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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리신학ㅣ사회윤리

[사회] 섬김은 부패를 이기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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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6-09-14 ㅣ No.1337

[시대의 징표] 섬김은 부패를 이기는 길

 

 

한국, 부패인식 지수 세계 37위

 

지난 7월 28일 헌법재판소가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이른바 ‘김영란법’)이 헌법에 어긋나지 않는다는 결정을 내놓은 뒤, 이 법을 둘러싼 논란이 한창이다. 접대 식사비 한도를 3만 원, 선물비 한도를 5만 원, 경조사비 한도를 10만 원으로 제한한 것이 현실에 맞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

 

또한 이 법이 시행되면 내수 경제가 위축되어 가뜩이나 어려운 경제에 큰 타격을 주고, 선물용으로 소비되는 농산물과 축산물의 양이 줄어 농어민도 큰 손해를 볼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니 접대 식사비와 선물비 한도를 각각 5만 원과 10만 원으로 높이자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은 이름에서 드러나는 대로 우리나라를 병들게 해온 부패를 없애자는 취지에서 만들어졌다. 이 법을 ‘김영란법’이라 줄여 부르는 것은 최초 제안자가 국민권익위원회 김영란 전 위원장이었기 때문이다. ‘김영란법’이라는 이름을 듣고는 그 목적과 내용을 바로 알 수 없으니, ‘청탁뇌물 금지법’ 정도로 줄여 부르는 게 적당하지 않을까 한다.

 

최근 진경준 현직 검사장이 구속되고 날마다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 비서관이 비리 혐의로 언론에 오르내리고 있다. ‘청탁뇌물 금지법’이 제안된 배경에도 2010년 ‘스폰서 검사’ 사건과 ‘벤츠 여검사’ 사건이 있었다.

 

부패는 우리 사회를 병들게 해온 뿌리 깊은 ‘범죄’이다. 우리 사회 곳곳에서는 지금도 이른바 ‘촌지’(‘손가락 한 마디만한’의 뜻, 아주 작은 정성 또는 마음의 표시)라는 이름으로 두툼한 봉투가 슬그머니 오간다. 또한, 명절 때마다 정으로 주고받는 선물이라고 보기엔 지나치게 비싼 물건들이 오간다.

 

이러한 부패를 밑거름으로 온갖 탈법과 이권과 담합이 독버섯처럼 자라나 우리 모두의 생명과 안전을 위협하고 있다. 삼풍백화점, 성수대교, 세월호 등 우리 역사 안에서 손꼽을 수 없을 정도로 많았던 크고 작은 참사의 뒤에는 부패의 범죄가 자리 잡고 있다. 관피아, 해피아, 철피아 등 이상야릇한 신조어들은 우리 사회의 뿌리 깊은 부패구조를 증언해 준다.

 

우리 자신도 이런 우리 사회를 부패한 사회라고 생각하고 있다. 독일에 본부를 둔 국제투명성기구는 해마다 부패인식 지수(Corruption Perceptions Index, CPI)를 발표하는데, 이는 공무원과 정치인이 얼마나 부패해 있다고 느끼는지를 국제 비교하고 국가별로 순위를 정한 것이다. 우리나라의 2015년 부패인식 지수는 167개국 중 37위이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국 중 27위이다.

 

 

부패는 불평등의 원인

 

‘청탁뇌물 금지법’의 반대세력은 이 법이 경제를 위축시킬 것이라고 하지만, OECD 사무국의 2016년 ‘뇌물척결’ 보고서는 그 반대의 분석을 내놓았다. 곧 “부패가 민간 부문 생산성을 낮추며 공공투자를 왜곡하고 공공 재원을 잠식”함으로써 경제에 직접적인 악영향을 미친다고 분석했다.

 

부패가 우리 사회에 끼치는 또 하나의 악영향은 불평등을 지속시킨다는 점이다. 「간추린 사회교리」 192항은 부패를 억압과 착취와 함께 불평등이 지속하는 원인의 하나로 지적하고 있다. 위의 보고서에 따르면, 실제로 부패인식 지수가 25.2% 높아질 때 소득 불평등 척도인 지니계수가 11포인트 상승해 소득 불평등이 심해지는 것으로 분석되었다.

 

우리가 부패에 민감하고 경계해야 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부패가 영혼을 파괴하기 때문이다. 프란치스코 교종은 2015년 11월 27일 케냐의 카사라니 스타디움에서 젊은이들과 대화모임을 가졌는데, 부패에 관한 질문을 받고 이렇게 대답했다.

 

“부패는 정치뿐만 아니라 삶의 모든 영역에 있으며, 바티칸도 예외는 아닙니다. 부패는 우리가 먹는 설탕과 같습니다. 설탕은 달고 좋습니다. 그렇지만 끝이 좋지 않습니다. 설탕을 많이 먹으면 결국 당뇨병에 걸립니다. 우리의 나라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뇌물을 받아 호주머니를 채울 때마다, 우리는 우리의 마음과 인격과 나라를 파괴하는 겁니다. 제발 부패라고 부르는 설탕에 맛들이지 마십시오. ‘하지만 교황님, 나는 많은 이가 부패하고 다른 이들의 생계는 안중에도 없이 단지 몇 푼의 돈 때문에 자신을 파는 것을 봅니다.’라고 여러분은 말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여러분은 무엇이든 시작해야 합니다. 만일 여러분이 자신의 삶과 마음과 나라에서 부패가 사라지길 원하면 여러분 자신이 당장 시작하세요. 여러분이 시작하지 않는다면, 여러분 곁의 사람도 시작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부패는 우리의 기쁨과 평화를 빼앗아갑니다. 부패한 사람은 평화롭게 살지 못합니다. … 젊은이 여러분, 부패는 생명의 길이 아니라 죽음의 길입니다.”

 

 

부패를 이기는 최고의 방법은 섬김

 

부패를 이기려면 돈을 받지 않더라도, 대가성이 없더라도 부당하게 자신의 지위나 관계를 이용해서 부탁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프란치스코 교종이 지적한 바와 같이 우리가 부패를 저지르는 것은 우리에게 다른 이에 대한 권한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프란치스코 교종은 2014년 6월 16일 산타 마르타의 집 경당에서 집전한 미사 강론에서 이렇게 강조했다.

 

“부패는 바로 다른 이들에 대한 (정치적, 경제적, 교회적) 권한이 있는 사람들이 가장 쉽사리 빠져드는 죄입니다. 우리 모두는 부패의 유혹을 받습니다. 권한을 가지고 있다거나 힘이 있다고 느끼며 마치 신과 같다고 느낄 때 빠져드는 죄입니다. … 부패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길, 부패라는 죄의 유혹을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섬김입니다. 부패는 자만과 오만이고, 섬김은 여러분을 낮춥니다. 섬김은 다른 이들을 돕는 겸허한 자비입니다.”

 

부패를 이기는 길은 섬김, 곧 희생과 봉사이다. 프란치스코 교종은 바티칸도 부패에서 벗어나 있지 않다고 했다. 한국 천주교회도 마찬가지이다. 이번 기회에 세상의 소금이 되어야 할 교회 안에 어떤 부패의 씨앗이 있는지 곰곰이 살피고 이를 근절할 수 있는 제도를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이것이 ‘청탁뇌물 금지법’이 우리 교회에 던지는 화두이다.

 

* 박영대 베네딕토 - 해외어린이교육후원회 ‘사단법인 올마이키즈’ 상임이사이며, 공익 백수를 자처하며 인연이 닿는 대로 공익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경향잡지, 2016년 9월호, 박영대 베네딕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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