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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미술ㅣ교회건축

한국 가톨릭 미술, 여성 작가들: 타피스트리 작가 성옥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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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0-01-05 ㅣ No.697

[한국 가톨릭 미술 여성 작가들] <8> 타피스트리 작가 성옥희(1935~)


씨실과 날실 엮어 표현한 자유롭고 영원한 공간

 

 

- 성옥희 작가의 대표적인 작품인 왜관수도원의 타피스트리. 연중시기, 타피스트리, 2002, 왜관수도원.

 

 

※ 이 글은 2017년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에서 주관한 한국 가톨릭 미술가 동영상 기록 작업을 진행하며 인터뷰했던 내용을 중심으로 작성하였다.

 

타피스트리 작가 성옥희(成玉姬, 체칠리아, 1935~ )는 1935년 서울 출생으로 경기여고를 졸업하고 1954년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응용미술학과에 입학했다. 본래 회화를 전공하고자 했던 그는 학부 졸업 후 1959년 서울대학교 대학원 회화화 석사 과정을 수료했다. 이처럼 응용미술과 순수미술을 함께 연구한 것은 자유롭고 회화적인 작품 경향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건국대학교 가정대학과 이화여자대학교 섬유예술과 교수로 재직한 성옥희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타피스트리 작가로서뿐만 아니라 교육자로서 후학 양성을 위해서도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교회미술 분야에서도 꾸준히 활동해온 성 작가는 1998년 제3회 가톨릭미술상 공예부문 본상을 수상했다.

 

 

미국 체류 시기, 재료 제약에서 벗어나

 

섬유예술의 길을 택한 성 작가는 건국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이던 1970~1971년 일본 동경여자미술대학에서 염색과 직조를 연구했고, 미국 체류 시기인 1979년 미국 시카고 예술대학(The School of The Art Institute of Chicago)에서 섬유예술을 전공했다. 이후 1981년 뉴욕 뉴스쿨(New School of New York)에서 수학하며 프랑스식 타피스트리를 연구했다. 미국 체류 시기에 성 작가는 타피스트리의 다양한 경향을 체험하며 자신의 작품세계를 완성해갔다.

 

미국에서 보다 폭넓게 재료를 접할 수 있었던 것도 그의 작품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성 작가는 당시 원하는 색의 실을 마음껏 구입해 쓸 수 있었던 것이 꿈같은 일이었다고 회고했다. 이렇게 재료 제약에서 자유로워진 성 작가는 자신의 회화적인 작품 경향을 더 잘 펼칠 수 있었다.

 

 

‘공간 예술’로서의 타피스트리 연구

 

성옥희 작가는 1970년에 창립된 서울 가톨릭 미술가회 전시 출품 제의를 받으면서 가톨릭 미술에 입문했다. 1971년 신세계 백화점에서 개최된 제1회 서울 가톨릭 미술가회 전시에서 성 작가는 자신이 직접 염색한 면사로 원형의 구도로 이루어진 추상적인 십자가를 출품했다. 현재 이화여자대학교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이 작품은 그의 첫 교회 미술 작품으로 큰 의미가 있다. 성 작가는 이후 성당을 위한 작품들을 제작하면서도 기능적인 측면뿐만 아니라 공간 예술로서의 타피스트리를 선보였다. 즉 공예의 영역에 한정된 것이 아닌 순수예술로서의 타피스트리를 연구하고 실제 공간에 적용하려는 노력을 보여주었다.

 

성 작가의 타피스트리는 미리 계획된 도안에 따라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전체 구도 속에서 작가의 느낌에 따라 즉흥적이고 자유롭게 진행된다는 특징이 있다. 그는 작품을 할 때 세부적인 묘사나 형태를 그리기 이전에 작품 전체의 구도를 잡는 것에서 시작한다. 수직 구도, 수평 구도, 사선 구도 등과 같이 큰 그림을 완성해놓고 그다음부터는 머리에 작품을 그리며 느낌대로 화면을 엮어나간다. 그는 마치 물감을 섞듯 여러 색의 실들을 직관에 따라 조합하면서 화면에 붓질하듯 타피스트리를 짜나간다. 이와 같은 작업을 통해 성 작가가 궁극적으로 표현하고자 한 것은 자유롭고 영원한 공간이다.

 

그래서인지 성옥희 작가는 자신의 작품에 있어 작품의 구성 못지않게 작품이 놓일 장소와 작품이 보여질 방식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특히 미사가 거행되는 전례 공간에 있어서는 더욱 그러하다. 그는 기능이 어느 정도 정해져 있는 경우에도 작품을 시작하기 전에 반드시 작품이 놓일 장소를 직접 가보고 전체적인 공간 안에서의 조화에 대해 고민했다.

 

“저는 독서대에 놓일 작은 작품을 하더라도 장소에 꼭 가봅니다. 독서대라는 것이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는 곳이기 때문에 성전 중심의 십자가를 비롯한 모든 요소를 같이 고려해서 작업하고자 했습니다. 그냥 벽면에 걸린 그림처럼 보이는 것은 싫었습니다. 그래서 십자가를 중심으로 해서 현장에서 구도를 먼저 잡아봅니다. 그곳에서 미사를 봉헌하면서 구도를 생각하죠. 하지만 구체적으로 짜여진 스케치를 하지는 않습니다.”

 

성 작가의 작품은 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과 명동대성당 소성당, 가톨릭출판사 마리아홀, 송현성당, 춘천교구청 성당 등에 소장되어 있다. 그의 대표작인 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의 작품은 총 4개의 타피스트리로 구성되어 있고, 교회 전례력에 따라 절기를 나타내는 빨강, 보라, 초록, 흰색의 4가지 색으로 표현되었다. 각각의 타피스트리들은 구체적인 형상의 묘사가 아닌 작가의 감성을 바탕을 한 추상적이고 회화적인 표현을 보여준다. 작가는 이 작품을 하면서도 전체적인 구도를 잡는 것에서 출발해 작품이 놓일 공간을 생각하며 바로 작품에 들어갔다고 한다. 성옥희 작가의 이와 같은 작업 방식은 매우 직관적이고 종합적인 통찰력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 흰 바탕에 학의 이미지를 추상적으로 표현한 그의 작품은 무명의 자연 색감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며 한국적이고 고고한 인상을 자아낸다. 학의 얼, 타피스트리, 1984, 164×105cm.

 

 

그는 이러한 작업 방식이 대학 재학 시절 받은 교육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회고했다. “대학 재학 시절 오라버니 덕분에 매일 아침 일찍 7시에 등교해서 혼자 작업을 했습니다. 그러면 장발 선생님께서 실기실을 한 번 돌아보시다 제 작업을 보시고 어떤 부분을 손가락으로 가리키시고는 아무 말씀 없이 어깨를 톡톡 두드리시고 가셨습니다. 그러면 전 고민에 빠지곤 했죠. 그리고 미국인 선교사 강사의 수업시간도 기억에 남습니다. 아무런 말없이 수업 시간 내내 선을 그리고 사각형, 삼각형, 원 등을 그리면 잘된 것과 그렇지 않은 것들로 분류를 해주시고 그것으로 성적을 주셨습니다. 그때는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지만 스스로 고민하고 방법을 찾도록 했던 그분들의 가르침이 얼마나 훌륭한지 깨달을 수 있었죠. 후에 저도 대학에서 그 방법대로 가르치기도 했습니다.”

 

 

작품 속 ‘새’에 담겨진 한국인의 영혼

 

대학 재학시절 스승들의 불언지교(不言之敎의) 가르침 속에서 자유로운 작업 방식을 터득한 성 작가는 자신의 작품에서 ‘새’를 즐겨 다루었다. 그의 미국 체류 시기 작품부터 자주 등장하는 새는 타국 생활의 외로움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다. 그는 새 중에서도 황새, 학 등 한국의 대표적인 새들을 모티프로 삼았는데 자유롭게 창공을 나는 큰 새의 움직임과 그 뒤에 남은 흔적들에서 영감을 받아 그 여운을 실로 엮어 작품에 담아냈다.

 

흰색 무명실에 직접 염색을 하면서 작업을 했기 때문인지 그의 작품에는 흰색을 주조로 한 작업이 많이 있다. 흰 바탕에 학의 이미지를 추상적으로 표현한 그의 작품은 무명의 자연 색감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며 한국적이고 고고한 인상을 자아낸다. 종교 공간과 일반 공간에 두루 등장하는 성옥희 작가의 ‘새’는 이렇게 우리 한국인의 모습, 막힘없이 트인 공간을 자유롭게 여행하고자 하는 우리 영혼의 모습을 담고 있는 듯하다.

 

우리나라 타피스트리의 역사는 서양에 비해 그 역사가 짧고 전례 공간에 놓인 경우는 더욱 드물다. 더욱이 틀에 매인 작업이 아닌 자유로운 예술로서의 타피스트리를 마주하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 우리 교회에 놓인 성옥희 작가의 타피스트리 작품들이 더욱 값지고 소중하게 다가온다. 그의 손으로 엮어낸 씨실과 날실의 그림 앞에서 영원한 공간으로의 자유로운 여행을 떠나게 된다.

 

[가톨릭평화신문, 2020년 1월 5일, 정수경 가타리나(인천가톨릭대학교 대학원 그리스도교미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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