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0일 (금)
(백) 부활 제6주간 금요일 그 기쁨을 아무도 너희에게서 빼앗지 못할 것이다.

성미술ㅣ교회건축

아름다운 성화35: 마르크 샤갈의 아브라함의 이사악 봉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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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7-06-29 ㅣ No.414

정웅모 신부의 아름다운 성화 아름다운 인생 (35) 아브라함의 이사악 봉헌


자신의 외아들을 번제물로 바치다

 

 

마르크 샤갈(Marc Chagall, 1887~1985), ‘아브라함의 이사악 봉헌’, 1960~1966년, 유채, 샤갈성서미술관, 니스, 프랑스.

 

 

‘아브라함의 이사악 봉헌’은 샤갈성서미술관에 있는 작품 가운데 한 점이다. 이 박물관에는 마르크 샤갈(Marc Chagall, 1887~1985)이 그린 수많은 작품 가운데서 특별히 성서를 주제로 제작한 것이 전시돼 있다. 그 가운데서도 ‘아브라함의 이사악 봉헌’은 강렬한 주제와 색채로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이 작품은 창세기 22장에 나오는 아래의 성서 구절을 토대로 제작됐다.

 

“아브라함은 아들 이사악을 묶어 제단 장작 위에 올려놓았다. 아브라함이 손을 뻗쳐 칼을 잡고 자기 아들을 죽이려 했다. 그때, 주님의 천사가 하늘에서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하고 그를 불렀다. 그가 ‘예, 여기 있습니다.’하고 대답하자 천사가 말했다. ‘그 아이에게 손대지 마라. 그에게 아무 해도 입히지 마라. 네가 너의 아들, 너의 외아들까지 나를 위하여 아끼지 않았으니, 네가 하느님을 경외하는 줄을 이제 내가 알았다.’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보니, 덤불에 뿔이 걸린 숫양 한 마리가 있었다. 아브라함은 가서 그 숫양을 끌어와 아들 대신 번제물로 바쳤다.”(창세 22,9~13).

 

이 작품의 전면에는 장작 위에 있는 이사악과 그를 번제물로 바치려는 아브라함이 부각돼 있다. 장작 위에 누워있는 이사악은 이미 죽음의 두려움에 휩싸여 온몸이 노랗게 변해있다. 이사악은 간신히 한쪽 눈을 뜨고 있지만 다른 눈은 감겨져 있다. 이것은 그의 몸 절반이 벌써 죽음의 세계 안으로 들어갔다는 것을 나타낸다. 그는 더 이상 살기 위해서 어떤 몸부림이나 저항도 하지 않고 있다.

 

아브라함의 이사악 봉헌 부분. 자신의 생명보다도 더 소중한 외아들을 번제물로 바쳐야 하는 아버지 아브라함의 터질 듯한 심정이 붉은 색채로 표현 돼있다.

 

 

아브라함은 한 손으로 이미 초주검이 된 이사악의 힘없는 다리를 누르면서, 다른 손으로 칼을 들고서 번제를 마치려 하고 있다. 자신의 생명보다도 더 소중한 외아들을 번제물로 바쳐야 하는 아버지 아브라함의 터질 듯한 심정이 붉은 색채로 표현돼 있다. 이사악의 온 몸이 사색으로 노랗게 물든 것처럼 아브라함의 온몸도 괴로움으로 붉게 폭발하고 있다. 그러나 아들을 번제물로 바쳐야 하는 극심한 고통의 순간에도 아브라함의 젖은 눈은 하늘 높은 곳을 향하고 있다. 그곳에 나타난 천사는 아브라함에게 혹독한 시험이 끝났음을 알려 준다.

 

지난 6월 15일은 예수성심대축일이면서 사제성화의 날이었다. 이날 서울대교구의 모든 사제는 명동대성당에 모여 기도의 시간을 가졌다. 주님께서 맡겨주신 사제직의 존귀함에 대해 다시 생각하고 사제서품 때 간직했던 그 마음으로 한평생을 변함없이 살고자 다짐했다. 본당이나 지역에서 떨어져 활동하다 보면 때로는 혼자라는 느낌이 들기도 하는데 이처럼 한자리에 모인 수많은 동료 사제를 보니 그것만으로도 든든한 힘이 돼 주었다.

 

아브라함의 이사악 봉헌 부분. 장작 위에 누워있는 이사악은 이미 죽음의 두려움에 휩싸여 온몸이 노랗게 변해있다.

 

 

특별히 올해 사제 성화의 날은 14년 동안 서울대교구장으로 사목하다가 떠나시는 정진석 니콜라오 추기경님의 이임 감사미사로 끝을 맺었다. 교구장님께서는 이날 사제 성화의 날을 시작하면서 사제들에게 신앙의 조상 아브라함을 본받아 살 것을 강조하며 말씀하셨다. “만사를 선으로 이끄시는 하느님의 섭리를 믿고 긍정적으로 잘 따르십시오. 아브라함처럼 하느님을 굳게 믿으면 주님께서 모든 것을 다 해주십니다. 아브라함처럼 미련하게 하느님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언제나 하느님의 섭리를 믿고 기쁘게 사시기 바랍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굳건한 신앙을 본받으며 살 것을 당부하신 교구장님께서는 말씀을 마치시면서 고개를 들어 위를 바라보셨다. 노사제의 눈에는 어느새 눈물이 가득 고여 있었고 그 눈에서 한줄기 눈물이 흘러내렸다. 한 인간으로서 그리고 그리스도인으로서, 한 사제로서 그리고 교구장으로서 자신의 소임을 다 마치고 떠나는 그 모습은 아름다우면서도 거룩하게 비쳤다. 태양은 지면서도 서쪽 하늘을 아름답게 물들이듯이 어떤 사람은 떠나면서도 사람들의 마음을 아름답게 물들인다.

 

[가톨릭신문, 2012년 7월 1일, 정웅모 신부(서울 장안동본당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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