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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사목] 가족 여정: 행복한 부부로 산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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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7-03-18 ㅣ No.991

[가족 여정] 행복한 부부로 산다는 것

 

 

어떤 부부를 행복한 부부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많은 사람은 ‘행복한 부부’ 하면 ‘최수종과 하희라’ 또는 ‘션과 정혜영’ 같은 닭살 돋는 부부의 이미지를 떠올립니다.

 

마치 신혼부부처럼 달콤한 속삭임을 주고받고, 배우자를 위해 시도 때도 없이 이벤트를 열고, 뜨거운 열정과 로맨스를 간직해야만 행복한 부부라 할 수 있다고 착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당신도 최수종의 반만 좀 닮아봐!” “당신이 무슨 하희라라도 되는 줄 알아?” “션처럼 다정한 남자에게 시집갔어야 하는데!” “나도 당신이 정혜영처럼 부드러운 여자인 줄 알았어!” 실제로 이런 부부 갈등이 심심찮게 벌어지기도 합니다.

 

 

사랑의 지도 그리기

 

세계적으로 유명한 부부 치료 전문가 존 가트맨은 전 세계의 부부를 대상으로 행복한 부부들이 가진 공통적인 특성이 무엇인지 연구했습니다. 그랬더니 행복한 부부들의 특성은 딱 두 가지로 압축된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그 첫 번째 특성은 ‘서로에게 친구 같은 존재가 되어 준다.’는 것입니다. 곧, 우정이 돈독한 부부가 되는 것이 중요합니다.

 

‘친구’라는 말을 들으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시나요? 편안하고 만만하며, 든든하고 격의 없는 그런 존재가 바로 친구입니다. 기쁜 일이 있을 때 함께 웃고, 슬픈 일이 있을 때 같이 울며, 어려운 일이 있을 때 서로 돕는 친구 같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친구 같은 부부가 되려면 서로의 마음을 잘 알아야 합니다.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싫어하는지, 무엇을 가장 그리워하는지, 무엇을 가장 두려워하는지, 요즘 가장 스트레스 받는 일은 무엇인지, 앞으로 이루고 싶은 꿈이 무엇인지 등에 대해 많이 알수록 부부의 우정은 돈독해집니다.

 

이런 주제에 대해 대화를 나누며 서로의 마음을 알아나가는 과정을 ‘사랑의 지도(Love map)그리기’라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지도를 보며 길을 찾아가려면 손에 들고 있는 지도가 정확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조선시대의 대동여지도로 서울의 명동성당을 찾아가기는 힘듭니다. 그래서 사랑의 지도를 최신 버전으로 업데이트해야 합니다.

 

많은 경우 서로에 대한 사랑의 지도가 연애나 신혼 시절의 버전에 머물러 있습니다. 사랑의 지도를 최신판으로 만들려면 대화를 해야 합니다. 시간을 따로 내어 거창하게 대화해야 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냥 평소에 차 한잔하거나 밥 먹을 때 틈나는 대로 대화를 주고받으면 됩니다.

 

“당신 요즘 스트레스 받는 일은 없어?” “나하고 살면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 언제야?” “당신 자신의 가장 큰 장점은 뭐라고 생각해?” “한번쯤 가보고 싶은 데가 어디야?” “당신이 이루고 싶은 꿈은 무엇인지 궁금해.” 이런 작은 질문 하나하나가 행복한 부부가 되는 디딤돌이 됩니다. 우스갯소리로 “우리 부부는 의리 때문에 함께 산다.”라는 말은 행복한 부부가 되는 데 무엇보다도 중요한 요건을 갖추고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성실한 친구는 든든한 피난처로서, 그를 얻으면 보물을 얻은 셈이다. 성실한 친구는 값으로 따질 수 없으니, 어떤 저울로도 그의 가치를 달 수 없다. 성실한 친구는 생명을 살리는 명약이니, 주님을 경외하는 이들은 그런 친구를 얻으리라”(집회 6,14-16).

 

 

부부싸움을 지혜롭게 하는 법

 

행복한 부부들의 두 번째 특성은 ‘부부싸움을 지혜롭게 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부부싸움을 아예 하지 않는다.’는 뜻이 결코 아닙니다. 부부싸움을 하지 않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결혼하지 않는 것’ 뿐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인간에게 저마다 독특한 숨결을 불어넣으셨기 때문에 이 세상에는 70억 개의 독특한 기질을 가진 사람이 살아갑니다. 서로 다른 특성을 가진 사람이 한 이불을 덮고 살아가다 보면 갈등은 필연적입니다.

 

그런데 간혹 이런 자랑을 하는 분들이 계십니다. “우리 부부는 지금까지 부부싸움을 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어!” 사실 이런 경우는 어느 한쪽이 반대편을 찍소리도 하지 못하게 억압하고 있는 것이 대부분입니다. 이건 갈등이 없는 것이 아니라 드러나지 않았을 뿐이고, 마치 시한폭탄을 안고 사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부부의 경우 평소에는 아무 문제 없이 잘 사는 것 같다가 어느 날 갑자기 헤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좀 더 극단적인 예를 들자면, 어느 날 갑자기 한쪽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경우도 있습니다. 안타깝지만 이것이 대한민국 부부들의 현실이기도 합니다.

 

이런 현상을 예방하려면 부부갈등을 억지로 피하거나 쉽게 봉합하려 하면 안 됩니다. 부부싸움을 하되 서로가 지켜야 할 것은 지키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서로가 지켜야 할 것은 다음과 같습니다.

 

① 문제를 무조건 쌓아두지 않기.

② 서로의 아픈 상처는 건드리지 않기.

③ 신체적 콤플렉스를 함부로 공격하지 않기.

④ 서로가 지나치게 흥분했을 때는 타임아웃 갖기.

⑤ 개XX, 씨XXX 등 육두문자 사용하지 않기.

⑥ 다른 사람과 비교하며 자존심 건드리지 않기.

⑦ 자녀 앞에서는 절대 싸우지 않기.

⑧ 폭력은 절대 사용하지 않기.

⑨ ‘이혼’이라는 단어 자체를 사용하지 않기.

⑩ 입장 바꿔 생각해 보기.

 

사실 갈등이 없으면 오히려 죽은 관계입니다. 서로에 대한 기대치 자체가 아예 사라진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부부갈등이 있다는 것은 아직 관계가 살아있음을 뜻합니다.

 

우리 가톨릭교회의 부부들은 ‘내 탓이오’ 운동의 여파 때문인지 지나칠 정도로 갈등 자체를 회피하려는 경향이 강합니다. 물론 무조건 ‘네 탓’을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지만, 무조건 ‘내 탓’을 하는 것도 마음을 병들게 합니다. 그래서 건강한 부부관계를 위해서라도 싸울 땐 싸워야 합니다.

 

아이들이 싸울 때 어른들은 흔히 이런 얘기를 합니다. “아이들은 다 싸우면서 크는 거야! 싸우고 나면 오히려 더 친해질 수 있어!” 부부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부부들은 다 싸우면서 살아갑니다. 그리고 지혜롭게 잘 싸우고 나면 더 친해질 수 있습니다. “아내의 몸은 아내가 아니라 남편의 것이고, 마찬가지로 남편의 몸은 남편이 아니라 아내의 것입니다”(1코린 7,4).

 

지금까지 행복한 부부들의 특성을 살펴보았습니다만, 사실 부부의 삶의 목적은 행복이 아니라 ‘일치’입니다. 내가 기쁘면 배우자도 기쁘고, 내가 슬프면 배우자도 슬픕니다. 배우자가 괴로우면 나도 괴롭고, 배우자가 아프면 나도 아픕니다.

 

죽음이 우리를 갈라놓을 때까지 절대 혼자가 아니라는 것! 이것 하나만으로도 우리는 충분히 행복한 것이 아닐까요? 그 소중함을 너무 쉽게 잊고 사는 것은 아닐까요?

 

* 권혁주 라자로 - 한 여인의 남편이자 세 아이의 아빠로서 서울대교구 사목국 가정사목부에서 일하고 있다. ‘아버지여정’, ‘부부여정’ 등의 가족관계 프로그램을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

 

[경향잡지, 2017년 3월호, 권혁주 라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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