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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문헌ㅣ메시지

세계주교대의원회의 제15차 정기총회 예비 문서(주제: 젊은이, 신앙과 성소 식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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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7-04-03 ㅣ No.825

주교대의원회의 사무처


세계주교대의원회의 제15차 정기총회 예비 문서

 

 

서문

 

“내가 너희에게 이 말을 한 이유는,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고 또 너희 기쁨이 충만하게 하려는 것이다”(요한 15,11). 이는 제삼천년기의 모든 젊은이를 예외 없이 포함한 모든 세대의 모든 이를 위한 하느님의 계획이다.

 

복음의 기쁨을 선포하는 것은 주님께서 당신 교회에 맡기신 사명이다. 새로운 복음화에 관한 세계주교대의원회의와 교황 권고 「복음의 기쁨」(Evangelii Gaudium)은 이 사명을 오늘날 세상에서 완수하는 방법에 관하여 다루었다. 그리고 가정에 관한 두 번의 세계주교대의원회의와 후속 교황 권고 「사랑의 기쁨」(Amoris Laetitia)은 가정들이 이러한 기쁨을 발견하도록 도와주는 데에 전념하였다.

 

이러한 사명에 따라 ‘젊은이, 신앙과 성소 식별’이라는 주제로 개최하는 세계주교대의원회의를 통하여 새로운 접근법을 소개하면서 교회는 젊은이들이 충만한 삶과 사랑을 향한 부르심을 깨닫고 받아들이도록 그들을 이끌 수 있는 방법에 대하여 연구하기로 결정하였다. 그리고 교회가 오늘날 세상에서 기쁜 소식을 선포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에 대하여 젊은이들에게 도움을 청하기로 하였다. 젊은이들에게 귀 기울이며 교회는 다시 한번 오늘날 세상에서 주님께서 해 주시는 말씀을 들을 것이다. 사무엘(1사무 3,1-21 참조)과 예레미야(예레 1,4-10 참조)의 시대와 마찬가지로 젊은이들은 성령께서 보여 주시는 우리 시대의 표징을 식별하는 방법을 안다. 젊은이들의 열망에 귀 기울이며 교회는 세상의 앞날을 예견할 수 있고, 또한 교회가 따르도록 부름 받은 길을 볼 수 있다.

 

모든 이에게 사랑의 성소는 일련의 선택을 통하여 날마다 구체적인 모습을 갖추며, 이는 혼인, 성품 직무, 봉헌 생활과 같은 삶의 상태와 직업, 사회적 정치적 의무의 형태, 생활방식, 시간과 돈의 관리로 표현된다. 이러한 선택들이 기꺼이 맡은 것이든 그저 받아들인 것이든, 또는 의식적이든지 무의식적이든지 이러한 선택을 하는 데에서 그 누구도 제외되지 않는다. 성소 식별의 목적은 신앙에 비추어 그러한 선택들을 모든 이가 부름 받은 온전한 기쁨을 향한 단계로 변화시키는 방법을 발견하는 것이다.

 

교회는 “젊은이들의 힘과 아름다움”의 바탕을 알고 있다. “다시 말해, 일의 시작에서 기뻐하고, 후회 없이 자신을 온전히 내어놓으며, 새로운 정복을 위해서 다시 일어나 시작하는 능력”이다(제2차 바티칸 공의회, 젊은이들에게 전하는 메시지, 1965.12.8.). 풍요로운 교회의 영적 전통은 양심의 형성과 참된 자유로 이끄는 많은 자원을 제공한다.

 

이를 명심하며, 이 예비 문서는 하느님의 백성 전체의 자문을 구하는 세계주교대의원회의 단계를 시작한다. 이 문서는 일련의 질문들을 끝으로 마무리되며, 동방 가톨릭 자치 교회들의 시노드, 각국 주교회의, 교황청 부서들, 세계남자수도회장상연합회에 전달된다. 또한 이러한 자문에는 모든 젊은이들에게 웹사이트를 통하여 그들의 기대와 생활에 대하여 질문하는 것도 포함될 것이다. 이 질문들에 대한 답변은 의안집의 초안을 잡는 데에 기초가 될 것이며, 이를 시노드 교부들이 토론하는 데 참조할 것이다.

 

이 예비 문서는 세 단계의 성찰, 곧 젊은이들이 그 안에서 성장하고 결정을 내리는 세상의 사회적 문화적 역동성을 먼저 요약 서술하며 신앙에 비추어 이러한 역동성을 해석할 것을 제안한다. 그러고 나서 이 문서는 식별 과정의 기본 단계를 되짚어 본다. 교회는, 교회가 젊은이들에게 제공할 수 있는 이러한 식별 과정으로 젊은이들이 신앙의 빛 안에서 자신들의 성소를 발견할 수 있다고 여긴다. 끝으로, 이 문서는 젊은이들을 위한 성소 사목 프로그램의 요점들을 다룬다. 그러므로 이 문서는 완전하지는 않지만 더 심도 있는 토론을 권장하는 일종의 안내서와 같은 것이다. 이 토론의 결과는 세계주교대의원회의를 마치며 나올 것이다.

 

 

사랑하시는 제자의 발자취

 

복음에서 그려지는 요한 사도의 모습은 이 과정의 시작에 영감을 줄 수 있다. 전통적으로 네 번째 복음서에 나오는 요한은 예수님을 따르기로 결정한 젊은이와 “예수님께서 사랑하시는 제자”(요한 13,23; 19,26; 21,7)의 본보기가 된다.

 

“예수님께서 지나가시는 것을 눈여겨보며 말하였다. ‘보라,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다.’ 그 두 제자는 요한이 말하는 것을 듣고 예수님을 따라갔다. 예수님께서 돌아서시어 그들이 따라오는 것을 보시고, ‘무엇을 찾느냐?’ 하고 물으시자, 그들이 ‘라삐, 어디에 묵고 계십니까?’ 하고 말하였다. ‘라삐’는 번역하면 ‘스승님’이라는 말이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와서 보아라.’ 하시니, 그들이 함께 가 예수님께서 묵으시는 곳을 보고 그날 그분과 함께 묵었다. 때는 오후 네 시쯤이었다. 요한의 말을 듣고 예수님을 따라간 두 사람 가운데 하나는 시몬 베드로의 동생 안드레아였다. 그는 먼저 자기 형 시몬을 만나, ‘우리는 메시아를 만났소.’ 하고 말하였다. ‘메시아’는 번역하면 ‘그리스도’이다. 그가 시몬을 예수님께 데려가자, 예수님께서 시몬을 눈여겨보며 이르셨다. ‘너는 요한의 아들 시몬이구나. 앞으로 너는 케파라고 불릴 것이다.’ ‘케파’는 ‘베드로’라고 번역되는 말이다”(요한 1,36-42).

 

자신들의 삶에서 의미를 찾고 있던 세례자 요한의 두 제자는 예수님께로부터 “무엇을 찾느냐?”라는 날카로운 질문을 듣는다. 제자들은 “라삐, 어디에 묵고 계십니까?” 하고 말하였다. “‘라삐’는 번역하면 ‘스승님’이라는 말이다.” 예수님께서는 다음과 같은 초대로 그들에게 응답하신다. “와서 보아라.”(요한 1,38-39). 또한 예수님께서는 어떻게 전개될지 잘 알지 못하는 내적 여정을 시작하고 실제로 나아갈 준비를 하라고 부르신다. 이는 그들이 그날의 정확한 시간까지도 기억할 만큼 인상적인 만남이었다(요한 1,39 참조).

 

제자들은 가서 보려는 용기 덕분에 그리스도의 변치 않는 우정을 체험할 것이고 날마다 그분과 함께 걸어갈 수 있게 될 것이다. 제자들은 그분 말씀을 깊이 생각하고 그분 말씀에서 힘을 얻고 그분 행동에 깊이 영향을 받고 감동을 받게 될 것이다. 특히 요한은 스승님의 수난과 부활의 증인이 되는 부르심을 받을 것이다. 친밀한 그들 관계는 마지막 만찬에서 요한이 예수님의 가슴에 자신의 머리를 기대고 그분이 하시는 모든 말씀을 믿도록 이끌어 줄 것이다. 시몬 베드로를 따라 대사제의 집에 가서 요한은 고통과 외로움의 밤을 보내게 될 것이다(요한 18,13-27 참조). 십자가 아래에서 요한은 자신에게 맡겨진 예수님 어머니의 깊은 슬픔을 견디며 그분을 돌보는 책임을 받아들이게 될 것이다(요한 19,25-27 참조). 부활 아침에 요한은 베드로와 함께 희망을 품고 미친 듯이 텅 빈 무덤을 향해 달려 갈 것이다(요한 20,1-10 참조). 마침내 요한은 갈릴래아 호수에서 기적의 고기잡이를 하면서 부활하신 주님을 알아보고 온 공동체에 그분을 증언할 것이다(요한 21,1-14 참조). 요한의 모범은 성소 체험이 내적 식별과 신앙 성장의 점진적 과정이라는 것을 이해하는 데에 도움을 줄 수 있으며, 이는 삶과 사랑의 충만한 기쁨을 발견하도록 이끌어 주어 자기 자신을 내어 주고 기쁜 소식을 선포하도록 이끈다.

 

 

제1장


오늘날 세상의 젊은이들

 

이 장은 사회나 젊은이들의 세상을 포괄적으로 분석한 것은 아니지만 성소 식별 문제를 다루는 데에 유용한 사회 연구 결과로 “그러한 결과가 우리 마음 깊이 다가오게 하고, 이에 따른 윤리적 영적 여정을 위한 구체적 기초를 마련해 주도록”(프란치스코, 회칙 「찬미받으소서」[Laudato Si’], 15항) 한다.

 

국제적 차원에서 이 주제에 접근할 때에 각 지역의 구체적인 환경에 적용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세계적 흐름을 판단하여 지구상의 여러 다른 지역에서 나타나는 차이점을 고려하는 것은 중요하다. 여러 면으로, 젊은이들에 대하여 말할 때에 이 세상에는 한 가지만 있는 것이 아니라 다양성이 존재한다고 말하는 것이 옳다. 이러한 다양성 가운데에서 일부는 특히 주목할 만하다. 첫째 다양성은 인구학에서 나오는 것으로, 인구학에서는 젊은이들이 인구 증가량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고출산 국가와 인구가 감소하는 나라를 구분한다. 두 번째 다양성은 역사를 바탕으로 하는 것으로, 이는 잃어버려서는 안 되는 초기 그리스도교 전통과 문화를 지닌 나라와 대륙을 다른 종교 전통과 문화를 지닌 나라와 대륙, 곧 그리스도인이 소수이고 흔히 최근 들어 생겨나는 곳과 구분한다. 마지막으로 잊어서 안 되는 것은 성별, 곧 남성과 여성에서 나오는 차이점이다. 성별은 현실에 대한 다른 시각을 결정하고 또 한편으로 여러 가지 형태의 지배와 배척과 차별의 바탕이 되며, 이는 모든 사회가 극복하여야 하는 것이다.

 

이어지는 내용에서 ‘젊은이’라는 단어는 대략 16세에서 29세인 이들을 말하는 것이나, 이 단어는 지역적 상황에 따라 조정되어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여야 한다. 어떠한 경우에라도 사람을 지칭할 때 덧붙이는 ‘젊은이’라는 단어는 모든 세대가 동일하지 않게 나름대로 이해하고 있는 삶의 단계라는 것을 기억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1. 빠르게 변하는 세상

 

변화와 변모의 빠른 과정은 현대 사회와 문화의 주된 특징이다(「찬미받으소서」, 18항 참조). 이러한 과정의 매우 복잡한 속성과 속도는 이전에는 결코 경험해 보지 못한 유동성과 불확실성을 초래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은 온전히 관심을 기울이고 장기적으로 계획하는 능력을 요구하며, 이러한 현상이 문제인지 또는 기회인지를 미리 판단하지 말고 그것을 견디어 내어야 하며 내일을 위한 오늘의 선택의 결과라는 것을 명심하여야 한다.

 

커져 가는 불확실성은 취약한 상태, 곧 사회적 불안정과 경제적 어려움 그리고 인구 대다수의 삶의 불안정이 결합된 상태를 초래한다. 일자리와 관련해서 이러한 상황은 실업과 노동 시장의 유동성 증가, 특히 미성년자 착취가 있으며, 환경 요인을 포함하는 일련의 정치 경제 사회 전반적 원인들이 난민과 이민의 수가 압도적으로 증가하는 데 대한 설명이 된다. 경제의 세계화 과정에서 생겨나는 기회를 이용할 수 있는 일부 특권층과 비교되는 많은 이들이 그들의 삶의 방향과 선택에 영향을 미치는 위태롭고 불안전한 상황에서 산다.

 

세계적으로, 현대 세계는 ‘과학’에 바탕을 둔 문화를 특징으로 하고 흔히 기술과 과학이 약속하는 끊임없는 가능성에 압도되며, 이러한 문화에서 “특히 많은 젊은이들이 여러 슬픔과 외로움에 빠져드는 것처럼 보인다”(프란치스코, 교황 교서 「자비와 비참」[Misericordia et Misera], 3항 참조). 교황 회칙 「찬미받으소서」에서 말한 것처럼 기술 만능주의적 기준과 단기 이익에 대한 광적 추구가 뒤얽혀 있는 것은 “버리는 문화”의 바탕이며, 이는 많은 젊은이들을 포함한 수많은 이들을 배척하고 자연 자원의 무차별적 착취와 환경 파괴를 야기하며, 다가올 세대의 미래를 위협하는 것이다(「찬미받으소서」, 20-22항 참조).

 

많은 사회가 더욱 더 다문화적 다종교적으로 되어 가고 있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특히 다양한 종교 전통의 존재는 도전이며 기회이다. 이러한 상황은 불확실성과 상대주의의 유혹을 야기할 수 있지만, 또한 이는 유익한 대화와 서로를 풍요롭게 해 줄 가능성을 높여 줄 수 있다. 신앙의 관점에서 이러한 상황은 우리 시대의 표징으로 여겨지며, 더욱 경청하고 존중하고 대화할 것을 요구한다.

 

 

2. 새로운 세대

 

오늘날의 젊은 세대는 부모님과 교육자들의 세대와는 다른 세상에서 살고 있다. 경제적 사회적 변화는 의무와 기회 전반에 영향을 미쳤다. 또한 젊은이들의 열망과 요구와 감정과 타인과 맺는 관계의 방식도 달라졌다. 게다가 어떤 관점에서 보면 세계화 때문에 젊은이들은 세계 모든 곳에서 더욱 동질화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이들은 지역 환경과 고유한 문화와 제도적 틀 안에 머물러 있으며, 이는 사회화되고 개인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과정에 영향을 미친다.

 

다문화의 도전은 특별한 방식으로 젊은이들의 세계에 존재한다. 예를 들어, ‘제2세대’, 다시 말해 이민으로 자신의 부모와는 다른 사회와 문화에서 성장한 젊은이들, 또는 어떠한 의미로는 민족성과 문화와 종교의 관점이 ‘서로 다른’ 부모의 자녀들이라는 특별한 특징들이 있다.

 

세계 많은 곳에서 젊은이들은 삶에서 참된 선택을 어렵게 하는 구체적 고난을 겪고 있다. 이들에게는 심지어 자유를 행사할 최소한의 가능성이 없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가난과 배척을 경험하는 젊은이, 부모나 가족 없이 성장하거나 교육을 받지 못하는 젊은이, 여러 교외 길거리에서 사는 어린이와 젊은이, 청년 실업자, 강제 추방된 이와 이민들, 착취와 인신매매와 노예살이의 피해자, 강제로 범죄 폭력단이나 유격전에 동원되는 젊은이들, 자신의 뜻에 반하여 강제로 조혼하는 소녀들이 포함된다. 세계의 너무 많은 곳에서 어린 시절 없이 바로 성인이 되어 선택의 여지가 없는 책임을 지는 사람들이 있다. 종종 아주 어린 여자 아이와 젊은 여성들이 자기 또래들보다 훨씬 더 큰 어려움에 직면하기도 한다.

 

국제적 차원에서 실시된 연구는 우리 시대의 젊은이들의 두드러진 특징들을 발견하는 데에 도움이 될 수 있다.

 

 

소속과 참여

 

젊은이들은 자신들을 사회적으로 혜택을 받지 못하는 계층이나 또는 보호를 받아야 하는 사회 집단, 그래서 사목 프로그램이나 정책의 대상이 되는 수동적 수혜자로 여기지 않는다. 많은 젊은이들은 현 시대에 일어나는 변화의 과정에서 능동적 역할을 하여 풀뿌리 차원에서 참여와 혁신의 경험으로 다른 이들과 더불어 주요 선두 인물임을 확인 받고자 한다.

 

젊은이들은 개인적 기여로써 자신의 정체성을 인식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는 구체적인 활동에 자신을 헌신하고 기꺼이 참여할 준비가 되어 있음을 보여 준다. 다른 한편으로 젊은이들은 옳건 그르건 자신들이 참여할 기회나 격려를 받지 못한다고 느끼는 곳에서는 인내하지 못한다. 이는 ‘니트(NEET) 현상’의 확산이 보여 주듯이 젊은이들이 바라고 꿈꾸고 계획하는 의지를 단념하거나 무기력해지는 것으로 이어질 수 있다. 니트 현상은 학업이나 취업 상태에 있지 않으면서 취업 훈련도 받지 않는 사람, 다시 말해 진학이나 취업이나 직업 교육에 참여하지 않는 젊은이들을 일컫는다. 수동적이고 낙담한 젊은이들과 진취적이고 힘이 넘치는 젊은이들 사이의 차이는 자신이 성장하는 사회와 가정에서 각자에게 주어지는 구체적인 기회와 청년기에 들어서기 전에 형성된 존재감과 인간관계와 가치의 경험에서 오는 것이다. 수동성뿐 아니라 자기 자신과 능력에 대한 자신감의 결여는 자신의 이미지에 대한 지나친 관심과 일시적 유행에 굴복하여 따르는 데에서 드러난다.

 

 

개인적 제도적 기준점

 

여러 가지 연구는 젊은이들에게 가까이에 있으며 믿을 수 있고 일관되며 정직한 모범이 되는 사람이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 준다. 또한 젊은이들은 타인, 곧 어른과 또래와 관계를 맺는 자신의 능력을 시험하고 자신의 느낌과 감정을 조절할 수 있는 장소와 기회를 필요로 한다. 젊은이들은 평가 당한다는 느낌을 주지 않으면서도 공감해 주고 지원하고 격려해 주며 자신의 한계를 인식하도록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을 찾는다.

 

이러한 관점에서 부모와 가정의 역할은 중요하지만 때로는 문제가 되기도 한다. 위 세대는 종종 젊은이들의 잠재력을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그들은 젊은이들의 나약함을 강조하며 그들의 요구를 이해하는 데에 큰 어려움을 겪는다. 부모와 성인 교육자들은 또한 자신들의 실수를 알고 있으며 젊은이들이 그와 같은 실수를 하지 않기를 바란다. 그러나 종종 그들은 젊은이들이 미래에 집중하도록 도와줄 수 있는 방법을 잘 알지 못한다. 이러한 경우 두 가지 가장 공통된 반응은 포기하는 것 그리고 자신의 선택을 [젊은이에게] 강요하는 것이다. 무관심하거나 과잉보호하는 부모들은 그 자녀들이 삶을 직면할 준비를 부족하게 하고 내재된 위험을 과소평가하게 하거나 실수에 대한 두려움에 사로잡히게 만든다.

 

그러나 젊은이들은 성인들 가운데에서만 기준이 되는 사람을 찾고 있지 않다. 그들은 자기 또래 가운데에서 모범이 되는 사람을 찾고자 하는 강한 열망을 갖고 있다. 그래서 그들은 자기 또래와 자유롭게 상호 작용하여 자신들의 느낌과 감정을 표현하고 격식 없이 배우며 스트레스와 걱정 없이 역할과 능력을 시험할 수 있는 기회를 필요로 한다.

 

본래 개인적 인간관계 밖에 있는 이들을 경계하는 젊은이들은 종종 제도에 대한 불신과 무관심과 화를 키운다. 이는 사회뿐만 아니라 점차 교육 제도와 제도로서의 교회에도 작용한다. 젊은이들은 교회가 사람들에게 더욱 친근하게 다가가고 사회 문제에 더욱 관심을 가져주기를 바라지만, 이는 곧바로 일어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다.

 

이 모든 것은 젊은이들에게서 점점 더 종파에 소속되어 종교적 활동을 하는 것이 소수적 특성이 되는 상황에서 발생한다. 젊은이들은 비록 공공연히 ‘반대’하지 않지만, 복음에서 제시하는 하느님 ‘없이’ 그리고 교회 ‘없이’ 살아가는 법을 배우고, 대안적이거나 거의 제도화되지 않은 종교와 영성 형태에 의존하거나 또는 강렬한 소속감을 체험하는 종파나 종교적 체험에서 위안을 찾는다. 많은 곳에서 교회가 점점 덜 받아들여지고 있어 그 결과 교회를 마주하기가 더욱 어려워졌다. 반면 지배적인 문화는 그것이 전통적인 요소든지 또는 소비주의와 개인주의에 대한 지나친 강조를 특징으로 하는 세계화의 지역적 현실이든지 흔히 복음의 가치에 반대되는 것을 요구한다.

 

 

초(超)연결 세대를 향하여

 

오늘날 젊은 세대는 현대적 의사소통 기술과 실제적 영향력이 상당한 소위 ‘가상 세계’와 관계를 맺는다는 특징이 있다. 이 가상 세계는 이전 세대들이 누리지 못한 다양한 기회를 접할 수 있는 가능성과 그 위험성을 함께 제공한다. 그렇지만 기술적으로 매개된 관계의 경험이 세상과 현실과 인간관계의 개념을 어떻게 형성하는지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이를 바탕으로 교회는 교회의 사목 활동을 평가하라고 요청받으며, 이로써 바람직한 문화를 발전시키는 것이 필요하다.

 

 

3. 젊은이와 선택

 

앞서 간략하게 서술한 유동성과 불안함 안에서 성인의 삶으로 변화되고 개인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데에 ‘행동에 대한 성찰 과정’이 더욱 요구된다. 사람들은 자기 삶의 여정의 방향을 전환하고 끊임없이 자신들의 선택을 되돌리라고 강요받는다. 또한 서구 문화의 확산으로 자유의 개념은 더욱 새로운 기회에의 접근 가능성으로 나타나고 있다. 젊은이들은 미래에 다른 길을 선택할 수 없는 개인적 삶의 여정을 이어나가려고 하지 않는다. “오늘은 내가 이것을 선택하였지만, 내일은 두고 볼 일이다.” 직업의 세계뿐 아니라 애정 관계의 지평도 최종 선택보다는 언제나 번복할 수 있는 선택들로 구성된다.

 

이러한 맥락에서 예전의 접근법은 더 이상 효과가 없으며 세대를 이어 전수된 경험은 빠르게 구식이 된다. 값진 기회와 유혹적인 위험은 헤어 나오기 쉽지 않은 복잡한 관계로 얽혀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아마도 실수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의사 결정 과정이 지체되고 주도적으로 변화하기보다 마지막에야 변화를 수용하게 되지 않도록 적절한 문화적, 사회적, 영적 수단이 필요하다. “학문적 정서적 도전에 맞서도록 원대한 선택과 열정적 마음의 위대함과 담대함을 어떻게 다시 일깨울 수 있겠습니까?”라는 질문에 프란치스코 교황께서 이렇게 답변하신다. “제가 자주 사용하는 문구가 있습니다. 위험을 감수하십시오! 위험을 감수하십시오. 위험을 무릅쓰지 않는 사람은 걷지도 않습니다. ‘그런데 제가 실수하면 어쩌지요?’ 주님께서 축복해 주실 것입니다! 여러분이 가만히 있으면 실수를 더 많이 할 것입니다”(프란치스코, 2016년 6월 18일 나자렛 마을에서 하신 연설).

 

담대함과 열정적 마음을 다시 일깨우는 길을 찾을 때에는 예수님의 인성과 그분께서 선포하신 기쁜 소식이 계속해서 많은 젊은이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는 것을 고려하여야 한다.

 

젊은이들의 선택 역량은 불확실한 상황, 곧 직업을 구하려는 노력이나 일할 기회의 심각한 부재와 경제적 독립을 이루는 데의 장애, 경력 지속의 불가능 등의 어려움으로 방해를 받는다. 일반적으로 젊은 여성들이 이러한 장애를 극복하는 데에 훨씬 더 많은 어려움을 겪는다.

 

넓은 관점에서, 가정의 경제적 사회적 어려움, 젊은이들이 현대 문화의 특성을 받아들이는 방식, 그리고 새로운 기술의 영향 때문에 젊은이 교육이라는 과제에 응답하는 큰 역량이 요구된다. 베네딕토 16세 교황께서는 2008년 1월 21일 ‘젊은이 교육의 긴급성에 관하여 로마 시와 교구에 보내는 서한’에서 이러한 교육의 긴급성을 강조하셨다. 국제적 차원에서, 국가 간의 불평등과 이러한 불평등이 다양한 사회에 속한 젊은이들에게 주어지는 기회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하여야 한다. 게다가 문화적 종교적 요소들은 배척을 야기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성 불평등 또는 민족이나 종교적 소수자들에 대한 차별이 있으며, 이는 매우 진취적인 젊은이들을 이민으로 내모는 원인이 된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특히 확실한 공동 발전 계획에 투입시켜 개인이 기술 발전을 이루도록 하는 것이 시급하다. 젊은이들은 결과를 통해 자기 능력을 측정해 볼 구체적인 계획을 위하여 함께 일하기를 선택하고, 자신의 생활환경의 향상을 위한 지도력을 훈련하고, 생활과 일에 유용한 실용 기술을 습득하고 연마할 기회를 찾을 수 있음에 감사한다.

 

사회적 혁신은 새로운 세대의 환경을 완전히 뒤바꾸어 놓는 긍정적 참여를 이끌어내며, 이는 변화의 위험에서 보호만을 추구하는 패배자를 새로운 기회를 만들어 내는 변화의 주역으로 변화시켜 준다. 종종 수동적이고 미숙하다는 고정관념으로 포기되는 젊은이들이 세상이나 교회가 어떻게 변할 수 있는지를 보여 주는 대안을 제안하고 실천한다는 것은 중요하다. 만약 사회나 그리스도인 공동체가 다시 쇄신되기를 바라는 것이 있다면, 새로운 사람들이 행동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 주어야 한다. 다시 말해서 지속가능성의 원칙을 따르며 변화를 창출하려면 새로운 세대가 새로운 발전 모델을 체험할 수 있어야 한다. 이는 특히 책임 있는 자리를 맡고 있는 이들의 나이가 많고 세대교체의 속도가 느린 국가와 기관에서 어려운 문제이다.

 

 

제2장


신앙과 식별과 성소

 

이번 세계주교대의원회의의 모든 단계를 통해서 교회는 모든 젊은이와 예외 없이 만나고 동행하며 그들을 돌보고자 하는 교회의 뜻을 다시 한번 전하고자 한다. 교회는 젊은이들이 세상에서 고립되거나 배척을 당하게 내버려 두어서는 안 되고 그것을 바라지도 않는다. 젊은이들의 삶은 좋은 경험이 될 수 있고, 젊은이들은 폭력이나 죽음으로 그들의 삶을 잃어서는 안 되며, 실망감으로 가득하고 소외감을 느껴서는 안 된다. 이 모든 것은, 생명을 받고 신앙 안에서 세례를 받았으며 이러한 것이 위대한 선물들이라는 것을 인식하는 이들에게 중대한 관심사가 되어야 한다.

 

이러한 선물들 덕분에 사람은 탄생으로 충만한 삶을 약속받으며, 자신이 받아들여지고 배려 받고 있다는 것을 기본적으로 경험한다. 이러한 경험으로 저마다의 마음속에는 의미 없이 죽음의 어둠에 버려지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뿐 아니라 충만한 삶을 향한 여정에서 자신의 개성을 표현할 수 있다는 희망을 지니게 된다.

 

이러한 확신이 “세 가지 탄생”의 비유 안에서 어떻게 자리 잡고 있는지 이해하는 데 동방 교회의 지혜가 도움이 된다. 세 가지 탄생에서 첫째는 자연 출생, 곧 삶의 거처를 마련하고 지원해 주는 세상에서 남녀로 태어나는 것이다. 둘째는 세례를 통한 탄생으로 “은총을 통하여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다. 세 번째 탄생은 “이 세상에서의 육체적 삶에서 다음 세상의 영적 삶으로 가는 것”으로, 이는 사람에게 온전한 자유를 실천할 수 있는 길을 열어 준다(마부의 필로제누스 담화, 5세기 시리아 주교, 9항 참조).

 

자신이 받은 선물을 다른 이들에게 전해 주는 것은 삶의 취약함과 어려움에 대처해 나가는 그들의 여정에 동행하여 나란히 걸어가는 것, 특히 여전히 형성되어가고 있는 자유를 행사하도록 그들을 지원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프란치스코 교황께서 즉위 때에 권고하신 다음과 같은 방법으로 온 교회는 그 목자들부터 시작하여 자기 성찰을 하고 다른 이를 돌보는 성소를 재발견하라는 요청을 받는다. “돌보고 보호하는 데에는 선함이 필요합니다. 여기에는 어떤 부드러움이 요구됩니다. 복음에서 요셉 성인은 강인하고 용감한 사람, 노동자로 나오지만 우리는 그의 마음에서 커다란 부드러움을 봅니다. 이는 약자의 덕이 아니라 강한 영의 표징이며, 관심, 연민, 타인에 대한 참다운 개방, 사랑의 능력입니다”(프란치스코, 교황 즉위 미사 강론, 2013.3.19.).

 

이러한 관점에서 젊은이들과 동행하고 신앙으로 시작하며 교회의 전통에 귀 기울이는 데에 관한 생각들을 제시할 것이다. 그 분명한 목적은, 어떤 선택들은 항구하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으로 시작하여 젊은이들이 자신의 성소를 식별하고 삶의 근본적인 선택들을 하도록 하는 데 있다.

 

 

1. 신앙과 성소

 

신앙은 예수님이 보시는 것처럼 사물을 보는 것이다(프란치스코, 회칙 「신앙의 빛」[Lumen Fidei], 18항 참조). 신앙은 성소 식별의 원천이다. 신앙은 성소 식별의 근본 내용과 구체적 발전과 개인적 방식과 교육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은총의 선물을 기쁘고 기꺼이 받아들이는 것은 삶 속에서 구체적이고 일관된 선택을 통하여 그 선물의 결실을 거두는 것을 필요로 한다.

 

“너희가 나를 뽑은 것이 아니라 내가 너희를 뽑아 세웠다. 너희가 가서 열매를 맺어 너희의 그 열매가 언제나 남아 있게 하려는 것이다. 그리하여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청하는 것을 그분께서 너희에게 주시게 하려는 것이다.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것은 이것이다. 서로 사랑하여라”(요한 15,16-17). 젊은이들이 저마다 자신의 실존적 삶에서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하느님께서 모든 젊은이의 마음에 외치시는 근본적 부르심이 바로 사랑의 기쁨에 대한 성소라면, 신앙이란 저 높은 곳에서 온 선물이고 자신이 선택 받고 사랑 받은 데 대한 응답이다.

 

신앙은 “소심한 이들을 위한 피난처가 아니라 우리 삶을 향상시켜 주는 것이다. 신앙은 위대한 부르심, 곧 사랑을 향한 부르심을 인식하게 하고, 그 사랑이 믿을 만하고 투신해 볼 만한 것임을 보증하다. 사랑은 우리의 모든 약함보다 더 굳건하신 하느님의 충실성에 그 바탕을 두기 때문이다”(?신앙의 빛?, 53항). 이러한 신앙은 “모든 사회적 관계를 비추는 빛이 되어” 우리 시대의 모든 이 가운데 “보편적 형제애”(「신앙의 빛」, 54항)를 쌓는 데에 기여한다.

 

성경에는 부르심을 받고 응답하는 젊은이들의 이야기가 많이 실려 있다. 신앙에 비추어 이들은 저마다를 위한 하느님의 심오한 사랑의 계획을 더욱 더 깨닫게 된다. 이는 하느님께서 이 세상을 ‘좋은’ 곳, 곧 생명을 받아들일 수 있는 곳이요 믿음의 관계망 안에서 선물로 주어진 곳으로 창조하셨을 때부터 당신의 모든 활동 안에 담으신 지향이다.

 

믿는다는 것은 성령께 귀를 기울이는 것이고, 정신과 감정의 모든 힘을 다하여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요한 14,6 참조) 말씀과 대화하는 것이며, 말씀을 믿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믿는다는 것은 구체적인 일상생활의 상황들에서, 십자가를 만나는 순간에, “사랑하시는 제자”가 그랬듯이 부활의 표징을 보고 기쁨을 체험하는 때에 ‘그 말씀을 육화시키는’ 것이다. 이것이 모든 그리스도인 공동체와 모든 믿는 이가 직면하는 과제이다.

 

이러한 대화를 위한 자리는 양심이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가르침대로 양심은 “인간의 가장 은밀한 핵심이며 지성소이다. 거기에서 인간은 홀로 하느님과 함께 있고 그 깊은 곳에서 하느님의 소리를 듣는다”(현대 세계의 교회에 관한 사목 헌장 「기쁨과 희망」[Gaudium et Spes], 16항). 그러므로 양심은 약속을 기꺼이 받아들이라는 초대를 드러내는 불가침의 자리이다. 성령의 목소리와 다른 부름들을 구별하고, 어떻게 응답할지를 결정하는 것은 각자의 책무이다. 다른 이들이 동행해 주고 지지해 줄 수 있지만, 이들이 그 자리를 대신해 줄 수는 없다.

 

삶과 역사는 인간이 쉽게 그러한 기쁨의 구체적 모습을 깨달을 수 없다는 것을 가르쳐 준다. 하느님께서는 이 기쁨으로 저마다를 부르시며, 변화와 불확실성이 만연한 현시대에서도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은 이 기쁨을 갈망한다. 어떤 경우에는 낙담 또는 성취에 이르는 길을 멈추게 하는 다른 감정적 집착의 압박감을 이겨내야 한다. 많은 이들이 이것을 경험한다. 예를 들어,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아들이지 못하게 지나치게 많은 재물을 가지고 있던 젊은이는 이 때문에 온전한 기쁨을 느끼기보다는 슬퍼하며 떠나갔다(마르 10,17-22 참조). 인간의 자유는 언제나 정화되고 완성될 필요가 있을지라도, 선을 알아보고 이를 행하는 근본 능력을 결코 잃지 않는다. “인간은 최악의 것을 자행할 수 있지만, 또한 자신을 억압하는 모든 정신적 사회적 제약을 극복하여 자신에게서 벗어나 다시 선을 선택하며 새롭게 시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찬미받으소서」, 205항).

 

 

2. 식별의 선물

 

불확실한 상황에서 내적 동력들의 갈등을 겪으면서 결정을 내리고 자기 행동의 방향을 잡는 것은, 다양한 상황에 대하여 교회가 전통적으로 적용해 온 고전적 개념인 식별을 이행하는 자리이다. 사실, 식별의 형태 가운데 하나는 시대의 표징을 읽는 것이며, 이는 역사 안에서 성령의 현존과 활동을 인식하도록 이끌어 준다. 그러나 도덕적 식별은 선과 악을 구별하는 것이다. 식별의 또 다른 형태인 영적 식별은 유혹을 인식하고 이를 거부하며 충만한 삶으로 나아가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이러한 형태들이 가지고 있는 여러 의미들이 연결되어 있음은 분명하며, 이러한 연결로 식별들은 서로 완전히 분리되어 있을 수 없다.

 

이를 명심하면서 이 세계주교대의원회의에서 초점을 맞추는 것은 성소 식별이며, 이는 한 사람이 주님과 대화하고 성령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면서 자기 삶의 현실로부터 시작하여 근본적 선택들을 해 나가는 과정을 말한다. 어떻게 자아실현의 기회를 놓치지 않을 수 있을까 하는 질문은 모든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다. 이러한 질문은 믿는 이들에게 훨씬 더 진지하고 심오해진다. 다시 말해서, 어떻게 복음의 기쁜 소식을 실천할 것이며, 만나는 모든 사람을 부르신 주님께 혼인이나 성품 직무나 봉헌 생활을 통하여 어떻게 응답할 것인가? 자기 재능을 자신의 직업, 자원 봉사, 가난한 이들에 대한 봉사 또는 사회적 정치적 참여 활동에서 어떻게 잘 활용할 것인가?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그 자체로는 불명확하고 모호하더라도, 여러 가지 해석에 열린 마음을 지니고 있다면, 성령께서는 그러한 일들을 통하여 말씀하시고 행동하신다. 그 일들의 의미를 드러내고 결정을 내리는 데 필요한 것이 식별이다. 「복음의 기쁨」 51항에서 식별을 설명하려고 사용하는 세 동사, 곧 ‘인식하다’, ‘해석하다’, ‘선택하다’는, 사실 서로 다른 단계들이 명확히 경계 지어질 수 없음을 충분히 의식하면서 개인이나 단체 그리고 공동체를 위한 적절한 여정을 계획하는 데에 도움이 될 수 있다.

 

 

인식하기

 

특히 ‘인식하기’는 삶에서 벌어지는 일들과 만나는 사람들과 자신이 듣고 읽는 말들이 어떻게 자신의 내면생활에 영향을 주는지에 관한 것이다. 곧, 다양한 “욕망, 느낌, 감정”(「사랑의 기쁨」, 143항)과 그 여러 표현들인 슬픔, 우울, 성취감, 두려움, 기쁨, 평화, 공허함, 온유함, 분노, 희망, 무관심과 같은 감정들과도 관련되어 있다. 사람은 기쁠 때나 슬플 때에 어떠한 행동을 취하여야 하는지를 명확하게 알지 못하면서 여러 갈래 길로 마음이 끌리거나 힘들어하기도 하며 때로는 내적 갈등을 겪게 된다. ‘인식하기’는 이러한 풍성한 감정을 밝혀내고, 이러한 감정들을 판단하지 않으면서 확인할 것을 요구한다. 이는 또한 경험한 것과 속마음 사이의 일치나 불일치로 존재하는 ‘잔상’을 알아차리도록 요구한다.

 

이러한 단계에서 하느님 말씀이 가장 중요하다. 사실 하느님 말씀을 묵상하는 것은 내적 감동을 가져오는 온갖 경험이 그러하듯이 열정을 불러일으키면서, 그 열정이 발현될 수 있게 하고 하느님 말씀이 설명하는 사건들 안에 그러한 열정을 기울일 수 있게 해준다. ‘인식하기’의 단계에서는 침묵의 노고를 기울이기를 피하지 않으면서 경청하는 능력과 자신의 느낌과 감정에 초점을 맞춘다. 이는, 특히 여러 가지 강렬한 열망들을 느끼면서도, 이 열망들이 주는 중압감에 겁먹어 그들이 나아가야 할 위대한 전진을 포기해서는 안 되는 젊은이들의 개인적 성장을 위한 결정적 단계이다.

 

 

해석하기

 

무엇을 시도하고 있는지를 ‘인식하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그 다음 단계는 ‘해석하기’이며, 이는 다시 말해 성령께서 한 사람 한 사람 안에서 일깨우신 것을 통하여 무엇을 하라고 하시는지 이해하는 것을 말한다. 사람들은 잠시 멈춰 서서 어떤 경험을 이야기하면서, 그 경험이 ‘깊은 인상’으로 남았다고 말하곤 한다. 한 사람이 체험하는 열망과 감정의 근원과 그 의미를 이해하고, 그러한 열망과 감정이 자신을 건설적인 방향으로 나아가게 하는지 아니면 자기 안에 숨어들어가게 만드는지 확인하는 것은 더욱 어려운 일이다.

 

이러한 해석 단계는 매우 민감한 단계로, 이는 인내하고 깨어 있을 것을 요구하며 분명한 앎까지 필요로 한다. 사회적 심리적 조건의 영향을 고려할 수 있어야 하며, 무얼 해야 좋을지 추상적 이론화의 함정에 빠지지 않으면서 지력을 발휘하는 것도 요구된다. 식별을 하는 데에도 “실재가 생각보다 더 중요하다”(「복음의 기쁨」, 231항). 마찬가지로 ‘해석하기’는 현실을 직시하고 실제로 이룰 가능성을 고려하여야 한다.

 

열망과 내면의 움직임을 ‘해석하는 것’은 하느님 말씀에 비추어 그리스도인 생활의 도덕적 요구들을 성실하게 마주해야 한다는 것이며, 그러한 요구들을 체험하고 있는 구체적 상황에 적용하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이러한 노력을 기울이는 사람은 최소한의 법적 논리에 만족하기보다는 자신의 선물과 가능성을 최대한 활용하는 길을 찾아 젊은이들에게 매력적이고 영감을 주는 메시지를 만들어 낸다.

 

해석 활동은 개인의 능력을 온전히 기울이는 가운데 주님과 내적 대화를 나누면서 이루어진다. 그러나 성령께 귀 기울이도록 경험이 풍부한 사람의 도움을 받는 것은 교회가 베푸는 소중한 지원이며, 이러한 지원을 무시하는 것은 현명하지 못한 일일 것이다.

 

 

선택하기

         

모든 열망과 감정을 인식하고 해석한 후에 결정의 다음 단계는 참된 인간 자유와 책임을 실천하는 것이다. 이는 물론 언제나 구체적 상황과 관련되어 있어 제한적이다. 그런데 선택은 맹목적 충동에 좌우되며, 현대의 상대주의는 이러한 충동을 끊임없는 변화 속에 사람을 가두는 궁극적 기준이요 규범으로 두기에 이른다. 동시에, 사람은 외부의 힘들, 곧 타율로부터 자유롭다. 이 모든 것은 자신의 삶과 일관성을 이룰 필요가 있다.

 

오랜 역사 안에서 삶에 대한 기본적인 결정을 당사자가 하지 못해 왔고, 제1장에서 이미 언급된 바와 같이 일부 세계에서는 여전히 그러한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과거의 관행들을 온전히 버리고 참된 자유와 책임 있는 선택을 증진하는 것은 모든 중대한 성소 사목 프로그램의 목적이다. 식별은 양심을 대체하려고 하지 않으면서 양심의 침해받을 수 없는 자리를 보호할 수 있도록 하는 주된 방법이다(「사랑의 기쁨」, 37항 참조).

 

어떤 결정이 옳은 결정인지 아닌지는 사실들로 증명되어야 한다. 선택은 현대 문화에서 강조되는 실제적 위험인 가상이나 비현실일 수도 있는 내면에 갇혀 있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선택은 행동으로 옮겨지고 실체가 되어 길을 나서며 열망과 감정을 불러일으킨 현실을 직면하는 위험을 수용하도록 한다. 이 단계에서 다른 열망과 감정이  생겨날 것이다. 이러한 열망과 감정을 ‘인식하는 것’, 그리고 ‘해석하는 것’은 결정이 올바른지 또는 그것을 재평가하는 것이 바람직한지 알아볼 수 있게 할 것이다. 결과적으로, 비록 실수할 수 있다는 두려움이 있고, 앞에서 본 바와 같이, 손상을 입을 수 있더라도 [밖으로]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3. 성소와 사명으로 향하는 길

 

성소의 발전을 이야기하면서, 비록 특별한 순간이나 결정적 만남을 확인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성소 식별은 하나의 행동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인생에서 중요한 모든 일들과 마찬가지로 성소 식별은 시간이 걸리는 긴 과정이다. 이 시간 동안 개인적이고 고유한 성소 그 자체를 가리키고 구체화하시려고 주님께서 사용하시는 표징들에 지속적으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주님께서는 아브라함과 사라이에게 그들의 고향을 떠나라고 하셨다. “내가 너에게 보여 줄 땅”(창세 12,1)은 처음에는 미지의 땅이었고 실수의 과정들이 없지 않았으나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 마침내 분명해졌다. 성모님께서는 비록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당신이 들으신 말씀과 일어난 일을 마음속에 간직함으로써 당신의 소명을 더욱 잘 이해하실 수 있게 된다(루카 2,50-51 참조).

 

시간은 어떤 결정의 유효성을 확인하는 데 근본적인 것이다. 성경 전체에서 배울 수 있듯이, 모든 성소는 주저하면서든 열정으로든 맡은 사명을 향해 나아간다.

 

사명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자기 목숨의 위험을 기꺼이 감수하고 예수님의 발자취를 따라서 십자가의 길을 떠난다는 것을 의미한다. 예수님께서는 굳건한 마음으로 예루살렘에 가시어(루카 9,51 참조) 인류를 위하여 당신 목숨을 내어놓으셨다. 자신의 요구에만 이기적으로 매여 있기를 포기할 때에만 그 사람은 가정생활, 성품 직무 또는 봉헌 생활에서 하느님의 계획에 순응하도록 열려 있을 수 있으며, 자신의 직분을 진지하게 수행하고 공동선을 충실히 추구하게 된다. 특별히 개인주의가 더욱 두드러진 문화에서는, 자기완성의 추구가 자기애의 결과인지 아니면 너그러이 자신을 내어주는 데 마땅히 자신의 삶을 바치려는 것인지 선택들을 점검할 필요가 있다.

 

결론적으로 가난하고 취약하고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이들을 만나는 것은 성소 식별의 길에서 매우 중요하다. 무엇보다 신학교에서 양성 담당자들은 신학생들이 기꺼이 ‘양의 냄새’로 흠뻑 젖을 수 있는지를 확인하고 그렇게 되도록 양성하여야 한다.

 

 

4. 동반

 

식별 과정은 세 가지 기본적 믿음을 바탕으로 한다. 이러한 믿음은 모든 인간의 경험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으며 신앙과 그리스도교 전통의 빛으로 이해된다. 첫째 믿음은, 하느님의 영께서는 생각과 인상과 계획에 연관된 감정들과 열망들을 통하여 모든 인간의 마음 안에서 일하신다는 것이다. 인간은 귀 기울여 들으며 이러한 신호들을 해석할 수 있다. 둘째 믿음은, 인간의 마음은 대개 나약함과 죄 때문에, 여러 가지 감정, 심지어 상반되는 감정들에 끌리기 때문에 분열된다는 것이다. 셋째 믿음은, 어떠한 생활 방식이건 선택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이다. 사람은 무한정 미결 상태로 머무를 수 없기 때문이다. 인간은 사랑의 기쁨으로 이끄시는 하느님의 부르심을 알아들고 그것에 응답하기로 결정하는 데에 필요한 도구들을 선택하여 한다.

 

교회의 영적 전통은 이러한 도구들 가운데에서 개인적 동반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다른 이와 동반할 때에, 식별에 관한 가르침을 연구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성령의 활동을 깨닫기 위하여 마음의 움직임을 이해할 수 있는 실질적이고 개인적인 경험을 필요로 한다. 성령의 목소리는 각 개인의 고유성에 맞갖게 말씀하실 수 있다. 개인적 동반에는 성령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지속적인 섬세한 감수성이 필요하며, 이를 통해 한 사람의 개성에 담긴 자원과 풍요로움을 발견하게 된다.

 

개인적 동반에서는 인간과 하느님의 관계를 증진하고 이러한 관계를 방해하는 것을 없애도록 도와주는 것이 중요하다. 이러한 면에서, 식별 때의 동반과 심리적 도움 사이에 차이가 있다. 심리적 도움은, 초월성에 열려 있기만 하다면, 종종 기본적으로 중요하다. 심리학자들을 어려움에 처한 이들을 지원하고 그들이 자신의 약점과 가능성을 깨달을 수 있도록 도와준다. 영적 안내는 인간이 주님을 향하도록 방향을 재조정해 주고 주님과의 만남을 위한 기초를 마련해 준다(요한 3,29-30 참조).

 

복음에 기록된 것처럼 예수님께서 당시 사람들을 만나신 것을 살펴보면 젊은이의 성소 식별에 동반하는 사람이 지녀야 할 이상적 모습을 분명하게 알 수 있다. 이는 곧 사랑 가득한 눈길(첫 제자들을 부르심, 요한 1,35-51 참조), 권위 있는 말씀(카파르나움의 회당에서 가르치심, 루카 4,32 참조), ‘이웃이 되는’ 능력(착한 사마리아인의 비유, 루카 10,25-37 참조), ‘곁에서 걷겠다.’는 선택(엠마오로 가는 제자들, 루카 24,13-35 참조), 그리고 두려움 없이 선입견에 맞서는 참된 증거를 보여 줌(마지막 만찬 때에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심, 요한 13,1-20 참조)이다.

 

젊은 세대와 동반하는 임무를 수행하는 가운데 교회는 젊은이의 믿음을 좌우하려는 유혹에 빠지기보다 그들의 기쁨을 위하여 협력하라는 부르심을 받아들인다(2코린 1,24 참조). 그러한 봉사는 결국 모든 개인을 이끄시고 깨우쳐 주시는 성령의 선물을 간청하고 기도하는 데에 바탕을 두고 있다.

 

 

제3장


사목 활동

 

어떻게 교회는 젊은이들이 복음의 기쁨에 대한 자신들의 소명을, 특히 불확실하고 변덕스러우며 불안한 이 시기에 받아들이도록 도울 수 있는가?

 

이 장의 목적은 사목적 배려와 성소 식별이라는 도전에 진지하게 응답하고, 이 일에 관련된 사람들, 이러한 안내가 필요한 장소들 그리고 가용 자원들에 관하여 성찰하는 데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젊은이들에 대한 사목적 배려와 성소 지도는 비록 겹치는 부분이 있기는 하지만 뚜렷한 차이가 있다. 다음의 개략적 설명은 이 주제를 온전히 다루려는 것은 아니고, 각 지역 교회의 경험을 토대로 더 정교하게 다듬어야 하는 지침들을 제공한다.

 

 

1. 젊은이들과 함께 걷기

 

젊은이들과 동행하려면 선입견을 버릴 필요가 있으며, 그들이 있는 그 자리에서 만나고, 그들 삶의 시기와 속도에 적응하며, 그들을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이렇게 해야 하는 이유는, 젊은이들은 자신들이 살아가는 현실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며, 자신들의 이력을 쌓고자 날마다 시도하는 일들 그리고 삶의 의미를 찾으려는 거의 의식적인 노력 안에서 말이나 행동으로 얻게 되는 메시지를 활용하고자 노력하기 때문이다.

 

주일마다 그리스도인들은 성찬례 거행에서 주님을 만남으로써,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다가 부활하신 주님에 대한 기억을 생생하게 되살린다. 많은 어린이가 교회의 신앙 안에서 세례를 받고 그리스도교 입문의 여정에 참여한다. 그러나 이것은 성인이 되어 신앙생활을 선택하는 것과는 같지 않다. 이렇게 선택하기까지는 교회 공동체들과는 매우 동떨어진 낯선 장소들과 때로는 예측할 수 없는 길들을 포함하는 여정을 거쳐야 한다. 이와 관련하여, 프란치스코 교황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성소를 위한 사목 직무는 예수님의 방식에서 배워야 합니다. 그분께서는 일상생활의 현장들을 서두르지 않고 지나가시다가 멈추셔서 자비로이 우리의 형제들을 바라보시고, 그들이 하느님 아버지와 만날 수 있도록 이끌어 주십니다”(성소 사목에 관한 국제회의 참가자들에게 하신 연설, 2016.10.21.). 젊은이들과 함께 걷는 것은 그리스도교 공동체 모두를 자라나게 한다.

 

제안된 메시지에 분명히 젊은이들의 자유가 포함되어 있기에, 모든 공동체는 젊은이들을 개인적으로 대하고 또 그들의 개인적 발전을 도울 수 있는 창의적 방법을 중요하게 여겨야 한다. 많은 경우에, 이 일에는 새로운 것에 대한 허용을 배우는 것과, 선입견 때문에 새로운 것을 억누르지 않는 것이 포함된다. “‘우리는 늘 이렇게 해 왔습니다.’라고 말하는 안이한 태도”와 닫힌 마음으로 접근하고, “저마다 자기 공동체가 지닌 복음화의 목표와 조직, 또 그 양식과 방법을 과감하게 창의적으로 재고”(「복음의 기쁨」, 33항)하는 사람들이 없다면, 성소의 씨앗은 아무런 열매도 맺을 수 없다. 예수님께서 당시 사람들을 만나시는 방식을 묘사하려고 복음서에서 사용한 세 동사, 곧 ‘나가다’, ‘보다’, 그리고 ‘부르다’는 사목 방식을 채택할 때에 도움이 될 수 있다.

 

 

나가기

 

이러한 의미에서, 성소 사목은 프란치스코 교황의 초대를 받아들이는 것을 뜻한다. ‘나가기’는, 우선 복음의 기쁨을 선포하는 일에 대한 신뢰를 떨어트리는 완고한 태도를 버리는 것이다. ‘나가기’는, 사람들을 옴짝달싹 못 하게 하는 견고한 틀을 버리는 것이다. 그리고 ‘나가기’는, 때때로 구식인 교회의 행동 방식을 버리는 것이다. ‘나가기’는, 판에 박힌 듯한 활동들과 관심사들에서 해방되어 누리는 내적 자유의 표징이기도 하며, 그리하여 젊은이들이 자신들의 삶에서 주인공이 될 수 있다. 젊은이들은 자신들의 구체적이고 고유한 기여가 그리스도인 공동체에서 환영받는 것을 볼 때에, 교회에서 더 큰 매력을 발견할 것이다.

 

 

보기

 

젊은이들의 세계로 ‘나가는 것’은, 기꺼이 그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그들의 삶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며 그들의 기쁨, 희망, 슬픔, 걱정에 주의를 기울이고, 그들과 함께하려는 모든 노력을 요구한다. 이렇게 하여 복음의 토착화가 이루어지고 복음이 모든 문화, 심지어 젊은이들에게까지 흘러들어 간다. 예수님께서 당시 사람들을 만나시는 이야기에서, 복음서는 그분께서 사람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시는 능력과 더불어 눈길을 주고받은 사람들에 대한 호소력을 명확하게 강조한다. 이것은 모든 참된 목자에게도 똑같이 적용된다. 참된 목자는 강제적이거나 위협적이지 않게 사람의 마음 깊숙이 들어갈 수 있다. 이것이 참된 식별의 바라봄이고, 다른 사람의 양심을 손아귀에 넣으려 하거나 하느님 은총의 통로를 미리 결정하려 하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자신의 사고의 틀을 버리는 데서 시작한다.

 

 

부르기

 

복음서에 따르면, 예수님의 사랑 어린 눈길은 다음의 말씀으로 변모된다. 그 말씀은 수용하고 탐구하고 건설해야 하는 새로운 삶을 향한 부르심이다. 무엇보다도, 부르심은 열망을 깨우는 것이며, 사람들을 가로막는 것이나 나태하게 만드는 안일함에서 벗어나도록 하는 것이다. 부르심은 아직 답변이 준비되지 않은 질문을 던지는 것을 의미한다. 이렇게, 그리고 수동적으로 규범을 존중하는 것이 아닌 방식으로, 여정을 시작하고 복음의 기쁨과 만나야 한다.

 

 

2. 주체


예외 없이, 모든 젊은이

 

사목 활동에서, 젊은이들은 대상이 아니라 주체이다. 때때로, 사회는 그들을 중요하지 않고 귀찮은 존재로 간주한다. 교회는 그러한 태도를 반영할 수 없다. 젊은이는 누구나 예외 없이 인생 여정에서 동행 받을 권리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각 공동체는 젊은이들, 특히 빈곤과 소외와 배척을 경험하고 있는 젊은이들에게 주의를 기울이고, 자신들의 삶에 관심을 갖도록 이끌어야 한다. 극심한 빈곤과 역경, 폭력, 전쟁, 질병, 장애와 고통의 한가운데서 살아가는 젊은이들에게 가까이 가는 것은 성령의 특별한 선물이며, ‘나가는’ 교회가 수행하는 올바른 행동 방식을 참되게 드러낼 수 있다. 교회 자신은 젊은이들에게서 배워야 할 소명이 있다. 젊은이들 가운데 많은 성인들은 이 사실에 빛을 비추는 증인이 되며, 계속해서 모든 이에게 영감을 주고 있다.

 

 

책임 있는 공동체

 

모든 그리스도인 공동체는 새 세대들을 교육할 책임감을 느껴야 한다. 사실, 교회 생활에서 이 일의 책임을 맡은 이들부터 시작하여 이 일에 연관된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마땅히 인정을 받아야 한다. 복음 생활의 선익과 기쁨을 날마다 증언하는 사람들의 노고도 동등하게 칭송받아야 한다. 마지막으로, 교회는 교구와 본당 공동체의 조직에 젊은이들이 참여하는 것을 매우 중요하게 여겨야 한다. 사목평의회부터 시작하여, 젊은이들이 창의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들어 주고 비록 그들의 생각이 어렵고 힘들어 보일지라도 그것을 수용할 필요가 있다.

 

세계 모든 곳에서, 젊은이들이 성장과 식별의 중요한 경험을 할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하여 제공할 수 있는 본당들, 수도회들, 단체들, 운동들 그리고 교회 실재들이 존재한다. 때때로, 계획 수립이라는 측면에서 준비 결여와 기술 부족이 드러나기도 하고, 올바르고 일관적이며 효과적인 방식으로 젊은이들을 위한 사목 프로그램들을 생각해 내고 현실화하며 조정하고 이행하는 일에 더욱 매진함으로써 극복해야 하는 상황도 있다. 그러한 일에는 또한 교육 책임자들의 구체적이고 지속적인 준비가 필요하다.

 

 

기준 인물

 

신망이 두터운 어른들의 역할과 협력은 인간적 발전과 성소 식별의 과정에서 기본이 된다. 여기에서 요구되는 권위 있는 신자들은 분명한 신원, 교회에 대한 강한 소속감, 눈으로 확인되는 영성, 강한 교육열 그리고 뛰어난 식별력을 갖추어야 한다. 그러나 때때로 준비가 되지 않고 미숙한 어른들이 사람을 소유하려 하고 조종하려는 태도로 행동하며, 부정적 의존성과 극심한 불이익과 심각한 반(反) 증거를 유발하는데, 이는 심지어 학대 수준까지 악화될 수도 있다.

 

신망이 두터운 인물들을 얻으려면 그들에 대한 교육과 지원, 심지어 주요 교육 기법 전수까지 해 주어야 한다. 특히 이것은 성품 직무와 봉헌 생활에 대한 부르심에 응답하려는 성소 식별에 동반자 역할을 하는 사람들에게 적용된다.

 

부모와 가족. 부모와 가족이 수행하는 교육은 누구도 대체할 수 없는 역할이라는 사실을 모든 그리스도인 공동체가 인정해야 한다. 먼저, 부모는 가정에서 날마다 부부 사이와 부모 자식 사이를 묶는 사랑을 통하여 모든 사람에 대한 하느님의 돌보심을 표현한다. 이와 관련하여, 프란치스코 교황께서는 「사랑의 기쁨」에서 이 주제에 대해 특별히 한 장을 할애하여 귀중한 가르침을 주셨다(259-290항 참조).

 

영혼들의 목자. 젊은이들에게 자신의 시간과 자원을 쏟아 그들과 참으로 함께하는 성직자들과, 이타심의 증거들을 보여 주는 봉헌 생활자들을 만나는 것은 새 세대들의 성장에 결정적이다. 이와 관련하여, 프란치스코 교황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저는 특별히 교회의 목자들인 주교님들과 신부님들에게 당부합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인 성소와 사제 성소에 관한 주요 책임자들이며, 이 일을 관료적 사무실에 미뤄 두어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도 다른 사제들, 곧 본당 신부, 고해 사제, 영성 지도자의 도움으로 하느님 사랑의 아름다움을 경험하여 인생이 바뀐 체험을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도, 나가서, 젊은이들에게 귀를 기울이십시오, 여기에는 인내심이 필요합니다! 여러분은 그들이 자기 마음의 움직임을 이해하도록 도울 수 있고, 그들의 발걸음을 인도할 수 있습니다”(성소 사목에 관한 국제회의 참가자들에게 하신 연설, 2016.10.21.).

 

교사와 교육 종사자. 많은 가톨릭 교사들이 대학교들과 온갖 등급과 수준의 학교들에서 증인 역할을 하고 있다. 또한 많은 사람들이 일터에서 열심히 유능하게 활약하고 있다. 또 다른 신자들은 시민으로 살아가면서, 더 정의로운 사회를 위한 누룩이 되려고 노력한다. 사회에서 봉사 활동을 하는 많은 사람들이 공동선과 피조물 보호를 위하여 자신들의 시간을 봉헌한다. 수많은 사람들이 열정적이고 너그러운 마음으로 여가 활동과 스포츠에 참여한다. 이 모든 사람들은 자신들이 받아들여 충실하고 헌신적으로 실천하고 있는, 인간으로서 또 그리스도인으로서 자기 소명을 증명하고 있으며, 자신들을 바라보는 사람들 안에 그와 비슷하게 행동하고자 하는 열망을 불러일으킨다. 그러므로 자기 고유의 소명에 너그럽게 응답하는 것이야말로 성소 사목을 수행하는 으뜸가는 방법이다.

 

 

3. 장소


일상생활과 사회 참여

 

어른이 된다는 것은 일상생활에서 기본적인 동시에 중요한 부분, 곧 시간과 돈의 사용, 생활 방식 그리고 재화와 용역을 이용하는 건전한 방법, 학업과 여가 생활, 의복과 음식, 정서 생활과 성생활을 비롯한 삶의 측면들을 독립적으로 꾸려 나가는 법을 배우는 것을 뜻한다. 젊은이들에게 이러한 배움은 불가피하게 하나의 투쟁이며, 또한 자신들의 삶과 우선순위에 어떤 질서를 부여하는 기회이기도 하고, 식별을 실천하고 매우 중요한 결정을 내려 인생의 방향을 확고히 설정하는 행동 방침을 선택하는 실험이기도 하다. 더욱 참된 신앙일수록, 일상생활에서 더 많은 도전을 받고 또 그러한 도전을 허용한다. 때로는 힘들고 문제가 많으며 일자리도 부족한 직업 세계에서 겪는 경험들은 특별히 언급할 가치가 있다. 그러한 경험들은 각자의 소명을 받아들이거나 숙고할 기회이기도 하다.

 

가난한 이들이 부르짖고 있으며, 땅도 그들과 함께 부르짖는다. 가난한 이들과 땅의 부르짖음에 귀를 기울이는 것은, 주님과 교회를 만나고 자신의 소명을 발견하는 참된 기회이다. 프란치스코 교황께서는 공동의 집을 돌보고 가난한 이들의 삶의 질을 배려하는 공동체 활동은 “자기 자신을 내주는 사랑을 표현할 때에 강렬한 영적 체험이 될 수 있으며”(「찬미받으소서」, 232항), 그러므로 인생 여정과 성소 식별에서 하나의 기회이기도 하다고 가르치신다.

 

 

구체적 사목 활동 현장

 

교회는 젊은이들에게 만남, 문화적 형성, 교육, 복음화, 경축과 봉사를 위한 구체적인 현장들을 제공하며, 각각의 모든 사람을 열린 자세로 받아들이는 것을 최우선으로 여긴다. 이러한 현장들과 관련 사목 종사자들의 도전은 점점 더 젊은이들에 대한 통합적 연락망을 발전시키고, ‘나가기’, ‘보기’ 그리고 ‘부르기’라는 적절한 활동 방식을 채택하는 것이다.

 

- 세계청년대회는 전 세계 차원에서 단연 돋보이는 행사이다. 주교회의들과 교구들은 점점 더 젊은이들을 위하여 특별 행사와 체험을 제공할 책임감을 느낀다.

 

- 본당들은 젊은 세대들을 위한 행사, 활동, 시간 그리고 일정을 제공한다. 성사 생활은 젊은이들에게 삶에서 하느님의 선물을 받아들이는 능력을 키울 근본적 기회들을 제공하며, 교회 사명에 적극 참여하라는 초대이기도 하다. 젊은이들을 위한 수련원과 기도원은 그들에 대한 교회의 관심을 드러내는 표지이다.

 

- 대학교들과 가톨릭 학교들은 그들의 귀중한 문화적 교육적 봉사 덕분에 젊은이들 가운데 여전히 교회가 현존한다는 또 하나의 표지가 된다.

 

- 사회 활동들과 자원 봉사는 이타적 봉사의 기회들을 제공한다. 이러한 점에서, 사회에서 소외된 이들과 가난한 이들을 만나는 것은 영적 성장과 성소 식별에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다. 가난한 이들은 어떤 가르침을 줄 수 있고, 참으로 그들은 자신이 나약함 가운데 체험하는 구원의 기쁜 소식을 전달하기 때문이다.

 

- 교회 운동들과 단체들, 그리고 수많은 영성 센터들은 젊은이들에게 구체적인 식별 프로그램들을 제공한다. 선교 체험들은 이타적 봉사와 보람 있는 교류의 기회가 된다. 인생 여정의 한 형태요 방식으로 재발견된 순례는 귀중한 가치가 있으며, 매우 고무적이다. 많은 지역에서, 대중 신심은 젊은이들의 신앙을 유지해 주고 자라게 한다.

 

- 신학교들과 양성소들은 전략적 중요성을 지닌다. 이들은 하느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는 젊은이들에게 철저한 공동체 생활과 함께 체험들을 제공하며, 다시 그 젊은이들이 다른 사람들의 동반자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디지털 세계

 

이미 전체적으로 언급하였듯이, ‘새로운 매체’(new media)의 세계는 특별한 주의를 기울일 만한 가치가 있다. 특히 젊은 세대들에게 그것은 참으로 중요한 삶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새로운 매체’는 특히 정보에 접근하거나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들과 관계를 맺을 때에 많은 새로운 기회를 제공한다. 그러나 이는 또한 사이버 폭력, 도박, 외설물, 대화방의 숨은 위험, 이념 조작과 같은 위험들을 안고 있다. 이 분야는 지역에 따라 다양한 차이를 보이지만, 그리스도인 공동체는 여전히 이 새로운 ‘아레오파고스’에서 자신의 존재를 확장시키고 있다. 여기에서 분명히 그리스도인 공동체는 젊은이들에게서 배울 것이 있다.

 

 

4. 자원들


사목 활동의 표현 수단

 

비록 성경, 전례, 예술, 교리 교육 그리고 대중 매체의 영역에서 교회 활동과 젊은이들의 기대 속에 많은 유익한 만남들이 이루어지지만, 교회는 때때로 젊은이들에게  이야기할 때에 적절한 표현과 언어를 찾는데 어려움을 겪는다. 많은 사람은, 교회가 다른 사람들 사이에서 젊은이들의 표현 수단을 사용하며 젊은이들의 창조력과 재능을 인정하고 그 중요성을 보여 줌으로써 젊은이들을 교회 활동 안에 의미 있게 참여시킬 수 있기를 꿈꾼다.

 

특별한 의미에서, 스포츠는 여러 방식으로 기회를 주기 때문에 교육 자원이라고 할 수 있다. 음악을 비롯하여 다른 예술적 표현도 그 자체로 젊은이들이 자기 개성을 드러낼 수 있는 수단이며 젊은이들의 특권이기도 하다.

 

 

교육적 배려와 복음화의 길

 

공간 점유를 넘어서는 과정들의 시작이 요구되는 청년 사목 활동은, 무엇보다도 각 개인의 인간적 성장을 위한 봉사의 중요성과 그것을 뒷받침할 수 있는 교육 자료를 제시한다. 복음화와 교육 사이에는 유익하고 유기적 관계가 존재하는데, 오늘날 이 관계에서는 자유의 점진적 성숙이 고려되어야 한다.

 

과거 상황과는 반대로, 신앙 접근 방법들이 덜 표준적이며, 따라서 각 사람의 개성에 더욱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는 사실에 교회가 익숙해질 필요가 있다. 여전히 그리스도교 입문의 전통적 단계들을 따르는 사람들도 있지만, 많은 이들이 다른 방식으로 인생의 늦은 시기에, 예컨대 정의를 위한 투신, 신망 있는 증인들과 교회 밖에서 접촉함으로써 주님과 신자 공동체를 만난다. 각 사람을 받아들이고, 유다인, 사마리아인, 그리스 문화권의 이교도들, 그리고 로마 점령군과 이야기하신 예수님의 모범을 따르며, 그들 각자의 내밀한 열망들을 짚어 내는 것은 공동체들에게 도전이다.

 

 

침묵, 관상 그리고 기도

 

마지막으로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으로, 주님과의 친밀감을 기르지 않고 그분 말씀 곧 성경 말씀과 함께하는 시간을 늘리지 않는다면 어떠한 식별도 불가능하다. 특히, ‘렉시오 디비나’는 교회 전통에서 끊임없이 따르고 있는 귀중한 방법이다.

 

점점 더 소란스러워지고 자극이 넘쳐 나는 사회에서, 청년 사목의 기본 목표는 침묵과 관상의 가치를 향유할 기회를 제공하고, 각자의 경험들을 이해할 수 있도록 교육을 받고 자신의 양심에 귀를 기울일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다.

 

 

5. 나자렛의 마리아

 

성모님께 세계주교대의원회의 과정을 맡겨 드린다. 이 과정에서 교회는 사랑의 기쁨과 충만한 삶으로 부르시는 하느님을 젊은이들이 받아들일 수 있도록 그들의 동반자가 되고 있는지 스스로 반성한다. 나자렛의 젊은 여인이였던 마리아는 자기 삶의 모든 단계마다 하느님 말씀을 받아들였으며, 그것을 마음속에 간직하고 곰곰이 되새겼으며(루카 2,19 참조), 이 여정을 완수한 최초의 사람이었다.

 

각 젊은이는 성모님의 삶에서 듣는 법을 배우고, 신앙의 용기를 찾으며, 식별과 헌신적 봉사의 심오함을 발견할 수 있다(루카 1,39-45 참조). 동정녀께서는 “비천함”을 지니셨기에, 요셉과 약혼한 뒤 인간적 나약함을 경험하셨고 하느님의 신비로운 뜻을 이해하는 데에 어려움을 경험하셨다(루카 1,34 참조). 그분은 또한 자신과 자신의 계획에서 벗어나 의탁하고 신뢰하는 법을 배우도록 부르심을 받았다.

 

동정녀께서는 전능하신 분께서 자신 안에서 이루신 “큰일” 덕분에(루카 1,49 참조), 혼자라고 느끼지 않으셨고 오히려 “두려워하지 마라.”(루카 1,30)라는 천사의 말에 든든해지셨고 충만한 사랑을 느끼셨다. 마리아께서는 하느님께서 자신과 함께하신다는 것을 아셨기에, 마음을 열고 “제가 여기 있습니다.”라는 응답으로 복음의 여정을 시작하셨다(루카 1,38 참조). 전구의 여인께서는(요한 2,3 참조), 아드님의 십자가 곁에서, “사랑하시는 제자”와 함께, 인류 역사에서 열매를 맺고 생명을 낳으라는 부르심을 다시금 받아들이셨다. 성모님의 눈으로 젊은이는 식별의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으며, 성모님의 마음으로 젊은이는 부드러운 친밀감을 느끼고 증언하고 선교할 용기를 얻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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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문>

 

이 설문의 목적은 개별 교회들이 젊은이 세계에 관한 자신들의 이해를 표현하고 성소 동반의 경험을 평가하도록 도와주어, ‘의안집’(Instrumentum laboris)의 초안 작성을 위한 정보를 모으려는 것이다.

 

여러 대륙과 지역들의 다양한 상황을 고찰하고자, 아래 15번 질문 뒤에 각 지리적 지역별로 세 가지 특정 질문을 추가함으로써 해당 개별 교회의 답변을 얻고자 한다.

 

이 작업이 원활하고 타당하게 이행될 수 있도록, 답변 분량을 대략적으로 통계 관련 질문에 대한 내용 1면, 상황 평가 관련 질문에 대한 내용 7-8면(역주: 이탈리아어, 독일어, 프랑스어, 스페인어에서 제시된 분량임. 다만, 영어에서는 질문당 1면씩을 요청.) 그리고 대륙과 지역들의 세 가지 경험 관련 내용을 각각 1면으로 제한하여 주기를 요청한다. 필요하거나 원한다면, 답변 내용들을 보충하거나 보완하기 위해 추가 내용을 덧붙일 수 있다.

 

 

1. 통계 수집

 

가능한 지역에서는 통계 자료의 출처를 제시하고 그 연도에 관하여 언급해 주기 바란다. 다양한 나라들의 상황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도록 다른 관련 정보를 덧붙일 수 있다.

 

 - 국가/국가들 내의 주민 수와 출생률.

 - 국가/국가들 내의 젊은이(16-29세) 수와 비율.

 - 국가/국가들 내의 가톨릭 신자 수와 비율.

 - (최근 5년 동안) 혼인 평균 연령(남녀 구분)과, 신학교 입학과 봉헌 생활회 입회 평균 연령(남녀 구분).

 - 16-29세 연령대에서, 학생, 노동자(가능하면 직종별), 실업자, ‘니트’[NEET: Not in Education, Employment or Training, 학업이나 취업 상태에 있지 않으면서 취업 훈련도 받지 않는 사람] 비율.

 

 

2. 상황 평가


가) 젊은이, 교회 그리고 사회


이 질문들에는 교회 활동에 참여하는 젊은이들뿐만 아니라, 참여하지 않거나 참여에 관심이 없는 젊은이들과도 관련된다.

 

  1. 교회는 젊은이들이 살아가는 상황에 대하여 어떤 방식으로 귀를 기울이는가?

 

  2. 오늘날 젊은이들에게 주요 도전들은 무엇이고 가장 의미 있는 기회들은 무엇인가?

 

  3. 젊은이 그룹 모임들 가운데 (제도화된 것이건 아니건) 어떤 종류와 장소가 교회 ‘안에서’ 큰 성공을 거두고 있는가, 그리고 그 이유는 무엇인가?

 

  4. 젊은이 그룹 모임들 가운데 (제도화된 것이건 아니건) 어떤 종류와 장소가 교회 ‘밖에서’ 큰 성공을 거두고 있는가, 그리고 그 이유는 무엇인가?

 

  5. 오늘날 젊은이들이 참으로 교회에 요청하는 것은 무엇인가?

 

  6. 젊은이들이 교회 공동체 생활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가능성에는 무엇이 있는가? 

 

  7. 교회에 다니지 않는 젊은이들과 어디서 어떻게 접촉하는가?

 

나) 젊은이들을 위한 성소 사목 프로그램

 

  8. 가정들과 공동체들은 젊은이들의 성소 식별에 어떻게 관여하는가?

 

  9. 학교들과 대학교들 또는 그 밖의 (민간 또는 교회 운영) 교육 기관들은 젊은이들의 성소 식별 교육에 어떻게 이바지하는가?

 

 10. 디지털 세계의 발전에서 비롯되는 문화적 변화들을 어떤 방식으로 고려하고 있는가?

 

 11. 세계청년대회 또는 그 밖의 국가적 또는 국제적 행사들이 어떻게 정규 사목 활동의 일부분이 될 수 있는가?

 

 12. 각 교구는 젊은이들을 위한 성소 사목 프로그램을 어떤 방식으로 계획하고 있는가?

 

다) 젊은이들과 함께하는 사목 종사자

 

 13. 성직자를 비롯하여 그 밖의 교육자들은 개인적 영성 지도를 얼마나 많은 시간 동안, 어떤 방식으로 실시하는가?

 

 14. 성소 사목 종사자들을 위하여 어떤 교육 계획들과 기회들이 마련되어 있는가?

 

 15. 신학교에서는 어떤 개인 지도가 실시되는가?

 

라) 지역별 특정 질문들

 

아프리카

 

ㄱ. 젊은이들을 위한 성소 사목의 계획들과 조직들 가운데 아프리카 대륙의 필요에 가장 잘 호응하는 것들은 무엇인가?

 

ㄴ. 아이가 아버지 없이 자라는 곳에서 ‘영적 아버지’(spiritual fatherhood)는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 어떤 교육이 이루어지는가?

 

ㄷ. 교회의 미래 건설에 젊은이들이 필요하다는 것을 그들에게 어떻게 전달하는가?

 

아메리카

 

ㄱ. 귀 공동체는 극단적 폭력(유격전, 범죄 조직, 교도소, 마약 중독, 강제 결혼)을 경험하는 젊은이들을 어떻게 돌보며, 어떻게 다양한 방식으로 그들의 삶에서 그들과  동행하는가?

 

ㄴ. 공동선을 위하여 젊은이들이 시민 생활과 사회에 참여할 수 있도록 돕고자 어떤 교육을 실시하는가?

 

ㄷ. 매우 세속화된 세상에서, 그리스도교 입문 성사들 다음에 신앙의 여정을 이어가게 하는 데 가장 효과적인 사목 활동들은 무엇인가?

 

아시아와 오세아니아

 

ㄱ. 비가톨릭 종교 모임들이 왜 그리고 어떻게 젊은이들을 매료하는가?

 

ㄴ. 지역 문화의 가치들이 어떤 방식으로 대중 신심을 고양하면서 그리스도교 가르침과 결합될 수 있는가?

 

ㄷ. 젊은이 세계에서 쓰이는 언어, 특히 미디어, 스포츠, 음악이 사목에 어떻게 이용되는가?

 

유럽

 

ㄱ. 젊은이들이 유럽의 풍요로운 그리스도교 근간에서 출발하여, 신뢰와 희망으로 미래를 바라볼 수 있도록 어떤 지원이 이루어지는가?

 

ㄴ. 종종 젊은이들은 자신들이 살아가는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환경에서 열외로 취급되고 배제된다고 느낀다. 그러한 저항감이 참여와 협력으로 바뀔 수 있게 하는 방법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ㄷ. 세대 사이의 관계가 어느 수준에 있는가? 만일 그 관계가 원활하지 않다면, 쇄신 방안은 무엇인가?

 

 

3. 활동 공유

 

1. 현 상황에서 성소 식별과 동반을 위한 사목 활동의 주요 유형들의 목록을 작성하시오.

 

2. 가장 흥미롭고 의미 있다고 생각하여 보편 교회와 공유하고자 하는 사목 활동을 세 가지 선정하여, 다음 형식에 따라 소개하시오(각 경험마다 1면 이내).

 

 ㄱ) 서술: 몇 개의 문장으로 그 활동을 대략적으로 서술하시오. 중추적 인물들은 누구인가? 그 활동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어디에서? 등.

 

 ㄴ) 분석: 중요한 요소들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도록, 평신도의 관점까지 포함하여 그 활동을 평가하시오. 무엇이 목적인가? 무엇이 이론적 토대인가? 무엇이 가장 흥미로운 통찰인가? 어떻게 발전하였나? 등.

 

 ㄷ) 평가: 무엇이 목적인가? 만일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였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가? 장점들과 단점들은? 사회적 문화적 수준에서 그리고 교회 차원에서 어떠한 결과들이 있었나? 그 활동이 왜 그리고 무엇이 중요한가/교육적인가? 등.

 

<원문 : Preparatory Document of the XV Ordinary General Assembly of the Synod of Bishops on the theme “Young People, the Faith and Vocational Discernment”, 2017.1.13., 이탈리아어 판도 참조.>

 

영어:

http://press.vatican.va/content/salastampa/it/bollettino/pubblico/2017/01/13/0021/00050.html#EN

 

이탈리아어:

http://www.vatican.va/roman_curia/synod/documents/rc_synod_doc_20170113_documento-preparatorio-xv_it.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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