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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사목] 사회학 측면에서 본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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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5-05-23 ㅣ No.826

[통일을 준비하며] 사회학 측면에서 본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



사회학에 대한 오해 가운데 하나는 사회학이 ‘개인’ 대신 ‘사회’에만 관심을 두고 있는 학문이라는 인식이다. 이는 종종 심리학은 사회학과 반대로 ‘사회’ 대신 ‘개인’에만 관심을 두고 있는 학문이라는 인식과도 같다.

그렇지만 사회학이라는 학문이 산업화 · 자본주의화 같은 급격한 사회변동 과정에서 ‘고통’을 겪던 개인들, 이를테면 새로 출현한 노동계급을 바라보며, 그들이 겪는 고통의 원인과 해법을 찾으려고 출발했다는 사실을 떠올려보면 위와 같은 인식은 오해가 분명하다.

정확히 말하면, 사회학은 개인에 무관심한 학문이 아니라, 고통받고 있는 개인에 대한 관심 때문에 사회라는 실체에도 관심을 두게 된 학문이다.

사회학은 특히 개인의 의식과 행위에 끼치는 사회적 영향력에 주목한다. 조금 어렵게 말하면, 지극히 개인적인 것처럼 보이는 현상의 이면에 놓인 사회적 영향력을 찾아내는 학문이 바로 사회학이다.

이를테면 ‘사람은 왜 가난해지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사회학자는 전적으로 개인의 게으름이나 무능 탓이라고 대답하지 않는다. 이보다는 개인의 생물학적 차이가 가난과 부유에 영향을 끼친다는 점은 인정하면서, 왜 비슷한 생물학적 조건을 갖춘 개인 가운데 누구는 가난해지고, 누구는 가난해지지 않는지를 다양한 사회제도의 영향 안에서 해명하려 한다.

평화나 통일과 관련된 여러 사회현상에 대한 탐구도 마찬가지다. 사회학은 개인들 사이에 넓게 퍼져 있는 대북 적대감, 북한에 대한 오해와 편견, 통일에 대한 간절한 열망 등의 배후에는 그러한 의식, 감정에 영향을 끼치는 어떠한 ‘사회적 원인’이 존재할 것이라고 가정하고, 바로 그 사회적 원인의 실체와 영향력을 파악하려 노력한다.

또한 누군가 고통받고 있는 모습을 대할 때면 사회학자는 그러한 고통의 사회적 뿌리가 무엇인지를 알아내려 노력한다. 아래에서 이러한 탐구의 몇 가지 보기들을 보면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사회학의 측면에서 바라본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명확해질 것이다.


남북대결은 고통의 뿌리

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에서는 2007년부터 해마다 성인을 대상으로 통일의식에 대한 조사를 하고 있다. 이 조사결과를 보면 앞으로 ‘통일시대’의 주인공이 되어야할 20대의 통일 열망이 해가 갈수록 떨어진다는 게 확인된다.

20대는 ‘남북한 통일이 얼마나 필요하다고 생각하십니까? 또는 필요없다고 생각하십니까?’라는 물음에, 2007년에는 53.3%가‘필요하다(① 매우필요하다 + ② 필요하다)’고 응답했다가 2008년에 절반 미만(45.6%)으로 떨어졌다. 이후에도 통일이 필요하다는 응답률은 2009년 43.2%, 2010년 48.8%, 2011년 40.8%, 2012년 46.7%, 2013년 40.4%로 하락 추세이다. 아마도 지난 몇 년 동안 전반적으로 나빴던 남북관계가 20대의 통일 열망을 낮추는 데 가장 큰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이러한 추측은 20대의 통일 필요 응답률이 그나마 상승했다가 낮아지는 시점을 확인하는 것으로도 뒷받침할 수 있다. 위 설문조사는 해마다 7-8월에 이루어져 연말에 결과가 발표되는데, 남북관계가 비교적 괜찮았던 2007년에는 그래도 통일 필요 응답률이 50%대를 기록했다가,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남북관계가 나빠지면서 바로 절반 이하로 떨어졌다.

2009년에서 2010년 소폭 상승했던 통일 열망 또한 2011년에는 급격하게 떨어졌다. 2010년 11월에 북한이 휴전 이후 처음으로 남한 영토를 공격했던 ‘연평도 포격전’의 여파 때문이라는 점을 어렵지 않게 생각해 볼 수 있다. 또한 2012년에 소폭 상승했던 통일 열망은 2013년에 다시 2011년 수준으로 떨어졌다. 2013년 봄 개성공단 폐쇄까지 낳을 정도로 격렬했던 ‘남북대결’이 영향을 끼쳤다.

이처럼 2008년 이후 계속되고 있는 남북대결이라는 사회적 변수는 우리의 대북관, 통일의식 등에 강력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 2011년부터 2013년까지 전국 곳곳에서 한국전쟁 체험담 조사를 할 때도 남북대결은 어김없이 우리 앞에서 실질적 영향력을 보여주었다.

마을 경로당에 찾아가 조사할 때, 대부분의 어르신은 생생한 전쟁체험을 거침없이 이야기해 주시는 편이다. 그렇지만 지금 들은 이야기를 다른 사람들에게 공개해도 좋겠냐고 여쭤보면 “요즘처럼 남북 사이가안 좋을 때 말 잘못했다가 해코지 당하면 어쩌느냐.”며 공개를 거부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분들이 겪었던 한국전쟁 때처럼, 세상이 언제 어떻게 바뀔지 모른다는 불안감, 그러니 처신을 잘 해야 한다는 강박감은 전쟁이 멈춘 지 60년이 다 되어가도록 사라지지 않는 것이다.

한편, 2010년부터 해마다 두 차례 이상 대학생이나 시민들과 함께 비무장지대(DMZ) 일원을 답사하고 있는데, 이 과정에서 필자는 대결적인 남북관계, 엄혹한 분단구조가 이 지역에 사는 개개인들에게 고통의 뿌리로 작용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DMZ 일원 주민의 삶에 남북대결이 뚜렷하게 상처를 새겨놓고 있었다.

일단 지뢰 얘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DMZ 일원에는 지금도 미확인 지뢰지대가 곳곳에 있는데, 여름철 장마나 집중호우 뒤에는 강으로 주먹보다 작은 대인지뢰들이 떠내려오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한다. DMZ 바로 밑 민간인 통제선 안에 있는 강원도 철원군의 한 마을을 찾았을 때, 마을 주민은 대인지뢰가 사람들의 삶을 어떻게 파괴하는지를 우리에게 생생히 들려주었다.

십여 년 전 이 마을에서 형제가 강가에서 놀다가 여섯 살짜리 동생이 지뢰를 밟았고, 같이 놀던 아이들이 어른들을 데리러간 사이에 아홉 살짜리 형은 동생이 죽어가는 걸 지켜봤다. 바로 그 형이 자라서 20대 초반에 백혈병으로 안타까운 죽음을 맞게 되었다.

오히려 너무도 편안하게 죽음을 기다리는 그에게 동네사람들이 의아해서 묻자 그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그동안 죽을 용기가 없어서 죽지 못했습니다. 죽어가던 동생 모습이 잊을만 하면 꿈에 나타나서 괴로웠습니다. 이제는 죽게 되었으니 다행입니다.”

정확한 통계는 존재하지 않지만, 평화나눔회의 ‘강원도 민간인 지뢰 피해자 전수조사 보고서’(2011년)에 따르면 한국전쟁 이후 전국에서 발생한 지뢰 사고로 부상 또는 사망한 숫자는 1천여 명이 넘는다고 한다. 지뢰 피해자와 가족은 치료비를 마련하려고 전 재산을 내다 팔고도 모자라 빚을 지는 경우가 많고, 재산을 탕진해 자식 교육을 할 수 없어 가난이 대물림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또한 처참했던 기억과 고통 때문에 악몽에 시달리거나 알코올에 의존하기도 하고 우울증 때문에 고통받고 자살을 기도하는 피해자도 많다. 수박에서 화약 냄새가 나는 것 같아 수박을 못 먹는 피해자도 있고, 불면증으로 약 없이는 잘 수 없다는 피해자도 있었다.

DMZ 일원 주민들을 괴롭히는 건 일상적인 지뢰의 위협만이 아니다. 남한 동해안 최북단 마을인 강원도 고성의 명파리 또한 남북대결에 따른 고통을 품고 있는 마을이다. 이 마을 사람들은 2000년대 중반 금강산 육로관광이 활성화되자 몇 천만 원씩 빚을 얻어 식당, 상회, 건어물 가게 등을 차렸다.

그런데 2008년 여름 금강산 관광객 박왕자 씨가 북한 초병이 쏜 총탄에 사망하면서 금강산 관광이 중단되었고, 그 여파로 명파리 사람들은 줄줄이 가게 문을 닫은 채 오늘도 빚에 시달리고 있다.

2012년에 학생들을 데리고 고성의 통일전망대로 가는 길에 명파리를 지날 때 학생들에게 썰렁한 거리를 잘 살펴보라면서 앞에서 한 얘기를 해주었다. 그런데 그날 밤 숙소에서 하루를 마무리하며 소감을 나누는 시간에 한 학생이 이렇게 말했다. “저희 부모님이 낮에 봤던 명파리에서 식당을 하십니다. 금강산 관광 중단으로 우리 집은 큰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남북이 빨리 화해했으면 합니다.”

하루 내내 마지못해 따라다닌다는 듯 무심한 표정이던 학생들조차 남북대결 ‘피해자’의 증언을 직접 듣고는 조금은 더 진지해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남북대결이 자신과는 먼 이야기인줄 알았는데, 이처럼 가까이에서 자기 친구가 고통받고 있다는 사실을 직접 확인했기 때문일 것이다.

남과 북의 군사적 충돌이 일상을 송두리째 파괴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은 특히 접경지역에 만연해 있다. 사실상 전쟁터가 되어버린 서해 연평도, 백령도 등 서해 5도 주민들의 불안감은 말할 것도 없고, 최근에는 휴전선에서도 남북군사 충돌이 벌어지면서 불안감이 점점 커지는 양상이다.

2014년 말에 접경지역인 경기도 연천군 전곡읍에 있는 한 성당에서 평화와 통일을 주제로 짧은 강연을 할 기회가 있었다. 접경지역이라는 특성상 신자 가운데 많은 사람이 군인 가족이거나 군 관계자라고 해서 잔뜩 긴장했었다. 남북대결을 중단하고 남북화해 · 협력으로 나아가자고 주장하는 필자의 강연이 ‘혹시나 신자들의 마음을 언짢게 하지는 않을까?’ 하는 긴장감이 들었다. 그런데 막상 강연을 진행한 뒤 반응을 들어보니 사람들이 남북화해 · 협력이 필요하다는 필자의 주장에 많이 공감해 주었다.

강연 얼마 전, 일부 탈북자 단체의 대북전단 살포에 대한 경고 차원에서 북한이 연천군 쪽으로 고사포를 쏘고 남한도 대응사격을 했던 위험천만한 사건이 있었다. 이러한 사건이 남북화해 · 협력, 평화에 대한 연천군 사람들의 바람을 키워주었던 것 같다.


‘통일사회학’이 필요하다

요즘 한국사회에서는 통일이 남과 북에 많은 경제적 이익을 안겨줄 수 있을 것이라며, 그러한 기대감으로 남북화해 · 협력을 추구하자는 주장이 많다. 그런데 앞에서 본 것처럼 어떤 이들에게는 남북화해 · 협력이 다가올 미래의 이익 때문이 아니라, 현재의 불편함, 고통스러움, 불안에서 벗어나는데 절실하고 필수적인 과제가 되기도 한다. 몇 년째 가족상봉을 애타게 기다리는 이산가족처럼, 남북대결이라는 사회적 원인이 사라지지 않는 한 수많은 사람은 고통과 불안 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낼 수밖에 없다.

2014년 가을 강원도 양구의 을지전망대에서 휴전선 너머 북녘을 바라보고 있을 때 한쪽 구석에서 조용히 눈물을 흘리던 한 여학생의 모습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그 여학생은 북녘에 가족을 두고 온 북한 이탈 주민, 곧 한국전쟁 시기 이산가족과는 다른 ‘또 하나의 이산가족’이었다.

상황이 이러하기에 사회학은 자본주의 산업화 초창기에 고통받는 개인들을 위해, 그 고통을 낳은 사회적 원인과 해법을 치열하게 탐구했던 것처럼, 남북대결로 고통받고 있는 이들의 목소리에 더 적극적으로 귀 기울여야만 한다. 물론 지금도 뜻있는 사회학자들이 많이 노력하고 있지만, 남북대결이 우리 안의 의식과 일상에 어떠한 영향을 끼치는지, 남북관계를 대결에서 화해 · 협력으로 이끌어 갈 방도는 무엇인지, 궁극적으로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앞당길 방법은 무엇인지 등을 탐구하는 사회학, 곧 ‘통일사회학’이 더욱 활성화되길 기대한다.

* 김진환 - 동국대학교 대학원에서 사회학을 공부하고, 현재는 건국대학교 통일인문학연구단에서 연구교수로 일한다.

[경향잡지, 2015년 5월호, 김진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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