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9일 (일)
(홍) 성령 강림 대축일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보낸다. 성령을 받아라.

강론자료

1월 11일(주일)-주님의 세례축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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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gold] 쪽지 캡슐

2004-01-10 ㅣ No.567

주님의 세례 축일 (다해)

 

        이사 42,1-4.6-7     사도 10,34-38     루가 3,15-16.21-22

    2004. 1. 11. 어른.

 

주제 : 우리가 받은 세례의 의미는?

 

안녕하세요.

오늘은 주님의 세례축일이고, 우리가 받은 세례의 의미를 생각하는 주일입니다.  예수님이 요르단강에서 세례자요한에게 세례를 받은 일은 ‘예수님이 누구인지를 드러내는 공현사건’의 두 번째 일입니다.  그 첫 번째는 지난 주일에 기억한 동방박사들의 방문이었고, 세 번째는 가나 혼인 잔치의 기적입니다.  지난 주일에 이어 오늘 다시 기억하는 공현사건의 의미는 무엇이겠습니까?

 

우리가 같은 사람으로 살아가지만 누구나 태어났다가 그저 사라지는 사람으로 만족해도 된다는 것이 아니라 우리들 각자가 하느님에게서 받은 사명을 기억하고 그 사명을 올바로 실천하기를 다짐하라는 것이 공현사건의 의미이며, 우리가 받은 세례의 의미입니다.  우리는 세례를 받음으로써 하느님의 생명에 참여한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주님의 세례 축일, 하느님의 축복을 받은 것을 기억하는 날에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사명은 무엇인지 생각해볼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세례는 물로 씻는 예절을 가리킵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모양만 본다면, 중요할 것 하나 없는 지극히 평범한 예절입니다.  그러나 물이 담겨있는 그곳을 내 발로 걸어서 지나왔다고 하거나, 물을 이마에 칠했다고 해도 실제 삶에 달라지는 것이 없다면 의미 없는 일입니다.

 

세례의 처음 형태를 의미하는 사건은 구약성서 출애굽기에 나오는 ‘이스라엘 백성의 이집트 탈출’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건넌 곳의 물의 깊이가 얼마였고 그렇게 건넌 곳이 어디였는지는 아는 것이 중요한 내용은 아닙니다.  하느님의 선택을 받은 사람들을 해치려는 뜻을 갖고 같은 물로 들어섰던 이집트 군사들은 아무도 목숨을 건지지 못했고, 모세의 인도를 따라 하느님의 생명에 참여한 이들은 모두 약속의 땅을 향할 수 있었다는 것이 중요한 사건이고 그 사건에서 중요한 의미입니다.  그러나 모세의 인도를 따라 ‘물이 갈라진 강’으로 들어섰던 사람들이 모두 똑같은 마음이 아니었다는 것은 슬픈 일입니다.  그 소리는 지금 우리가 세례를 받은 사람으로 이 자리에 있지만 우리가 드러내는 삶의 자세에 따라 하느님의 축복은 내게 결과를 맺을 수 있기도 하고, 내가 하느님의 축복을 피해 달아날 수 있기도 하다는 것입니다.  

 

세례를 받으러 오신 분이 어떤 분인지를 알았던 세례자요한은 자신이 해야 할 일을 겸손하게 말합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하느님의 뜻을 전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하느님 나라에 참여할 세례를 베푸는 몸이었다고 하더라도 예수님 앞에서는 신발끈을 풀 자격이 없다고 말합니다.  이 자리에 와 있는 우리 신앙인들, 세례를 받은 우리도 모두 그와 같은 존귀한 사람들입니다.  그 존귀함은 세례를 통하여 우리와 함께 있게 된 것입니다.  따라서 그 사실을 깨닫는 우리가 세례를 받은 사람으로서 얼마나 합당하게 살아가느냐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 되는 것입니다.  

 

대충대충 살아도 우리가 지낸 삶을 책망하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없는 것은 아니지만 세상이 하도 험악하게 변하다보니 그렇게 정의를 앞세워 꾸짖는 것도 무척이나 큰 용기가 필요한 세상이 됐습니다.  그러나 내 삶에 대한 가장 큰 심판자는 이웃이나 하느님의 감시보다는 나 자신이 만들어낸 삶의 결과라는 것을 잊지는 말아야 합니다.  내가 스스로 판단하여 하느님의 뜻에 합당하게 살지 못했고, 혹시라도 그렇게 살려고 노력하지 않았다면 무슨 낯을 들고 하느님의 자비를 청하겠습니까?  하느님의 자비는 말로 청하기만 한다고 해서 우리에게 오는 것은 아닙니다. 누구라도 하느님 앞에서 자신 있는 삶이 있겠습니까마는 노력은 필요한 것입니다.

 

나자렛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삶의 본보기를 따라 살려는 것이 신앙인이 가야할 길이라고 한다면, 우리가 드러내야 할 삶의 본보기는 어떤 것이라고 여러분은 생각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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