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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 아! 어쩌나: 이 죄책감을 어찌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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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7-10-28 ㅣ No.614

[홍성남 신부의 아! 어쩌나] (192) 이 죄책감을 어찌할까요?

 

 

Q. 루카복음 7장 1-10절에 백인대장이 나옵니다. 그가 한 말을 읽다 보면 심한 죄책감을 갖고 사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외려 주님께서는 그런 사람을 칭찬하시는 것이 이해가 안 갑니다. 그의 심한 죄책감을 고쳐주시기는커녕 다른 사람들에게 “백인대장을 본받아야 한다”고 하시니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심리치료 분야에서 심한 겸손과 심한 자기비하는 정신적 문제라고 들었는데 이해가 안 되네요. 저는 오랫동안 심한 죄책감 때문에 우울증에 걸리기도 했는데, 복음을 묵상하면서 예전 삶으로 돌아가야 하나 하는 갈등이 생기네요.

 

 

A. 주님께 도움을 청하는 백인대장은 “주님, 수고하실 것 없습니다. 저는 주님을 제 지붕 아래로 모실 자격이 없습니다. 그래서 제가 주님을 찾아뵙기에도 합당하지 않다고 여겼습니다. 그저 말씀만 하시어 제 종이 낫게 해 주십시오”하고 말합니다.

 

얼핏 심하게 자신을 비하하고 낮추는 말로 들립니다. 그러나 전체적 내용을 보면 백인대장이 얼마나 정신적으로 건강한 사람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영성신학에서 건강한 사람은 세 가지 덕을 갖춰야 한다고 봅니다. 믿음 · 희망 · 사랑 즉, 신망애(信望愛) 삼덕이 건강한 사람의 필수조건이라고 하지요.

 

우선 그가 가진 사람에 대한 사랑이 돋보입니다. 가족도 아닌 종을 위해 자신의 체면을 내려놓는 태도를 볼 때 그는 사람에 대한 사랑이 지극한 사람임을 알 수 있습니다. 두 번째는 믿음입니다. 주님께서 자기 종을 틀림없이 고쳐줄 것이란 믿음을 가졌기에 주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인간사회에서 필수적 요소가 다른 사람들이 주는 신뢰입니다. 아무리 자신이 능력이 있어도 누가 믿어주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사실은 주님께서도 고향 사람들에게 홀대를 당하시며 체험하신 바 있습니다. 그런데 백인대장의 전폭적 신뢰는 주님 마음을 흔들고도 남았습니다.

 

세 번째는 희망입니다. 아무리 어려운 상황이라도 포기하지 않고 끊임없이 시도하는 희망 말입니다. 백인대장이 심기가 약한 사람이었다면 주님을 찾는 시도조차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 세 가지 외에도 백인대장은 겸손한 덕을 갖춘 사람이었습니다. 복음에서 자기를 낮춘 것은 지나친 자기비하가 아닙니다. 겸손이란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보는 것을 말합니다. 백인대장은 자신과 주님을 비교하며 자신의 위상을 객관적으로 평가하고 주님께 자기 처지를 솔직히 고백한 것이지, 지나친 자기비하가 아닙니다. 죄책감에 대해서도 같은 말씀을 드릴 수 있겠습니다.

 

죄책감이란 개인적, 사회적 규범에 어긋나는 행동을 했을 때 마음이 불편해지고 자신을 책망하게 하는 양심의 수단입니다. 이것은 우리 마음 안의 도덕 나침반이 지속해서 작동하도록 도와줍니다. 죄책감은 편안한 감정이 아니라 불편하고 고통스러운 감정이기에 우리는 이 감정을 갖지 않기 위해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그러나 양심이 있는 사람과 마음이 건강한 사람에게는 죄책감이 평생 따라다니기 마련입니다. 죄책감이 있어야 자기 절제도 하고 다른 사람도 배려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다른 것과 마찬가지로 죄책감 역시 적당량이 필요합니다. 지나치면 부작용이 생깁니다. 

 

죄책감이 지나치면 우리가 한 행동에 대해 잘못 해석하기 쉽습니다. 또 지각체계가 지나치게 예민해져 과도한 죄의식에 시달릴 수 있습니다. 자기 비난과 자기 힐책, 자기 체벌의 여러 층을 마음 안에 만들어 스스로 자기 영혼을 감옥이나 지옥처럼 만드는 결과를 낳을 수 있습니다. 지나친 죄책감은 겸손이 아니라 자기학대라는 신경증적 행위를 유발하고, 무기력증의 원인이 됩니다. 그래서 마치 거미줄에 걸린 나비처럼 허우적거리면서 날지도 어쩌지도 못하는 인생을 살게 됩니다. 

 

지나친 죄책감을 가진 분들은 그것을 덜기 위한 심리치료를 받아야 합니다. 자기성찰을 할 때 정도를 낮출 필요가 있지요. 마음을 심하게 몰아붙이는 것은 지나친 죄책감의 원인이 됩니다. 어떤 분은 자신이 지은 죄의 개수를 세는 분도 있습니다.

 

이러한 자기성찰 행위는 자칫 세심증과 강박증을 유발합니다. 나중에는 다른 사람은 구원받아도 나는 받지 못할 것이라는 ‘구원 불안증’과 나 같은 사람은 하느님께서 절대 받아주지 않을 거야하고 생각하는 ‘종교적 우울증’에 걸리게 합니다. 이런 분은 당분간 자신이 지은 죄를 보지 말고, 자신이 왜 그런 행위를 했는가를 이해하고 공감하는 심리치료를 받아야만 합니다.

 

백인대장은 건강한 사람의 표본입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삶에 대한 부끄러움을 가질지언정, 주님을 멀리하거나 두려워하는 신경증적 증세는 없었습니다.

 

[평화신문, 2013년 3월 17일, 홍성남 신부(서울대교구 영성생활상담소장), 상담전화 : 02-776-8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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