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4일 (화)
(홍) 성 마티아 사도 축일 너희가 나를 뽑은 것이 아니라 내가 너희를 뽑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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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님]성목요일에 사제들에게 보내시는 서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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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교구 [seoul] 쪽지 캡슐

1999-04-15 ㅣ No.9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께서

성목요일에 사제들에게 보내시는 서한

 

"아빠, 아버지!"

 

사랑하는 형제 사제 여러분, 2000년 대희년을 눈앞에 둔 올해에 여러분과 저의 성목요일 만남은 "아빠, 아버지"라는 이 부름에 초점을 두고 있습니다. 이 부름에서 우리는, 성서 학자들의 말처럼, 바로 예수님의 목소리를(ipsissima vox Iesu) 듣습니다. 이 부름에는 성부께서 인간의 구원을 위하여 세상에 보내신 강생하신 말씀의 헤아릴 길 없는 신비가 담겨 있습니다.

성자의 사명은 성자께서 당신 자신을 바쳐 우리에게 하느님의 자녀가 될 자격을 얻게 해 주시고, 성령을 보내 주시어 인간이 바로 삼위일체의 친교에 동참할 수 있게 될 때 비로소 완수됩니다. 파스카 신비로, 성부 하느님께서는 성자를 통하여 성령 안에서 모든 인간을 굽어 살피시며 인간이 죄에서 구원되고 죽음에서 해방될 수 있게 하셨습니다. 은총으로 우리는 이 일에 봉사하는 교역자가 되었습니다.

 

1. 성찬례 거행에서 우리는 본기도를 이렇게 마칩니다. "성부와 성령과 함께 천주로서 영원히 살아 계시며 다스리시는 성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아버지, 성자께서는 아버지와 함께 영원히 살아 계시며 다스리십니다! 이 기도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성령 안에서 성부께로 향하는 상승의 성격을 띠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기도는 또한 대희년 준비 기간인 1997-1999년의 3년을 신학적으로 요약해 줍니다. 곧, 첫째 해는 성자의 해, 둘째 해는 성령의 해, 올해 셋째 해는 성부의 해입니다.

이러한 상승 움직임은 사도 바오로가 갈라디아인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말하는 하강에 그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를 성탄 시기 전례에서 특히 깊이 묵상하였습니다. "때가 찼을 때 하느님께서 당신의 아들을 보내시어 여자의 몸에서 나게 하시고 율법의 지배를 받게 하시어 율법의 지배를 받는 사람을 구원해 내시고 또 우리에게 당신의 자녀가 되는 자격을 얻게 하셨습니다"(갈라 4,4-5).

여기에서 우리는 성부 하느님께서 성자를 보내시어 그분을 통하여 우리를 당신의 자녀로 삼으시는 하강 움직임을 보게 됩니다. 파스카 신비 안에서,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당신 생명을 내어 주심으로써 아버지의 계획을 완수하셨습니다. 이어서 아버지께서는 성자의 영을 보내시어 다음과 같은 놀라운 특권에 대하여 우리를 깨우쳐 주십니다. "이제 여러분은 하느님의 자녀가 되었으므로 하느님께서는 여러분의 마음 속에 당신의 아들의 성령을 보내 주셨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하느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이제 종이 아니라 자녀입니다. 자녀라면 하느님께서 세워 주신 상속자인 것입니다"(갈라 4,6-7).

여기서 우리는 사도 바오로가 쓴 편지의 독특함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는 '아빠, 아버지'라고 외치는 분은 바로 성령이라고 말합니다. 사실 역사적으로, 강생과 구원의 신비를 통하여 아버지 하느님을 증언하신 분은 하느님의 아들이셨습니다. 우리에게 하느님을 의지하고 그분을 '아버지'라고 부르도록 가르치신 분은 성자이셨습니다. 성자께서는 하느님을 "나의 아버지"라고 부르셨으며, 우리에게는 하느님께 기도 드릴 때 "우리 아버지"라는 정다운 존칭을 쓰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하지만 성 바오로는, 어떤 의미에서, 성자의 가르침이 그 말씀을 듣는 사람들의 영혼에 생명을 가져다 주려면 성령의 내적인 가르침이 있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사실, 성령의 활동을 통해서만 우리는 하느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며 진실로 그분을 찬미할 수 있는 것입니다.

 

2. 저는 성목요일을 맞아 성유 축성 미사를 드리기 위하여 교구장 주교와 함께 모여 있는 사랑하는 형제 사제 여러분을 마음 속에 그리며 여러분께 이 글을 씁니다. 여러분께서 지역 사제단의 친교 안에서 만나실 때 성부의 해를 지내고 있는 온 교회와 일치를 느끼시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성부의 해는 20세기의 마감 그리고 동시에 그리스도교 제2 천년기의 마감을 알리는 전주입니다.

이러한 점에서, 우리는 복음을 위하여 평생을 바쳤고 때로는 생명까지도 바쳤던 수많은 사제들을 생각할 때 하느님께 감사 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다가오는 희년의 정신으로, 우리는 과거 세대의 그리스도인들과 또 그 시대의 사제들이 저지른 잘못과 극복하지 못한 한계를 고백하면서, 인간의 진보를 위하여 교회가 해 온 고귀한 봉사의 상당 부분이 수많은 그리스도 교역자들의 겸손하고 성실한 활동 덕분이었음을 기쁜 마음으로 인정합니다. 그들은 지난 천 년 동안 사랑의 문화를 이룩하기 위하여 노력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시간의 무한성! 시간이 언제나 처음에서 멀어져 가는 움직임이라 하더라도, 다시 생각한다면, 시간은 다시 그 처음으로 되돌아가는 움직임입니다. 이는 매우 중요합니다. 만일 시간이 우리를 그 처음에서 점점 멀어지게만 한다면, 또 그 최종 목적지, 곧 기원으로의 회귀가 분명하지 않다면, 시간 안에서 우리의 삶 전체는 명확한 방향을 잃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시간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지금 계시고 전에도 계셨던 …… 알파요 오메가"(묵시 1,8)이신 그리스도께서는 시간을 항해하는 우리 인류에게 방향과 의미를 주셨습니다. 그분께서는 당신 자신에 대하여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아버지께로부터 나와서 세상에 왔다가 이제 세상을 떠나 다시 아버지께 돌아간다"(요한 16,28). 이리하여 그리스도 사건은 우리 각자의 항해에 영향을 미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시간을 항해하며 그분께서 가신 방향과 같은 방향, 곧 하느님께로 나아갑니다.

이 사실은 성삼일 동안 더욱 분명해집니다. 이 지극히 거룩한 삼일 동안 우리는 수난과 죽음, 부활을 통하여 아버지께로 돌아가신 그리스도께 신비롭게 동참합니다. 신앙은 우리에게 아버지를 향한 그리스도의 여정, 곧 그분의 부활이 그분에게만 관련된 사건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시켜 줍니다. 우리도 그 여정에 참여하도록 초대 받았습니다. 그분의 부활은 곧 우리의 부활입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아버지를 향해 나아갑니다. 우리는 파스카 신비를 통하여, 곧 십자가 위에서 "나의 하느님, 나의 하느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마르 15,34) 하고 외치시던 그리스도께서 돌아가시기 직전에 "이제 다 이루었다"(요한 19,30) 하시며 "아버지 제 영혼을 아버지 손에 맡깁니다"(루가 23,46) 하시며 숨을 거두신 그 십자가의 시간들을 되살리며 아버지께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복음서의 이 말씀들은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에게나 친숙한 표현이지만 특히 사제들에게는 더욱 그렇습니다. 이 말씀들은 우리의 삶과 죽음을 이야기합니다. 하루를 끝내고 우리는 성무일도를 바치며 "주님, 제 영혼을 주님 손에 맡기나이다." 하고 기도하면서 우리의 파스카 신비, 곧 우리 자신의 부활 체험을 준비합니다. 그때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죽음과 부활을 통하여 우리를 당신께로 이끄시어 하늘에 계신 아버지 앞에 서게 하실 것입니다.  

 

3. "하늘과 땅의 주인이신 아버지, 안다는 사람들과 똑똑하다는 사람들에게는 이 모든 것을 감추시고 오히려 철부지 어린아이들에게 나타내 보이시니 감사합니다. 그렇습니다. 아버지! 이것이 아버지께서 원하신 뜻이었습니다. 아버지께서는 모든 것을 저에게 맡겨 주셨습니다. 아버지밖에는 아들을 아는 이가 없고 아들과 또 그가 아버지를 계시하려고 택한 사람들밖에는 아버지를 아는 이가 없습니다"(마태 11,25-27). 그렇습니다. 아들만이 아버지를 압니다. 성 요한이 복음서에 썼듯이 "아버지의 품 안에 계신"(1,18) 아들만이 아버지를 우리에게 가까이 모셔다 주셨고, 아버지에 대해 말씀해 주셨으며, 아버지의 얼굴과 마음을 보여 주셨습니다. 마지막 만찬에서 사도 필립보가 "주님 저희에게 아버지를 뵙게 해 주십시오."(요한 14,8) 하고 청하자, 그리스도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필립보야, 들어라. 내가 이토록 오랫동안 너희와 같이 지냈는데도 너는 나를 모른다는 말이냐? …… 너는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다는 것을 믿지 않느냐?"(요한 14,9-10) 이 말씀으로써 예수님께서는 삼위일체의 신비, 곧 영원히 아버지에게서 나시는 아들의 신비를 증언하십니다. 그 신비는 당신의 신적 위격이 지닌 가장 심오한 신비입니다.

복음서는 아버지에 대한 끊임없는 계시입니다. 성전에서 학자들과 함께 있는 예수님을 사흘 만에 찾아낸 요셉과 마리아가 "얘야, 왜 이렇게 우리를 애태우느냐?"(루가 2,48) 하고 말하자, 열두 살의 소년 예수님은 하느님 아버지를 일컬으며 이렇게 대답하십니다. "나는 내 아버지의 집에 있어야 할 줄을 모르셨습니까?"(루가 2,49) 열 두 살의 나이에 이미 예수님께서는 당신 자신의 삶과 사명의 의미를 분명히 인식하셨습니다. 곧 당신의 삶과 사명은 처음부터 끝까지 "아버지의 일"에 온전히 바쳐졌다는 것을 알고 계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사명은 해골산의 십자가 희생으로 그 절정에 이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순종의 정신과 자식된 도리로서 십자가의 희생을 받아들이셨습니다. "아버지, 아버지께서는 하시고자만 하시면 무엇이든 다 하실 수 있으시니 이 잔을 저에게서 거두어 주소서. 그러나 제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소서"(마태 26,39.42). 아버지께서는 아들의 희생을 받아들이십니다. 그것은 이 세상을 너무도 사랑하시어 외아들을 보내셔서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든지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도록 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요한 3,16 참조). 그렇습니다. 오직 아들만이 아버지를 알며, 따라서 오직 아들만이 우리에게 아버지를 보여 주실 수 있습니다.

 

4. "Per ipsum, et cum ipso, et in ipso ……"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리스도와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으로 하나 되어 전능하신 천주 성부 모든 영예와 영광을 영원히 받으소서."

이 특별한 날에 영적으로 하나 되어 주교좌 성당에 함께 모인 우리는 사제직의 은혜에 대하여 하느님께 감사 드리며, 우리가 사제로서 거행하는 성찬례의 은혜에 대해서도 감사하고 있습니다. 감사기도 끝에 드리는 마침 영광송은 성찬 전례에서 매우 중요합니다. 마침 영광송은 어떤 의미에서 미사 성제의 핵심인 신앙의 신비(Mysterium Fidei)가 절정에 달하는 순간입니다. 이 신비는 그리스도께서 처음 다락방에서 빵과 포도주를 당신의 몸과 피로 변화시키셨던 그 순간처럼 우리가 성령의 힘을 받아 빵과 포도주를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변화시키는 그 순간에 실현됩니다. 감사기도가 절정에 이르는 바로 그 순간, 교회는 사제를 통하여 아버지께 이렇게 기도 드립니다.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리스도와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으로 하나 되어 전능하신 천주 성부 모든 영예와 영광을 영원히 받으소서." 찬미의 희생 제사(Sacrificium laudis)!

 

5. 회중이 장엄하게 "아멘." 하고 응답한 다음, 집전자는 주님의 기도를 인도합니다. 서로 이어지는 이 두 순서는 매우 중요합니다. 복음서에 따르면, 사도들은 깊은 명상 중에 아버지와 대화를 나누시는 주님을 보고 놀라워하며 "주님, 저희에게도 기도를 가르쳐 주십시오."(루가 11,1) 하고 청했다고 합니다. 이에 주님께서는 교회와 모든 그리스도인이 가장 자주 사용하게 될 중요한 '주님의 기도'를 처음으로 가르쳐 주셨습니다. 우리가 성찬례 거행 중에 이 기도를 바치면 그 기도는 특별한 힘을 지니게 됩니다. 마치 우리가 그 순간에, 그리스도께서 아버지께 드리는 당신의 기도를 십자가의 희생을 통하여 설명해 주심으로써 가장 완전하고 분명하게 가르쳐 주셨다는 것을 고백하듯이 말입니다.

교회가 바치는 '주님의 기도'는 바로 미사 성제 안에서 그 완전한 의미를 드러냅니다. 그 기도의 청원 하나 하나마다 특별한 진리의 빛을 얻습니다. 십자가 위에서 아버지의 이름은 가장 "거룩히 빛나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결정적으로 오시며, 아버지의 뜻이 확실하게 이루어집니다.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가 용서하오니 저희 죄를 용서하시고 ……" 라는 청원은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께서 "아버지, 저 사람들을 용서하여 주십시오! 그들은 자기가 하는 일을 모르고 있습니다."(루가 23,34) 하신 말씀을 완벽하게 반영하고 있지 않습니까? 일용할 양식을 청하는 것은 우리가 성찬례에서 '쪼개진 빵'의 형상으로 오시는 그리스도의 몸을 받아먹을 때 그 어느 때보다 더 의미심장해집니다.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라는 기도는 교회가 구원을 받고 악에서 해방되기 위하여 아버지께 최고의 값을 치르는 바로 그 순간에 가장 큰 효력이 있지 않겠습니까?

 

6. 성찬례를 통하여 사제 자신은 그리스도의 무한한 신비에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아버지께 드리신 기도의 신비에 다가갑니다. 사제는 거룩한 미사를 거행함으로써 날마다 이러한 구원과 은총의 신비에 깊이 잠길 수 있습니다. 타당한 이유가 있어 신자들의 참여 없이 미사를 바친다 하더라도, 그 미사는 의미와 가치를 잃지 않으며, 언제나 신자들과 전 세계를 위하여 바쳐지는 것입니다. 그를 그리스도의 사제직에 결합시키는 바로 이러한 확고한 유대 때문에, 사제는 기도의 스승인 것입니다. 따라서 제자들이 어느 날 예수님께 "저희에게 기도를 가르쳐 주십시오." 하고 간청하였듯이, 신자들도 사제에게 같은 간청을 할 권리가 있습니다.

성찬 전례는 공동체에 그리스도인의 기도를 가르쳐 주는 뛰어난 학교입니다. 미사는 건전한 영성 교육을 위한 폭넓은 가능성을 많이 열어 줍니다. 그 가운데 하나가 성찬례 거행의 자연스러운 연장인 성체 조배입니다. 성체 조배를 통하여 신자들은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 "머무는" 특별한 체험을 하게 되고(요한 15,9 참조), 아버지와 아들의 부자 관계에 더욱 깊이 들어갈 수 있습니다.

제가 모든 사제에게 확신과 용기를 가지고 그리스도인 공동체를 참된 기도의 공동체로 이끌어 줄 의무를 수행하도록 권고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입니다. 오늘날의 세속화된 사고 방식이 낳은 어려움 때문에 때로는 그 일이 매우 큰 노력을 요구한다 하더라도 그것은 어떠한 사제도 소홀히 할 수 없는 의무입니다.

하느님께서 특히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통하여 우리 시대의 교회에 불어넣어 주신 강력한 선교 열정은 교역자들에게 먼저 회개를 요구하기 때문에 특히 그들에게는 하나의 도전입니다. 다른 사람들을 회개시키기 위해서는 교역자들 자신이 먼저 회개하여야 합니다. 다시 말해 세례 받은 모든 사람이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자녀로서 존엄과 기쁨을 발견하도록 도와 주기 위해서는 교역자들 스스로 하느님의 자녀라는 강한 체험을 하여야 합니다.

 

7. 사랑하는 형제 사제 여러분, 성목요일에 우리는 우리의 사제 서약을 새로이 할 것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거룩한 사제직과 희생 제사, 게쎄마니 동산에서의 번민과 해골산에서의 죽음, 당신의 영광스러운 부활로 우리를 다시 한 번 인도해 주시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우리는 이 모든 구원 사건을 통하여 예수님의 발자취를 더듬으면서 아버지께 자신을 깊이 열어 보여 주신 그분을 발견합니다. 그러므로, 어떤 면에서 모든 성찬례는 다락방에서 사도 필립보가 "주님, 저희에게 아버지를 보여 주십시오." 하고 드렸던 간청을 되풀이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신앙의 신비를 통하여 매번 이렇게 대답하십니다. "내가 이렇게 오랫동안 너희와 같이 지냈는데도 너는 나를 모른단 말이냐? …… 너는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다는 것을 믿지 않느냐?"(요한 14,9-10)

전 세계의 사랑하는 형제 사제 여러분, 성목요일인 오늘, 우리가 서품식 때에 받았던 축성 성유 도유를 상기하면서 감사의 마음을 새로이 하며 한 목소리로 선포합시다.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리스도와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으로 하나 되어

전능하신 천주 성부

모든 영예와 영광을 영원히 받으소서. 아멘!

 

 

바티칸에서, 교황 재위 제21년, 1999년 3월 14일, 사순 제4주일에,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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