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9일 (일)
(홍) 성령 강림 대축일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보낸다. 성령을 받아라.

강론자료

5월 9일(주일)-부활 5 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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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gold] 쪽지 캡슐

2004-05-08 ㅣ No.650

부활 5 주일 (다해)

 

        사도 14,21-27      묵시 21,1-5      요한 13,31-33ㄱ.34-35

    2004. 5. 9. 퇴계원

주제 : 사랑의 힘

한 주간 안녕하셨습니까?

1991년 미국의 걸프전쟁 이후로 기름 값이 최고가 되었다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덩달아 물가는 자꾸 오르고 사는 일이 생각하는 것보다는 훨씬 더 힘든 때가 자꾸만 다가옵니다.  경제가 아무리 어려워도 ‘걱정 없이 사는 사람은 따로 있다’는 말이 있는 것처럼 가끔씩 신문에 나오는 부자들의 모습을 보면 우리나라 사회도 두 개로 크게 나누어진 듯합니다.

 

사람이 걱정한다고 목숨을 한 시간이라도 늘릴 수 있겠느냐(마태오 6,27)는 예수님의 말씀도 있습니다만, 때때로 우리는 땅이 꺼져라.... 혹은 하늘이 무너져라 걱정을 합니다.  사람이란 존재가 약하기에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없는지는 몰라도, 그런 걱정을 하고 나서 시간이 흐른 다음에 생각해보면 그 걱정이 현실 변화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일입니다.

 

이런 세상에서 우리가 오늘 복음을 통해서 들은 ‘서로 사랑 하여라’는 말씀은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행동이 따르지 않는 믿음은 우리에게 아무런 소용이 없다(야고보2,17)고 한 야고보 사도의 말씀을 기억한다면, 우리가 가진 좋은 자세를 드러내는 것은 행동과 연결해서 생각해야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들은 사랑이라는 말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랑이 무엇인지 그 낱말의 뜻을 모르는 것보다는 아는 것이 중요하겠습니다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완벽하게 알거나 모르거나를 떠나서 자신이 현재 알아들은 만큼 행동으로 드러낼 수 있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께서 최후를 준비하는 말씀’ 가운데 나오는 내용입니다.  당신의 목숨을 바치기까지 사랑해왔던 제자들을 떼어놓고 수난을 겪어야 하는 상황을 앞두고 예수님은 당신이 보여주었던 그 삶을 제자들이 계속해서 보여주기를 원하면서 하신 말씀입니다.  상황이 결코 기쁜 입장은 아니기에 예수님의 말씀이 더 힘이 있다고 느껴지기도 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일은 힘든 일입니다.  쉽지 않은 일입니다.  세상의 처음부터 있었던 것도 아닙니다만, 미워하는 일보다는 사랑하는 일을 더 힘들다고 우리는 생각합니다.  내 몸에 상처를 남기고 서글픔을 남기는 것은 미움이 훨씬 더 크지만 이상하게도 사람의 곁에는 사랑보다는 미움이 훨씬 더 가까이 있는 듯합니다.

 

우리말의 사랑이라는 것과 비슷한 서양의 말은, 대상에 따라 그 낱말의 표현이 다릅니다.  자기 자신을 사랑할 때 표현하는 말이 다르고, 적당한 몫을 주고받는 일을 할 때 드러나는 사랑을 표현하는 말이 다릅니다.  또 내 것을 온전히 내어줄 때 표현하는 사랑에 대한 말이 다릅니다.  그 낱말을 말하는 것이 중요한 것은 아닐 것입니다.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일과 적당한 몫을 주고받을 때 나타날 수 있는 사랑은 누구나 합니다.  그 사랑은 다른 사람들에게서 칭찬받을 것도 아니고 시간이 흐르고 나면 잊힐 것들입니다.  그러나 대가(代價)를 바라지 않은 사랑의 표현은 시간이 흘러도 그 가치가 변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몇 가지 경우로 나누어볼 수 있다면,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사랑이라는 말을 듣고 우리가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하겠는지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복음을 전하는 일은 생각보다 어렵습니다.  자동차가 발달하고 비행기를 탈 수 있는 세상이 되었지만 지금 세상에 사는 우리도 선교하는 일은 마찬가지라고 말을 할 것입니다.  하물며 오로지 발로 걸어야만 했던 2000년 전에 복음을 전한다는 것은 상상하기도 어려운 일이었을 것입니다.  그런 길을 바오로는 전교여행을 다닙니다.  바다건너, 사막을 건너, 유대인들의 질투를 무릅쓰고, 복음을 전하면 사람들이 받아들인다는 보장도 없이 말입니다.  그렇게 움직였던 바오로 사도의 힘은 무엇이었을까요?

 

오늘 우리가 들은 성서의 말씀은 ‘오로지 사랑’ 때문에 가능했을 거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사랑은 앞서 구별한 자신만을 위한 사랑도 아니고 적당한 몫을 나누는 의미의 사랑도 아닐 것입니다.  내 행동의 모든 대가를 하느님에게서 받겠다는 자세가 아니면 전혀 가능하지 못할 사랑의 힘으로 바오로 사도는 움직였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성지순례를 다니면, 바오로 사도가 그렇게 움직였던 곳은 현재 이슬람 문화권에 속해 있습니다.  사랑을 드러내는 사람은 열심히 하려고 했겠지만, 그것을 받아들여 삶이나 행동으로  표현하려던 사람들이 같은 자세를 갖지 못했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사랑의 힘이 얼마나 강한지 생각해야 합니다.  말로는 쉬운 일입니다.  그러나 말로 하는 것으로서 우리가 사랑을 다했다고 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남기셨던 새로운 계명, ‘사랑하라’는 말씀을 올바로 알아들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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