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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 연명의료결정제도 시행 1년, 가장 큰 문제는 당사자 배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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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9-03-12 ㅣ No.1633

‘연명의료결정제도’ 시행 1년, 가장 큰 문제는 ‘당사자 배제’


죽음 대비할 수 있도록 환자에게 상태 알려줘야

 

 

- 2월 26일 서울 영등포 국회의원회관 제1소회의실에서 열린 ‘연명의료결정제도 시행 1년, 성과와 과제’ 토론회에서 서울 가톨릭대 서울성모병원 임상의료윤리위원회 이명아 부위원장이 발언하고 있다.

 

 

연명의료결정제도가 시행된 지 1년이 지났다. 현재 제도는 잘 운영되고 있을까. 지난 1년간 연명의료 중단이나 유보의 결정과 그 시행은 3분의 2가량이 가족에 의해 이뤄졌다. 당사자는 정작 배제돼온 것이다. 2018년 2월 4일부터 시행된 연명의료결정제도, ‘당사자 배제’의 현주소와 그 해결책을 알아봤다.

 

 

결정에 당사자는 배제

 

#80세 남성 A씨는 연명의료를 중단하겠다고 한 적이 없다. 그런데도 A씨의 연명의료는 중단될 뻔했다. 경제적 부담을 느낀 가족들이 환자가 평소 연명의료를 원치 않았다며 인공호흡기를 떼어 달라고 요구했기 때문이다. 만성폐쇄성폐질환을 앓던 A씨는 치료 중 폐렴과 폐농양이 발생해 호흡곤란이 와 인공호흡기를 부착한 상황이었다. 당시 A씨는 스스로 의사 표현을 하지 못하는 상태였다. 해당 병원 윤리위원회의 판단으로 A씨는 다행히 연명의료를 지속해 지금은 퇴원까지 했지만, 당시에는 가족들의 합의만으로 목숨을 잃을 수도 있었다.

 

#혈액암 치료를 받고 있던 65세 남성 B씨는 연명의료를 원치 않았다. 모든 치료에 반응을 보이지 않았고, 폐렴까지 합쳐져 인공호흡기로 연명하는 것은 고통과 부담만 가중될 거라 생각해서였다. 그러나 B씨는 연명의료를 지속해야 했다. 가족들이 강력히 요청한 탓이었다. 인공호흡기 치료를 시작한 뒤 B씨의 상태는 급격히 나빠졌다. 결국 가족들조차 연명의료 중단을 요구하는 지경에 이르렀지만, 상황은 되돌릴 수 없었다. 해당 병원 윤리위원회는 인공호흡기를 떼면 B씨가 바로 사망할 수 있다며 초기에 환자의 의견을 존중했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A·B씨뿐만이 아니다. 지난 1년 동안 연명의료결정제도의 가장 큰 문제는 ‘당사자 배제’였다. 올해 2월 3일까지 연명의료 중단 등의 결정 이행으로 사망한 사람들을 살펴보면 전체 사망자 중 3분의 2가량이 가족 결정에 의해 세상을 떠났다. 

 

실제로 보건복지부 윤태호 공공보건정책관은 2월 26일 오후 2시 서울 영등포 국회의원회관 제1소회의실에서 열린 ‘연명의료결정제도 시행 1년, 성과와 과제’ 토론회에서 이 같은 문제를 지적했다. 사망자 3만6224명 중 2만4527명이 환자가족 전원 합의나 환자가족 2인 이상의 진술로 연명의료 중단 등이 결정됐다. 반면 사전연명의료의향서나 연명의료계획서를 쓴 당사자는 1만1697명이었다.

 

이러한 상황은 윤 공공보건정책관이 제시한 연명의료 중단 등 결정 방법별 이행 현황을 보면 보다 확실히 알 수 있다. 환자가족 전원 합의(35.9%), 환자가족 진술(31.8%), 연명의료계획서(31.5%)·사전연명의료의향서(0.8%) 순으로 당사자는 배제되는 경향이 컸다.

 

 

원인은

 

전문가들은 이러한 당사자 배제가 환자와 의사 간 대화 기회가 부족한 데서 비롯된다고 지적한다. 서울 가톨릭대 가톨릭중앙의료원 의료윤리사무국장 정재우 신부(가톨릭대 생명대학원장)도 “환자는 의사에게 현재 상황과 앞으로의 질병 예상 경로를 듣고 자기 삶의 마무리를 계획할 수 있어야 하는데, 지금 현장에선 그러한 대화의 장이 잘 마련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특히 정 신부는 “환자와 의사 간에 대화의 장이 마련됐는지에 대해서는 연명의료계획서 작성 건수를 보면 알 수 있다”며 “그동안 연명의료계획서는 많이 작성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연명의료계획서는 말기 환자나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의 의사에 따라 담당의사가 작성하는 문서로, 반드시 환자와 의사가 대화를 해야만 작성될 수 있다. 반면 사전연명의료의향서는 향후 자신이 어떤 상황에 처할지 모르는 상태에서 19세 이상이면 누구나 작성할 수 있다.

 

 

해결책은

 

때문에 당사자 배제를 막으려면 환자와 의사가 대화할 수 있는 자리를 보다 많이 만들어야 한다. 환자가 자신의 상태를 정확히 알고 삶의 마지막을 계획할 수 있도록 반드시 의사와 만나 결정하게 해야 한다는 의미다.

 

이를 위해 앞서 언급한 ‘연명의료결정제도 시행 1년, 성과와 과제’ 토론회에서는 ‘연명의료 결정의 의료윤리 4대 원칙’을 기억해야 한다는 얘기도 거론됐다. 

 

4대 원칙은 자율성 존중·악행 금지·선행·정의의 원칙으로, 자율성 존중의 원칙은 환자가 연명의료에 관한 정확한 정보에 입각해 자율적으로 선택하고 그 선택을 보장받아야 한다는 것을 말한다.

 

악행 금지의 원칙은 불필요한 연명의료로 환자에게 해악을 미쳐서는 안 된다는 원칙, 선행의 원칙은 연명의료 중단이 연명의료를 지속할 때 생기는 고통을 해소하고 당사자에게 아름다운 마무리의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는 원칙이다. 정의의 원칙은 연명의료 시행으로 불필요한 자원 낭비를 해선 안 되고 남은 자원은 적절히 활용해야 한다는 원칙을 뜻한다.

 

무엇보다 죽음에 대해 쉬쉬하는 문화도 바뀔 필요가 있었다. 

 

서울 가톨릭대 서울성모병원 임상의료윤리위원회 부위원장 이명아 교수(서울성모병원 종양내과)도 ‘연명의료결정제도 시행 1년, 성과와 과제’ 토론회에서 “여전히 가족들이 환자 본인에게 상태를 설명하는 것에 반대하며 말기 상태가 됐을 때 이러한 설명은 더욱 어려워진다”며 “당사자가 죽음을 직면하고 대비할 수 있도록 환자에게 정확한 상태를 알려줘야 한다”고 밝혔다.

 

교회는 이전부터 당사자 의사가 잘 반영될 수 있도록 연명의료계획서 작성을 권고해 왔다. 서울성모병원을 비롯한 가톨릭교회 기관들에서도 현재 연명의료계획서만 쓸 수 있다.

 

 

서울 가톨릭대 서울성모병원 임상의료윤리위원장 정낙균 교수 - “환자-의사 충분한 대화로 연명의료계획서 작성을”

 

“말기 환자가 생겼을 때 의사들이 적극적으로 환자에게 질병 상태를 설명하고 연명의료계획서를 받아야 합니다.” 

 

서울 가톨릭대 서울성모병원 임상의료윤리위원회(이하 윤리위) 위원장 정낙균(스테파노) 교수는 2월 28일 이렇게 말했다. 

 

당사자 배제 문화를 바꾸기 위해서는 환자와 의사가 충분히 대화해 연명의료계획서를 작성해야 한다면서다. 

 

실제로 정 교수는 당사자가 아니라, 가족들이나 의료진에 의해 연명의료 중단이나 유보가 결정되는 사례를 위원장으로 활동하는 동안 많이 봐왔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정 교수는 사전연명의료의향서의 경우 추후 윤리적으로 문제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는 자신의 병을 알지 못하고 적는 것인 만큼 훗날 생각이 바뀌어도 그 의견이 반영되지 않은 채 기존 의향서가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때문에 정 교수는 연명의료계획서를 작성하는 분위기부터 확실히 조성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연명의료계획서 작성은 의료기관윤리위원회가 설치된 의료기관에서 할 수 있다. 작성 가능 기관은 국립연명의료관리기관 누리집(www.lst.go.kr)에서 확인할 수 있다.

 

특히 정 교수는 “올해 1월부터 병원 의료질평가 지표로 ‘연명의료 자기결정 존중비율’이 추가됐다”며 “자칫 악용될까 우려된다”고도 말했다. 

 

병원이 높은 점수를 받으려면 연명의료 중단이나 유보를 당사자가 결정하는 비율을 높여야 하는데, 당장 인간 생명을 중시하는 문화가 뿌리 깊게 자리 잡지 않은 상황에서는 병원들이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작성을 부추기는 등 비율 맞추기에만 급급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현재 윤리위는 병원 내 연명의료 전반을 관리하고 있다. 

 

환자와 보호자, 의료진이 연명의료 중단이나 유보를 제대로 판단하도록 돕고, 경제적인 문제로 갈등을 겪을 경우 사회사업팀에 연계하는 등 환자 지원 방안도 찾고 있다. 전문의와 생명윤리 전문가, 장기이식·호스피스팀 간호사 등의 내부위원들과 2명의 외부위원 등 10여 명으로 구성돼 있다.

 

[가톨릭신문, 2019년 3월 10일, 이소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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