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7일 (금)
(백) 부활 제7주간 금요일 내 어린양들을 돌보아라. 내 양들을 돌보아라.

사목신학ㅣ사회사목

[가정사목] 아버지가 되고 어머니가 되자

스크랩 인쇄

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5-04-22 ㅣ No.814

[세계주교대의원회의를 준비하며] ‘아버지’가 되고 ‘어머니’가 되자



무너지고 있는 가정

동서를 막론하고 오늘의 가정에서는 어머니의 존재성만이 아니라 아버지의 위상마저 찾기가 쉽지 않다. 사람들은 그 원인을 다만 가족제도의 변화와 가정기능의 상실에서 규명하려고 한다. 그러나 우리는 먼저 우리 각자의 윤리의식 부재와 도덕적 능력의 상실에서 그것을 찾아보아야 한다.

사실 우리나라 근대화 과정에서 우리는 윤리의식과 도덕적 능력의 개발을 뒤로 하고, 오로지 경제발전만을 앞세웠다. 그리고 남녀평등을 주장해온 여성주의자들 또한 1970년 미국의 여성주의자들이 펼쳤던 이론에 힘입어 유교 가부장제의 철폐만을 강조했다. 가부장 사회의 문화에서 형성된 인간의 윤리의식에 대한 검증과 도덕적 능력에 대한 평가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었던 것이다.

그 결과 오늘의 우리 가정은 부모와 자녀 간의 위계질서가 무너졌고, 동시에 자유와 평등이라는 이름 아래 부모의 권위가 상실되었으며, 웃어른을 섬기는 풍토가 흐려졌다. 효의 덕목도, 부모의 은덕에 감사하는 마음도 약화되었다. 부모가 자식에게 해야할 의무만은 당연히 요구되고 있는 현실이다.

그리하여 오늘날은 부모들 자신이 자녀와 청소년을 지도할 도덕적 능력을 상실하거나 또는 그들을 교육할 권리와 의무를 포기하는 지경에 이르고 있다. 어디 그뿐이랴! 오늘날은 자녀 수의 감소로 아이들을 과잉보호하기 쉽고, 그로 말미암아 아이들은 정신적으로 무기력하고 허약하게 자라고 있다. 그렇지 않은 일에는 무관심으로 일관한다. 또한 무엇이 가치 있고, 소중한 것인지 또 무엇이 보람 있는 것인지를 감지하지 못한다. 더 나아가 이런 것들이 행동화되면서 급기야는 허무주의, 자포자기, 일탈행위, 비행범죄, 자살 따위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사실 교회도 지금까지 이러한 실정에 대응하는데 미흡했고 안이했던 것만은 부정할 수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대응해야 할 것인가?


가정은 용서와 화해의 학교

어쨌든 가정은 인류문화와 고귀한 가치를 보존하고 발전시키는 역할을 해내는 곳이다. 우리는 그곳에서 제일 먼저 소통을 ‘배운다.’ 가정은 소통을 배우는 첫 번째 장소인 것이다. 그러한 소통의 능력은 서로 다독이고, 지지하며, 반려하는 것이고, 또한 바라봄과 침묵의 의미인 것이다. 그러한 능력은 서로 선택되지 않는 사람들 가운데서도 서로에게 소중한 것이다. 특히 그러한 능력은 발견하고 형성하는 것으로서 실재적인 것을 감지하는 힘이다.

그뿐만 아니다. 가정은 일상 안에서 서로서로의 한계를 경험하는 곳이며, 크고 작은 공동 삶의 문제점들과 타협하고 절충하는 곳이다. 그러므로 완전한 가정은 없다. 불완전하다고 해서 두려워할 것도 없다. 가정은 용서와 화해의 학교이기 때문이다. 용서는 소통의 강력한 힘이다. 또한 어머니의 헌신적인 희생과 사랑 없이는 가정은 인류 공동체로 성장할 수도, 지속할 수도 없다.


자녀는 부모의 소유물이 아니다

가정은 사랑을 체험하는 일차적인 장소이며, 동시에 삶의 의미를 부여하는 곳이다. 가정에서 아이들은 제일 먼저 사랑을 알고 배우게 된다. 결국 사랑만이 가족의 내적 일치를 이루는 힘이다. 그 점에서 가정은 풍요로운 인간성을 길러내는 학교이다. 그렇다면 가정에서 우리 부모들은 어떻게 자녀들과 소통하며 사랑하고 있는가? 자녀들을 ‘인격체’로 대하기보다는 아직도‘소유물’로 대하고 있지는 않는가?

‘하느님의 모습’으로 창조된 아이들은 부모의 소유물이 아니라 잠시 맡겨진 하느님의 선물이다. 그런데 부모의 욕심 때문에 이 귀한 선물이 주인에게 되돌려지지 않고 소유된다면 어떻게 될까? 그러한 부모에게서 자란 아이들의 정신건강 상태는 항상 유아적일 수밖에 없다.

사실 그러한 부모는 자녀가 자신의 행동의 옳고 그름을 판단해서 스스로 책임져야 하는 학습 기회를 박탈하고 있다. 특히 사춘기의 자녀를 둔 어머니들의 갈등과 고통은 더욱 심각하다. 그러한 고통과 갈등을 통해 삶의 의미를 상실하게 되거나 능력의 한계성을 느낀다. 더 나아가 자녀들의 공격성과 도전성에 정면으로 충돌하게 된다.

이러한 갈등과 충돌 때문에 가족의 위기가 발생한다. 자녀와 부모 간의 문제가 가족의 위기로 드러나면서 사회문제로까지 이어진다. 그러나 중년기 어머니들의 고통과 갈등은 인생의 의미와 가치를 되돌아보게 하는 기회이기도 하다. 그런데 바로 이 시기에 자녀들마저 어머니 품에서 벗어나려고 한다면 어머니들은 당연히 인생의 무상과 허무를 느낄 수밖에 없다. 그러기에 어머니들도 자녀를 품에서 떠나보내는 단련과 학습을 꾸준히 해나가야만 한다.

교회의 어머니들이 성모 마리아의 신앙과 삶을 본받아 갈등과 고통을 수용하고 또 그것을 인간적으로 창조한다면 자녀의 문제는 자연스럽게 해결될 수 있다. 따라서 교회는 어머니의 모성적 권리와 의무가 침해되지 않도록 적극적으로 보호하고 관리할 책무가 있으며, 이와 관련해서 아버지의 권리와 의무도 시대의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고 적응하도록 할 책무가 있다.


아버지가 되고 어머니가 되어야

자녀들의 모든 기초교육은 가정에서 이루어지며, 특히 사회발전에 참여할 기본교육도 가정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한 가정교육의 핵심은 무엇보다 인간 존엄성에 대한 학습이며, 다른 이를 위한 봉사에 대한 학습이다. 특히 가정에서 이루어져야 할 학습 가운데 중요한 학습은 아내로서 또 어머니로서 여성의 역할이다.

그러므로 교회는 가정에서 자녀교육을 위한 부모의 권리와 의무가 무엇인지를 확실하게 알도록 해야 할 책무가 있다. 이와 관련해서 교회는 가정과 결혼생활에 도움이 되는 부부의 도덕성에 대한 학습을 추진해야 하며, 특히 성교육을 통해 인간생명의 기본가치를 제시해야 한다. 그러려면 어머니들이 먼저 ‘성(性)’을 올바르게 인식하고 이해해야 한다. ‘성’은 인간 전체를 사랑의 선물로 만들기에 심오한 의미가 있다.

특히 오늘의 물질만능주의 사회에서 교회는 자녀를 돈으로만 키울 수 없다는 점, 사랑 없이는 아이들을 올바른 사람으로 만들 수 없다는 점을 몸소 체험하도록 어머니들의 잘못된 의식을 바로잡는 학습을 꾸준히 펴나가야 한다. 부모의 의무를 다하지 못한 사람이 어찌 부모의 권리를 주장할 수 있으리! 프랑스의 유명한 사상가 루소는 이렇게 말한다. “자녀교육을 게을리한 사람이 훗날 뒤늦게 자신의 과오를 후회한들 무슨 소용이 있으며 또 그 누구의 위로가 도움이 되겠는가?”

그렇다. 가정에서 부부의 공동사명은 아버지가 되고 어머니가 되는 것이다. 아버지가 되고 어머니가 된다는 의미는 가정과 사회를 극단적인 이기주의에서 보호하는 것을 말하며, 또한 차별된 사회의 모순과 부조리를 극복하고자 남녀가 동반자적 보완적 형태로 변하는 것을 말한다.

그럼으로써 여자는 세상을 선으로 이끌어가는 위대한 존재로서 생명을 낳는 인류의 어머니가 되는 것이며, 남자는 세상을 다스리고 보호해야할 만물의 영장으로서 아이들이 ‘고아’가 되지 않도록 친구되어 함께하는 의로운 아버지가 되는 것이다. 또한 자녀들은 그들의 발전과 그들이 잠정적 성숙과정을 창조하는 과정에서 그러한 어머니와 아버지와 함께 가족 안에서 성장할 권리를 갖는다.

“나는 너희를 고아로 버려두지 않고 너희에게 다시 오겠다.”(요한 14,18) 하신 주님, 어서 오소서! 아멘.

* 김정희 빅토리아 - 전남대학교 윤리교육과 명예교수. 1979년 독일 레겐스부르크대학교에서 신학 박사학위를 받아 여성으로서는 우리나라 최초의 신학박사가 되었다. 교회와 여성에 관한 많은 책을 저술하였으며, 최근 「교회의 여성」이라는 책을 내놓아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경향잡지, 2015년 4월호, 김정희 빅토리아]



1,502 0

추천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