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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칼럼: 도서 교회의 참된 개혁과 거짓 개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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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3-10-08 ㅣ No.96

[도서칼럼] 도서 ‘교회의 참된 개혁과 거짓 개혁’


참된 개혁과 거짓 개혁

 

 

교회 역사는 교회 개혁의 역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는 좋은 결실을 맺은 개혁도 있었지만, 교회에 상처를 주고 분열을 낳은 운동도 많았습니다. 평신도 신비가의 개혁 운동이 많았던 12-13세기 유럽에서 왈도파는 부패한 성직자들을 비난하며 청빈한 공동체 운동을 벌이다 갈라져 나갔습니다. 반면 아씨시의 프란치스코는 형제회에 대한 교계의 지도를 수용하며 교회 안에 더 깊이 접목함으로써 교회에 새바람을 불어넣었습니다. 서구 근대가 움트던 15~16세기 아우구스티노회 사제 루터는 당대 교회의 부패한 관습과 싸우다가 바티칸과 갈라서는 ‘개혁’의 길을 간 데 비해, 종교심문관의 의심을 받았던 평신도 이냐시오는 교계의 지시를 수용하고 소명 여정을 계속하여 예수회를 창설하고 교회를 내부로부터 개혁하는 공헌을 합니다.

 

20세기 프랑스의 도미니코회 신학자 콩가르는 1950년 발간한 저서 《교회의 참된 개혁과 거짓 개혁》에서 교회 역사 안에 있었던 여러 개혁운동을 검토하여 참된 개혁과 거짓 개혁을 식별하고 참된 개혁에 필요한 조건을 제시하는 신학적 성찰을 전개합니다. 그는 이 책에서 참된 개혁의 조건으로 네 가지를 말합니다. 첫째는 애덕의 우위입니다. 결실을 맺는 개혁 운동은 자신의 ‘시스템’을 발전시키기보다 애덕에 바탕을 둔 사목적 접근이었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전체 교회와 친교(communio)에 머무는 것입니다. 개혁 운동은 아무리 훌륭하다고 해도 전체 교회가 아니며 전체 진리를 파악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분명한 자기 인식이 필요합니다. 그래야 교회의 다른 이들로부터 교정받을 수 있는 개방성과 겸손이 생겨납니다. 루터와 이냐시오가 비교되는 지점입니다. 셋째는 쇄신은 새로운 요소를 덧붙이는 것보다 ‘원천’으로 돌아가서 그것을 현대의 맥락으로 표현하는 것입니다. 넷째는 개혁이 더디어도 인내하는 것입니다. 분열을 낳은 개혁 운동의 특징은 “느리게 일하는 하느님과 교회를 존중하지 않기에 초기 영감에 있던 모호한 요소가 분파적인 방향으로 갔다.”라는 점입니다.

 

특히 콩가르는 전체 교회와 나누는 친교에서 교회의 중심부와 변방 사이에 있는 내재적인 긴장과 상호의존성을 강조합니다. 변방에서 새로운 변화를 시도해도 교회 중심의 축복 없이 충만한 개혁이 힘듭니다. 동시에 변방이나 기층의 참여가 약한 채, 위에서 시도되는 개혁 역시 좋은 결실을 맺기 어렵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를 생각해 보고 싶습니다. 성직주의를 극복하고 ‘함께 걷는 교회’가 되기 위한 현 교황님의 개혁에 대해 한국 교회 구성원 대부분은 잘 알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10월 4일부터 시노달리타스를 주제로 하는 세계주교시노드가 2년에 걸친 지역 교회의 참여 과정을 거쳐 시작되었지만, 한국 교회 구성원의 시야에 잘 들어와 있지 않습니다. 이 때문에 교황님의 개혁 운동이 기층의 참여가 약한 미완의 개혁으로 남게 될까 염려가 됩니다. ‘빨리빨리’ 문화에 익숙한 우리에게 콩가르는 천천히 일하는 하느님을 신뢰하며 인내하라고 격려할까요?

 

[2023년 10월 8일(가해) 연중 제27주일(군인 주일) 서울주보 7면, 김우선 데니스 신부(예수회, 서강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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