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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사목] 신앙으로 현대문화읽기: TV - 육아 예능, 사랑에도 조건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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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5-05-09 ㅣ No.822

[신앙으로 현대 문화 읽기] TV


육아 예능 : 사랑에도 조건이 있을까



SBS 토크쇼 ‘붕어빵’ 출연진들. (SBS 제공)


토크쇼 ‘붕어빵’(SBS)으로 시작된 육아 예능이 5년여 만에 TV의 어엿한 장르로 정착됐다. ‘붕어빵’은 최근 종영했고 관찰형 육아 예능의 선구자 ‘아빠 어디가’도 막을 내렸지만, ‘슈퍼맨이 돌아왔다’(KBS2)는 1년 가까이 동시간대 시청률 1위를 지키고 있다. ‘오 마이 베이비’(SBS), ‘엄마의 탄생’(KBS1)도 순항 중이다. 이쯤 되면 유명인의 자녀들을 온 국민이 마음으로 같이 키우는 형국이다.

‘붕어빵’에서 ‘아빠’로, ‘슈퍼맨’으로 주도권을 옮겨 다니며 육아 예능은 다음과 같은 흐름을 보여왔다. 촬영 배경이 점점 집 안으로 들어가면서 출연자는 사생활을 더 많이 노출할 것을 요구받는다. 어린이의 나이도 어려진다. ‘붕어빵’에서 어른들의 부조리를 꼬집던 사춘기 아이들은 ‘아빠’에서 배제됐고, 방송을 의식하는 ‘아빠’의 초등학생들은 ‘슈퍼맨’에서 배제됐고, ‘베이비’와 ‘엄마’의 자녀 연령은 갓난아이와 태아로까지 내려갔다. 출연자 집단은 가정들의 연합에서 개별 가정으로 쪼개진다. ‘아빠’와 ‘붕어빵’에 등장하던, 부모들이 이웃으로 뭉치고 외둥이들이 형제애를 배우던 공동체는 이제 ‘슈퍼맨’에서 가끔 볼 뿐이다.

아이들을 향한 대중의 몰입은 생명에 대한 인간의 본능적 갈망을 상기시킨다. 아이들이 부모에게 의탁하는 모습을 보며 우리는 모두 자녀로 태어났고 누군가의 보살핌이 필요한 존재임을 깨닫는다. 아이와 함께 자라는 부모들의 웃음과 눈물을 보노라면 “저희를 낳아 기르며 갖은 어려움을 기쁘게 이겨냈으니”(부모를 위한 기도)라는 기도문 구절이 가슴에 와 닿는다.

그렇다고 육아 예능을 흐뭇하게 볼 일만은 아니다. 현실의 육아 환경은 핵가족화와 이웃의 단절, 과도한 노동과 경쟁으로 악화되고, 많은 아이들이 과도한 사교육, 위험한 교통 환경, 가족 간 갈등으로 고통받고 있음에도, 예능은 설정과 편집으로 일상을 예쁘게 왜곡한다. ‘슈퍼맨’에서 한 가족당 48시간의 촬영분은 방송에서 60분 정도로 압축되는데, 그 과정에서 아이들이 울거나 아프거나 부모와 대립하는 장면은 삭제된다. 많은 편의를 제공받으며 촬영한 야외 체험활동은 고비용 취미생활을 보편적 일상처럼 여기게 할 수도 있다. 부모의 이혼과 동시에 퇴장한 ‘붕어빵’의 아이들처럼, 이른바 ‘결손 가정’이 배제되는 현상도 간과할 수 없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가정에 대한 일반알현 연설에서 “어린이들은 각자 고유하며 조건 없이 사랑받아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오늘의 육아 예능은 어린이가 누려야 할 사랑을 ‘조건적 사랑’으로 대치시키는 데 일조한다. TV 속 어린이 출연자들은 더 어리고, 잘 웃고, 말하되 고집부리지 않고, 예쁜 옷을 입고, 낯선 환경에서도 활달해야 한다는 등의 암묵적 조건을 요구받는다. 조건에 미달한 어린이는 존재감을 잃고, 조건을 충족한 어린이는 시청률과 광고 캐스팅으로 사랑을 확인받는다. 조건적 사랑이 방송사 간 경쟁에서 시작됐다고 대중의 책임이 완전히 면제되진 않는다. 조건 경쟁을 부채질한 건 착한 어린이를 향한 환호였으니.

* 김은영(TV칼럼니스트) -
한국천주교주교회의 경향잡지 기자를 거쳐 미디어부에서 언론홍보를 담당한다. 2008년 <매거진T> 비평 공모전에 당선된 뒤 <무비위크>, <10아시아> 등에 TV 비평을 썼고, 2011년에 단행본 <예능은 힘이 세다>를 냈다.

[가톨릭신문, 2015년 5월 10일,
김은영(TV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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