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으로 현대 문화 읽기] ‘2015 신춘문예 단막극제’
소재는 달라도 결론은 ‘사랑’
- ‘2015 신춘문예 단막극제’ 포스터.
‘혹한의 겨울을 버티고 하나의 생명을 피워’ 낸 봄의 새싹, 신춘문예. 글 쓰는 일이야 신춘문예의 당락 여부와는 관계없는 일이나, 신춘문예에는 그 나름의 파워와 공적이 분명 있으며, 중에서도 단막극 부문은 그 의미가 각별하다. 선택된 희곡은 공연으로 다시 태어난다는 점에서도, 우리 삶의 단편적인 모습들, 특히 이 땅 젊은이들 생각의 흐름을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활자들이 영하의 지상을 뚫고 밖으로 나오면 연극인들이 생명의 바람을 불어” 넣는 40년 전통의 단막극제는 올해도 ‘설렘과 떨림’을 간직한 새내기 극작가들의 작품들이 현직 연출 배우 스텝 등 기성 연극인들에 의해 무대화 되었다.
단막극제에 오른 작품은 총 7편. 한 시간 간격으로 3시부터 9시까지 전 편이 다 공연된다. 관객은 저마다 좋은 것을 골라 볼 수도, 공연 틈새에 잽싸게 필요한 볼일을 봐가며 7시간 내리 관람할 수도 있다.
사는 이유도, 살아갈 이유도 몰라 자살할 수밖에 없는 두 남자 이야기, 박선 작 ‘물의 기억’. ‘헬리콥터 맘’에 길들여져 살고 사랑하는 방법을 익히지 못한 어른아이들의 이야기, 최세아 작 ‘어른아이’. 가족의 해체와 소통의 부재, ‘자식들 똥구멍만 쳐다보고 사는’ 부모이야기, 박교탁 작 ‘빨간 휴지 줄까 파란 휴지 줄까’. 평생 직장을 벗어날 수 없는 김과장의 엽기적살인, 그 피폐해진 마음속 이야기, 김나율 작 ‘초대’. 아무 건반이나 눌러대는 자폐아에게 기준음 ‘도’를 가르치며 정상적이라는 기준에 의문을 갖는 여자의 이야기, 남은혜 작 ‘달빛’, 자살하려 옥상에 올라온 초면의 네 사람, 결국은 사소하고 평범한 삶에의 감사를 되찾는 이야기, 최우람 작 ‘비상구는 있다’. 대학 졸업하고도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는 오경성과 플라스틱 조립 로봇하녀 프라메이드와의 동거 이야기, 송경화 작 ‘프라메이드’.
이들 주인공들은 경제논리에 의해 기계화되고, 무력감과 박탈감에 시달리고 살 이유를 찾지 못한 채 자살하고 과다한 경쟁이 주는 불안과 두려움에 살인까지 저지르며 소통의 부재로 고립되고 파괴되며 죽도록 위로받고 싶어 하는 외로운 사람들이다.
작가들의 문제의식과 시각, 관점이 다 다르고 작품 각각의 매력 또한 다르다. 그런데, 달라서 더 뚜렷하게 들리는 메시지는 의외로 한목소리다. 판단, 공감, 삶의 아름다움, 자살의 외로움, 가족, 경쟁 등. 결론적으로는 사랑, 사랑이다. 단순하고 간절한 이 메시지는 ‘복음적’이기까지 하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해라” 그러나 절대 그렇게 하지 않을 인간들은 세상 끝날까지 있을 것이다. 그러니 누군가는 목소리를 더 높이고 실천의 몫을 더 무겁게 떠안을 수밖에 없다. 연극계의 새바람과 새 기운이 세상의 흐름을 바꾸고 사람의 영혼을 들여 높이는 데 한몫을 해야 한다.
복음적 연극이 많아져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연극이 자신의 존재이유를 잊지 않는다면 존재가능성 또한 영원하리라.
* 이원희씨는 뮤지컬 ‘서울할망 정난주’ 극작가이자 배우로서 연극 ‘꽃상여’ ‘안녕 모스크바’ ‘수전노’ ‘유리동물원’ 등에 출연했다.
[가톨릭신문, 2015년 4월 5일, 이원희(엘리사벳ㆍ연극배우 겸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