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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사목] 통일 대박론의 허와 실: 죽음의 심연을 건너 영광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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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5-04-22 ㅣ No.816

[통일을 준비하며] 통일 대박론의 허와 실 - 죽음의 심연을 건너 영광으로



박근혜 대통령의 갑작스러운 통일 대박론에 대해 의견이 분분하다. 통일비용의 우려를 불식시키고 통일에 무관심한 젊은 세대의 관심을 불러일으켜 국민의 공감대를 형성하게 되었다는 긍정적인 평가도 있다.

그 반면 지지율 하락에 대한 국면전환용이라고 평가절하를 하거나 ‘종북몰이’를 하면서 통일대박을 이야기하는 것은 위선이라는 견해까지 다양하다.

남북한으로 분단된 지 근 70년이다. 분단이 오래될수록 통일의 열망이 점점 옅어지는 것처럼 보이며, 젊은 세대로 갈수록 통일이 무용하다는 이들의 비율도 증가하고 있다. 그래서 나온 통일 대박론일까?


우리에게 통일은 무엇인가

우리에게 통일은 여러 의미가 있다.

첫째, 단일민족, 단일국가였던 우리나라를 본디 상태로 회복하는 것이다. 헌법상 대한민국은 남북한을 아우르는 하나의 국가다. 하나였던 우리나라가 힘이 약해 외세 때문에 분단되었기에 본디 위치로 되돌려 놓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둘째, 치욕적인 민족상잔의 전쟁을 치른 우리 민족이 남북을 통합하여 부유하고 강한 나라로 만들어서, 더는 외세에 흔들리지 않고 후손이 평화롭고 행복하게 사는 나라로 만들려는 것이다.

셋째, 현재 우리가 놓인 한계상황을 타파하려는 것이다. 남북분단으로 말미암은 전쟁의 위협과 지정학적인 한계, 좁은 국토, 코리아 할인, 수출의존 경제 모델, 내수시장의 한계 등으로 국가 성장이 한계상황에 이른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기 때문이다.

또한 이와 함께 북한 문제로 말미암은 이념과 가치에 대한 정치적, 사회적 갈등이 치유 불가능할 정도로 증폭되고 있으므로 북한 문제를 넘지 않고서는 우리의 미래가 너무도 암울하기 때문이다.


통일은 모두 대박인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베트남, 독일, 예멘이 서로 다른 방식으로 통일을 이루었다. 그러나 통일이 모두 대박은 아니다.

베트남은 장기간의 전쟁을 통하여 사회주의 국가로 통일되었으나 수많은 인명이 희생되는 등 참혹한 후유증을 겪은 뒤 정치경제 체제를 개편하고 미국과 관계를 개선하는 등 개방 노력을 지속하고 있다.

예멘은 정치적 협상에 따른 정치권력의 분점으로 평화로운 통일을 했다. 하지만 이후 남북 예멘 간의 전쟁이 일어났고 다시 통일되었으나 쿠데타가 발생하였으며 다시 내전에 돌입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를 낳고 있다.

독일의 통일은 준비되지 않은 상황에서 동독이 서독에 흡수 통일되었다. 독일은 통일된 지 25년이 지나고 있음에도 혹독한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 천문학적인 자금이 투입되어 한때 경제적 위기를 맞기도 하였다.

더욱 심각한 것은 동서독 주민 간의 사회적 갈등이다. 동독 주민이 느끼는 박탈감과 차별감, 서독 주민의 경제적 고통과 사회적 혼란, 상호 사고방식의 차이와 이해관계의 충돌 등으로 말미암아 사회적 갈등의 골은 너무도 깊다.

‘오스탈기(ostalgie)’라는 신조어가 생길 정도로 동독에 대한 향수가 깊어지고, 동독 주민의 60% 이상이 자기를 통일 독일 주민으로 느끼지 못한다고 한다. 앞으로도 최소 20년은 지나야 비로소 정신적 통일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통일 대박이 되려면 우리의 힘으로, 우리가 원하는 방식으로, 우리가 희망하는 모습으로 이루어져야만 한다. 우리가 원하는 통일의 모습은 무엇인가?


통일 한국에 대한 낙관적 희망

통일 한국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체제를 유지하면서 평화롭고 부강한 나라가 될 것이다. 남북한 병력을 통합하여 적정수준으로 감축하고, 영세중립국을 표방하여 전쟁의 위협에서 벗어나면 국방비 부담도 대폭 줄어들 것이다. 점진적으로 통일을 이뤄 그 과정의 혼란과 후유증은 최소화할 것이다.

남북한의 적대적 감정이 해소되어 민족적 유대감이 깊어지고 자존감이 높아질 것이다. 북한의 경제 수준은 통일 이전에 상당 수준으로 향상되어 정치, 경제, 사회적으로 안정된 통합을 이루게 될 것이다. 유라시아 대륙과 태평양을 잇는 물류의 중심지로서 북한의 풍부한 지하자원과 노동력, 남한의 기술과 자본이 결합하여 강력한 경제발전을 가져오게 될 것이다.

한반도의 평화적 통일은 전쟁 위협과 소모적인 분단비용, 경제적 침체, 인구감소에 따른 암울한 미래를 일거에 해결하고 세계의 중심국가로 우뚝 서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런 낙관적 기대는 다음의 가정을 전제로 한다.

첫째,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체제에 북한의 동의가 있어야 한다.

둘째, 중국의 협력과 동의가 필요하다. 독일의 통일은 구소련이 붕괴되는 힘의 공백기였기 때문에 가능하였다.

셋째, 남북의 화해협력과 남북연합이라는 단계를 거쳐 점진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통일비용은 가정과 셈법에 따라 편차가 매우 크기는 하지만, 급진적 통일비용은 점진적 통일비용보다 최소 7배 이상 소요될 것이라고 본다.

넷째, 주변 4강이 중립국 선언을 인정해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지금보다 더 많은 국방비가 소요될 것이다.
 
다섯째, 북한이 개혁 개방되어 경제 능력이 적어도 남한의 절반 이상으로 향상되어야 한다.

여섯째, 가장 중요한 것은 정신적 통일의 문제이다. 남북한 주민의 차별과 질시가 없는 진정한 사회통합이 이루어져야 한다.


통일 한국에 대한 우울한 상상

북한 공산독재 세습왕조는 이미 세계 최빈국으로 전락한 가운데 민심은 심각하게 돌아섰고, 국제적으로도 고립되어 있다. 일각에서는 북한의 붕괴를 기대하거나 촉발하는 어떤 행동을 촉구하지만, 북한의 급변 사태는 북한 내전 또는 제2의 한국전쟁 발생 가능성도 있고, 북한 사태에 대한 중국의 개입 가능성 또한 높다.

북한의 붕괴로 휴전선이 무너지고 정치적 통일의 기회가 온다면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체제를 유지해야 하는 것은 필수적이다. 서독의 사례와 같이 북한군은 소수를 빼고는 전원 명예로운 전역을 하도록 하고 군인 연금을 지급한다. 북한 정부의 부채 인수와 막대한 공적 자금 투입으로 국가 총부채는 급상승한다.

화폐통합은 남북한 국내총생산(GDP)이 40대 1의 차이에도, 북한 주민의 불만을 잠재우고 생계유지를 위해 독일의 경우와 같이 1대 1로 교환한다. 인플레이션이 발생하여 금리가 상승하고 조세와 보험료가 가파르게 인상되며, 임금투쟁과 연금, 실업수당의 증가 등으로 그나마 유지되던 복지체제는 완전히 붕괴하여 공황상태에 빠진다.

북한 부동산을 사유화하는 과정에서 북한의 실거주자, 분단 이전의 원소유자, 남한 거주 500만 명의 실향민, 그리고 투기세력 간 재산권 분쟁으로 소송이 난무한 가운데 무질서와 부패가 난무해진다. 북한 주민이 대거 남한으로 이동함으로써 북한 지역은 공동화되고, 부동산 투기의 대상으로 전락하게 된다. 남한의 무자비한 자본은 투기 바람을 부추기고, 부정부패가 기승을 부리게 된다.

대규모로 남하한 북한 노동력은 시장경제 체제에 적응하지 못한 채 차별과 멸시로 말미암아 상처를 받고 고향으로 돌아가 증오심을 키운다. 120만이 넘는 북한 전역 군인을 포함한 신규 노동인구의 유입으로 실업자가 대폭 발생한다.

통일 한국의 정치 사회적 불안으로 외국 자본은 투자를 망설이고, 북한 지역의 도시 개발사업과 기반 개발사업을 통한 일자리 창출도 매우 제한적이 된다. 북한 지하자원의 질과 양은 과대평가되었고, 양질의 지하자원의 채굴권은 이미 중국에 매각되어 있다.

북한 권력층의 불법행위에 대한 처벌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게 되는 북한 권력층과 피해 계층의 갈등, 북한 권력층의 만행에 대한 사법적 응징행위와는 별개로 벌어질 테러 또는 보복행위, 피해자 구제 등 북한의 과거 청산 작업과정에서 사회적 혼란이 증폭된다.

사회주의에 익숙한 북한 주민은 그들의 노동 생산능력을 고려하지 않는 가운데 남한 주민의 임금과 비교하여 차별을 받는다고 생각한다.

시장경제적 사고와 사회주의 경제적 사고의 충돌로 상호 질시와 멸시는 심대한 사회 갈등을 초래한다. 자유민주주의의 방식에 익숙하지 않은 2,500만 명의 인구 유입으로 새로운 유권자의 등장은 정치지형에 예측하기 어려운 혼란을 일으킨다.


우리는 어디에서 어디로 가고 있는가

우리가 언제 어떤 방식으로 어떤 통일을 맞이하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우리의 통일에 대한 준비와 과정에 따라 재앙이나 축복이 될 것이다.

7·4 남북공동성명을 시작으로 참으로 많은 시간과 비용과 노력을 들여 조심스럽고 위태롭게 쌓아가던 남북관계는 이미 파탄이 났고, 박근혜 정부에서 야심차게 내놓은 신뢰 절차는 한 걸음도 전진하지 못하고 있다. 현실 세계에서 지속가능한 실현 가능성을 가진 구체적인 큰 그림이 없는 통일 대박론은 공허하다.

통일을 위한 한국의 토양은 독일 사례보다 훨씬 척박하다. 독일은 한국과 달리 동족 간의 전쟁이 없었다. 독일의 경제적 통합 역량은 우리보다 수십 배는 더 우세하였다. 서독은 세계 3위권이었고 동독은 사회주의 국가에서 가장 잘 살고 있었다. 반면에 한국은 세계 11위권이고, 북한은 세계 140위권이다.

국제정치 면에서 독일의 통일 기회는 절묘하였다. 구소련이 몰락하여 동독을 움켜쥘 힘이 없었다. 반면 북한의 몰락을 중국은 어떤 식으로든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고, 러시아와 일본도 한국의 통일을 희망하지 않는다.

통합해야 할 인구 면에서도 한국의 부담은 훨씬 크다. 서독의 인구는 동독의 4배이나 한국은 북한의 2배이다. 통일 이전 서독과 동독은 상호방문이 자유롭고 통신과 방송 등이 모두 개방되어 있었으나 현재 남북한은 대화마저 꽉 막혀있는 가운데 오히려 적대적 상황은 더 거칠어지고 있다. 더욱이 북한의 핵 문제는 참으로 해결이 난망한 가운데 통일의 최대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한국의 국내 정치는 망국적인 지역 갈등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운 가운데 북한 문제를 정쟁으로 끌어들여 사회적 갈등과 증오심을 조장하고 있으며, 경제는 침체되어 활로를 잃고 있다.

한국 경제의 기둥인 대기업은 법인세의 대폭 완화에도 투자를 회피하고 있으며, 서민들의 생활은 더욱 피폐해져 생계를 위협받고 있다. 이제 겨우 시작한 복지를 둘러싸고 서민증세에 대한 논쟁이 격심해지고 있으며, 젊은이들은 취업 전쟁에서 전전긍긍하고 있다.

한반도 주변 국가 모두 한국의 통일에 그리 호의적이지 않고, 사회적 갈등은 폭발 직전이며, 일자리와 먹거리에 대한 걱정으로 전전긍긍하는 현실에서는 당연히 통일에 대한 냉소주의가 활개를 치게 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북한의 돌변사태가 벌어지면 한반도는 강대국들의 각축장이 되거나 나아가 전쟁 상태로 돌입할지도 모른다.

천우신조로 통일의 기회를 얻게 되더라도 통일과정에서 감당하기 힘든 고통이 죽음의 심연처럼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지 모른다. 언제나 영광으로 가는 길에는 고통이 따르기 마련이다.


그래도 가야 할 길

통일은 우리 민족의 숙명이다. 지구 반대편에 있는 나라도 재난이 일어나면 이념이나 이해관계를 따지지 않고 도움의 손길을 내민다. 다른 민족인 중국과 일본이 북한의 대량 난민을 걱정하기 시작한 것은 아주 오래된 사실이다.

북한이 위기에 처할 때 우리에게 북한 주민은 단순한 난민이 아니다. 헌법상으로도 북한은 우리의 영토다. 통일을 할 수밖에 없는 우리 민족은 통일을 대박으로 만들어야만 하는 숙명을 함께 지니고 있다. 통일이 재앙이 아니라 크나큰 축복이 되게 하려면 우리는 무엇부터 해야 하는가?

첫째, 우리 내부로부터 먼저 사회적 통합을 이루어야 한다. 우리 내부조차도 상생의 화합을 하지 못하면서 더 큰 통합을 할 수는 없다. 자유민주주의의 장점 가운데 하나는 다양한 가치와 생각이 함께 공존하며 어우러져서 발휘되는 역동성이다. 상생의 화합을 통한 역동성을 회복하여 통일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해야 한다. 국민의 마음이 갈가리 찢긴 상황에서 어떻게 통일의 무게를 감당할 수 있겠는가?

둘째, 역지사지하자. 관용과 배려와 포용은 크고 강한 자가 할 수 있다. 화려한 수사보다 진정성을 가진 작은 실천이 신뢰를 낳는다.

셋째, 현실적으로 실천할 수 있고 지속가능한 일관성 있는 정책을 바탕으로 긴 안목과 긴 호흡으로 흔들림 없이 꾸준히 앞으로 나아가자.

통일은 어느 날 갑자기 로또 복권처럼 찾아오지 않는다. 장밋빛 환상보다 현실을 직시하고 인정하면서 언젠가 반드시 오게 될 통일 한국을 맞이할 태세를 갖추자. 통일 한국의 영광에 이르는 길에는 끝을 헤아리기 힘든 죽음 같은 심연이 놓여있을지 모른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준비하고 깨어 기다리자. 희생, 인내, 관용과 사랑의 정신이 죽음의 심연을 건너게 하는 유일한 길이다.

* 이선희 미카엘 - 수원교구 분당 성마르코본당 신자로, 방위사업청장, 한국과학기술원(카이스트) 초빙교수를 지냈다. 행정학 박사로 아주대학교에 출강하고 있으며, 한국투명성기구 공동대표로도 일한다.

[경향잡지, 2015년 4월호, 이선희 미카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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