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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 스페인의 유구한 가톨릭 역사4: 검은 마리아상의 눈물 - 몬세라트 수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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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7-06-24 ㅣ No.1710

스페인의 유구한 가톨릭 역사를 좇다 (4) 검은 마리아상의 눈물 - 몬세라트 수도원


자연과 신앙이 한데 어우러져 산 전체가 거대한 수도원 같아

 

 

성 베네딕도회 산타마리아 데 몬세라트 대수도원의 모습. 수도원 뒤 병풍처럼 서 있는 기암괴석이 절경이다.

 

 

사람의 마음이 간절해질 때가 있다. 시련이 닥쳤을 때다. 시련이 닥치면 사람의 마음은 고통 가운데 숙연해지고 겸손해진다. 스페인 동북부 카탈루냐 지방의 작은 마을 몬세라트에는 시련을 이겨낸 후의 거룩함이 깃들어 있다. 8세기 무어인의 침략과 12세기 나폴레옹의 침략에 맞서 카탈루냐 수호성인 검은 성모마리아상을 지켜낸 스페인 3대 순례지인 몬세라트를 찾았다.

 

해발 1300m에 위치해 있는 몬세라트(Montserrat). 산의 생김새가 톱니 모양(Mons serrtus)을 닮았다고 해서 로마인들에게는 몬스세라투스(톱니 모양의 산)라고 알려져 있고, 카탈루냐인들에게는 몬트사그라트(신성한 산)로 알려져 있는 몬세라트로 향하는 길은 길고도 높았다. 바르셀로나에서 기차로 1시간가량 떨어져있는 곳에 위치한 몬세라트역에서, 다시 등산열차를 갈아타고 산 위를 올라야 하고, 산 정상으로 가기 위해서는 다시 푸니쿨라라는 밧줄 케이블카를 타야 한다.

 

검은성모마리아상이 모셔져 있는 몬세라트 대 수도원 성당 입구. 화려한 문양이 인상적이다.

 

 

고도가 높아질수록 몬세라트는 거룩한 본연의 모습을 드러낸다. 1000여 개에 달하는 크고 작은 바위 봉우리가 솟아있어, 산과 마을 전체가 한데 어우러져 거대한 수도원을 이루고 있는 형상이다. 기암괴석은 크고 작은 톱니 모양처럼 날카롭고 험준하기보다는 오히려 아름다운 곡선의 연속처럼 보인다.

 

몬세라트 산 중턱에는 11세기에 세워진 성 베네딕도회 산타마리아 데 몬세라트 대수도원이 자리 잡고 있다. 수도원 뒤로는 준엄한 기품이 느껴지는 둥근 바위들이 든든히 수도원을 받치고 있다. 이곳은 본래 십자군 전쟁 당시 아랍인들의 박해를 피해온 위프레도 백작의 은수처로 알려져 있다. 이후 1023년 그의 증손자 리폴 신부가 수도원을 지었다. 현재 건물은 1811년 나폴레옹 전쟁으로 파괴됐다가 20세기에 다시 재건된 것이다.

 

이 수도원 성당 안에는 라 모레네타(La Moreneta) 검은 성모마리아상이 모셔져 있다. 목조로 만들어진 이 검은 마리아상은 루카 성인이 조각한 것을 베드로 성인이 스페인으로 가져왔다고 전해지고 있는데, 12세기 성모 발현과 기적이 일어났다는 소식이 번지면서 카탈루냐 지방 성모 신심의 구심점이 돼 왔다. 8세기 경 무어인의 박해를 피해 동굴 깊은 곳에 감춰져 있던 이 검은 성모마리아상은 880년 경 몬세라트 산 동굴 속에서 우연히 발견됐는데, 1811년 나폴레옹이 스페인을 점령하기 위해 전쟁을 일으켰을 때에도 신자들은 목숨을 걸고 이 성모마리아상만큼은 지켜냈다. 이후 교황 레오 13세는 이 성모상을 카탈루냐의 수호성인으로 지정했다. 검은 성모마리아상은 오른손에 지구 모양의 구슬을 들고 있는데, 이 구슬을 만지고 소원을 빌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전설이 있어, 순례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카탈루냐 수호 성인이자, 이 지역 성모 신심 구심점이 돼 온 검은 성모마리아상.


 

검은 성모마리아상이 내려다보고 있는 몬세라트 수도원 성당 안에는 토요일을 제외하고 매일 두 차례씩 천상의 목소리가 울려 퍼진다. 세계 3대 소년합창단 중 하나인 몬세라트 소년합창단이 목소리의 주인공이다.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이 합창단은 수도원과 성당에서만 공연하고 있는데, 약 1500대 1의 경쟁률을 통과한 9~11세의 소년만이 이 합창단의 단원이 될 수 있다.

 

자연과 신앙이 한데 어우러져, 마치 산 전체가 거대한 수도원처럼 보이는 몬세라트는 세계적인 건축가 가우디가 자주 들른 곳으로도 유명하다. 몬세라트 기암괴석의 자연미 넘치는 곡선은 가우디가 설계한 바르셀로나의 ‘사그라다 파밀리아 대성당’의 모습으로 재현된다.

 

수도원 밖으로 나와 절벽 앞에 마주서면, 수천 개의 사그라다 파밀리아 대성당을 마주하는 듯한 착각에 빠진다. 마치 무슨 말을 전하려는 듯 느껴지기도 한다. 이렇게 높고 깊숙한 곳에 주님의 성전이 지어지게 된 것은 어떤 힘에 의해서였을까. 아마도 굴하지 않으면서도 억세지 않은 몬세라트의 기암절벽이 ‘보시기에 참 좋았’던 주님의 선택을 받았던 것이 아니었을까. 절로 기도가 터져 나왔다.

 

‘주님, 제 마음을 지켜주소서. 제 마음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박해로부터 저의 신앙을 지켜주소서. 제 마음 밖에서 일어나는 모든 고통으로부터 저의 영혼을 수호해주소서.’

 

조용한 묵상 가운데, 성당으로부터 기도에 화답하는 천상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몬세라트 소년합창단이 전해주는 하느님의 응답이었다.

 

몬세라트 대수도원 앞 광장에는 여러 성인의 모습이 조각돼 있다. 그 뒤로 보이는 몬세라트 기암괴석의 모습.

 

 

고지대에 위치한 몬세라트에서 바라보이는 절경.

 

[가톨릭신문, 2011년 10월 30일, 임양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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