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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교리 문헌 해설: 새로운 사태(Rerum Novar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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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7-01-16 ㅣ No.1353

[사회교리 문헌 해설] 『새로운 사태(Rerum Novarum)』

 

 

‘노동자’라는 단어에 거부감을 느끼는 이들을 위한 문헌

 

‘노동자’, ‘근로자’, ‘일꾼.’ 다 같은 뜻이지만 부르는 사람에 따라 의미가 달라집니다. 조금 이상하지 않으신가요? 사람 하는 일이 다 거기서 거긴데 왜 이렇게 다른 의미로 다가오는지 말입니다. 왜 우린 ‘노동자’라는 말을 불편하게 여기는 걸까요?

 

나 개인 뿐 아니라 사회 구성원 다수가 이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다면 거기엔 반드시 원인이 있기 마련입니다. 우리 각자의 경험을 거슬러 올라가보면 ‘노동자’라는 말이 우리 사회에선 공산주의, 좌우 갈등, 한국 전쟁, 반공, 북한과 연결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때문에 현실 사회주의가 몰락한 지금에도 한국사회에서 ‘노동자’는 여전히 불온하고 불편한 단어로 다가옵니다. 이런 분들을 위해 오늘 가톨릭교회의 노동, 노동자, 노동조합에 대한 입장을 올바르게 이해하는데 도움을 줄 교황 문헌을 소개합니다.

 

 

회칙의 이름과 그 의미

 

회칙(回勅)은 신자라면 누구나 알아야 할 내용을 담아 교황님이 전 세계 모든 주교들에게 보내는 문서를 가리킵니다. 『새로운 사태』도 이 회칙에 속합니다. 그러나 이 문헌은 가톨릭교회 역사상 최초로 사회 문제만을 다룬 문헌이라는 점에서 새롭고 고유합니다.

 

이 회칙은 레오 13세 교황님이 1891년 5월에 반포하셨습니다. ‘새로운 사태’는 이 회칙의 이름입니다. 회칙 이름은 처음 시작하는 두 단어를 따서 짓습니다. 교황님 회칙은 지금도 라틴어로 작성하는 것이 관례인데, 처음에 시작하는 라틴어 두 단어가 그 회칙의 이름이 되는 셈이지요.

 

교회 안에서는 이 이름보다 ‘노동헌장’이라는 별칭이 더 유명합니다. ‘노동’은 회칙의 핵심 주제어라서, ‘헌장’은 헌법을 모든 법의 근본으로 여기듯이 ‘노동’에 대한 가르침에서는 이 회칙이 원리에 해당한다고 생각해서 이렇게 부릅니다.

 

 

회칙의 역사적 배경

 

앞으로 매달 한 번씩 소개하게 될 회칙들은 사회 회칙입니다. 사회 문제를 다룬 문헌이라는 뜻이지요. 천천히 아시게 되겠지만 사회 회칙은 반드시 그 시대의 큰 사회문제들에 영향을 받고, 그에 답하려는 목적으로 쓰여집니다. ‘새로운 사태’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회칙이 반포된 즈음해서 크게 세 가지 사회적 흐름이 교회에 영향을 줍니다.

 

첫째, 독점 자본주의의 등장입니다. 산업 혁명기에 기술혁신, 공업 발전이 이뤄졌고, 두 흐름의 영향이 쌓이면서 생산이 대기업에 집중됩니다. 주식회사가 널리 보급되면서 자본의 축적과 집중도 일어납니다. 이로 인해 대기업은 살아남고 다수 소규모 기업과 생산 주체들은 몰락하는 일이 벌어집니다. 그리고 이러한 자본주의는 제국주의로 이어집니다.

 

둘째, 노동자들의 열악한 처지였습니다. 산업혁명은 인류에 큰 진보를 가져왔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노동자들에게 큰 희생을 강요하였습니다. 노동의 부담을 줄이려 발명한 기계가 오히려 노동자를 일터에서 내쫓았습니다. 여자와 어린 아이들이 장시간 노동을 하는 일도 다반사였습니다. 임금은 낮아지고 생활은 피폐해졌습니다. 장시간 노동은 노동자들의 건강을 치명적으로 악화시켰고, 육체적 질병 · 재해 · 사고의 원인이 되었습니다.

 

셋째, 공산주의의 발흥입니다. 봉건제적 생산 양식이 해체되고 자본제적 생산양식으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사회 갈등이 사회 모순으로 심화되어 혁명으로 사회를 변혁시키려는 계급이 등장했습니다. 프롤레타리아 계급입니다. 공산주의는 프롤레타리아 계급 형성과 부르주아 지배 타도, 그리고 프롤레타리아의 정치권력 획득을 목표로 했습니다. 이들의 등장으로 많은 신자 노동자들이 공산주의 이념에 기울거나 운동에 가담하기 시작했습니다.

 

 

교회의 노력과 회칙의 골격

 

이에 교회는 이 세 가지 큰 흐름을 해결하는 데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합니다. 유럽의 여러 나라 가톨릭 학자들이 공산주의에 대한 교회적 대안을 모색하였고, 독일의 케틀러 주교 같은 분은 가톨릭 정신에 입각해 노동운동을 시작하였습니다. 일부 국가의 정당들은 가톨릭 정신에 기초하여 사회정책 입법 활동도 전개하였습니다. 이러한 수십 년간의 노력들이 이 회칙에 반영됩니다.

 

이 회칙은 이러한 노력들을 바탕으로 사유재산권, 노동자 권익, 그리고 사회주의에 대한 교회의 입장을 정리합니다. 그 결과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던 교회와 교회 밖 여러 기구들에 이론과 방향 설정 면에서 큰 영향을 주게 됩니다. 무엇보다 사회주의 이념과 가톨릭 신앙 사이에서 갈등하던 신자 노동자들에게 신앙을 선택하도록 돕습니다.

 

 

회칙의 의의

 

이 회칙의 탁월한 기여 가운데 하나는 노동과 자본의 근대적 관계에 대한 원칙을 정립한 점입니다. 이 원칙은 “노동 없는 자본이 있을 수 없고, 자본 없는 노동도 있을 수 없다”(28항)였습니다. 레오 13세 교황님은 노동을 시장 원칙에 따라 살 수 있는 상품이라는 생각을 거부하고 노동자의 인간적 요구를 따라야 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이는 자본과 노동이 주종관계가 아니라 상호교환적인 균형관계라는 사실을 강조한 것입니다. 이 때문에 이 사상은 균형적인 사회정책을 추구하는데 기여하였습니다. 또한 이후 발표되는 사회교리 문헌들에 노동을 바라보는 관점도 제공해주었습니다.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기여는 당시의 심각한 사회 문제에 대하여 교회가 이를 외면하지 않고 관여하기로 결정했고 또 실제로 참여했다는 사실입니다.

 

[2017년 1월 15일 연중 제2주일 의정부주보 5-6면, 박문수 프란치스코 박사(사목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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