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7일 (토)
(백) 부활 제4주간 토요일 나를 본 사람은 곧 아버지를 뵌 것이다.

성인ㅣ순교자ㅣ성지

[성지] 갈릴래아 호숫가에서 (상) 아득하기만 했던 성경 속 풍경이 눈 앞에

스크랩 인쇄

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7-06-24 ㅣ No.1694

갈릴래아 호숫가에서 (상) 아득하기만 했던 성경 속 풍경이 눈 앞에


진복팔단성당에는 참 행복 구하는 순례자 기도 끊이지 않아

 

 

티베리아를 떠나 북서쪽을 향한 배에서 어부 복장을 한 한 사내가 2000년 전 베드로가 했던 것처럼 호숫가에 그물을 던지고 있다.

 

 

신앙생활을 하며 항상 읽고 쓰고 외우고 묵상하는 성경이지만 사실 성경 속 세상은 여전히 우리에게 낯설다. 수천 년 전, 너무나 멀리 떨어진 곳에서 일어난 일들이 발음조차 어려운 지명 속에 벌어지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사람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태어나 살고 제자들을 가르치고 물위를 걷고 기적을 일으키며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다 끝내는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힌 성경의 주 무대 이스라엘 땅은 신앙인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꼭 가고 싶어 하는 곳이다.

 

읽고 또 읽는 것이 한 번 보는 것만 못하다. 예수 그리스도의 발자취와 흔적이 곳곳에 아로 새겨 있는 이스라엘을 9월 10일부터 일주일간 찾았다. 이스라엘 관광청이 주최한 ‘제14차 GO GALILEE’(갈릴리 국제 관광 마케팅 이벤트) 참가를 겸한 이번 여정을 예수 그리스도 공생활의 중심지 갈릴리 지역을 중심으로 소개한다. 마태오복음 28장 10절이 초대한다.

 

티베리아가 바라보이는 언덕에 서 있는 진복팔단성당. 2000년 전 예수님께서 소리 높여 가르치신 여덟 가지 참 행복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아직도 진한 감동이다.

 

 

‘두려워하지 마라. 가서 내 형제들에게 갈릴래아로 가라고 전하여라. 그들은 거기에서 나를 보게 될 것이다.’

 

해가 떠올랐다. 동쪽 하늘 끝 골란고원에서 떠오른 해는 어느새 갈릴래아 호수에 빛을 선사한다. 하느님께서 이사야 예언자를 통해 하신 말씀이 딱 이뤄졌다.

 

‘이민족들의 갈릴래아, 어둠 속에 앉아 있는 백성이 큰 빛을 보았다.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운 고장에 앉아 있는 이들에게 빛이 떠올랐다’(마태 4,15-16).

 

배에 올랐다. 제자들을 두렵게 했던 풍랑(루카 8,22-25)은 찾아볼 수 없다. 잔잔한 호수에 몸을 맡긴다. 티베리아를 떠난 배는 북서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호수 저편은 예수 그리스도의 전도무대. 이곳을 터전으로 살던 제자들을 받아들였고 수많은 기적을 행했다.

 

어부 복장을 한 한 사내가 옛날 베드로가 했던 것처럼 호숫가에 그물을 던진다. 그물에 낚인 고기는 없다. 2000년 전 이른 아침을 들고 배를 띄운 베드로도 이곳에서 그물을 던졌으리라. 주일학교를 다니며 불렀던 노래를 흥얼거린다.

 

‘갈릴래아 호숫가에서 고기를 잡던 사람들, 바람결 따라 들려오는 주의 말씀 들었네, 나를 따르라, 나를 따르라, 그 그물을 버리고.’

 

(위) ‘빵의 기적 기념성당’에는 예수님께서 오병이어의 기적을 행하셨다고 전해지는 바위와 오병이어를 표현한 모자이크가 있다. (아래) 진복팔단성당에서 기도하는 순례자들.

 

 

바람이 상쾌하다.

 

호수가 내려다보이는 언덕길을 올랐다. 아침 안개 너머로 티베리아가 바라보이는 언덕에 진복팔단성당(The Church of the Beatitudes)이 서 있다.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마태 5,3).

 

신앙을 모르는 이도 한번쯤 들어봤을 그 가르침이 있던 곳이다. 산상설교라 하기에는 너무나 아담한 언덕. 마태오복음은 산상설교라고 하고, 루카복음은 예수님께서 산에서 내려가 평지에서 가르쳤다고 하는 이유를 알겠다. 하긴 어떤 이는 아예 예수님이 호숫가에서 배를 타고 언덕에 모인 군중들에게 설교했다 한다.

 

예수님이 어느 자리에 있었던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 2000년 전 그 자리를 찾을 순 없지만 그분이 소리 높여 가르치신 여덟 가지 참 행복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아직도 진한 감동이다.

 

성당 옆 수녀원 쪽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수백 년은 됨 직한 벤자민 나무 그늘 아래서 미사가 한창이다. 이름 모를 신부님의 영어 강론을 띄엄띄엄 음미해본다.

 

‘여러분의 참 행복은 무엇일까 생각해봅시다. 이 자리에서 예수님이 알려주셨던 행복을 꼭 찾아가시기 바랍니다. 지금 우는 자는 나중에 웃게 될 것이고 하늘에서는 큰 상이 기다릴 것입니다.’

 

참 행복을 뜻하는 팔각형 돔 모양의 성당 안에서는 순례자들의 기도가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호숫가가 한눈에 보이는 창 옆으로 십자고상이 세워져 있다. 나도 모르게 무릎을 꿇는다. 나를 낮춰야만 성당 천장 유리화로 새겨진 여덟 가지 참 행복을 읽을 수 있다. 마음이 가난해야 한다.

 

언덕을 다시 내려왔다. 호숫가의 외딴 곳(마르 6,35, 오늘날 갈릴래아 호수 북서쪽 타브가 지역)은 전 세계에서 온 순례자들로 결코 외롭지 않다. 진복팔단성당과 그 아래 펼쳐진 호숫가의 아름다운 풍경을 뒤로 하고 빵의 기적 기념성당(The Church of the Multiplication of the Loaves and Fishes, 오병이어성당)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빵을 손에 들고 감사를 드리신 다음 자리를 잡은 이들에게 나누어주셨던’(마르 6,30-44, 마태 14,13-21, 루카 9,10-17, 요한 6,1-15) 그 바위가 성당에 놓여 있다. 아니 놓여 있다기보다는 그 바위 위에 성당을 세웠다는 표현이 맞겠다. 그 바위 앞에는 눈에 익은 모자이크가 있다. 한데 모자이크 속 빵은 네 개 뿐. 설명을 듣고야 궁금증이 풀린다. 나머지 한 개의 빵은 바위 위 그리스도를 제물로 드릴 장소인 제대다. 우리가 미사를 드리는 제대는 곧 오병이어의 기적을 완성하는 거룩한 시간임을 다시금 깨닫는다. 1cm 조금 넘을 작은 모자이크로 오병이어의 기적을 완성하며 기도하고 또 기도했던 비잔틴시대 한 장인의 신앙심을 새긴다.

 

정오를 알리는 삼종기도 종소리가 울려 퍼진다. 이제 부활하신 주님께서 베드로와 함께 생선을 구워 드시던(요한 21,1-17) 예수 그리스도의 식탁을 찾아 나선다. 아득하기만 했던 성경 속 풍경이 눈앞에 계속 펼쳐진다.

 

[가톨릭신문, 2009년 10월 4일, 갈릴리(이스라엘) 이승환 기자]



1,818 0

추천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