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7일 (토)
(백) 부활 제4주간 토요일 나를 본 사람은 곧 아버지를 뵌 것이다.

영성ㅣ기도ㅣ신앙

가르멜영성과 기도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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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철빈 [ssk5762] 쪽지 캡슐

2017-08-13 ㅣ No.997

마음속 깊이 스며드는 잔잔한 고요 체험

#고요의 기도
 여기서는 관상기도의 시초인 고요의 기도를 주로 다루겠다. 기도를 열심히 하는 사람은 이 은혜가 자기 안에 있음을 발견할 것이다. 초보자 때는 이 은혜를 받아도 그게 뭔지 몰라 그냥 넘어가는 수가 많다. 그러나 횟수가 거듭되면 하느님의 은혜를 알아채고 응답을 할 줄 알게 된다.
 
 #고요의 기도 상태
 보통은 묵상기도 끝에 찾아온다. 의지만이 하느님께 사로잡혀 있고 기억과 이성은 자유롭기에 자신이 주님 곁에 있다는 것을 안다.
 고요의 기도 때에 영혼은 자기가 주님의 나라 안에 있다는 것 적어도 그 나라를 주실 임금님 곁에 있다는 것을 깨닫기는 하나 어떻게 깨닫는지 모르므로 황공한 나머지 감히 아무것도 청하지 못한다. 이때 육신은 깊은 쾌락에 잠기고 영혼은 흐뭇한 즐거움을 누린다. 샘물 곁에 있다는 것을 깨달아 구태여 마시지 않아도 배부르고, 다시 더 바랄 것이 없는 양 고요해진 기관(능력)들은 달싹이기도 싫은 채 모든 것이 다 사랑을 헤살 놓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육체적으로 누리고 있는 평화가 깨뜨려질세라 움쩍거리기가 싫어 꼼짝달싹하지 않고, 말하기조차 괴롭다. 그러다 보면 '주님의 기도'를 한번 외우는 데도 한 시간이 훌쩍 간다. 마치 안팎의 힘이 다 빠져 버려 하룻길을 걸은 사람이 다음 길을 걷기 위해 푹 쉬는 것과 같다. 영혼은 주님 바로 곁에 있기에 눈치만으로도 주님의 뜻을 알아들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영혼은 자신이 궁궐 안 임금님 곁에 있고 이승에서부터 바야흐로 그 임금님의 당신 나라를 자신에게 주신다고 느낀다. 영혼은 더 없는 즐거움과 만족을 느끼면서 성 베드로와 함께 행복에 겨운 목소리로 "주여, 여기에 세 거처를 마련하게 하소서"라고 말할 따름이다 (「완덕의 길」 31, 2-4).
 「영혼의 성」에서는 이 고요의 기도를 '목자의 휘파람'에 비유하고 있다.
 영혼이 하느님을 떠나 감각의 기쁨을 따라 살다가 자기의 불행을 깨닫고 하느님 계신 곳으로 돌아가려 해도 몹쓸 버릇에 찌들어 하느님이 계신 성으로 들어갈 주제가 못 되어 성 밖을 맴돌기만 할 때 궁안의 임금님은 그들의 착한 뜻을 보시고 어여삐 여기시는 마음을 누를 길 없어, 당신께 돌아오기를 간절히 바라신다. 그리하여 마치 어진 목자처럼 부드럽기 짝이 없는 휘파람을 불면 영혼은 들릴락말락 한 그 휘파람 소리를 듣고 '집으로 돌아오라. 이제 더 가없이 헤매지 말라'하는 목소리를 알아차린다. 이 목자의 휘파람 소리는 묘한 힘을 가지고 있어 그들은 여태까지 빠져있던 바깥 사물을 깨끗이 버리고 마침내 성안으로 들어오게 되는 것이다. 어디서 어떻게 저 목자님의 휘파람 소리를 듣게 되었는지는 모른다. 분명 귀로 들은 것은 아니다. 귀에 들리지 않는 소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틀림없이 느껴지는 것은 마음속 깊이 스며드는 잔잔한 고요이다(「영혼의 성」 4궁방 3장 2-3).
 영혼이 수동적(초자연적)으로 자기 영혼 깊은 곳으로 찾아 들어가는 것을 이렇게 표현한 것이다.
 하느님을 자기 안에서 찾기 위해서는 이 은혜가 가장 효과적이다. 이같이 영혼이 고요의 기도를 하게 되면 의지가 그윽한 행복감에 깊이 잠기게 된다.
 이 체험을 할 때 하느님 안에 자기 자리가 있음을, 또 세상이 주는 행복과 기쁨을 아득히 초월한 그윽한 행복감을 맛보면서 영혼은 그동안 이리 저리 이웃거리고 방황 하던 것이 끝이 난다. 이 기도의 계층에 있는 영혼은 영원하신 아버지의 나라가 임하시라고 빌었던 것을 벌써 이승에서 받아 누린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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