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3일 (금)
(홍) 성 필립보와 성 야고보 사도 축일 내가 이토록 오랫동안 너희와 함께 지냈는데도, 너는 나를 모른다는 말이냐?

예화ㅣ우화

우동 한그릇(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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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훈 [gregory1004] 쪽지 캡슐

1999-06-12 ㅣ No.113

다시 일년이 지나......
북해정에서는, 밤 9시가 지나서부터 <예약석>이란 팻말을 2번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기다리고 기다렸지만, 그 세 모자는 나타
나지 않았다.
다음 해에도, 또 다음 해에도,2번 테이블을 비우고 기다렸지만,
세 사람은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북해정은 장사가 번창하여, 가게 내부수리를 하게되자. 테이블이랑
의자도 새로이 바꾸었지만 그 2번 테이블만은 그대로 남겨두겼다.
새 테일블이 나란히 있는 가운데에서, 단 하나 낡은 테이블이 
중앙에 놓여 있는 것이다.

"어째서, 이것이 여기에?"하고 의아스러워하는 손님에게, 주인과
여주인은<우동 한 그릇>의 일을 이야기하고, 이 테이블로 맞이하
고 싶다.라고 설명했다.
그 이야기는,'행복의 테이블'로써, 이 손님에게서 저 손님에게로
전해졌다. 일부러 멀리에서 찾아와 우동을 먹고가는 여학생이 있는
가 하면, 그 테이블이 비길 기다려 주문을 하는 젊은 커플도
있어 상당한 인기를 불러 일으켰다.

그리고나서 또,수년의 세월이 흐른 어느해 섣달 그믐의 일이다.
북해정에는, 같은 거리의 상점회 회원이며 가족처럼 사귀고 있는
이웃들이 각자의 가게를 닫고 모여들고 있었다.
북해정에서 섣달 그믐의 풍습인 해넘기기 우동을 먹은 후,제야의
종소리를 들으면서 동료들과 그 가족이 모여 가까운 신사에 그 해
의 첫 참배를 가는 것이 5,6년 전부터의 관례가 되어 있었다.
그날 밤도 9시 반이 지나 생선가게 부부가 생선회를 가득 담은
큰 접시를 양손에 들고 들어온 것이 신호라도 되는 것처럼,평상시
의 동료 30여명이 술이랑 안주를 손에 들고 차례차례 모여들어
가게 안의 분위기는 들떠있었다.
2번 테이블의 유래를 그들도 알고있다.입으로 말을 안해도 아마,
금년에도 빈 채로 신년을 맞이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섣달 그믐
날 10시 예약석'은 비워둔 채 비좁은 자리에 전원이 조금씩
몸을 좁혀 앉아 늦게 오는 동료를 맞이했다. 우동을 먹는 사람,
술을 마시는 사람,서로 가져온 요리에 손을 뻗히는 사람,카운터
안에 들어가 돕고있는 사람,멋대로 냉장고를 열고 뭔가 꺼내고 
있는 사람 등등으로 떠들썩하다.

바겐세일 이야기,해수욕장에서의 에피소드,손자가 태어난 이야기등,
번잡함이 절정에 달한 10시 반이 지났을 때,입구의 문이 드르륵
하고 열렸다. 몇 사람인가의 시선이 입구로 향하며 동시에 그들은
이야기를 멈추었다.
오바를 손에 든 정장 슈트차림의 두 사람의 청년이 들어왔다.다시
얘기가 이어지고 시끄러워졌다.여주인이 죄송하다는 듯한 얼굴로
"공교롭게 만원이어서"라며 거절하려고 했을 때 화복(일본 옷)
차림의 부인이 깊이 머리를 숙이며 들어와서, 두 청년사이에 섰다
가게 안에 있는 모두가 침을 삼키며 귀를 기울인다.
화복을 입은 부인이 조용히 말했다.

"저.....우동......3인분입니다만......괜찮겠죠?"

그 말을 들은 여주인의 얼굴색이 변했다. 십수년의 세월을 순식간
에 밀어 젖히고, 그 날의 젊은 엄마와 어린 두 아들의 모습이
눈앞의 세 사람과 겹쳐진다.
카운터 안에서 눈을 크게 뜨고 바라보고 있는 주인과,방금 들어온
세 사람을 번갈아 가리키면서,

"저......저......여보!"

하고 당황해하고 있는 여주인에게 청년 중 하나가 말했다.

"우리는, 14년전 섣달 그믐날 밤,모자 셋이서 일인분의 우동을
주문했던 사람입니다. 그 때의 한 그릇의 우동에 용기를 얻어 세
사람이 손을 맞잡고 열심히 살아갈 수가 있었습니다.
그 후,우리는 외가가 있는 시가현으로 이사했습니다.저는 금년,
의사 국가시험에 합격하여 교토의 대학병원에 소아과의 병아리 의사
로 근무하고 있습니다만, 내년 4월부터 삿뽀로의 종합병원에서
근무하게 되었습니다.
그 병원에 인사도하고 아버님 묘에도 들를겸해서 왔습니다.그리고
우동집 주인은 되지 않았습니다만 교토의 은행에 다니는 동생과
상의해서, 지금까지 인생 가운데에서 최고의 사치스러운 것을 계획
했습니다.....그것은, 섣달 그믐날 어머님과 셋이서 삿뽀로의
북해정을 찾아와 3인분의 우동을 시키는 것이었습니다."

고개를 그덕이면서 듣고 있던 여주인과 주인의 눈에서 왈칵 눈물이
넘쳐 흘렀다.
입구에 가까운 테이블에 진을 치고 있던 야채가게 주인이,우동을
입에 머금은 채 있다가 그대로 꿀꺽하고 삼키며 일어나,

"여봐요 여주임 아줌마! 뭐하고 있어요!십년간 이 날을 위해
준비해 놓고 기다리고 기다린,섣달 그믐날 10시 예약석이잖아요,
안내해요. 안내를!"

야채가게 주인의 말을 번뜩 정신을 차린 여주인은,

"잘 오셨어요...자 어서요...여보!2번 테이블 우동3인분!"

무뚝뚝한 얼굴을 눈물로 적신 주인,

"네엣! 우동 3인분"

예기치 않은 환성과 박수가 터지는 가계 밖에서는 조금전까지 흩날
리던 눈발도 그치고, 갓 내린 눈에 반사되아 창문의 빛에 비친
<북해정>이라고 쓰인 옥호막이 한 발 앞서 불어제치는 정월의
바람에 휘날리고 있었다.

 

글을 읽으신 분들도 제가 느꼈던 감동을 같이 느끼셨으면 좋겠네요..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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