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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 가르멜 성인들의 생애와 영성76: 삼위일체의 성녀 엘리사벳의 영성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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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6-12-12 ㅣ No.866

[가르멜 성인들의 생애와 영성] (76) 삼위일체의 성녀 엘리사벳의 영성 ⑨


성체 같은 삶을 산 성녀 엘리사벳

 

 

- 영광의 찬미는 축성된 성체처럼 자신을 희생 제물로 봉헌하며 또 다른 성체와 같이 사는 영혼이다. 사진은 뉴욕 대성전 유리화.

 

 

엘리사벳 영성의 핵심 : 영광의 찬미

 

지금까지 성녀 엘리사벳의 생애와 영성에 대한 성찰을 바탕으로 이제 그분의 영성에 있어서 핵심인 ‘영광의 찬미’에 대해 살펴보고자 합니다. 이 주제야말로 이분을 다른 성인들과 구별하게 해 주는, 주님을 향한 그분만의 고유한 사랑의 색채, 그분 영성의 정수이기 때문입니다. 

 

성녀가 ‘영광의 찬미’라는 주제에 필이 꽂힌 것은 무엇보다 바오로 사도의 여러 서간을 묵상하면서였습니다. 그러나 문헌적으로 이 용어가 처음 드러난 것은 임종하기 2년 전인 1904년 1월 영적 우정을 나누던 슈비냐르 신학생에게 보낸 편지에서였습니다. 그리고 이 표현이 본격적으로 드러난 것은 1906년 초부터였습니다. 그러나 이는 이미 그 이전부터 그의 삶과 기도 속에서 준비되어 오던 것이기도 했습니다. 예컨대, 엘리사벳은 1899년에 쓴 일기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습니다.

 

“당신은 이 무사무욕의 마음을 보상해 주실 거라 믿습니다. 당신은 저를 사랑하세요. 당신은 결코 제게서 떨어질 수 없으십니다. 우리는 행복할 겁니다. 결코 당신을 떠나지 않을 것이며 언제고 당신을 찬미하는 노래를 부를 겁니다”(일기 52). 

 

엘리사벳에게는 이미 사춘기 시절부터 가르멜 수도 성소에 대한 확신 그리고 이를 통해 자신을 온전히 주님께 봉헌하겠다고 하는 확신과 더불어 일생을 통해 주님을 찬미하겠다는 분명한 의식이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그 후 이어지는 시기 동안 엘리사벳은 삼위일체 하느님이 현존해 계시는 자신의 내면 세계와 그 하느님의 신비를 발견해 갔습니다. ‘영광의 찬미’는 이러한 발견과 깊이 연관되어 있습니다.

 

 

‘영광의 찬미’라는 소명을 발견하기까지

 

성녀는 특히 독서 성무일도를 드릴 때 홀로 계신 하느님을 찬미하는 걸 좋아했습니다. 그래서 동생에게 쓴 편지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독서 성무를 하기 위해 가대소(歌臺所)에 내려가기 전까지 반 시간을 잤단다. 아, 너도 보다시피, 그 시간에 주님은 너무도 외로우셔. 그분을 찬미하기 위해 천상과 하나가 되는 게 참 좋아”(서간 89). 

 

또 성무일도서를 선물해 준 이모들에게 보낸 편지에서는 이렇게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이모들이 보내 준 소중한 성무일도서들이 도착했어. 앞으로는 주님의 영광을 노래할 때마다 내 영혼과 이모들의 영혼이 ‘하나’가 될 거야”(서간 154). 여기서 드러나는 “주님의 영광을 노래한다”는 생각은 성녀가 지인들에게 쓴 편지에서 지속적으로 표현되고 있습니다(서간 135; 142; 191; 198; 시 32 등). 

 

하느님의 영광을 노래하는 게 자신의 성소라는 확신은 1904년을 기점으로 더욱 강하게 표현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1905년으로 접어들면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저는 성인들이 천상에서 노래하는 영원한 찬미가와 일치하는 가운데 감사하며 삽니다. 저는 이 세상에서 수련기를 보냅니다”(서간 225). 

 

또한 엘리사벳은 그리스도의 몸인 성체 안에서 진정한 ‘영광의 찬미’를 드리는 모델을 발견하는 가운데, 성부께 자신을 온전히 희생 제물로 봉헌하신 주님을 본받아 자신 역시 성부께 희생 제물로 봉헌하며 그분 영광의 찬미를 노래하고자 했습니다. 그래서 성녀는 작품 곳곳에서 자신을 축성된 작은 ‘호스티아’(성체)라 부르곤 했습니다.

 

 

철저한 자기 포기와 봉헌이 요구됨

 

이렇게 성녀는 점차 하느님의 영광을 찬미하는 것을 자신이 온 힘을 기울여 이룩해야 할 소명이자 자신의 새로운 이름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습니다. 이는 철저한 수덕적인 삶을 통해 뒷받침되는 진지한 영성 생활을 전제로 합니다. 순수한 마음과 사랑으로 주님의 영광을 노래하려면 세상 온갖 것으로부터 그리고 근본적으로는 자기 자신으로부터 이탈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1905년 12월 말에, 입회 당시 자신을 추천해 준 앙글레 신부에게 이렇게 편지를 썼습니다.

 

“신부님께 아주 깊은 제 비밀 하나를 털어놓습니다. 제 꿈은 ‘그분 영광의 찬미’(에페 1,12)가 되는 것이랍니다.… 하지만 이건 아주 큰 충실함을 요한답니다. 왜냐하면 영광의 찬미가 되기 위해선, 그리고 오직 그분의 어루만지심만으로 울릴 수 있기 위해선 그분이 아닌 모든 것에 죽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오로지 교회의 유익만을 위해 얼마나 많이 성화되고 저 자신을 잊어야 할 필요를 느끼는지 모른답니다”(서간 256). 

 

성녀는 ‘영광의 찬미’를 실현하기 위해 주님을 향한 대단한 충실함의 자세가 요구된다고 보았습니다. 그것은 하느님이 아닌 모든 것에 대한 철저한 포기와 자기 자신에 대한 잊음, 교회의 사명을 이루기 위해 온 존재를 바치는 태도를 말합니다.

 

[가톨릭평화신문, 2016년 12월 11일, 윤주현 신부(대구가르멜수도원장, 대전가톨릭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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