 말씀은 인간이 동물을 포함한 모든 피조물을 지배하거나 착취하고 이용하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것들을 잘 돌보고 관리함으로써 하느님이 창조하신 세상이 그분의 창조 질서대로 잘 유지되도록 하라는 말씀입니다.

 

즉 인간은 다른 모든 피조물을 돌보라는 하느님의 명령을 받은 하느님의 청지기입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청지기로서 피조물을 돌보고 보살필 책임이 있습니다. 그렇기에 인간은 동물을 지배하거나 착취해서는 안되고 오히려 동물의 권리를 보장해야 합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하느님의 넘치는 은총의 결과입니다. 하느님은 창조를 통해 모든 피조물과 관계를 맺고 계신다고도 말합니다. 그렇기에 하느님은 인간에게만 관대하신 분이 아니라 모든 동물에게도 같은 마음을 갖고 계십니다. 하느님 앞에서는 우리 인간도, 동물도, 다른 모든 피조물도 평등한 존재인 것이지요. 이러한 하느님의 관대함을 통해 우리는 ‘동물권’을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동물권이라고 하면 예전에는 동물이 고통받지 말아야 할 권리, 즉 동물이 학대받지 않을 권리가 중심이었다면, 이제는 더 나아가 동물도 행복하게 살 권리, 즉 행복한 생활을 할 수 있는 환경에서 살아야 한다는 동물 생활권이 부각되고 있습니다.

 

일례로 일부 국가에서는 조류에게 최소한 4평의 생활 공간을 주며, 만약 살처분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면 동물들이 고통을 느끼지 않을 방법으로 해야 하고 또 그것이 2차 피해를 가져오지 않도록 관리 규정을 법제화했다고 합니다. 물론 우리나라도 구제역 사태를 겪은 이후 살처분 관련 규정을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현실에서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습니다.

 

공장식 축산은 이런 의미에서 ‘동물권’에 크게 어긋납니다. 인간중심의 삶을 살게 되면서, 모든 피조물이 하느님 앞에서 평등하다는 것도, 하느님의 청지기로서 하느님이 만드신 피조물을 보살피고 돌볼 책임이 우리에게 있다는 것도 잊어버린 듯합니다.

 

가축을 키우고, 육류 소비가 늘다 보니 언젠가부터 동물은 하나의 생명체라기보다 대형마트에 진열된 상품, 여러 먹거리 중 하나로 전락했습니다. 물론 내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다른 생명을 섭취하는 것은 불가피합니다. 하지만 그 먹거리에 감사한 생각보다는 그저 하나의 상품으로만 인식하게 된 것이 문제인 것이지요.

 

그러다 보니 동물을 상품으로 대량 생산할 생각을 하게 되었고, 그것을 반영한 것이 오늘날의 공장식 축산입니다. 그 과정에서 생산량을 높이기 위해 가축에게 항생제 등을 무분별하게 남용하고, 그것이 결국 가축의 면역력 저하로 이어져 AI가 한번 닥치면 가축 재앙에 가까운 상황이 되어 버리는 겁니다.

 

예전에도 AI, 조류독감은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그때는 주로 자연 상태에서 키웠기에 가축들이 자생할 수 있는 면역력을 가졌습니다. 바이러스가 들어오더라도 스스로 이겨 낼 수 있었죠. 많은 양을 생산할 순 없었지만 건강한 가축에게서 건강한 먹거리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의 공장식 축산은 육류를 대량 생산하는 장점이 있으나 항생제로 겨우 버티는 약한 개체에게서 그 정도의 먹거리를 얻을 뿐입니다.

 

이와 더불어 매년 반복되는 AI로 인한 경제적 손실, 농민들의 고통, 사회적 비용 등을 생각한다면 공장식 축산의 효율성이나 경제성이라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 걸까요? 어찌 보면 우리들의 크나큰 착각일 수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먹거리에 대해 깊이 성찰해야 할 이유입니다.

 

 

더 이상 가축 재앙을 당하지 않으려면 하느님의 청지기로서 우리 신앙인은 무엇을 해야 할까요?

 

공장식 축산의 문제점과 한계를 제대로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육류 소비에 대한 인식 전환도 함께 이루어지면 좋겠습니다. 내가 먹는 음식이 내 몸은 물론 사회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그리고 내가 먹는 것들이 어떤 과정을 통해 내게 오는지에 대해 관심을 둘 필요가 있습니다. 이처럼 동물권에 대한 국민 의식이 깨어 있다면 한 발 더딘 정책들을 보완할 수 있지 않을까요?

 

이에 관해 교회의 역할도 중요하리라 생각합니다. 신앙교육과 더불어 실생활에서, 하느님의 청지기로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어떤 먹거리를 선택하고 먹어야 하는지 등에 대해 분명히 알려야 합니다. 왜냐하면 내가 먹는 것이 내 몸이 되고 내 생각이 되고 나를 만들어 갈 뿐만 아니라 사회에도 영향을 끼치기 때문입니다.

 

* 조언정 목사는 감리교 소속으로 협성대에서 신학을 공부하였고, 우리농축산물먹기 국민운동 본부 사무국장, 한국기독교 농촌목회자 연대회의 회장을 역임하였다. 현재 팔당마실교회 담임목사이며, 앉은뱅이밀을 살리기 위한 노력으로 앉은뱅이 밀국숫집을 운영하고 있다.

 

[성서와함께, 2017년 3월호, 이기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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