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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 힐링 노트: 행복한 날에는 행복하게 지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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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6-12-01 ㅣ No.356

[하쌤의 힐링 노트] 행복한 날에는 행복하게 지내라

 

 

우울증, 공황장애부터 조울증, 조현병까지 세상의 수많은 정신 건강 문제가 내 탓으로 인해 생기지는 않습니다. 때로는 나 자신의 선택으로 인해 마음이 더욱 피폐해질 수도 있습니다. 괴로움을 잊기 위해서 술이나 게임 또는 도박에 빠진다거나, 사람들과의 갈등이 두려워 모든 것을 그만두고 숨어버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약한 어린이나 사회적 약자에게 화풀이를 하거나 애꿎은 사람 탓으로 돌리는 일 같은 일탈 행동을 통해 스스로의 마음 건강을 더 악화시킬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보다도 훨씬 무서운 것이 바로 지난 일에 대해서 계속 되새김질 하는 것입니다. 물론 원해서 그러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지금 바로 이 순간을 살고, 현재에 감사해야 한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으니까요.

 

일상생활에서 우리는 자신과 이웃에게 행하는 크고 작은 잘못에 대해서, 스스로 점검을 해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고해성사라는 좋은 제도가 있습니다. 자기 반성과 점검을 적절하게 한다면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가령 별일 아닌데 아이에게 불같이 화를 내고 심한 말을 했다면, ‘내가 왜 이랬지’라고 자책하기 보다는 그 과정을 되짚어봐야 합니다. 아이의 잘못이 심하지 않았음에도 시댁행사를 고민하느라 신경이 날카롭고 피곤하여 소리를 지르게 되었다는 원인 분석을 해야 합니다. 그와 함께 하루가 지났지만 아이에게 사과를 해야겠다며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는다면 좋겠죠. 특히 당시의 감정(불안, 슬픔, 분노, 혐오 등)과 생각(나를 무시하는 것 같았다, 내가 초라해 보였다 등)을 구별해서 돌아보는 것이 좋습니다. ‘감정’은 어쩔 수 없는 것이므로 스스로 인정을 하고 그걸 고치지 못하더라도 감정에 이름만 붙여도 도움이 됩니다. 그냥 짜증나는 것이 아니라 그게 불안과 초조 때문인지 아니면 분노 때문인지 정확하게 알아 보는 것이죠. 그러나 ‘생각’의 경우 당시 생각의 내용이 잘못되거나 강도에 있어 과한 부분이 없는지 점검해 봐야 합니다. 만약 내 생각이 피해의식으로 가득 찼다거나, 지금 돌아봐도 말이 안되는 비합리적인 것이라면 조금 더 나은 생각을 찾아 보는 것이 좋습니다. 이미 소리도 지르고 화도 내버려서 늦었다 할지라도 그게 늦은 게 아닙니다. 이번에 바꾸어 보게 되면 다음번에는 좀 더 합리적인 대안을 바탕으로 행동할 수 있습니다.

 

과거에 대한 끊임없는 되새김질로 힘든 사람들의 경우 단순히 내가 잘못한 일에 대해서 곱씹지 않습니다. 이상하게도 반복해서 곱씹는 일일수록 실제로는 자기 잘못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배우자가 외도를 했을 때 ‘내가 잘 했으면 저 사람이 외도를 안 했을 것이다.’라든가 ‘빨리 알아챌 수도 있었는데 그러지 못한 내가 바보다.’라는 생각으로 하루 종일을 보내는 사람도 있습니다. 자기 자신을 비난하면 반추(rumination)는 더욱 심해지죠. 배우자가 미묘한 변화가 있었는지 아닌지, 도대체 언제부터 그랬는지를 혼자 상상하고 자꾸 그려보게 됩니다. 그 과정에서 어렵사리 1%라도 ‘내 책임’을 찾아내면, 그로 인해 계속 힘들어집니다. 저도 예전에 사기를 당한 적이 있습니다. 지금 돌아보면 그 사람이 너무 교묘하게 계획을 세워놓고 접근했습니다. 순식간에 속임수에 휘말렸고 그 분야에 지식이 없는 저로서는 당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꽤 오랜 시간을 저의 잘못에 대해서 고민했습니다. ‘왜 그때 똑똑하게 처신하지 못했을까’, ‘그 때 그 사람에게 좀 더 잘 물어보았더라면 어땠을까’, ‘주변사람들과 의논했더라면 그 일이 생기지 않았을 걸’, 부질없는 가정을 반복했습니다. 그러다가 생각이 확대되어 제가 의사가 된 것부터 시작해서 결혼한 것까지 전부 잘못된 일처럼 느끼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배우자의 외도, 교통사고, 질병, 사랑하는 이의 죽음, 사고 같이 우리 삶에서 일어나는 진짜 커다랗고 파괴적인 사건은 내 탓이 아닌 경우가 많습니다.

 

이러한 반추의 무서움에 대한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만약 우울증에 걸린 두 사람이 있다고 합시다. 한 사람은 앞날에 대해서 자꾸 걱정을 하고 불안해 합니다. 또 다른 한 사람은 자꾸 뒤를 돌아보면서 과거를 곱씹고 반복적으로 옛날 일만 떠올립니다. 그런데 후자와 같이 과거를 반추하는 사람이 오히려 우울증을 극복하기 어렵고 오랫동안 앓는다고 합니다. 다가올 미래에 대해 부정적으로 예측하는 것도 좋지는 않습니다. 그럼에도 앞날에 대한 두려움보다는 과거에 대한 후회와 죄책감이 더 강력하고 어두운 힘을 지니고 있나 봅니다.

 

뒤를 아예 돌아보지 않고 살기는 어렵습니다. 그렇지만 정말로 내가 잘못한 일과 운이 없어 어긋난 안타까운 일을 구분하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우리 마음은 의지를 가지고 행동하는 자아(ego)와 그런 자아를 감시하는 초자아(superego)로 이루어집니다. 초자아는 CCTV와 같은 것이라서 잘못된 일에 대해서만 기록하고 파악하는 역할을 합니다. 그런데 초자아가 너무 강력하고 자아를 옭아매게 되면, 자아는 살아가는 게 힘들어집니다. 나쁜 일을 예방하는 CCTV 정도의 화질이면 충분하지, 최고 성능의 고화질 카메라와 같은 시각으로 자아를 감시할 필요는 없거든요. 털면 먼지 안 나는 사람 없지 않습니까? 우리의 과거에 대해서 모두 고화질 카메라로 들여다 본다면 내 잘못이 아닌 것까지도 몰아부쳐서 ‘나는 역시 못난 사람이야’라는 서글픈 결론에 이르는 것이죠. 이런 강력한 초자아는 어렸을 때 엄격한 집안 환경 등에서 서서히 생겨났고, 또 갑자기 바뀌기는 어려우므로 하루에 하나씩이라도 스스로를 칭찬하는 것으로 조금씩 상쇄할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어쩌면 지난 날이란 누구에게나 슬픈 것입니다. 아름다웠던 과거는 다시 돌아갈 수 없어서 슬프고, 힘들었던 과거는 떠올릴 때마다 그 때의 아픔을 다시 경험하니까 또 힘듭니다. 하지만 영원한 하느님 나라에 아직 들어가지 못한 우리는 절대로 과거로 돌아갈 수 없다는 점에서 평등합니다. 바로 오늘에 충실한 것이 마음 건강에 가장 도움이 되는 삶의 자세가 아닐까 합니다.

 

“행복한 날에는 행복하게 지내라. 불행한 날에는, 이 또한 행복한 날처럼 하느님께서 만드셨음을 생각하여라.”(코헬 7,14).

 

[성 베네딕도회 왜관 수도원 계간지 분도, 2016년 여름호(Vol. 34), 하주원 마리아 박사(연세숲정신건강의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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