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7월 9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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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지오ㅣ성모신심

레지오와 마음읽기: 무지한 자들의 고요(악의 평범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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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0-01-05 ㅣ No.667

[레지오와 마음읽기] 무지한 자들의 고요(악의 평범성)

 

 

덕망이 높기로 유명한 지킬박사는 인간 안의 선과 악을 분리하는 약을 발명하는데 성공한다. 이를 복용한 지킬박사는 악으로만 뭉쳐진 하이드로 변하게 되고, 하이드는 양심의 가책 없이 온갖 나쁜 일들을 저질러 살인 등의 죄목으로 지명수배자가 되어 사회생활이 어려워지게 된다. 하지만 약으로 여러 번 하이드로 변하여 하이드의 모습을 즐겼던 지킬박사는 약을 먹지 않은 상태에서도 하이드로 변하게 되고, 급기야 약이 떨어진다. 하지만 다시 약을 만들 수 없었던 지킬박사는 하이드의 모습을 한 채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이는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의 ‘지킬박사와 하이드 씨’이다. 이 이야기 속의 하이드의 모습은 매우 험악하여 그를 본 사람들은 한 결 같이 그에게서 알 수 없는 섬뜩한 공포를 느낀다고 진술하였다. 이처럼 우리는 대개 흉측한 일을 저지르는 사람은 보통 사람들과는 다른 기묘한 분위기일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나치 독일에서 수백만 명의 유대인 집단학살을 지휘한 사람이 있었다. 그는 독일의 친위대 보안국에서 일하면서, 유대인을 이주시키기보다는 오히려 학살하는 것이 좋은 방법이라는 보고서를 제출하기도 하고, 실제로 효율적으로 유대인을 죽이기 위해 열차에 가스실을 설계하기도 했다. 그런 그가 전쟁 후 재판정에 나섰을 때 많은 사람들이 그의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학살을 주도한 무자비한 사람이 50대 중년의 평범한 남성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는 누구보다도 준법정신이 강했고 가정에 충실했으며 아주 성실하고 언제 어디서나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었다.

 

그의 이름은 아놀드 아이히만. 그는 재판 중에도 자신은 죄가 없다고 주장하였다. “저는 억울합니다. 저는 지시받은 업무를 잘 처리하기 위해 열심히 일했을 뿐입니다. 제가 제작한 ‘열차’ 덕분에 우리 조직은 시간 낭비 없이 일을 처리할 수 있었지요.” “저는 잘못이 없습니다. 저는 시키는 것을 그대로 실천한 하나의 인간이자 관리자였을 뿐입니다.” 등이 그의 말이었다. 또한 그는 수백만 명의 죽음에 대해 양심의 가책을 느낀 적은 없었냐는 물음에 전혀 양심의 가책이 없다며, 오히려 월급을 받으면서도 주어진 일을 열심히 하지 않았다면 양심의 가책을 받았을 것이라고 했다.

 

 

‘악의 평범성’, 악은 아주 평범하고 진부한 것

 

이쯤 되면 우리들은 아이히만의 주장에 대하여 다소 귀를 기울이게 된다. 그의 주장대로 시키는 대로 성실하게 일한 것이 죄가 될 수 있을까? 권위 있는 사람의 명령은 그대로 따라야 하는 것이 아닐까? 그게 잘못이라면 명령에 따른 사람이 아니라 명령을 한 사람에게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등의 의문이다. 이에 대하여 아놀드 아이히만의 재판 전(全) 과정을 지켜본 미국의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그녀의 저서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그는 유죄라고 주장하며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는 아주 근면한 인간이다. 그리고 이런 근면성은 결코 범죄일 수 없다. 하지만 그가 유죄인 이유는 아무 생각이 없었다는 것에 있다.” 그러면서 그녀는 “악의 평범성”이라는 단어를 이야기하였다. 즉 악은 어떤 대단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아주 평범하고 진부한 것으로, 우리가 어떤 일을 생각없이 수행할 뿐만 아니라 그 행동으로 인한 타인의 고통을 헤아리지 못한다면 우리 모두 아이히만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B형제는 20년 동안 레지오를 한 베테랑 단원이다. 퇴직 후 귀향하여 단원 생활을 이어갔다. 그런데 전입 Pr.에서는 훈화나 교본 연구를 하지 않았다. 그는 의아했지만 어쩌다 있는 일일 거라고 생각하였다. 하지만 한 달이 지나도 하지 않아 조심스럽게 Pr.단장에게 그것에 대해 물으니 그동안 훈화는 신부님과 수녀님께서 해주시다가 어떤 이유로 끊어지면서 하지 않게 되었고, 교본연구는 시간 상 생략해 왔다는 것이었다.

 

B형제는 말한다. “사실 처음에는 많이 당황했습니다. 훈화와 교본연구가 단원들에게 주는 영향이 크다고 생각했거든요. 저는 이런 현상이 레지오의 여러 장치에 대한 이해 부족과 습관적인 주회 참석 때문으로 판단되더라고요. 다행히 Pr.에서 저의 제안을 잘 받아들여 주셔서 지금은 훈화도 하고 교본 연구도 제대로 합니다.”

 

 

주회의 영적 독서와 훈화, 교본연구 소홀히 해서는 안 돼

 

“레지오는 규칙의 힘을 바탕으로 강력한 질서 체계를 마련”(교본 109쪽)하는 단체이다. 그러다 보니 규칙이 생긴 이유와 효과에 대한 이해가 없다면 생각 없이 그 규칙만을 따를 위험이 높다. 하지만 다행히 레지오에는 교본이 있어 그런 위험을 피할 수 있다. 교본에는 레지오가 로마군단의 이름을 따온 이유부터 물질적 구제를 하지 않는 이유까지 아주 잘 설명되어 있기에, 교본을 잘 숙지한다면 생각 없이 단원 생활하는 것을 방지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주회의 영적 독서와 훈화, 교본연구는 소홀히 해서는 안 될 중요한 부분이다.

 

뿐만 아니라 상급평의회 공지사항을 복사하여 배부하는 것은 바람직한 운영이라 할 수 있는데, 이는 “레지오 마리애의 일치를 확립하고 본래의 이념을 수호”(교본 232쪽)하는 평의회의 임무를 수행하는 일이 되기 때문이다. 나아가 평의회 결정 사항 전달 때, 결정한 이유까지 단원들에게 설명된다면, 좀 더 자발적이며 적극적인 활동을 끌어 낼 수 있을 것이다. 동기는 자발성에서 오기 때문이다.

 

평범하고 선량하기 조차한 사람들이 언제든지 자신의 의도와는 다르게 악을 저지를 수 있다는 메시지를 주는 “악의 평범성”은 우리에게 생각하며 행동하게 다그친다. 한나 아렌트가 말하는 ‘생각이 없다’는 뜻은 능력이 없다는 뜻이 아니라 그렇게 하는 이유에 대한 인지가 없다는 뜻이다. 오히려 능력 있는 사람이 생각 없이 어떤 행위를 습관적으로 할 때 그것이 주는 악영향이 크다.

 

그러니 적어도 “누구나 다 하는데”, “나 하나 반대한다고 달라지겠어?” 혹은 “시키는 대로만 하면 돼” 등의 말은 하지 말아야 한다. 이는 생각 없이 행동하게 만들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또한 교본에 “각 단원은 결코 수동적이거나 기계적인 자세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교본 98쪽) 라고 되어 있으니, 단원 생활 중 혼란스러운 것은 적극적으로 해결하여 의문은 풀고 이유는 이해하며 나아가야 한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무지한 자들의 고요 속에 머물게 하지 않으시며, 겁쟁이들의 비겁한 평온 속에도 놓아두지 않으신다.”(드 가스파랭 / De Gasparin)(교본 458쪽)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20년 1월호, 신경숙 데레사(독서치료전문가, 행복디자인심리상담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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