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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사목] 신앙으로 현대문화읽기: TV - 드라마 속 청소년들의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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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5-06-02 ㅣ No.828

[신앙으로 현대 문화 읽기] TV


드라마 속 청소년들의 세상



KBS2 드라마 ‘후아유-학교 2015’. (KBS 제공)


최근 고등학생 청소년이 등장하는 드라마들이 잇따라 선보이고 있다. ‘선암여고 탐정단’(JTBC)과 ‘후아유-학교 2015’(KBS2)는 학생이 주인공이고, ‘앵그리 맘’, ‘여자를 울려’(MBC)는 주인공들의 자녀와 주변 친구들의 이야기를 비중 있게 다룬다. 지난 몇 년 사이 드라마가 청소년을 묘사해 온 방식을 짚어보면 이 시대의 청소년이 처한 상황과 그에 대한 인식을 짐작할 수 있다.

근래의 청소년물보다 앞서 등장한 현상은 청소년 배우들을 내세운 ‘아역 신드롬’이었다. 대표작이 ‘해를 품은 달’, ‘보고 싶다’, ‘메이퀸’(MBC, 2012) 등인데, 이들의 공통점은 순수에 대한 과거지향적 집착과 아동학대 수준의 설정이다. 작가는 극 초반의 흥행을 위해 사춘기의 주인공들에게 가혹한 시련을 부과했고, 연출가는 ‘명품 아역’이라는 찬사를 빌미 삼아 10대 배우들에게 따돌림, 학교폭력, 납치, 강간 등의 연기를 시켰으며, 영상감독들은 발육이 빠른 소년 소녀들의 몸을 카메라로 집요하게 훑었다. 시련 속에 피어난 남녀 주인공의 애정은 어디서 무엇이 되어 있어도 한눈에 알아본다는 첫사랑 판타지가 되어 끝까지 드라마를 지배했다.

당시의 중학생 배우들이 제 나이의 고등학생 연기를 하고 있는 최근 작품들은 어떤가. 집단 따돌림, 조직화된 학교폭력, 자살방조, 학부모들의 성적 강요와 학사 개입, 사학비리까지 학교에서 일어날 만한 악행들이 총체적으로 집약돼 있다. 학교밖에 갈 곳이 없는 아이들은 어른들의 악행을 흉내내며 싸우거나 버틴다. 사람을 대하는 요령도, 체면의식도, 자기방어 기술도 부족하기에, 아이들의 폭력은 어른들보다 더 노골적이고 참혹하다. 명품 아역 드라마가 어른들이 아이들을 공격하는 이야기였다면, 요즘 청소년 드라마는 아이들이 어른들의 대리전을 치르며 서로를 공격하는 형국이다. 명품 아역이 연기하던 청소년의 비극은 허구의 설정이었기에 가볍게 비난하고 넘길 수 있었다. 그러나 현재 청소년 드라마의 설정들은 상당 부분이 실제 사건에서 착안하기도 했거니와, 현실의 학생들에게 ‘실제상황은 더하다’는 공감을 얻는다는 면에서 더 섬뜩하다.

드라마에 희망의 메시지가 없는 것은 아니다. ‘앵그리 맘’의 강자(김희선)와 ‘여자를 울려’의 덕인(김정은)은 비행 청소년에게 밥을 해먹이며 마음을 얻는다. 아이의 다친 마음을 치유할 수 있는 건 엄마의 집밥으로 상징되는 어른들의 애정인 것이다.

전학과 이민을 결심했던 ‘앵그리 맘’의 학부모들은 건물 붕괴 사고로 또다시 학생들을 잃자 부조리에 맞서기 시작하고, 사학재단 관계자들은 뉘우치지 않는 권력자를 보며 뒤늦게 양심을 택한다. 정의로운 밥집 아줌마에게 감화된 ‘여자를 울려’의 남고생들은 괴롭힘을 당하던 장애 학생을 지키려 애쓴다. 그러나 드라마가 제시하는 대안을 우리가 선택하지 않는다면, 현실의 청소년들이 사는 세상은 약육강식의 지옥을 면치 못할 것이다.

*
김은영(TV칼럼니스트) - 한국천주교주교회의 경향잡지 기자를 거쳐 미디어부에서 언론홍보를 담당한다. 2008년 <매거진T> 비평 공모전에 당선된 뒤 <무비위크>, <10아시아> 등에 TV 비평을 썼고, 2011년에 단행본 <예능은 힘이 세다>를 냈다.

[가톨릭신문, 2015년 5월 31일,
김은영(TV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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