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7일 (금)
(백) 부활 제7주간 금요일 내 어린양들을 돌보아라. 내 양들을 돌보아라.

교육ㅣ심리ㅣ상담

[상담] 아! 어쩌나: 생각을 못하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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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7-10-28 ㅣ No.615

[홍성남 신부의 아! 어쩌나] (193) 생각을 못하는 사람

 

 

Q. 남자친구는 아주 박식합니다. 그것이 마음에 들어 만나기 시작했지요.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마음이 흔들립니다. 남자친구는 대화 내용이 거의 자기 생각이 아닌 자신이 읽은 책을 인용하곤 합니다. 이것이 갈수록 제 마음에 불편한 감정을 일으킵니다.

 

‘이 사람이 자기 생각은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고, 왠지 머리가 좋은 것이 아니라 창의성이 모자란 사람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기가 성경을 모두 암기한다는 것을 자랑하기도 합니다.

 

무슨 이야기를 하든지 성경의 장과 절을 대면서 답을 하기에 성당 사람들은 남자친구를 참으로 대단하다고들 생각하지요. 하지만 그럴수록 그가 그 깊은 의미는 모르고 ‘그저 달달 외우기만 하는구나’ 하는 생각만 듭니다. 그리고 남자친구는 자신의 아버지를 가장 존경합니다.

 

그래서인지 책 이야기를 하지 않으면 아버지 이야기만 하는데 왠지 그것도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아버지를 존경하는 것은 좋은데 아버지 말씀이라면 무엇이든 믿으려는 자세는 보기 좋지 않아 보입니다. 제 남자친구가 어떤 문제가 있는지요? 아니면 저에게 문제가 있나요?

 

 

A. 자매님이 그렇게 느끼는 것은 이상한 것이 아닙니다. 외려 남자친구가 문제가 있네요. 남자친구처럼 모든 문제를 책을 보고 해결하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어떤 질문을 해도 책을 인용해 답을 하는 식이지요. 처음에는 아주 멋있어 보이고 박식해 보이지만, 시간이 가면서 “이 사람이 과연 자기 생각이나 할 줄 아는가?” 하는 의문이 들기 마련입니다.

 

이렇게 지나치게 책에 의존하는 사람은 자신의 삶의 방식을 다시 한 번 점검할 필요가 있습니다. 왜냐면, 현실적 문제에 대해 일일이 답을 주는 그런 책은 이 세상에 없기 때문입니다. 현실에서 우리가 겪는 문제들은 지극히 개인적이어서 그 해결책도 지극히 개인적 방법으로만 해결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책은 자료로는 사용해도 되지만, 책을 자기 인생의 열쇠로 여겨서는 안 됩니다.

 

이분들은 왜 그런 행위를 할까요? 바로 ‘아버지 콤플렉스’ 때문입니다. 어린 시절 엄격한 아버지들은 자식들이 자기 의견을 내세우는 것을 싫어하거나 혹은 자녀가 끽소리도 내지 못하게 하는 병적 행동을 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런 아버지 밑에서 자란 아이들은 머릿속에 자기 생각이 아닌 아버지 말씀이 명령어로 입력돼 있어서 마치 로봇처럼 무슨 일을 하든지 아버지의 말을 따라 행동하려 합니다. 그리고 나이가 들어서는 책 내용을 명령어로 받아들입니다. 군대에서 갓 훈련받은 훈련병처럼 사는 것이지요. 그리고 자기 생각에 대해서는 쓸모없다고 스스로 생각합니다. ‘생각하는 훈련’이 잘 돼 있지 않기에 예기치 못한 상황에 처하면 보통 사람보다 더욱 심하게 당황하고 헤매는 양상을 보입니다. 자신감과 자존감이 없기 때문이지요.

 

이런 상태에서 종교를 갖는 사람들은 맹목적인 신앙, 그리고 무지막지한 신앙론에 빠져 일상생활조차 하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기도 합니다. 또 내적 힘도 약하고 황폐한 경우가 많습니다.

 

사람이 음식을 씹지 않고 먹으면 어떤 일이 생길까요? 아무리 몸에 좋은 음식이라도 씹지 않고 삼키려 한다면 당연히 탈이 나고 몸이 더 약해집니다. 이것은 책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좋은 책이더라도 곰곰이 생각하지 않고 무조건 외우기만 한다면, 그 내용이 마음에서 나를 공격하는 부작용으로 작용합니다. 이를 ‘심리적 배탈’이라고도 부릅니다.

 

성경도 예외는 아닙니다. 물론 성경은 하느님의 성령으로 기록된 글이지만, 그 안에 있는 깊은 의미를 되새기지 않고 글자 그대로를 외우고 인용하기만 한다면 같은 부작용을 일으킬 가능성이 큽니다. 성경 인용도 때로는 잘못될 때가 있습니다. 성경은 하느님의 말씀인데 어떤 이들은 자기 생각을 합리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인용을 합니다.

 

다시 말해 하느님의 뜻이 아닌 자기 뜻을 상대방에게 강요하기 위해 성경 구절과 장 · 절까지 인용해 사람들의 기를 죽이고, 자기식으로 생각하기를 은연중에 강요하는 종교적 범죄를 저지르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에서는 성경 묵상을 강조합니다. 말씀을 그냥 삼키는 것이 아니라 되새기면서 마음 안에 충분히 소화하도록 하는 시간을 갖게 하는 것이지요. 이러한 묵상법은 다른 책을 읽을 때도 적용하는 것이 좋습니다.

 

오래전 어떤 철학자는 읽는 책 글귀마다 자기 생각을 기록했다고 하는데, 그런 식으로 자기 생각을 쓰고, 비교해보고 깊이 음미해보는 과정을 통해 내 마음에 건강한 인생지침이 생깁니다.

 

[평화신문, 2013년 3월 24일, 홍성남 신부(서울대교구 영성생활상담소장), 상담전화 : 02-776-8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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