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0일 (금)
(백) 부활 제6주간 금요일 그 기쁨을 아무도 너희에게서 빼앗지 못할 것이다.

성인ㅣ순교자ㅣ성지

[순교자] 복자 정산필 베드로 약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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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6-01-29 ㅣ No.342

정산필 베드로[(1739-1749)-1799년]

 

 

충청도 덕산의 양인 집안에서 태어난 정산필(鄭山弼) 베드로는, 본래 성격이 괄괄하고 힘이 예사롭지 않아 모두가 무서워하였다. 그러나 천주교 신앙을 받아들인 뒤로는 아주 겸손하고 온순해졌으며, 누구에게나 친절하였다.

1794년 말 중국인 주 야고보 신부가 조선에 입국하자, 정 베드로는 주 신부를 찾아가 직접 그에게 세례를 받는 행복을 누렸다. 또 이후에는 내포 지역의 회장으로 임명되어 자신이 맡은 직분을 다하였다. 부지런히 기도와 독서를 하였으며, 자신에게 맡겨진 사람들을 끊임없이 가르치고 격려하는 데 정성을 다하였다.

정 베드로에게는 박 라우렌시오, 원 야고보, 방 프란치스코 등 절친한 친구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서로 오가면서 열심히 교리를 실천하였다. 그러다가 1797년에 일어난 정사박해 때에 자신들이 살던 마을에서 체포되어 모두 순교하였다.

정 베드로가 체포된 때는 1798년이나 1799년이었다. 그는 덕산 관아로 끌려가 여러 차례 문초와 형벌을 받았지만, 용감하게 천주의 가르침을 증언하였다. 또 옥에서는 함께 갇힌 동료들을 격려하였으며, 자신의 사형 선고문에 서명을 하면서도 전혀 동요하는 빛이 없었다.

사형 집행일이 되자, 정 베드로는 사형수에게 주는 마지막 음식을 받게 되었다. 이때 그는 동료들에게 같이 먹자고 하면서 이렇게 말하였다.

“천주께서 사람을 위하여 창조하신 음식이니, 마지막으로 감사의 기도를 드리며 먹읍시다. 이제 우리는 천국에 가서 영원한 행복을 누릴 것입니다.”

그런 다음 정 베드로는 형장으로 나가 장사형(또는 참수형)으로 순교하였으니, 이때가 1799년으로, 당시 그의 나이는 50세에서 60세 사이였다.

[주교회의 시복시성 주교특별위원회 편, '복자'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123위 '하느님의 종' 증거자 최양업 토마스 신부, 서울(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201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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